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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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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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

 

“자기야 큰일 났어. 오빠가...오빠가...”

휴대폰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

아내의 목소리와 말투로 미루어 짐작컨대 처남에게 무슨 일인가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다.

삼년 전 처남보다 먼저 결혼식을 올린 우리 부부는 처남보기가 미안해 고향선배를 처남에게 소개 시켜주었다.

말이 선배지 일 년 차의 처남댁은 막역한 친구나 마찬가지인 사이였다.

이년 전.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갔다가 아직도 혼자인 처남댁을 만나게 되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처남을 소개하게 된 것이 어쩌다 두 사람의 마음이 맞아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좀 차근차근 이야기 해 봐. 처남이 뭐 어쨌다고?”

“오빠가...오빠가 교통사고래.....”

“뭐. 어디래? 어디서 사고 났데?”

“지금 신촌 세브란스 병원이래. 나도 지금 가는 길이니까 자기도 얼른 와.”

다짜고짜 말허리를 자르고 자기 할 말만하고는 전화기를 꺼버리는 아내의 행동에서 상황이 몹시 위급하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평소 아내는 내가 먼저 전화를 끓기 전에는 절대 먼저 끓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나에게 먼저 끓으라고 말을 해주는 친절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사무실 일을 급하게 정리하고 혹시 모를까 싶어,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아 추적추적 내리는 소나기를 뚫고 병원에 도착하였다.

응급실 앞에 아내가 나를 기다리는지 초조한 듯 다리를 종종 거리며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절부절 못하는 아내의 모습이 상황의 긴박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상태는 어떻데?”

아내에게 처남의 상태를 물었다.

“몰라. 나도 방금 막 도착 했는데. 의식이 없어.”

“일단 들어 가 보자.”

아내의 손을 잡아끌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분주히 움직이는 간호사들, 여기저기서 고함치며 아우성인 환자들, 때론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몇 칸의 환자를 건너가자 응급실 간이침대에 붙어있는 처남의 이름표를 발견 하였다. 이름표를 확인하고 상태를 살펴보려 하였는데, 처남의 몰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였다.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진 안면, 아마도 침대에 걸려 있는 이름표가 없었더라면 그 사람이 처남인지 아닌지도 몰랐을 것이다.

피투성이인 채로 팔과 다리에 붕대가 감겨져 있고 오른쪽 발목 아래는 발이 안으로 접혀져 완전히 관절이 뒤틀어져 보기가 몹시 흉하였다.

간호사 둘과 의사 한명이 매달려 있는 처남의 상태는 내가 보기에도 촉각을 다투는 상황이 분명하였다.

아마 살아나더라도 온전하지는 못할 듯 보였다.

“처남댁은?”

“지금 오는 중이래. 너무 멀어서 시간이 걸리나 봐.”

왠지 처남댁 보기가 미안해 질것 같았다.

결혼 후, 아직 신혼의 기분도 재대로 누려보지 못한 두 사람은 처남의 지방 발령으로 뜻하지 않게 주말 부부가 되어야만 했는데, 엎친대 덮친 격이라고 처남의 사고 소식은 처남댁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끓었던 담배 생각이 너무나 간절하였다. 단지 처남의 상태 때문이 아닌 처남댁 경란의 일 때문이었다.

“휴! 나 담배 한모금만 하고 올게.”

“자기 담배 끓었잖아?”

“응. 근데 지금은 한 대 피고 싶네.”

“알았어. 멀리 가진 마.”

“응.”

처남의 몰골을 더 이상 보는 게 힘들어 담배를 피우겠다는 핑계로 응급실을 빠져 나왔다.

하늘을 쳐다보니 잔뜩 낀 먹구름을 뚫고 금세라도 그칠 것 같았던 소나기의 굵은 빗방울이 얼굴로 쏟아졌다.

소나기가 나에겐 상당히 낭만적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음산하게 느껴지는 건 처남의 몰골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처남댁 경란을 보기가 힘들어 질까 두려워서 일까?

오 분여 정도를 응급실 밖에서 서성이고 있으니 처남댁이 택시에서 헐레벌떡 뛰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경란아!”

부지불식간에 처남댁의 이름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결혼 후, 이년간 그녀의 이름대신 처남댁이란 호칭으로 불러졌던 김 경란!

“어! 창민아. 그이는?”

“아직 응급실.”

처남댁 경란은 내 말을 듣자마자 응급실 문을 열고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고, 나는 그녀의 팔을 낚아채 다짐하듯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각오 단단히 해야 돼!”

