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아내가 된 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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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아내가 된 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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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아내가 된 딸의 이야기 


아빠의 아내가 된 딸의 이야기

 

저더러 나쁜 년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하여도 뭐라고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뻔뻔하게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아빠라고 불렀던 남자의 아이까지 낳은 년이 무슨 입으로 변명을 하겠습니까.

물론 저를 낳아준 엄마가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에 아빠의 아내가 될 수가 있었고 아기까지 낳을 수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제가 나쁜 년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저는 저를 낳아 준 엄마가 병상에서 힘들게 병마와 씨름을 하는 동안 아빠를 유혹하였고 그리고 제 남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럼 먼저 저 자신을 잠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전 나이 32살이고 지금 백일이 겨우 지난 쌍둥이 남매의 엄마이면서 54살 먹은 엄마와 내연관계였던 아빠라고 불렀던 사람은 남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나쁜 년입니다.

앞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저를 낳아준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저를 낳게 해 준 아빠와 사귀기 시작하였고 그리고 임신을 하는 바람에 친정 부모님인 저의 외갓집과 인연을 끊는데다가 제가 초등학교 사학년 때 아빠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저를 데리고 가출을 하였고 가출 3년 만에 저를 낳게 하여준 아빠와 합의이혼을 함으로서 엄마아빠는 부부에서 영원히 남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홀몸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생활을 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엄마는 합의이혼을 하고 5개월 후 식당을 운영하는 한 남자와 동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건 제가 중학교 일학년을 마칠 그런 시기였습니다.

엄마의 그 동거가 지금의 비뚤어진 저를 만든 계기가 되었을 줄 엄마나 저도 몰랐습니다.

엄마가 일을 하던 식당의 주인인 그 남자는 홀아비로서 소문에 의하면 저를 낳게 해준 아빠처럼 바람을 피우다가 이혼을 한 남자였고 그 남자는 엄마를 노린 것이 아니라 저를 눈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제 몸은 그 남자에 의하여 망가진 후였고 그때서야 엄마는 땅을 치며 통탄을 하였지만 이미 깨어진 바가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그 남자를 처음 본 것은 엄마가 그 남자가 운영을 하는 식당에서 첫 월급을 받던 날이었습니다.

당시 먹고 살기에 빠듯하였던 우리 모녀에게 월급이 든 돈 봉투를 목숨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거금의 돈이 든 봉투를 엄마 혼자 몸으로 가지고 집으로 오다가 혹시나 분실 당할 염려를 하였던 엄마는 가게가 문을 닫는 시간인 10시에 맞추어 저더러 가게로 오라고 하였고 갔더니 그 남자가 묘한 눈으로 조를 보는 것이 소름이 끼쳤습니다만 엄마가 일하는 식당의 사장이란 말이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그 남자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그 남자는 저더러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고 먹었다고 하자 음료수라도 마시겠냐고 하기에 마지 못 하여 마시겠다고 하자 음료수를 가지고 와서는 홀의 식탁에 앉으라고 하고는 맞은편에 앉아서 제가 음료수를 마시는 것을 지켜보며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안 가서부터 엄마가 집에 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가 싶더니 월급날도 저더러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걱정이 되어서 집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술에 취한 엄마는 그 남자의 차를 타고 왔고 그 남자가 비틀거리는 엄마를 부축하여 방에 눕히고는 땀을 닦으며 음료수나 시원한 물이 없느냐고 묻기에 냉장고에서 물을 가져다주자 컵에 따라 마시면서 앞으로 잘 지내자는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하며 음흉한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간다고 하기에 그래도 엄마가 일하는 식당의 사장인데다가 엄마를 부축하여 방안에 눕혀주었다는 고마움에 따라서 밖으로 나와 인사를 하자 그 음흉한 남자는 제 엉덩이를 툭툭 치더니 곱게 자랐구나 하고는 차에 올라타더니 저를 보고 윙크를 하더니 갔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두 달 후 엄마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저에게 하였습니다.

혼자 몸으로 저를 공부시키며 살기에 힘들어서 가게 사장님하고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고 말입니다.

