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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다희는 내가 대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대학입시에서 떨어져서 재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얘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입시준비를 할 때 늘 너무 피곤해 하고

어느 때는 학원에서 공부하다가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곤 했습니다.

밤에 화장실에도 자주가고 얼굴은 늘 창백했고 입 맛도 별로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고3 때 너무나 힘들 게 공부를 해서 아무튼 대학에 떨어졌고 재수를 하게 되었는데

동생은 고3 때보다도 더 피곤해 하며 날마다 맥을 못 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학원에서 또 쓰러져서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와 내가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처음엔 조그만 병원으로 갔었는데 초음파 촬영을 한 결과

신장이 안 좋은 것 같다고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한번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몇 일후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했고 엄마와 나는 그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성신부전 4기

신부전이란 신장(콩팥)이 망가져서 재기능을 못하는 것으로서 4기에 이르면

신부전증 말기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정상인의 신장 기능에 비해 5-10%만이 재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신장이 저렇게 될 때까지 우리가 그걸 모르고 있었던 거죠?”

엄마는 동생의 신장기능이 10% 미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믿어지지가 않고 답답해서 담당의사에게 그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만성신부전이라는 게 초기에 자각증상이 거의 없어서 처음엔 거의 자기가 신부전이라는 걸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신장은 30-40%만 작동해도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신장이 점점 망가져서 20% 미만으로 내려가면 그때부터 슬슬 증상이 느껴지는 건데

지금 따님같은 경우는 좀 늦게 증상을 발견하긴 한겁니다.”

동생은 그래서 일주일에 2번씩 병원에 가서 혈액투석이라는 것을 해야 했습니다.

신장이 재기능을 못하고 몸 안의 노폐물을 걸러주는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2-3번 정도 한번에 4-5시간씩 혈액을 꺼내어 노폐물을 걸러낸 다음 몸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혈액투석도 언제까지 그렇게 계속할 수는 없었고 동생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신장이식

장기이식 가운데 그래도 많은 환자가 성공적으로 장기를 이식해서 성공하는 게 바로 신장이식이었는데

특히 다른 장기이식에 비해서 제공자를 찾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장기들은 사후장기기증만 가능하지만 신장은 정상인 사람이 자신의 한 쪽 신장을 기증할 수가 있기 때문에

기증자만 나타나면 동생에게 신장이식을 해 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같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장기기능자가 수가 작은 나라에서는 신장이식도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마냥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엄마는 낮에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동생이 병원에 갈 때엔 내가 항상 데려가 주었습니다.

“다희야, 힘들지? 조금만 기다려보자. 장기기증자 나오면 너도 수술하고 정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데잖아.”

“오빠, 근데 그게 언제나 될지 어떻게 알아. 오빠, 나 솔직히 좀 무서워.”

“무섭긴 뭐가 무섭냐?”

“나 이러다가 죽을까봐 무서워......”

“별 쓸데없는 소리 다 하고 있어......”

난 동생을 끌어 안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게 해주었습니다.

아빠 돌아가신 후부터 정말 동생을 내가 돌봐야 된다고 생각하며

먹는 거 입는 것 공부하는 거 하나에서 열까지 다 챙겨주었는데,

아파서 그렇게 창백한 얼굴로 내 어깨에 기대어 있는 동생을 보니 너무나 가엽어서 나도 눈물이 나왔습니다.

동생과 엄마와 내가 장기기증자를 기다리는 것에 거의 지쳐갈 때쯤 나는 혼자 어느날 동생의 담당의사를 만나러 병원엘 갔습니다.

“선생님, 동생 혈액형이 B형이고 제 혈액형이 O형이거든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보니 가족이 신장을 기증하는 경우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하던데......”

“아, 맞아요. 혈액형이 그렇다면 수혈이 가능한 혈액형이니까 기증이 가능하고.....

가족에게 신장을 기증받는 경우 거부반응이 나타날 확율이 훨씬 낮거든요.”

“그럼, 선생님. 제 신장을 동생한테 하나 기증할 수 있을까요?”

“네에. 할 수 있지요.”

그날 병원에서 거부반응 테스트를 위해서 혈액검사를 하고 집으로 오면서

동생이 제일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사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야, 니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 사왔다.”

“우와.. 역시 오빠가 최고야.”

“엄마는 먹어 보란 소리도 안 하고 동생만 주냐?”

옆에 있던 엄마도 와서 자리에 앉으며 삐진 듯이 나에게 말을 했습니다.

엄마와 동생은 치즈 케이크를 서로 많이 먹겠다고 다투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희야, 오빠가 오늘 너 담당 의사 선생님 만나고 왔거든......”

“오빠 혼자? 왜?”

“너 신장 공여자 잘 하면 금방 나타나꺼 같애....”

“정말?”

엄마와 동생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잠깐만 앉아 봐바. 내가 이야기해줄게......”

동생과 엄마는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아빠 돌아가시고 우리 세 식구 정말 열심히 서로 사랑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어. 그치?”

“......”