내 말을 들은 처남댁은 급격히 인상이 일그러졌다. 처음 도착 하였을 때의 실낱같은 희망의 빛이 나의 한마디로 인하여 처참히 뭉개지는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고 처남댁 또한 그런 각오를 하는 게 나중의 충격을 완화해줄 것 같아 사실 그대로를 일러 주었다.

“어느 정도야?”

“힘들 것 같아.”

솔직한 내 느낌을 대답 하였다.

눈물이 흐르는 처남댁, 아무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그녀는 통곡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솟구치는 눈망울엔 나에 대한 원망도 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 것은 내 생각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그 원망을 느낄 수 있었다.

처남댁과 같이 들어간 응급실의 처남의 침대엔 의사와 간호사의 숫자가 더 늘어나 있었다.

얼굴엔 인공호흡기가 씌어져 있었고.

그런 처남의 모습을 처남댁 경란은 말없이 쳐다보기만 할 뿐, 내 말에 이미 단단히 각오를 하였는지 오히려 아내보다 더 침착해 보였다.

처남의 침대에서 간호사가 한 둘 자리를 뜨더니, 의사 한명만 남겨두고 모두 자리를 비워버렸다.

“이 수성씨 보호자 십니까?”

마지막 남은 의사가 처남의 침대에서 돌아서며 나직한 음성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건냈다.

“예. 그렇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분의 상태가 워낙 위중해서, 아마도 두 시간을 넘기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사형선고였다.

아직 채 신혼의 꿈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주말 부부로 떨어져 살아야 했던 처남부부에겐 너무나 가혹한 하늘의 형벌 이었다.

아내와 처남댁은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였다.

“오빠! 이게 뭐야. 어쩌자고 벌써 가버리는 거야. 엉엉....어어엉.”

“수성씨. 나는 어찌 살라고...나는 어쩌란 말이에요.”

두 연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한탄과 비탄은 일순간 응급실을 가득 메우며 주변을 숙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산자와 죽은 자의 갈림길에 선 많은 환자들의 신음성마저도 그 소리에 묻혀 버려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뒤로 하고 응급실을 빠져나와 미처 알리지 못한 처가 식구들에게 통보를 하였다.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았다.

상주는 처남댁. 아직 자식이 없어 처남댁 김 경란이 상주가 되어 조문객을 맞았다.

그녀의 옆엔 아내와 내가 동석을 하고 조문객을 맞았다.

조문객은 평소 처남의 후덕한 인품과 둥글둥글한 성격 때문인지 야심한 시각까지 끓이질 않았다.

새벽 두 시경 겨우 한숨을 붙이려 나 했더니 뒤늦게 처남의 고교 동창생들이 처가 고향에서 조문을 오는 바람에 첫날은 거의 뜬눈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무척 수척해 보이는 처남댁. 아내를 시켜 이른 새벽에 잠시 찜질방이라도 다녀오라고 시켰지만 처남댁은 그것도 마다하며 분향 실을 고집스레 지키고 있었다.

삼일장의 둘째 날.

처남의 초상 첫날이 일요일이라 그랬던지 둘째 날은 조문객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낮 시간대는 거의 십여 명 안팎의 조문객이 다녀갔고, 그 틈에 아내와 처남댁에게 잠시의 휴식 시간을 줄 수 있었다. 분향소는 나와 장인어른이 지키며 조문객이 올 때면 내실의 아내와 처남댁을 불러 조문을 받았다. 저녁 무렵부터는 다시 조문객이 많아 졌지만 전날에 비하면 많이 줄어들어 새벽녘엔 내실에서 새우잠이나마 청할 수 있었다.

내실의 한쪽 귀퉁이에 기대어 선잠이 어설프게 들었다 싶었는데, 내 어깨로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잠결에 아내의 머리일거니 하고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얼핏 느껴지는 체취가 아내와는 다른 것 같아 잠을 쫒으며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나와 반대쪽 벽에 머리를 누인 채 모로 누워 잠들어 있는 것이 눈에 띠였다.

그렇다면 지금 내 어깨에 기대고 있는 머리의 주인은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처남댁

경란이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본인도 모르게 내 어깨에 기대졌구나 하는 생각으로 괜히 거느렸다가는 겨우 잠이 든 사람을 깨울까봐 그대로 두었다.

새근새근, 그녀의 고른 숨결이 느껴졌다. 무척 수척해진 얼굴이 그녀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클까 생각되어 연민까지 들게 되었다.