엄마의 그런 폭탄선언은 저로 하여금 반감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저를 낳게 해 준 아빠가 바람을 피워 더럽다고 한 집에서 살 수 없다는 명목으로 저를 데리고 가출을 한 사람이 아무리 홀아비라고는 하지만 다른 남자와 살을 맞대고 살겠다는 것이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던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가출을 할 수도 없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따라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들어 간 그날부터 저는 엄마에 대하여 반항심만 생겨 엄마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식당이라는 곳이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남자는 크게 필요를 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엄마가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던 새 아빠란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시장에 들러서 음식 재료들을 사서 반입을 하는 동안 엄마는 아침 준비를 하였습니다.

새 아빠라는 사람이 음식재료들을 식당에 내려놓고 집으로 오면 같이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저는 학교로 가고 엄마는 식당으로 출근을 하면 새 아빠라는 사람은 새벽에 조금 일직 일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에서 잠을 자거나 아니면 빈둥거리며 소일을 합니다.

식당에서 음식 준비가 다되어 갈 즈음에 새 아빠라는 느긋하게 식당으로 출근을 하여 점심 식사 손님을 맞이하고 카운터에 앉아서 계산만 합니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새 아빠라는 사람은 다시 가게에서 빈둥거리거나 아니면 집으로 와서 오수를 즐깁니다.

가게에서 쪽잠을 자도 되지만 엄마가 손님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면서 쪽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손님들이게 좋기 보이지 않는다며 집에 들어가서 편히 쉬다 오라고 하였다는 것이 새 아빠라는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이학년에 올라가기를 얼마 남지 않은 춘계방학이 거의 끝날 무렵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혜림아 뭐 하니”혼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서 대충 끼니를 때우고 컴퓨터 오락을 하고 있는데 새 아빠라는 사람이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나는가 싶었는데 명색이 중학교 이학년에 올라가는 자존심을 자긴 제 방을 노크도 없이 열고 들어와 물었습니다.

“나가세요, 어서”엄마는 저더러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였지만 호칭을 부르지 않고 겨우 존댓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허~어 이 아가씨 성질 한 번 보소! 혜림아 새 아빠도 아빠야”하고는 밀치는 제 손을 뿌리치고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빠는 무슨 아빠 흥”콧방귀를 뀌며 돌아서자

“허허허 귀여운데”제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말하기에

“어서 나가세요, 어서”하고 고함을 치며 돌아서는 순간

“어머!”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몸을 돌리자 어깨 위에 얹은 손이 밑으로 나려왔고 빠르게 돌아서는 바람에 그만 새 아빠라는 사람의 손이 제법 솟아오르고 있던 제 젖가슴에 닿았고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새 아빠라는 사람이 제 젖가슴을 움켜잡아버린 것입니다.

“엄마보다 느낌이 좋은데”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였습니다.

“!”순간 엄마에 대한 적개심이 다시 심하게 발동을 하면서 바람 한 번 피웠다고 이혼까지 한 엄마에 대한 복수심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그 복수심은 엄마로부터 새 아빠라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면서 저도 모르게 제 몸을 새 아빠라는 사람에게 그만 맡기고 만 것입니다.

“이제 겨우 이학년인데 이렇게 크니?”새 아빠라는 사람이 제 젖가슴을 주무르며 물었습니다.

“흥 크면 벌금이라도 내어야 하나요, 치워요”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하였지만 그 사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어떠한 동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엄마 젖가슴보다 더 탱글탱글한데.”목 부분으로 선을 넣으면서 말하였습니다.

“목 늘어나요, 빼세요.”하고 말하자

“그럼 이렇게”하고는 목으로 넣으려고 하던 손을 빼는가 싶더니 티 하단을 잡고는 위로 올려버렸습니다.

“아이 싫어요.”얼굴을 붉히며 말하였지만 우두커니 서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오~엄마보다 훨씬 예쁜데”티를 올리는 것만으로 만족을 느끼지 못 하였던지 브래지어까지 위로 올려버리고는 젖가슴을 움켜잡고 말하였습니다.

“피~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엄마 젖은 제가 먹어서 처졌으니 그렇겠죠.”하고 말하자

“혜림아 너 때문에 이거 이렇게 되었어. 어쩔 거니?”한 손으로는 여전히 제 젖가슴을 움켜잡은 채 다른 손으로 제 손을 잡는가 싶더니 제 손을 자신의 바지 중앙에 툭 튀어나온 부분을 잡게 하고서 제 귀에 입을 대고 끈적끈적한 어조로 물었습니다.