엄마와 동생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고 심각한 얼굴로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엄마는 정말 우리 남매 키우고 뒷바라지 하느라 정말 정말 노력 많이 했고 고생했어.”

“오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데 서론이 그렇게 길어.... 빨랑 본론부터 이야기해 봐...”

“알았어. 본론부터 이야기할게. 니가 신부전증말기 진단을 받게 된 거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거 알지?”

“응”

“하지만 그걸 그대로 두면 니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지만 장기이식만 하면 너도 정상으로 되돌아 올 수 있는거잖아.”

“근데... 공여자가 금방 나올 거 같다며....”

옆에 있던 엄마가 빨리 좀 말해 보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런데 그 장기기증자가 언제 나올 지는 모르고 이렇게 마냥 기다릴 수 만은 없을 거 같애.....”

“......”

“그래서 오늘 내가 의사 선생님 만나서 오빠 신장 하나를 떼어서 너에게 주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혈액검사하고 왔거든......”

“오빠아~~ 안 되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동생은 펄펄 뛰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니가 왜? 니가 할꺼면 엄마 신장 떼어서 줄게.....”

“엄마는 어차피 안 돼. 엄마는 A형이잖아.... 어차피 엄마는 기증할 수가 없어....”

동생은 엉엉 울면서 자기 방으로 뛰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나는 먼저 엄마를 설득했습니다.

신장은 두 개중에 하나만 있어도 충분히 정상으로 살아갈 수가 있고

가족이 신장을 공여할 경우 거부반응이 잘 안 생기기 때문에 성공할 확률도 훨씬 높다는 걸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엄마, 걱정하지 마. 정말 괜찮아. 나중에 나랑 같이 의사 선생님 만나서 엄마가 직접 확실히 다시 이야기 들어 봐바.”

“너 정말 괜찮겠어?”

“엄마, 나를 믿어. 내가 누구야. 우리 집에 가장 아냐. 엄마도 내가 평생 지켜준다고 그랬지?

내 동생도 내가 지켜줄거야. 엄마 잘 될꺼니까 아무 걱정하지마. 알았지?”

나는 그렇게 엄마를 먼저 설득하고 동생 방으로 갔습니다.

동생은 침대 속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동생 위로 엎드려서 동생을 이불 채로 감싸 안고 동생의 귓가에 이야기를 했습니다.

“김다희. 울지마. 좋은 일에 왜 우냐?"

“엉엉엉... 좋긴 뭐가 좋은 일이야. 나 그냥 죽게 내버려 둬어.... 엉엉엉...”

“야, 니가 나한테 얼마나 사랑스러운 동생인지 너 모르냐?

니가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라고 해서 내가 내 사랑하는 동생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거 같으냐?”

“몰라아... 엉엉엉....”

“김다희, 오빠는 절대로 널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어. 만약에 반대로 이 오빠가 너처럼 아프면 넌 이 오빠 그냥 내버려 둘꺼야?”

“아니... 훌쩍....”

“아무 걱정하지 마. 오빠 신장 진짜 튼튼하거든. 오줌 진짜 잘 만들어내.”

“푸푸푸푸... 훌쩍...”

“너 울다가 웃으면 똥구녕에 털 난다. 하하하..”

“아잉.. 몰라아...”

“오빠 신장 하나 너한테 준다고 해서 오빠 잘못 되는 거 아니고

의사 선생님도 오히려 가족 중에서 신장이식을 하면 훨씬 성공확율이 높데......”

나는 살며시 동생이 뒤집어 쓰고 있는 이불을 벗겨냈습니다.

“김다희, 일어나 봐바.”

나는 동생 양팔을 잡아서 침대에 일어나 앉혔습니다.

그리고 동생을 가만히 잡아당겨서 끌어 안았습니다.

“너, 오빠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지?”

“엉엉엉...”

내 품에 안겨 동생은 대답 대신 또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 오빠 믿지?”

동생은 울면서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럼 아무 걱정하지 마. 알았지?”

그리고나서 2주 후에 바로 수술 날자가 잡혔습니다.

동생과 내가 나란히 수술대 침대 위에 누웠습니다.

나는 팔을 뻗어서 반대쪽에 누워 있는 동생의 손을 잡았습니다.

“조금 이따가 만나자. 다 나아서......”

그러면서 얼굴에 이 세상에서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때 간호사가 링커에 주사액을 넣으며 말했습니다.

"이 약 집어넣고 금방 잠드실 겁니다. 자, 하나 둘 셋 해 보세요."

하나, 두울, 세엣.....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깨어났을 때 배에서 통증이 느껴졌지만 나는 주위를 돌아보며 동생을 먼저 찾았습니다.

“OO야, 정신 드니? 엄마 보여?”

“으으응... 다희는?”

“저 옆에 있어...... 수술 잘 됐데......”

내 바로 옆 침대에 동생이 아주 평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잠시 후 동생도 깨어났고 동생과 나는 2인용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야, 김다희! 니 속에 나 있다. 알아?”

“으으윽.. 오빠... 큭큭.. 웃기지 마.. 나 배 아파...”