나의 소개로 처남을 만나 결혼까지 하였지만 처남의 발령지와 처남댁 경란의 근무지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주말 부부로 이년여 채 신혼의 단꿈도 꾸어 보지 못한 채 주말이나 명절이 되어서야 겨우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두 사람은 그 결실을 맺기도 전에 영원한 이별을 하고야 말았다.

어찌 보면 내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처남댁 경란이 더욱 가여워 보였다.

한 살 터울의 동네 지기인 경란. 무슨 생각에서인지 잠결의 그녀 뺨을 나도 모르게 쓰다듬게 되었다.

서른이 넘었다지만 부드러운 볼 살의 느낌, 잡티 하나 없이 잘 가꾸어진 그녀의 볼이 거칠게 느껴졌다. 아마도 이틀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화장도 할 수 없었던 탓이려니.

앞쪽의 장인어른이 뒤척이며 움직이자 나는 놀란 토끼처럼 경란의 볼에서 손을 때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처남댁 경란의 상태를 살폈지만 여전히 고른 숨에, 한 잠에 빠진 모습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다섯 시경 삼일장의 마지막 날이었다.

발인이 여섯 시 삼십분에 있으니 그 준비를 위하여 일어나야만 하였다.

처남댁 경란의 어깨를 살짝 흔들어 그녀를 깨웠다.

“처남댁. 이제 일어나야 돼요.”

어깨의 흔들림으로 인하여 인지 아니면 이미 깨어 있었는지 그녀는 내가 어깨를 흔들자마자 바로 눈을 뜨며 내 어깨에서 머리를 들어 올렸다. 언뜻 보이는 처남댁 경란의 상기된 볼이 눈에 스치듯 지나갔다.

그렇다면 처남댁 경란은 내가 자신의 볼을 만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내 어깨에 머리를 올려놓고 잠들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일까?

후자의 경우라면 경란은 방금처럼 볼을 상기시키고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네 친우들의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청취하며 수다를 떨 때도 경란은 가끔 내 어깨에 기대어 노래에 빠져든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결론은 처남댁 경란은 내가 그녀의 볼을 어루만지는데도 그것을 느끼며 가만히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호..혹시 경란이...’

처남의 상중인데도 나는 그녀에 대하여 엉뚱한 생각을 하며 죽은 처남을 욕보이려 하고 있었다.

‘이런...내가 지금 무슨 망상을..’

머리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어 상념을 깨우고 내실을 나가 장례식장 입구로 나갔다. 혼탁한 머리를 식히기 위하여 새벽공기라도 들이마실 요량이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새벽이라고는 하지만 더위가 쉬이 물러가진 싫었는지 벌써부터 제법 더위가 느껴졌다.

“김 서방 자네가 고생이 많네.”

불현듯 등 뒤에서 들려오는 장인어른의 목소리, 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엔 힘이라곤 하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뿐인 아들을 저승에 앞세웠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랴. 장인어른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그 마음을 헤아릴 수가 있을까?

“아닙니다. 장인어른.”

달리 다른 어떤 말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설프게 장인어른을 위로 할 말주변이 내겐 없었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말보다도 괜찮다는 말이 어느 때는 훨씬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대답 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긴 한숨과 뿌연 담배연기를 허공에 실어 날려 버리시는 장인.

지금 장인은 그 담배 연기 속에 회한을 섞어 함께 날려 버리려 하시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담배가 거의 다 타 들어 갈 때까지도 장인어른과는 한마디의 대화도 없었다.

그렇지만 장인어른의 주름진 눈매에서 풍겨 나오는 깊은 시름은 백 마디의 말 보다 더 나를 아프게 하였다.

오전 여섯시 삼십분 처남의 발인 재를 지내고 화장지로 향하였다.

내 차에 검은 띠를 둘러 제일 앞에서고 그 뒤를 처남의 관을 실은 장의차와 조문객의 차들이 줄을 이었다.

느릿느릿 달려 도착한 화장장엔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의 곡소리가 하늘과 땅을 가득 메우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처남을 실은 관이 시뻘건 화염 속으로 사라지자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뺨을 적시기 시작하였다.

내가 이럴 진데 장인과 장모님 그리고 처남댁은 오죽하랴.

기어이 장모님은 혼절하시어 의식을 잃어 버리셨고, 부랴부랴 장의차에 모셔가서 안정을 취하게 하였다.

장례기간동안은 그나마 아들의 육신이라도 관속에 온전하게나마 있었지만 시뻘건 화염을 내뱉는 소각로로 그 관마저 사라져 버리자 장모님은 마지막 의식의 끈이 끓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처남은 화장장에서 한 줌 남은 뼈 가루로 세상과의 마지막 인연을 모두 훨훨 재를 만들어 태워 버렸다.