“.............”순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며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젯밤에 엄마하고 하고 씻지 않았어. 씻을까?”툭 튀어나온 부분 아니 비록 바지 위이고 팬티 위이지만 좆을 잡고 가만있자 귓불을 매만지면서 물었습니다.

“불결해 씻어”저도 모르게 엄마하고 했다는 말에 더럭 고함을 지르자

“그래 씻고 와서 하자 알았지?”하기에

“.............”그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습니다.

“우리 혜림이 보지 엄마 보지보다 예쁘겠지?”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저가 엄마에게 반항심을 강하게 나타내는 것을 보고 질투심을 유발시키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저에게 그렇게 접근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엄마는 전에 아빠하고 해서 나를 거기를 통하여 낳았고 또 아빠하고 하잖아 그런데 한 번도 안한 내 것하고 비교를 해”엄마하고 엄마가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던 그 사람하고 살림을 합친 후 처음으로 제 입에서 아빠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하긴 그건 그래, 그럼 얼마나 예쁜지 한 번 볼까?”하고 말하면서 치마를 들치려 하기에

“그건 안 해 보기만 봐 알았지? 약속”하고 왼손으로 그 사람의 팔을 털치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하자

“그래 그럼 약속”하고서는 그 사람도 새끼손가락을 제 새끼손가락에 걸며 말하였습니다.

“자세히 안 보인다, 누워볼래?”그리고는 치마를 들치고 팬티를 내리고는 말하였습니다.

“응”하고는 방바닥에 누웠고 가랑이를 벌리자

“와~정말 예술이다 예술이야”막 털이 올라오기 시작한 보지둔덕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말하였습니다.

“헤헤헤”철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던 저는 예쁘다는 말이 마냥 좋기만 하였습니다.

“엄마하고 하였던 것처럼 박지는 않을게 대신 어젯밤에 엄마하고 하였던 것처럼 빨아만 보면 안 되겠니?”말 끝마다 엄마를 들먹이는 것을 사전에 눈치만 차렸더라도 생기지 말아야 할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래 그렇게 해”철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저는 박지 않는다는 말에 현혹이 되어 그만 승낙을 하고 말았고 그 사람은 승낙이 떨어지기 무섭게 머리를 가랑이 사이에 박고는 혀로 날름대며 핥고 빨기 시작하였습니다.

“히히히 간지러워”처음에는 많이 간지럽다는 생각과 함께 왜 빠는지 이유가 궁금하였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봐”하고 고개를 들고 말하고는 다시 머리를 박고서 핥고 빨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저 아니 아빠 이상해요”간지러움을 참으며 3분 정도 지나자 오줌은 아닌 것 같은데 뭔가가 마구 흘러나오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자

“기분이 나쁜 그런 기분은 아니지?”고개를 조금 들고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응”갑자기 무척 가까워진 기분이 들자 어리광을 부리듯이 대답하자

“후후후 혜림이도 느껴지나 보지”하고 말하기에

“뭘 느낀단 말이야?”하고 묻자

“조금 크면 알게 되는데 어때 혜림이도 나처럼 좆 빨아 볼래?”하고 묻기에

“더럽잖아?”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하자

“좆이 더럽다면 이 보지는 안 더러운데 내가 이렇게 하겠니?”하고 말하더니 손가락으로 보지 금을 벌리더니 혀끝으로 보지 속을 날름대며 저를 봤습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할 말이 없어진 내가 빤히 보고만 있자

“같이 빨겠니?”고개를 들고는 혁대를 풀며 묻기에

“으~응”마지 못 해 승낙을 하자

“좋아 서로 같이 빨자”하고는 바지와 팬티를 밑으로 내려 벌거벗더니 몸을 돌려 69자세로 하고 포개자 그 사람의 좆이 제 입 앞에서 꺼떡이고 있었고 그 사람은 포개자마자 이미 제 보지에 입을 대고 핥고 빨았습니다.

