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페로몬기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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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페로몬기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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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페로몬기 - 1부 


내 인생의 페로몬기 - 1부

 

“하아...”

빛이라고는 창밖에서 비춰지는 아침햇살밖에 없는 10평짜리 작은 옥탑방. 그 을씨년스러운

장소에서 힘빠진 선기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벌써 아침이구나..’

흔히 놀토, 쉴토라고 일컬어지는 두 번째주 토요일. 선기는 6시면 반사적으로 떠지는 눈을

두손으로 비비적거리며 따뜻하기만한 이불속에서 벗어날생각을 안했다.

“아씨.. 정말.. 왜 이리 빨리 깨는거야..”

그렇게 이불속에서 비비적대던 그는 따뜻하게 비춰오는 태양이 눈이 부신 듯 베게에 얼굴을

묻으며 더욱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이불속에 얼굴을 묻은 그는 너무나 기분좋은

따뜻함에 다시 잠에 빠지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어차피 학교도 안가는데.. 좀 더 잘까?‘

잠들기전에 항상 무언가 혼자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선기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떠올리며 잠에 빠져들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잠시 생각에 생각을 거듭

하던 선기의 뇌리속으로 어제의 일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갔다.

-벌떡

“아! 어제!”

그제서야 어제의 대참사(?)를 떠올린 선기는 이불속에 파고들던 몸을 벌떡 일으켰고, 그런

선기의 머릿속으로 어제의 일이 한창 상영되는 영화마냥 한컷의 공백도 없이 플레이되었다.

어제 자신의 친구 강석주를 따라서 해명여고의 담을 넘은일, 담을 넘자마자 그 학교 선

생님을 마주친 일, 그리고 그 선생님을 피해서 무작정 달려 마침 보이는 화장실에 찾아간일.

“아악... 내가 왜 그런짓을... 으아...!”

그렇게 급히 일어나 어제의 일을 회상하던 선기는 반쯤일으켰던 몸을 다시 이불속에 파묻으

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손으로 움켜잡았다.

“아아.. 내가 어제 그 소리를 듣고서 얼른 도망갔었어도.. 아니, 아예 화장실을 안찾아갔으

면..! 아냐아냐.. 괜히 소개팅 시켜준다는 말에 낚여서 석주녀석을 쫓아가지만 않았어도!”

이불속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자괴감에 빠져있던 선기의 머릿속으로 어제 있었던 가장 임팩

트 있는 장면이 지나갔다.

‘....하아~ 하윽... 아아~’

‘하아~ 하아~ 아으.. 좋아~ 좋아~ 아윽... 너무좋아!’

‘하윽.. 하아~ 하악~ 하악... 좋아~ 아윽~ 나오려고해!’

그 이름만으로 자극적인 여자화장실이란 밀폐된 공간에서, 한칸의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들

려오던 여자애 신음소리. 얇고도 호소력있던 목소리와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숨을 뱉어대던

작은 숨결이 하루가 지난 지금에서도 생생하게 생각이 났다.

“으윽.. 지금 생각해도 서버리는구나..”

그렇게 지난날의 자극적인 장면을 회상하던 선기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뻐근해져가는 아랫

도리가 신경쓰이는 듯 의시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그도 그럴것이 어제 화장

실에서의 기억은 아직 이성과의 성경험은커녕 연애경험조차 없던 선기에겐 너무나 충격적

인 장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지라.. 그래서 자신 역시 어제 집에 돌아온 직후 바로

이주일간 안하던 자위를 하지 않았던가.

“크윽...”

어제의 일에 대한 자괴감에 허우적거리던 선기는 문득 자신이 집에 돌아와서도 그 신음소리

를 회상하며 늦은 밤까지 아랫도리를 흔들던 기억이 떠오르자 더욱 이불속에 얼굴을 박으며

괴로워했다.

“아아.. 내가 그렇게 발정이 난놈이었던가.. 으윽..”

베개속에 얼굴을 파묻고 계속해서 자신을 비하하던 선기의 방에서는, 얼마 후 전화벨소리가

울릴때까지 한탄소리가 그치질않았다.

“에휴.. 어차피 난 이런 놈이었..”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갑작스럽게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선기의 한탄소리는 그제서야 멈출수있었고, 베개를 뚫을

듯이 처박던 고개를 들어올릴수있었다.

“... 이 시간에 누구지?”

잠시 의아한 듯 전화기를 쳐다보던 선기는 이내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어~ 선기냐~”

귀에 가져다댄 수화기 너머로 자신에겐 너무도 익숙한 친구녀석의 목소리가 들리자 선기는

반사적으로 수화를 내려놓았다. 탁!

-뚜... 뚜... 뚜..