혼자 남겨진 처남댁과의 인연도, 장인 장모님과 부모자식 간의 핏줄로 맺어진 인연도, 모두 연기가 되어 우리의 곁을 떠나버렸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아니 나란 인간은 참 간사한 동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다.

처남의 장례식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후부터 처남댁 경란의 일이 걱정이 되기 시작 하였다. 혼자 남겨진 세상의 풍파를 어찌 감당 할지, 나 또한 그런 마음을 품은 적이 몇 번이나 되지만 흔히 남자들은 이혼녀나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가는 미망인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연민 때문인지 처남댁 경란에게 전화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오늘도 퇴근 무렵에 경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응! 왜?”

“그냥. 잘 지내나 싶어서.”

“그럭저럭.”

“미안해.”

“뭐가?”

“그냥.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아서.”

“아냐. 내 복이지 뭐.”

“저기 있지?”

“응. 뭐?”

“아냐. 됐어.”

“뭔데?”

“아무것도 아냐. 들어가 그럼.”

“응.”

처남의 장례식 때. 내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던 이유를 물어 보고 싶었으나 괜히 난처해 할까봐 말을 꺼내지 못 하였다. 그 날 느꼈던 감정의 나만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어린 시절 한 때나마 그녀를 내 가슴에 품었던 적이 있어 그 미련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사무실을 소등하고 시근장치를 확인한 후, 막 퇴근을 하려던 참에 휴대폰이 울렸다.

방금 통화를 한 처남댁 김 경란의 번호가 액정에 표시되어 있었다.

무슨 일일까? 방금 통화 했는데.

이유 없는 기대감에 통화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나야.”

“응.”

“사실. 나 있지 너무 힘들어.”

힘들어 하는 경란의 말을 듣게 되자 그녀를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말문이 막혀 버렸다.

수시로 안부를 물으며 도움이 되는 것이 없을까? 하였지만 정작 힘들다는 말을 듣게 되자 무었을 어떻게 위로해야 될지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이 아무 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듣고 있어?”

“응.”

“나 술 좀 사줄래?”

“지금?”

“응.”

“어디야?”

“회사.”

“그럼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목적지를 집에서 경란의 회사로 바꾸었다. 아내에게는 거래처 손님을 만난다고 하였는데, 사실대로 처남댁 경란을 만나다고 해도 무관한 것을 왜?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설레는 가슴을 억눌러 진정 시켜가며 경란의 회사에 도착하니 출입구에 경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내 차의 번호를 알고 있는 경란의 앞에 정차를 하자 경란은 기다렸다는 듯이 조수석에 힘겨워 지쳐 보이는 몸을 실었다.

“어디로 갈까?”

“자주 가는데 있어?”

경란한 음성엔 우울함과 짙게 배어있어 높낮이가 거의 없이 들렷다.

차를 몰고 단골로 가는 일식집으로 향했다.

고향 친구들이나 손님 접대 때문에 한 달에 두어 번은 들리는 곳인데 주방장인 사장의 음식 솜씨가 깔끔하고 맛도 담백하여 단골이 꽤나 많은 일식집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경란이 청주와 소주를 시켰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경란은 알코올 함량이 많은 술은 못 마셨다.

“맞아. 넌 소주는 못 마시지?”

“넌 왜? 항상 반말이니?”

나의 물음에 경란은 생뚱맞게 응대 하였다.

목소리가 나지막이 가라앉아 있어 농담으로 들릴 수가 없도록.

그 물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우선 아무대답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버릇인가 봐.”

그냥 버릇인가?

너무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흉허물 없이 자란 탓일까?

그것만이 내가 경란에게 반말을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머릿속이 점점 꼬여가는 복잡하여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며 정리를 해 보았지만 내가 유추 할 수 있는 답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 경란은 내 가슴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것 밖에.

경란의 입술에 술잔이 부딪치며 잔속의 술이 살짝 벌어진 입술 속으로 또르르 굴러 들어갔다. 몇 번이나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경란의 볼이 약간 취기가 오른 듯 홍시처럼 발그레하게 보였다.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너 술 잘 못하잖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 예전하곤 많이 달라졌어.”

“내가 보기엔 안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경란의 취기는 여전하였다.

한 잔의 술로도 얼굴이 붉어지며 그 정도가 심해지면 목덜미까지 붉게 변하는 경란은 이미 목덜미를 지나 쇄골근처까지 붉게 취기가 올라 있었다.