저도 그 사람의 좆을 빤히 보다가는 떨리는 손으로 난생 처음으로 어른의 좆을 잡았고 혀끝을 조금 대어보다가는 다시 아랫도리에서 전해지는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어 그만 그 사람의 좆을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날은 서로 보지와 좆을 빨아주는 것으로 끝을 냈고 좆 물이 나올 때가 되자 갑자기 좆을 제 입에서 빼더니 두 손으로 잡고 흔들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딸딸이라고 한다고 하고서는 신음과 함께 좆에서는 하얀 물이 마치 침을 뱉듯이 툭툭 튀어나와 방을 더럽혔습니다.

그리고 딸딸이라는 것을 쳐서 나온 것을 좆 물이라고 가르쳐주고는 여자도 혼자서 자기가 빨아 줄 때의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방법이라면서 보지 부분을 책상이나 식탁 모서리에 데고 비비거나 아니면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거의 비슷한 기분이 들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자위 하는 방법을 알게 된 저는 자위에 빠져들어 새벽에 눈을 뜨기 무섭게 팬티 안으로 손을 넣어 손바닥으로 보지둔덕을 문질러 그 사람이 빨아줄 때를 생각하며 자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일주일간 많은 때는 하루에 열 번이 넘게 자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단 한 번의 빨림과 가르침으로 인하여 자위에 중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하고 자주 하였지만 하고 나면 항상 문가 부족한 요즘 유행하는 말로 2%가 부족하였습니다.

그 부족한 2%는 저로 하여금 토요일이 기다려지게 만들기에 충부 하였습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점심시간의 장사를 마치면 그 사람은 한가하였지만 일요일의 경우 아침부터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 사람이 한가하고 저 역시 오전 수업만 하고 오는 토요일이 은근히 가다려진 것입니다.

“자위 자주 했니?”기다리고 가다렸던 토요일 친구들이 놀다가자고 붙잡았지만 매정하게 뿌리치고 와서 기다린 보람을 줄 그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응”엄마가 아빠라고 부르라고 할 때에 그렇게도 거부감이 느껴지던 그 사람에게서 거부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박으면 안 되겠니?”제 옷을 하나씩 벗겨가면서 물었습니다.

“응 그건 싫어”단호하게 대답하자

“그렇다면 좆 물을 혜림이가 나오게 만들어 줄 수는 있겠지?”마지막 남은 팬티를 벗기며 물었습니다.

“나더러 딸딸이를 쳐달라고?”하고 묻자

“응 혜림이가 빨면서 딸딸이를 치는 거야”하고 말하면서 자신의 옷을 벗으면서 방바닥에 가랑이를 벌리고 누운 제 몸을 내려다 봤습니다.

“먹으라고는 안 하지?”그 사람의 발기가 된 좆을 올려다보며 묻자

“그거 누구에게 들었니?”토끼눈을 하고 내려다보기에

“친구가 남자 친구하고 남자 친구 집에 가서 놀았는데 딸딸이 도와달라고 하더니 먹이더래.”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였습니다.

처음 그 사람에게 보지를 빨리다가 좆을 빤 후에 저는 예전에는 듣고도 흘려버렸던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들이 하게 되면 귀를 쫑긋이 세우고 듣게 되었고 같은 반 친구 계집애들 중이 이미 경험을 한 애들도 있고 또 호기심을 가진 애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짧다면 짧은 일주일이었지만 기다면 아주 긴 일주일을 호기심으로 보냈기에 그런 것도 알아버렸던 것입니다.

다만 다른 애들의 경우 비슷한 또래 내지는 겨우 한두 살 정도 나이가 많은 오빠들과 상대를 하였다고 했고 또 그런 남자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고들 하였지만 저처럼 엄마하고 동거를 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였다는 말은 듣지도 못 하였고 또 걔들 이야기에 의하면 좆의 굵기와 길이가 엄지손가락 정도의 굵기에 길이도 거의 검지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하였는데 엄마의 동거남은 좆의 굵기도 두 배 이상이 되어 보였고 길이도 함 뼘 이상의 길이로 보여 무서웠던 것입니다.

