이야기 일본ㄴ-11부
이야기 일본ㄴ-11부
이규석과 함께 티브이를 시청하던 서음희는 이규석의 눈
치를 살폈다. 이따금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그는 톨크 쇼에
빠져있었다. 그가 어서 빨리 잠들기를 바랬으나 그는 잠자리에 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른 방법으로 그를 재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넋 놓고 티브이를 바라보는 이규석건들며 서음희가 물엇다.
[ 맥주 할래요? ]
그는 또 한번 웃으며 말했다.
[ 하하하하! 저양반... 맥주있어? 있음 줘.]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선 서음희는 냉장고 문을
열어, 몇개의 캔과 안주거리를 꺼내 간단한 주안상을 차린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묵직한 주물 잔에 맥주를 따라 이규석 앞으로 밀고는 자리에서 일어섯다.
[ 마시고 있어요.]
[ 어디 가? ]
[ 샤워 하려구.]
[ 그래? 그럼 이거 한잔 마시고 가라. 피로가 쫘악 풀릴거다.]
이규석이 빈잔에 맥주를 부어 서음희에게 건네자, 서음희
는 두손으로 잔을 받으며 이규석 옆자리로 바짝 다가가 앉
았다.
[ 나 샤워하는 동안 혼자서 다 마시면 안되요? ]
[ 허허. 내 맘이지, 먹고싶음 빨리 나와라? ]
두어 모금 맥주를 삼키곤 반쯤 남은 잔을 탁자에 내려놓
으며 서음희가 다시 일어섯다.
[ 훗, 모자르면 냉장고에 더 있으니깐, 꺼내서 마셔요.]
이규석이 음흉한 표정을 지우며 서음희를 바라본다.
[ 빨리 와야해...]
[ 훗, 알았어요.]
안방으로 들어선 서음희는 경대 위 커다란 거울 속에 자
신을 밀어넣으며 얼굴을 살폈다. 거울 속 여자의 얼굴이 몹 지쳐있었다.
셔츠의 단추를 차례로 풀어 웃옷을 벗었다. 스커트를 반
바퀴 돌려 자크를 내린 뒤 스커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자스커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위 아래가 하나로 된 검정 슬립을 머리로 부터 온몸으로
늘어뜨렸다. 슬립의 끝자락이 무릎위에서 출렁거린다.
슬립속으로 손을 넣어 팬티를 벗겨 내렸다. 하얀 얼룩이
진 팬티를 주먹속에 움켜쥐고 옷장 속 간이 서랍을 열어 검정 팬티로 갈아입었다.
바닥에 떨어진 셔츠와 스커트를 이불장 안에 대충 넣고는세탁실을 거쳐 욕실로 들어섯다.
수건 걸이에 옷을 벗어 걸치고 온수를 조절해 욕조에 물
을 받으며 화장을 지워나갔다. 금새 뿌옇게 변한 거울속으
로 게슴츠레한 눈동자가 껌뻑거린다. 졸음이 몰려왔다.
양취를 끝내고 반쯤 찬 욕조에 손을 넣어 휘적거렸다. 따끈한 수온이 지친 서음희의 몸을 유인했다.
물을 잠그고 탕안으로 들어가 다리를 뻗고 누웠다. 수면
이 입가에서 출렁거렸다.
온몸이 나른거리며 눈이 감겨왔다.
누군가 숨을 막는 느낌에 깜짝 놀라 요란하게 기침을 해대며 잠에서 깨었다.
탕 안에서 그대로 잠들었던 것이다. 욕조에 기댄 고개가
미끄러지며 탕속의 물을 먹은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들었다. 얼마나 잔걸까... 주위가 고요하다.
서둘러 물기를 닦고 밖으로 나왔다.
( 이런...)
이규석은 소파위로 길게 늘어진 채 잠이 들어있었다. 탁
자위엔 잔뜩 쌓인 빈 캔과 진열장에 놓였던 양주가 남김없
이 비워진 채 하얀 빈병으로 서 있었다. 티브이는 자동으로
꺼진것 같았다. 티브이 옆에 놓인 작은 탁상 시계가 새벽
한시를 넘기고 있었다.
( 아우... 내가 그렇게 오래 잠들었었나...)
머리를 매만지며 잠든 이규석 앞으로 다가갔다.
[ 규석씨! 규석씨! 아이, 술냄새...]
얼굴을 찡그리며 서음희는 다시 이규석을 흔들었다.
[ 규석씨! 들어가서 자! ]
계속해서 이규석을 흔들다 서음희는 깜짝놀라며 한발짝
뒤로 물러섯다.
[ 엄맛! ]
곤히 자던 이규석이 갑자기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자리
에서 벌떡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커다란 눈으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다 서음희를 뚫어
지게 바라보았다. 숨을 멈춘 채 놀란 눈으로 서음희도 그를
주시했다.
한참 동안 커다란 눈으로 서음희를 바라보던 이규석이 서
음희를 향해 무어라고 중얼거리다 다시 소파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 아이... 깜짝이야...]
가슴에 손을 모으며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데... 고요한
정적을 깨고 들려온 쩌렁쩌렁한 전화 벨 소리가 또 한번 서
음희의 심장을 뒤집어 놓았다.
낚아채듯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 여보세요? ]
[ ...... ]
상대편은 기분 나쁘게 아뭇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서음희는 다급하게 상대를 불렀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제서야 상대로 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어기, 거기 가... 거시기 뭐시냐... 순자네 집 아닌
감여? ]
사투리를 쓰는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였다.
[ 잘못걸었어요.]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 아이 씨팔! 오늘 이거 모야! )
다시 이규석 앞으로 다가간 서음희는 이번엔 강하게 이규
석을 흔들었다.
[ 규석씨! 일어나! 규석씨! 규석씨! ]
그제서야 이규석이 부시시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모야아... 왜 그래에... 아아아아아아... 아우 졸려...
왜 깨우고 난리야.]
[ 모야아! 사람이 목욕하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르구,
아이 술냄새...]
[ 죽긴 누가 죽었다구 그래...]
[ 일어나! 방에 들어가서 자.]
내리 하품을 해대며 뒤뚱뒤뚱 걸어가는 이규석의 뒤를 따
라 서음희도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를 확인한 이규석은
곧 바로 자빠졌다. 그리고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양말과 바지를 벗겨 침대 아래로 던지곤 침대위에 걸터앉
아 셔츠의 단추를 풀어 나갔다. 거뭇한 털로 뒤 덮힌 그의
맨살이 드러났다. 단추를 끝까지 풀다말고 서음희는 잠시
생각에 잠겻다.
( 기분도 찜찜한데, 다음에 확인할까...? 그래, 잠이나
자자...)
이규석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다 옆자리에 함께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확인하지 않고서는 잠들 수 가
없을 것 같았다. 잠든 이규석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곤 조용
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10와트 빨간 불로 조명을 전환하곤
다락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