수화기를 던지듯이 내려놓은 선기는 이내 다시 한번 울리는 전화기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따르르릉~

“이새끼가 무슨 염치가 있다고 전화질이야..”

계속해서 전화기를 노려보던 선기는 전화를 건 자신의 친구녀석을 향해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도 그럴게 전화를 걸어온 상대가 다름아닌 자신을 어제 해명여고에 던져놓았던 석주녀

석이었기 때문이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전화기를 향한 그의 적의가득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전화벨소리는 오히려 더욱 크게 울리기

시작했고, 그에 참을수없어진 선기는 한바탕 욕지기라도 쏟아내려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었다.

“야이 씨발새끼야! 니가 무슨 염치가 있다고 꼭두새벽부터 전화질이야 십색기야!”

“야야~ 선기야~ 내 말좀...”

“됐어 새끼야! 넌 월요일날 몸으로 대화 나눌일만 기대하고있어라 배응망덕한 새키야!”

“야야!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야! 꼭 할말이...”

-탁!

딱 자신이 할말만을 뱉어내고 전화기를 내려놓은 선기는 아직 녀석을 향한 분노가 모두 풀

리지않았는지 여전히 씩씩대고있었다. 다시 한번 좁은 단칸방에 선기의 씩씩대는 소리만이

적막을 몰아내고 있을 무렵, 선기의 방에 또 다른 소음이 끼어들어왔다.

-똑똑!

옥탑방의 투박한 철문을 두드리는 파공음이 슬며시 선기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응? 누구지?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이 있나..?”

가끔 밀린 월세독촉하러오는 집주인 아주머니나 혼자사는 그의 방에서 술잔치를 하러오는

친구들만이 철문을 두드렸을 뿐이었는데.. 선기는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반사적으로 지난달 월세를 밀리지 않았는지 확인부터 해보는 자신이 뭔가 비참해보였다.

“월세는 빠지는거없이 냈고.. 지금 시간부터 술먹자고 찾아올리는 없고.. 누구지?”

다시 한번 누가 찾아왔는지 고민하는 짧은 사이에 그가 고민하는 것을 아는지모르는지 다시

한번 재촉하듯 철문이 두드려졌다.

-똑똑똑!

“예예~ 지금 나가요~”

-끼익~

선기는 그제서야 누가왔느냐 고민하던 머리를 흔들고는 잽싸게 문쪽으로 다가가 투박한 철

문을 열어재꼈다. 그렇게 그가 버선발로 뛰어와 열어재낀 철문 뒤에는-

“너가 김선기?”

옥탑방의 철문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미소녀가 서있었다. 오밀조밀한 눈코입, 주먹만한

얼굴, 그리고 이마를 덮고있는 가지런한 일자형 앞머리에 가슴까지 내려온 푸른빛이 도는

웨이브진 머리칼. 무릎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에 몸에 딱 붙는 검은색 카라티를 맵시있

게 조합한 소녀가 그 이쁜 얼굴을 더위때문인지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응.. 내가 김선기인데.. 누구..?”

기껏해야 택배아저씨 정도로 생각한 뜻밖의 방문객이 이렇게 이쁜 소녀였다니. 금방이라도

얼어버릴것같은 입을 가까스로 연 선기는 이 소녀가 어떤 이유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물

었다.

“그래? 일단 더우니까 좀 들어가도 될까?”

분명 자신은 대답의 끝에 누구냐는 질문을 붙였었지만,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자신이

할말만을 간단하게 말하는 그녀의 조금은 짜증스런 얼굴앞에 선기는 어떤 반문도 표할수

없었다.

“아.. 응. 그래”

그녀에게 얼빠진 대답을 한 자신을 책망하며 그녀를 자신이 사는 누추한 집으로 인도하던

그의 머릿속에서는 그녀가 왜 자신을 찾아왔을까, 그녀는 누구일까, 라는 의문보다 눈부

시게 이쁜 그녀를 누추하고 좁은 방으로 들이는 부끄러움이 먼저 생겨났다.

“음...”

사실 태연한척 불쑥 찾아왔지만 다른 남자의 집에, 그것도 혼자사는 남자의 집에는 찾아가

본적이 없던 그녀- 정이수로서도 처음와보는 이 옥탑방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척 처음보는 남자의 자취방을 훑어보던 그녀는 김선기의 방이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남자 혼자 자취하는집- 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는걸 느꼈다.

일단 자신이 생각하던 퀘퀘한 남자냄새라던가 땀냄새라던가,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

니지만 거의 느껴지지 않는듯했다. 거기다 문득 바라본 옆에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화장

실이라던가, 방금까지 자고있었던 듯 방안에 이부자리가 펴져있었지만 그 이부자리마저

깨끗하게 깔끔하게 펴져있는 것 까지. 자신이 평소 생각하던 지저분한 남자의 방이 아닌

깔끔하게 정돈된 방을 보자 그동안 이 집을 찾으려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던 그녀의 짜증이

조금은 누그러지는듯했다.