“그래? 하긴 나도 혜림이가 먹어 준다면 고마운 일이지”하며 좆을 제 입안으로 넣으려 하기에

“냄새가 고약하다던데”저는 그 사람의 좆 대가리를 손바닥으로 쓱 닦으며 말하자

“그렇지만 피부 미용에는 아주 그만이라고 하드라.”하고 말을 마치자마자 좆을 제 입안으로 넣고는 제가 좆을 잡고 빨기 시작하자 엎드리더니 제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박고 보지를 빨고 핥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로 제 기분은 살아났습니다.

그 사람이 가르쳐준 대로 혼자 자위를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제 몸은 마치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그런 기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렇게 잡고 흔들어야지”순간 보지에서 허전한 느낌이 덤과 동시에 그 사람이 자신의 좆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흔들렸습니다.

“이렇게”그 사람이 자신의 좆에서 손을 때자 시키는 대로 하면서도 속으로는 어서 빨기나 빨아요? 하는 말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을 지금 와서도 욕을 하거나 놈이라고 하지 않고 곱게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제 뜻을 무조건 따라주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싫다고 하거니 승낙을 하지 않은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보기와는 다르게 아주 신사적으로 제 의견을 존중하여 주었습니다.

“혜림아 오늘 방학했지?”종업식을 미치고 집으로 오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거실에 있다가 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응, 왜?”하고 묻자

“방학 기념으로 오늘 박아보자”간절한 눈빛으로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가방을 던지며 물었습니다.

처음 그러니까 이학년 올라오기 직전의 토요일부터 비밀스러운 짓을 하기 시작하고서 여름방학이 될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심지어 봤었습니다.

저보다 한 학년 높은 삼학년 언니가 나이 오십이 넘은 아저씨하고 원조교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고 또 그 사람의 배려로(?) 그 사람과 엄마가 빠구리를 하는 모습을 수차례나 훔쳐도 봤었습니다.

훔쳐 볼 때마다 엄마처럼 그 사람의 좆을 보지구멍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생겼지만 막상 그 사람하고 서로의 좆과 보지를 빨아주는 날이면 두려움이 생겨서 그 사람이; 박고 싶다고 하였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래 처음 몇 번은 아프지만 차차 익숙해 져서 그때부터는 혜림이가 먼저 하자고 할 걸”평소처럼 제 못을 하나씩 벗기면서 말하였습니다.

“좋아 대신 아프다고 빼라고 하면 빼야 돼”하고 말하면서 저도 그 사람의 바지 혁대를 풀어주었고 지퍼도 내려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박아버리게 되면 많이 아프기에 안 된다고 하면서 예전처럼 제 보지를 빨아주었고 저 역시 그 사람의 좆을 빨았습니다.

“보자 됐어. 혜림이 보지에도 침이 잔뜩 묻었고 내 좆도 이정도면 좋아”하고 말하면서 몸을 돌려 좆을 제 보지구멍 입구에 대고는 포개었습니다.

“악! 그만 빼!”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밀리자 저는 그 사람의 가슴을 밀치며 말하였습니다.

“그래 알았어.”그 사람은 순순히 제 보지구멍에서 좆을 뺐습니다.

그러자 벌떡 일어나 앉아 허리를 숙이고 아랫도리를 봤습니다.

중학교 이학년 여름방학이 되기 직전까지 구이 간직하였던 처녀막이 찢어진 흔적인 검붉은 피가 배어나와 있었습니다.

“혜림아 이제 상처가 이삼 일 정도면 아물 거고 그때는 덜 아파 참아 주어서 고마워”하고 그 사람이 말하였고 그리고 물수건을 가지고 오더니 정성스럽게 닦아주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게로 갔습니다.

그날 이후 거의 일주일 동안 그 사람은 좆을 박자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좆 만 빨면서 딸딸이를 치게 하여 좆 물을 삼키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그 사람이 이삼일 정도면 상처가 아물 것이라고 하였기에 4일이 지난 날 그 사람의 좆을 빨고 딸딸이를 쳐주어 좆 물을 삼킨 후 그 사람이 가게로 나가자 자위를 시작하였고 옥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가락을 한 개 제 보지구멍에 쑤시자 미끄러지듯이 들어갔고 그러자 빼서는 두 개를 합쳐서 쑤셨지만 약간 얼얼한 기분은 들었지만 그 사람의 좆을 박았을 때의 아픔은 없었습니다.