그 상태에서 한두 잔만 더 지나면 혀가 꼬여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 오늘 많이 취하고 싶은데?”

안주 접시의 광어는 아직 몇 점 짚지도 않았는데 경란은 이미 혼자서 청주 한 병을 거의 비워 버렸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에 대한 원망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이른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신세의 한탄일까?

또 다시 머릿속에 혼란으로 가득해 지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화제를 바꾸려 하였다.

“취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난 준비 돼 있어.”

“후훗. 넌 참 그게 좋더라. 내가 아무리 빈틈을 보여도 넌 항상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어.

하지만...“

뒷말을 무언가 하려던 경란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을 잘라 버렸다.

뒷말의 여운이 왠지 불안 하였다. 아니 이유 없이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혹시나 내가 원하는 말을 듣지나 않을까하는 기대감에서.

조금의 시간 동안 우리의 침묵이 이어졌다.

경란은 계속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마는 것 같았고, 나 또한 그런 경란의 태도에 삼십오 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말을 털어 놓으려다 그러지 못 하였다.

긴 세월을 돌아 경란을 내 주위에 붙잡아 두는 대는 어찌 성공 한 듯 보였지만 내가 원하건 그런 게 아니었다. 바로 경란을 남의 여자가 아닌 내 여자로 내 곁에 두고 싶었다.

사춘기 때 소심한 내 성격 탓에 가슴에만 묻어 두었던 여자.

대학을 진학 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의 아내를 맞아 그 성격에 매력을 느껴 빠져 들었고, 군 제대 후 내가 진정 원하던 여자는 아내가 아니었음을 알았을 땐 너무 늦어 버렸다.

아내와 내가 관계를 했을 때 분명 아내 또한 처녀가 아니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설프게 시작한 아내와의 관계에서 한 번의 낙태 수술을 하였고, 그것은 엄청난 책임감으로 압박하여 나를 짓눌러 버렸다.

그래서 포기한 여자 김 경란, 어쩌면 처남에게 경란을 소개 한 이유도 경란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를 소원했던 나의 욕심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경란이나 처남에겐 조건이 맞아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또 처남의 사고로 연결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언제 부터인지 창밖으로 굵은 장마 비가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아우성 치고 있었다.

창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줄기는 내 마음을 투영 하는 듯 긴 물줄기를 만들어 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경란과의 인연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처럼 길게 줄을 이어 창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문득, 경란의 시선이 창유리를 보고 있다고 느꼈을 때 그녀의 눈가에 맺힌 작은 이슬을 보았다. 경란은 시선을 창에 고정한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날도 이랬지. 비가 엄청 많이 왔거든.”

“그 날?”

“생각 안나니? 고등학교 다닐 때 네가 오늘 같이 비가 많이 오던 날 우산 씌어 주던 그 날.”

경란은 까마득 기억의 저 편으로 넘어가 있는 일을 꺼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 여름. 유달리 장마가 극성이던 고등학교 이학년 아침에 후덥지근하게 덥던 날씨가 하교 시간에 맞춰 폭우로 변하여 대지를 적시던, 다행이 나는 그 전에 학교에 두고 간 우산이 있어 그 걸 쓰고 하교를 하다가 경란이 버스 정류장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것 보게 되었다. 한참 버스를 기다리던 우리는 불어난 물에 다리가 잠겨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불평스런 말과 함께 그,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향하였다.

마을 입구 다리에선 고삐 풀린 황소처럼 성난 물줄기가 금방이라도 다리를 집어 삼킬 것처럼 무섭게 교각을 들이받고 있었다.

작은 우산 속의 경란과 나는 퍼 붓는 빗줄기에 이미 우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그 우산으로 인해 경란과 연결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불어난 강물로 인해 집으로 돌아 갈 수 없었던 우리는 강 앞마을 회관에서 밤을 지 샐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네가 만약 내 손이라도 잡았으면 했었어.”

“나도 그러고 싶었어.”

“그럼 잡지 그랬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 네가 내 손을 잡아주기를.”

경란의 말 속에는 나를 향한 원망이 섞여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 날, 빗속에 젖어 버린 경란의 옷은 몸에 착 달라붙어 몸매의 실루엣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면 그는 아마 성인군자나 선인들 밖에 없으리라.

몇 번이나 경란의 손 근처, 또는 잠들어 있는 경란의 입술 근처까지 갔다가 마지막 순간에 포기를 하고 말았던 것은 우유부단한 내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날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며 살아 왔었는데, 경란은 그런 내 심장을 후벼 파고 있었다.