“아.. 잠깐만. 금방 정리할께.”

한편 이렇게 갑작스레 자신이 사는 자취방으로 첫 여성손님이 오신것에 감격해할틈도없이

자신이 방금까지 비비적거리던 이부자리가 보이자 식겁한 선기는 서둘러 이부자리를 정리

하기시작했다.

“....”

그렇게 서두른 움직임으로 능숙하게 이부자리 정리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다시

한번 혼자 사는 남자의 지저분한 이미지에 대한 정정을 가해야했다.

“자아.. 다 됐다. 음.. 일단.. 상을 펴야하나? 차 마실래?”

깔끔하게 이부자리를 정리해서 한쪽에 밀어넣은 선기는 정이수의 시선이 마치 자신을 관찰

하듯 훑고지나가자 뭔가 찜찜함을 느끼고 말았지만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이라도 일단은

손님이니까 차를 대접할 요량으로 식사할때쓰던 상을 넓게폈다.

“음..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잠깐만...”

자리를 권하고 자신의 방 구석에 붙어있는 좁디좁은 부엌에 들어선 선기는 막상 그녀에게

무엇을 대접해야할지 고민이 들지 않을수없었다. 인스턴트 커피를 주기에는 저 아이의 용

모가 너무나 고급스러워 보이는지라 왠지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기까지해서, 시골에 사시는

부모님께서 직접 따 보내주신 녹찻잎을 꺼내었다.

‘이거면 되려나? 음.. 그래도 인스턴트 커피보다는 이게 낫겠지?’

항상 어렸을때부터 부모님이 보내주신 녹찻잎으로 녹차를 마셨던 선기로서는 그 녹찻잎이

다른 녹차에 비해 무슨 특출난 맛이 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마셔본 바로는 인스

턴트 커피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주저없이 그것을 우려내어 쟁반에 두컵의 녹차를 만들어

내었다.

“자아..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집에 있는게 이거뿐이라..”

자신있는 마음으로 우려내었던 녹차이지만, 그녀의 용모로부터 풍겨져오는 여왕님 포스에

주눅든 선기는 싸구려 녹차라도 대접하는 마냥 얼른 그녀 앞에 컵을 내려놓으며 자신 역시

그 맞은편에 앉았다.

“음..”

잠시 선기가 대접한 녹차를 한모금 음미하는 듯 보였던 정이수는 그동안 항상 고급 레스토

랑 음식에 외국에서 들여온 전통있는 차들만 입에 대왔던 자신의 입맛에도 이 녹차가 썩

좋은향으로 다가오자 살짝 놀란맘을 들키지 않으려 다시 한번 그 녹차를 입에 대어 두 모

금째를 음미하고 있었다.

“....”

“아.. 저기.. 음..”

그렇게 뜻밖의 향좋은 녹차를 음미하고있던 정이수는 문득 자신의 앞에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우물쭈물하고있던 김선기를 바라보고서야 자신이 남자 혼자사는 방에 불쑥 찾아온 이

유를 기억해내었다. 하지만 그녀가 꺼내려던 일화라는게 자신이 어제 화장실에서 겪었던

부끄러운 일이었던지라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음.. 저기.. 으음..”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 아까부터 계속 우물쭈물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

리는 선기를 바라보자 갑작스레 가슴속에서 울화통이 치미는 듯 답답한 마음이 드는 바람에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속에 고히 간직해놓은 한 핸드폰을 꺼내어 탁상위에 내려놓았다.

-탁!

“앗! 그.. 그건...”

계속해서 우물쭈물거리던 선기는 그녀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무언가 탁상위에 내려놓자 그

물건을 향해 시선을 이동시켰고, 그리고 이내 물건의 정체를 파악한 그는 경악에 찬 눈빛

으로 물건을 바라보았다.

“내.. 핸드폰..?”

탁상위에 놓여진 것은 바로 어제 선기가 해명여고 여자화장실에서 급히 빠져나올때 떨어트

린 핸드폰이었다. 어제 밤까지만해도 할부가 아직 6개월이나 남아있는 핸드폰인지라 얼마나

아까워했던가.

“그래. 이거 네 핸드폰 맞지? 응? 그렇지?”

그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인물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돌려받게 된 선기는 멍- 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돌려준 뜻밖의 인물을 쳐다보게되었다.

그리고-

‘....하아~ 하윽... 아아~’

‘하아~ 하아~ 아으.. 좋아~ 좋아~ 아윽... 너무좋아!’

‘하윽.. 하아~ 하악~ 하악... 좋아~ 아윽~ 나오려고해!’