몇 칠 후 저는 완전하게 그 사람의 좆을 보지구멍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저 그런 기분뿐이지 그 사람과 서로의 보지와 좆을 빨아 줄 때처럼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방학 중에는 일요일을 제외한 거의 매일 한 번 이상 제 보지는 그 사람의 좆 물을 받아들여 가면서 점점 맛을 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사다준 피임약을 복용하면서 말입니다.

방학이 끝나자 토요일이나 시험 기간의 경우 매일같이 그 사람의 좆 물을 받아들이며 익숙해지기 시작하였고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엄마가 잠들었는지 확인을 하게하고는 제가 그 사람을 제 방으로 불러들이는 경우가 많아 질 정도로 겁이 없는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이 될 무렵에는 제가 교태를 부리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새끼야! 네가 사람이냐!”그날은 겨울방학 중이었습니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온 그 사람과 한참 신나게 빠구리를 하고 있는데 앙칼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들고 보니 엄마가 쌍심지를 켜고 지켜보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여....여보 미안해”그 사람이 좆을 빼더니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비며 말하였습니다.

“혜림아 네가 먼저 하자고 했니?”앙칼진 목소리로 저를 쏘아보며 물었습니다.

“아니 억지로......”저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와 버렸습니다.

“개새끼 딸 같은 애를 강간했다고. 가자 경찰서에. 개새끼야 어서 옷 입어”하고 말하자

“용서해 줘 제발 부탁이야”하고 애원을 하였고 결국 엄마와 저는 그 사람과 그 사람 소유의 아파트와 그 사람 통장에 들어있던 돈의 절반을(거의 5천만 원 정도 된 것으로 기억함)받고서 합의를 하였고 헤어졌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간 엄마는 조용하게 사는가 싶었습니다.

한 남자의 바람기로 이혼을 하였고 또 한 남자에게서는 딸을 노리개로 데리고 놀았기에 남자라면 진절머리가 났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 역시 조신하게 생활을 하다 보니 좆 맛을 점점 잃어갔고 흥미도 사라져 착실하게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고 중학교는 물로 고등학교도 졸업을 무난히 하였고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전문대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엄마가 전문대학도 대학이랍시고 합격 축하는 한다면 파티를 하기 위하여 예약을 해 두었다면서 제법 그럴싸한 음식점으로 몇 시까지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친구를 데리고 가도 되냐고 묻자 펄쩍 뛰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인사해 새 아빠가 되실 분이야”약속 장소인 식당으로 가자 엄마가 웬 남자하고 나란히 안자있었고 제가 들어서자 소개를 하였습니다.

“엄마!”놀라서 엄마를 부르자

“아주 좋은 분이야”하고 제 말을 무시하였고

“혜림이라고 이름처럼 예쁘구나. 초면인데 악수나 할까?”점잖게 생긴 신사가 손을 내밀자

“윤 혜림입니다.”마지 못 해 그 신사와 악수를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 신사와 엄마는 우리가 사는 곳 인근에 있던 조그마한 암자에서 결혼식을 대신하는 식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엄마와 그분이 혼인신고를 하여 정식으로 부부가 되겠다고 하기에 왜인지는 모르지만 무조건 반대를 하였고 제 고집을 꺾지 못 한 엄마와 새 아빠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인 형식으로 살기로 하고 살림을 합쳤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저의 태도였습니다.

엄마의 두 번째 남자이자 제 순결을 가져간 사람의 경우 처음에는 그렇게 정이 가지 않았던 반면 세 번째 남자의 경우 이상하게 호감이 갔고 그래서 살림을 합친 날부터 저는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새 아빠에 대한 것은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새 아빠는 엄마가 엄마처럼 세 번째 여자였습니다.

척 번째 여자의 경우 결혼 10년이 되어도 임신을 하지 못 하자 어머니가 거의 강제로 이혼을 시켰고 그 후로 두 번째 여자와 만났으나 남자관계가 복잡하여 헤어졌고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자식을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서로 마음을 맞추어 살 사람을 물색을 하던 도중에 우리 엄마와 알게 되었고 사귀어 본 결과 욕심이 없고 심성이 착하다는 것을 알고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합의를 하여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도 하고 정식으로 살자고 하였었는데 제 반대로 혼인신고를 하지 못 하고 동거인으로 살기로 하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상하게 끝까지 혼인신고만은 하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여 직장에 다녔습니다.