지난날의 나를 지금 탓해본들 뭣 하겠나 과거는 과거일 뿐,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감이 들었다.

“지금 그 얘길 하면 뭐 하겠니? 이미 지난 이야긴데.”

“하긴, 지난 일이지. 그래. 술이나 마시자.”

몇 잔의 술이 더 들어가자 경란은 혀가 조금 꼬부라지더니 술기운을 빌린 듯 나를 향한 원망을 토해내기 시작하였다.

내 가슴 속에 응어리져 있는 첫 사랑의 아픈 기억을 다시 건드려 버렸다.

“창민이 넌 아주 나쁜 새끼야. 알아?....가려면 네가 안 보이는 아주 먼 곳으로나 갈 것이지 왜? 왜 그랬어?”

경란의 그 말을 듣고는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녀 또한 내가 그녀를 잡아주기를 속으로 원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김 경란. 내 가슴 한구석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잇는 그녀의 가슴 속에도 내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슴이 먹먹하였다.

결단력이 부족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몇 년 만 더 일찍 경란의 마음을 헤아릴 수만 있었더라면 하는 자책이 들었다. 그랬으면...그랬으면....

“내가 왜? 수성씨와 결혼 했는지 너 아니?”

“그래. 이제 어렴풋하게 알 것 같아. 미안해. 내가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나도 널...아니 내 욕심이었는지도 몰라.”

“알면. 그 때 잡지 그랬어. 안아주지 그랬어. 내가 널 얼마나 원했는데....널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었는데...흐흐흑....흑흑”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는 경란의 모습을 차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를 원망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를 내가 다른 남자에게 보내 버렸고. 그리고 그 결과가 좋지 않게 나타났으니 도저히 그녀를 마주 할 엄두가 나지 않아 넌지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힘들어하는 경란을 또 그렇게 외면하려 하였다.

“나가지마. 부탁이야. 더 이상 너의 등을 보고 있을 자신이 없단 말이야.”

흐느낌 속에 나의 기척을 느꼈는지 경란은 그 순간을 회피하려는 나를 붙잡아 세우려하였다.

“나. 잠깐 화장실 가려고.”

애써 그녀의 기대를 외면하고 화장실로 향했지만 실제 볼일을 보려고 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없었다. 경란을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막상 눈앞에 닥친 현실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으로는 당장에라도 그녀를 안아주고 싶지만 항상 그렇듯 이상과 현실에서 나는 항상 현실에 안주하는 편 이었다.

내려치는 빗발을 창 너머로 쳐다보며 아내의 얼굴과 처남댁 경란의 얼굴이 교차되어 스쳐갔다.

애교 넘치는 행동으로 늘 살갑게 나를 대하는 아내, 마음속으로 나를 그리다 마지막 끈마저 끓어져버려 노심초사하는 경란, 두 여인의 사이에서 결정은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화장실에서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녀가 있는 방으로 되돌아가니 응당 있어야 할 처남댁 경란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허둥지둥 카운트로 가서 물어보니 방금 전 계산을 마치고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뿔사, 그제야 내가 너무 큰 실수를 경란에게 두 번이나 하였다는 것을 느꼈다.

주차장으로 뛰어가도 경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입구 쪽으로 되돌아와 반대편 도로 쪽으로 뛰어 갔지만 역시, 그 쪽도 경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세차게 내리치는 빗줄기는 점점 사납게 울부짖으며 순식간에 입고 있던 모든 옷이 비에 젖에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말았다.

도로에 내딛는 발자국 소리는 바닥에 고인 빗물과 옷에서 흘러내린 물로 철벅철벅 소리를 내며 모습을 감춘 경란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찾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 여자 혹시’

불길한 생각이 뇌전처럼 머리를 강하게 울리며 사라진 그녀의 안위가 염려되기 시작하였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 왔던 길을 되짚어 그녀의 행적을 찾아 나서기를 십여 분.

저 만치 다리난간에 경란의 실루엣으로 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다리 밑 성난 울부짖음을 토하는 강물을 내려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안돼!’

끔찍한 생각과 동시에 가속 페달에 발을 올려 힘차게 밟았다.

점차 가까워지는 그녀의 모습.

경적을 수차례 눌러가며 그녀의 마지막 행동을 제지하고 나서며 그녀 십 보 앞에 차를 세웠다.

헤드라이트에 비춰지는 경란, 비에 젖은 그녀의 얼굴에선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줄기가 원망에 가득 찬 눈을 통하여 허공에 뿌려지고 있었다.