어제 자신이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집에 와서도 수십차례나

생각났던 그 기억이 다시한번 수면위로 떠올랐다.

‘아니, 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는건....’

선기는 그 기억이 떠올라서인지 조금 붉어진얼굴로 어물쩍거리던 입을 열었다.

“너가 바로 그 여자애..?”

“닥쳐!”

혹 실례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내밀었던 질문은 정이수의 카랑카랑한 일갈에 쏙 들어

가버렸다. 이어서 정이수는 어느샌가 새빨게지기 시작한 자신의 얼굴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써 태연한얼굴로 자신이 할말을 내던졌다.

“네가 무슨말을 하려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잘들어. 나는 그저 어제 해명여고 안에서 우연히

이 핸드폰을 주워서 돌려주려고 애써 여기까지 찾아온거야. 알아들어?”

“어...? 으.. 응.”

그 태연한 얼굴위로 왠지 모를 위압적인 눈빛을 뿌리며 명령하듯 자신의 말을 전하는 정이

수앞에서 선기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뿐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저, 이 핸드폰을 정말 어쩌다~ 어쩌다가~ 주워서 그 주인을 찾으려

이리저리 헤메서 여기까지 온거라구. 응?”

“아.. 알았어. 알아들어.”

“그런데 그런 은인을 앞에 두고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나 하고있고.. 정말 예의를 모르는

아이구나?”

그 오밀조밀하고 예쁘장한 얼굴을 금새 새침하게 물들이며 선기를 쏘아붙이는 그녀의 얼굴

에선 감히 법접하지못할 여왕님의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어쩌지 못할 일방적인

언질에 선기는 그저 수동적인 입장으로 반응할뿐이었다.

“아, 아, 그래.. 고마워. 정말 고마워.”

“흥.. 순 엎드려 절받기가 따로없구나. 됐어. 그 따위 가식적인 인사는.”

그런 선기의 수동적인 반응에 영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휙- 하고 옆으로 치켜든 그녀는

눈앞의 선기를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무슨 사정으로 남의 여학교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의도가 그리 깨끗

해보이지는 않으니.. 어디가서 이런 애기, 안해줬으면해. 딱히! 비.밀.이라고 할것까지는

없지만 이런 일 알려져봐야 좋을거없잖아? 다 너를 위해서 하는말이야 너.를.”

정이수는 특히 비.밀. 이란 말에 의미모를 악센트를 주며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마치- 이

애기를 다른 사람한테 나불대기라도했다간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삿대질까지 해가며 강한

어조로 애기하는 그녀앞에서 선기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뿐이었다.

“아, 응.. 그래.”

여전히 그녀의 툭툭 쏘아대는 말투에 주눅이 들어 대답한 선기를 보고 난 후, 소기의 목적

을 달성했다는 듯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됐어.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들렀을뿐이니까 크게 마음쓸거 없고.. 다음에 봐도 아는

척은 안해줬으면 좋겠어. 그럼-”

그렇게 후다닥 신을 신고 나가버리는 그녀를 선기는 그저 멍- 하니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듯한 느낌을 받으며 앉아있을 뿐이었다.

“... 뭐였던거지.”

그렇게 한바탕 난리아닌 난리를 벌이고 난 후, 선기는 오랜만에 접대 다운 접대를 해봤다는

생각을 하며 상을 치우고 아까 서둘러 개어놓은 이부자리를 다시 피고는 깔끔하게 접으려고

하는데-

-촤아아아아아!

아까까지만 해도 구름사이로 어렴풋이 햇빛이 보이던 하늘에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에 놀란 선기는 얼른 창가로 다가가 아침에 열어두었던 창문을 닫으며 하늘을 올려다보

았다.

“와아.. 진짜 갑자기 쏟아진다.. 언제 이렇게 먹구름이 꼈다냐..”

밖에서 갑작스런 소나기에 두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선히 보

이는듯했다. 아아, 고생이겠구나. 하고 태평스런 소리를 주절거린 선기의 귓속으로-

-또.. 똑! 똑!

쏟아지는 빗소리 속에서도 청명하게 울려퍼지는 금속음이 들려왔다. 선기는 그 소리가 아침

에 정이수가 자신의 집 철문을 두드리며 났던 소리였음을 깨닫고- 오늘은 또 왠 손님인가

싶어 문으로 다가갔다.

-끼익

그리고 열어버린 자신의 집 철문 뒤에는-

“따.. 딱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 온건 아니야! 비.. 비를 좀 피하고 싶은데..”

조금 전까지 자신의 집에서 거칠것없는 작은 폭군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여왕님께서 새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부끄러운 듯 그 볼을 붉게 물들이고 시선을 다른곳으로 내비치며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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