평범한 가정 그 자체의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으며 엄마도 아주 행복해 하였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하나요.

제가 29살이 되던 해에 엄마의 몸이 이상이 생기는가 싶었는데 엄마의 몸 변화에 놀란 새 아빠가 엄마가 마다하는 것을 억지로 병원에 입원을 시켜서 종합 정말검사를 받은 결과 청천벽력 같은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암이었고 그 간암도 간 아에서 암이 생긴 것이 아니라 간을 감싸 표피에서 암이 발생을 하여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지경이라는 것이 의사의 검사 결과였습니다.

종합 정밀검사를 받으려고 입원을 한 엄마는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 입원을 하여야 하였습니다.

큰 병원 중환자실의 경우 잘 아시겠지만 일정 시간에만 면회가 되도 평소에는 병실 앞에서 지키고 있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집이 가까울 경우 집에서 비상 대기하고 있다가 병원에서 무슨 연락을 받게 되면 달려가서 보게 되어 있습니다.

다행이 우리 집과 엄마가 입원을 한 병원과는 걸어서 십 분 정도의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저녁 면회 시간에 면회를 하고 나면 집으로 와서 기다려야 하였습니다.

“무슨 팔자가 이렇게 더러운지 여자 복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구나.”그날도 새 아빠와 작장에서 마치고 병원에 들러 엄마를 면회하고 집으로 돌아와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새 아빠가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빠 엄마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하고 되레 제가 새 아빠를 위로하여야 하였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겠지만 나이 오십이 넘도록 슬하에 자식도 하나 없이 늙어가는 내가 처량해 보이지 않니?”제 술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물었습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잖아요?”하고 말하자

“흐흐흐 육십에 아이 가지면 걔가 스물이면 난 몇이지”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그런 지금이라도 제가 낳아 드려요?”하고 말하자

“아니 뭐? 뭐라고?”토끼눈을 하고 저를 보며 물었습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이 가망이 없다 하잖았어요?”하고 말하고는 새 아빠 옆으로 가서 앉자

“말도 안 되는 말 하지도 마라”하시더니 벌떡 일어나 안방으로 가버렸습니다.

고집이라면 한 고집 한다고 소문이 났을 정도로 고집이 센 저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새 아빠의 아기를 낳기로 말입니다.

다음 날 엄마 면회를 가서 면회를 하는 도중에 전 엄마 머리맡에 놓은 수면제란 글이 쓰인 약 봉투를 발견하였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보니 잠이 안 올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처방을 받아 둔 것으로서 엄마의 말에 따르면 복용하고 십 분이 지나면 아픔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 그 약 같았습니다.

그 약 봉투 한 개를 몰래 숨겼습니다.

이어 새 아빠가 면회를 하고서 새 아빠와 전 집으로 왔습니다.

전날 그런 일이 있어서인지 새 아빠는 저를 극도로 경계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굴었습니다.

평소에는 어리광을 피웠지만 어리광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식탁에 혼자 앉아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안도가 되었던지 새 아빠도 저와 마주보고 앉았지만 술을 따라주지 않자 새 아빠 스스로가 술을 따라 마셨습니다.

하늘은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요.

안방에 두고 온 아빠의 휴대폰 벨소리 들렸습니다.

새 아빠가 벌떡 일어서더니 안방으로 갔습니다.

바로 가루로 만들어둔 수면제를 맥주잔에 붙고는 젓가락으로 저었습니다.

“아빠 병원이야?”백색 가루가 보이지 않아 안심을 하는데 새 아빠가 안방에서 나오기에 물었습니다.

“아니 친구야 친구가 엄마 상태를 물었어.”제 물음에 답을 하고는 수면제가 타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아~피곤해 먼저 잘게”맥주 몇 잔을 더 마신 새 아빠의 눈이 점점 감기는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말을 하고 안방으로 갔습니다.

느긋하게 맥주 두병을 더 마신 후 나이트가운으로 갈아입고 안방으로 갔습니다.