그녀의 눈을 보는 순간, 아내에 대한 마음도 처남에 대한 미안함도 쏟아지는 빗줄기에 씻겨 내려가고 오직 눈앞에 서 있는, 내 마음 속의 여인 경란. 그녀만이 나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녀의 삼보 앞에서 그녀에게 무릎을 꿇었다.

나로 인하여 인고의 세월을 감내 하여야 했던 여인에 대한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처남의 장례식에서도 매 말라 버린 눈물이 하염없이 그녀의 앞에서 터져 나왔다.

빗방울이 튀기는 그녀의 하얀 손등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내 손. 잡아 줄 수 있어?”

짧고 강한 의미를 담은 그녀의 음성이 높낮이도 없이 담담하게 귀를 후벼 파고 들렸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여름이라지만 거세게 퍼붓는 빗줄기에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며 입술은 파리하게 상기되어 있었다.

“나 추워. 안아 줘.”

그녀를 품에 안았다.

십여 년의 세월을 길게도 돌아서 그녀의 가녀린 온 몸을 으쓰러 지도록 내 품안으로 끌어 당겨 있는 힘껏 안았다.

그녀의 얼굴이 어깨에 기대어 지며 가볍게 떨리기 시작하였다.

빗물에 젖은 그녀의 머릿결을 매만지며 그녀가 안주 할 수 있도록, 내 어깨에 기대어 쉴 수 있도록 처음으로 그녀에게 배려하였다. 너무 늦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녀를 내 가슴 저 먼 구석에 있는 그녀를 끌어내었다.

서로의 차량을 알아 볼 수 없게 가려진 주차장 사이 빈칸에 차를 밀어 넣었다.

오는 내내 아무 말 없이 차창을 때리고 지나가는 빗물만 응시하던 경란은 내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물끄러미 내 얼굴을 응시하다가.

“후회 할 거면 그냥 가.”

그녀가 마지막 선택권을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그녀였다.

더 이상 그녀에게 아픔을 주긴 싫었고, 나 또한 삶의 무게에 짓눌려 힘들어 하는 그녀를 볼 자신이 없었다.

이제 여기서 그녀를 또 다른 내 여자로 만들기로 결심을 굳혔다. 아니 이제야 나는 진정 내가 원하던 여자를 내 여자로 받아들이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여기서 그냥 가게 되면. 죽을 때까지 그걸 후회할 거야.”

주차장에 딸린 조금만 문을 밀고 들어가자 종업원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우리를 맞았다.

그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서 들어간 실내는 조그만 티 테이블이 침대 옆에 붙어 있고 온수기와 TV, 그리고 원형의 된 침대가 놓여 있었다. 침대의 옆으로는 커튼이 쳐져 있는데 그 커튼을 열어젖히니 욕실 안의 광경이 훤하게 두 둔에 비춰들었다.

경란은 그런 광경을 보고도 태연하게 젖은 옷을 모두 벗더니 마지막 남은 브래지어와 음모가 비춰 보이는 팬티만 걸친 채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다리 난간에서 나에게 몸을 맡겼을 때부터 그녀가 원했던 것이었던 싶었다.

TV앞 화장대 서랍에서 접대용으로 들어 있는 담배를 한 가치를 피워 물었다.

씁쓸한 담배 향에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담배 향보다 더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은 욕실에 머물고 있는 처남댁 경란의 황홀한 육체였다.

어릴 적, 풋 내음이 가시지 않은 설익은 육체가 아닌 아람처럼 탱탱함을 자랑하는 피부와 풍만하고도 전혀 쳐짐이 없는 히프, 가슴에 잘 익은 배를 붙여 놓은 듯 보이는 유방은 결혼 후 아내의 그저 그런 육체에 길들여져 있던 나의 마음에 큼지막한 돌을 던져 파장을 일으키고도 남은이 있었다.

샤워기의 물줄기를 따라 가지런히 뻗친 경란의 음모는 까만 윤기가 흐르면서 역삼각형을 이루었고, 그것은 그녀의 가장 은밀한 부위를 살짝 감추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자태만으로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고 당장에라도 달려 들어가 그대로 그녀를 취하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억누르며 담배가 길게 재를 만들어 손가락에 고통을 전할 때까지 그녀에게서 시선을 때지 못하였다.

경란의 몸에 뽀얀 거품이 일며 그녀의 손이 몸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다.

안타까웠다. 탱글탱글한 그녀의 살결이 거품에 가려 숨겨지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쉬어졌다. 포도송이 같은 유두도 가려지고 검은 윤기가 감도는 그녀의 방초들도 거품에 가려져 버렸다. 가려진 그녀의 모습이 보고픔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옷을 벗어 던지고 욕실로 갔다.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경란의 눈부신 육체를 탐닉하기 위하여 서둘러 욕실 문을 열며 밀물처럼 밀려오는 긴장감과 흥분에 튀어 나올 것 같은 심장을 간신히 억누르며 경란의 표정을 살폈다.

“들어 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눈을 초승달 같이 휘고는 입 꼬리를 살짝 말아 올린 그녀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렸다.

이전의 높낮이 없이 무미건조한 그런 목소리가 아닌 요염함이 한껏 묻어나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녀도 정녕 여자임엔 어쩔 수 없나보다 불과 얼마 전에 남편을 사별하고 슬픔에 잠겨있는 여자가 아닌, 자신의 마음 속 연인의 품에 안긴다는 기쁨에 들뜬 모습을 보이는 그런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래서 여자의 마음은 조석으로 바뀐다는 옛말이 생겼구나하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나. 등 좀 씻겨 줘.”

아무 망설임 없이 나에게 거품이 묻어 있는 샤워 타월을 건네는 그녀를 기쁨 마음으로 등 이 곳 저 곳을 문질렀다.

뼈가 살짝 튀어 나온 어깨도, 군살이 조금 붙어 있는 옆구리도, 황새의 목처럼 가늘고 긴 목덜미도 모두 내손을 타고 흐르는 비누 거품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비누 거품이 온 전신에 묻어나자 그녀의 몸이 마치 오일을 발라 놓은 듯 미끄럽고 부드러운 감촉에 들고 있던 샤워타월을 놓아 버리고 맨손으로 그녀를 탐닉하기 시작하였다.

등 뒤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둥글고 탄탄한 유방의 아랫부분을 떠받치듯 감싸 쥐고는 손을 오므렸다 폈다하며 유방의 황홀함에 도취되어 갈 때, 경란의 학 다리처럼 가늘고 긴 팔이 머리위로 들리더니 내 어깨를 의지하여 뒤로 기대더니 목을 감아버렸다.

“하아!”

짧은 탄성의 긴 여운이 목덜미를 타고 쇄골까지 퍼지며 경란의 향긋한 체취가 코로 스며들었다. 약한 술 냄새를 동반한 채.

나에게 기대어 안긴 경란의 허리를 감아쥐고 빨갛게 익어 석류처럼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어 경란의 입안에 고인 과즙을 핥았다.

처음엔 아주 부드럽게 시작 되었으나, 곧 격렬하게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핥고 빨고 때론 혀를 마주 감아가며 타액을 섞어 목으로 넘기기 시작하였다.

“쯔읍, 쯥 쯔읍...스릅..스르릅...쭈읍”

혀의 끈끈한 마찰음. 활처럼 휘는 경란의 허리.

내 손은 이미 허리를 지나 역삼각의 음모를 쓰다듬고 있었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경란의 음모, 비누 거품이 내 손의 움직임에 따라 점점 커져갔다.

커지는 비누거품처럼 경란의 허리도 시위를 당기는 활처럼 점점 더 휘어지더니 종내에는 엉덩이 골짜기 사이로 남근을 끼워 넣고는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 하였다.

“허억....헉...하아..겨...경란아.”

“하아.....아...창민아....나 좀 어떻게 해줘....하아.....아아!”

그토록 바래왔던 경란의 몸, 경란도 마찬가진 듯 내 몸처럼 점점 달궈지고 있었다. 욕실엔 우리 두 사람의 열기로 인하여 방과 연결된 창에 뿌옇게 김이 서려 있었다.

“경란아...나 더는 못 참겠어....후욱!”

“그럼..어서 해 줘...날 가져. 경란일 니 여자로 만들어 줘. 하아!”

손가락 끝에 전해지는 질척질척한 느낌, 경란도 이미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음액을 한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음부 속에서 넘쳐흐른 음액을.

방에서 보면 유리창이지만 욕실에서는 거울로 보이는 유리에 경란이 손을 짚고 허리를 뒤로 밀어 자세를 잡았다.

약간 벌어진 다리 사이로 갈색의 항문과 숨을 쉬듯 벌렁 거리는 검붉은 속살이 입을 벌리고 있는 음부가 숨을 쉬며 헐떡이고 있었다.

처남댁 경란의 다리 사이로 내 다리가 들어가고, 시퍼런 핏줄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남근을 잡고 입을 벌리고 있는 음부의 입술에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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