새 아빠는 세상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있었습니다.

파자마 윗도리를 벗겨도 몰랐습니다.

새 아빠를 완전하게 알몸으로 만든 후 나이트가운과 팬티 그리고 브래지어를 몸에서 때어내고 새 아빠가 누운 침대 위로 올라갔습니다.

축 늘어진 좆을 빨고 핥아 서게 만들었습니다.

엄마의 두 번째 즉 제 순결을 가져간 남자에게서 배운 대로 가랑이를 벌리고 새 아바 몸 위로 가서 한 손을 침대에 짚고 엎드리고 한 손으로 새 아빠의 좆을 잡은 후에 제 보지구멍 입구에 닿게 하고 천천히 앉았습니다.

엄마의 두 번째의 좆이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들어온 좆이었습니다.

배운 것을 기억해 가며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을 실랑이를 한 끝에 제 보지구멍은 기어이 새 아빠의 좆 물을 받아들이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저도 피곤이 몰려왔고 새 아빠 곁에 누워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얘 혜림아 어젯밤에 무슨 짓을 한 거니?”새벽 저를 흔들어서 깨우더니 새 아빠가 물었습니다.

“아빠가 본 것이 전부야”하고 말하며 새 아빠 품에 안기자

“이런 변고가 있나”한숨을 쉬며 말하기에

“내거 엄마 대신 아빠의 착한 아내가 되어서 아빠의 아이 낳아 줄게”하고 말하자

“모르겠다.”하고 밀치더니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그날부터 낮에는 직장생활에 매진하면서 초저녁에는 엄마가 입원한 병원의 중환지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새 아빠와 교대로 면회를 하였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제가 엄마 대신 새 아빠의 나에 노릇을 하였습니다.

물론 새 아빠는 죄책감을 느끼며 저를 될 수 있으며 멀리 하려고 하였지만 저의 유혹에는 버티질 못 하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임종을 할 시기가 다가왔다고 알려주자 저는 엄머에게 새 아빠를 모시고 아이를 낳고 평생 살겠다고 했고 그러자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고 새 아빠도 엄마에게 저를 죽을 때까지 지켜주겠다고 하자 눈물만 흘리며 역시 손을 꼭 잡아주었고 이어 제 손을 달라는 시늉을 하더니 새 아빠 손을 잡게 하시고는 결국 우리 곁에서 떠났습니다.

건강검진을 왔다가 병을 알고 중환자실에 입원은 한지 꼭 6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

새 아빠는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서는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엄마의 첫 기일이 지난 후에 임신 여부를 결정하자고 말입니다.

저는 새 아빠 아니 이제는 새 아빠가 아닌 그이의 뜻에 따라 첫 기일까지 피임을 하였습니다.

엄마의 첫 제사를 모신 그 다음 날부터 저는 피임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피임약을 끊고 바로 생리가 불규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번째 생리는 아예 하지도 않았고 헛구역질만 나왔습니다.

새 아빠 아니 그이가 임신 테스트기를 사왔습니다.

두 줄이 선명하게 나왔고 설명서를 보니 두 줄이 나올 경우 임신이 확실하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로 그이와 함께 산부인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확실한 임신이라고 하며 축하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하였습니다.

그길로 그이의 성화에 이기지 못 하고 다녔던 회사로 가서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구청으로 가서 혼인신고도 하였습니다.

엄마하고 새 아빠가 혼인신고를 하려고 하였을 때 완강하게 반대를 한 덕에 엄마 대신 제가 새 아빠 아니 그이의 호적에 올라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저는 태교를 시작하였고 산달이 되어 무난하게 그이와 저 사이의 사랑의 결실이 아들을 낳을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우리 아이의 첫 돌날 제 친구는 하나도 없었지만 그이의 친구들과 일가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돌잔치를 하였습니다.

그이 친구들이나 그이의 일가친척들은 하나같이 그이에게 복덩어리가 굴러들어왔다고 부러워하였습니다.

54살이라는 많은 나이에 무려 22살이나 어린 색시를 아내로 맞이한 것도 부러운데 떡두꺼비 같은 아들까지 낳아 주었으니 우리 그이 그런 말을 들어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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