“야, 내 콩팥(신장) 잘 뛰고 있는 거 같냐?”

“엉...... 오빠 콩팥 이 안에서 오줌 잘 만들어 내고 있는 거 같애.... 큭큭...”

병실에 입원해 있는 기간이 동생과 나에겐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동생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을꺼란 생각만 하면 내 배가 조금 아픈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았고

내가 왜 진작에 나서서 내 신장을 동생에게 주겠노라고 하지 않았는지 오히려 그게 후회가 됐습니다.

수술 후에 동생의 얼굴이 정말 몰라보게 환해졌습니다.

수술을 해서 신장을 이식한다고 몇 일만에 건강이 확 좋아지는 건 절대 아니지만

동생의 마음이 너무나 편해지고 안정되고 즐거워 하는 게 얼굴에서 보였습니다.

내 동생이었지만 내가 내 몸 속에 있는 신장을 하나 떼어 주어서 내 동생이 건강해졌다고 생각하니

동생을 쳐다볼 때마다 동생이 그렇게도 이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엄마들이 자기 몸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보며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고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때 이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동생보다 내가 훨씬 회복이 빨랐고 나는 이틀 째부터도 거의 혼자서 움직이고 뭐든 다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냥 항생제만 먹었지만 동생은 이식된 신장의 거부반응 때문에 계속해서 링거를 통해서 면역억제제를 투여받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침이면 물수건으로 동생의 얼굴을 닦아주었습니다.

“야, 너 원래 이렇게 이쁘게 생겼었냐? 수술하고 나니까 훨씬 더 이뻐졌네......”

“나 원래 이뻤다. 뭐......”

“그래. 내 동생인데.... 이뻐야지.”

나는 동생의 얼굴을 다 닦아 준 후에 머리를 빗어서 뒤로 깨끗하게 묶어주었습니다.

“자, 어디 좀 보자. 더 이뻐졌나.”

나는 동생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동생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나서 동생의 이마에 뽀뽀를 쪽 해주었습니다.

“이쁘다.”

창백한 동생의 얼굴에 말할 수 없는 행복이 피어났습니다.

가끔 의사가 회진을 돌 때면 동생의 수술 부위를 보려고 동생이 입고 있는 환의를 들추고 보는 적이 있었는데

동생은 안에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의 한쪽 유방이 슬적슬적 보이곤 했습니다.

의사들에게야 환자가 어쩔 수 없이 몸을 보여주어야겠지만 내가 바로 옆에 있었고

나에게도 그걸 보이는 것에 대해서 동생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동생이 환의를 갈아 입어야 할 때 내가 웃도리 입는 걸 도와주면 그냥 내 앞에서 유방을 다 드러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갈아 입었고 다만 아랫도리를 입을 땐 침대 담요 속에서 갈아 입던가

아니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갈아 입고 나오곤 했습니다.

동생의 유방은 아주 적당히 볼륨이 있고 동그랗고 탄력이 있었으며 정 가운데 젖꼭지가 있었습니다.

“야, 너 가슴 이쁘다. 크크크...”

“오빠아.... 내가 지금 병원에 있으니까 정말 봐준다...”

“뭘 그래. 너 어렸을 때 오빠가 니 기저귀 다 바꿔주고 그랬어....”

“에이. 그짓말... 오빠하고 나하고 두 살 차이 밖에 안나는데.. 나 기저귀 찰 때 오빠도 기저귀 찼잖아... 뭐.....”

동생과 나는 2주 후에 퇴원을 했습니다.

퇴원하자마자 동생이나 나나 둘 다 뛰어다니지만 못했지 걸어다니고 생활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의 말은 퇴원 후 생활하는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테지만 약 1달 가량 휴식을 취하면서 요양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내가 대학교 3학년 5월이었는데

나는 수술 후 2주정도면 퇴원한다기에 퇴원하고 바로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신장이식을 받은 사람이나 준 사람이나 둘 다 모두 한 달 가량은 충분히 쉬면서 요양을 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너희 둘 다 어디 공기 좋은 시골같은데 내려가서 한 달 정도 쉬다가 올래?”

“어디?”

“엄마가 고객 중에 팬션하는 사람들도 많이 알고 하니까 한번 알아볼 수 있거든.... 엄마가 한번 알아 볼게....”

“엄마, 그럼 나 학교는 어떡하지... 나 수술 마치고 학교 나가려고 했는데.....”

“그럼 아예 이번 학기부터 휴학하고 다음 학기에 너 군대 가면 되잖아....”

나는 어차피 3학년 1학기나 아니면 3학년 마치고 군대를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동생 혼자는 보낼 수 없으니 아예 이번 학기에 휴학을 하고

나도 함께 동생하고 내려가서 요양을 하면서 나하고 동생하고 둘 다 푹 쉬다가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엄마는 회사에서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야, 엄마가 팬션 알아 봤거든. 엄마 고객 중에 한 분이 팬션하는 분이 계신데..

거기 너무 너무 좋다고 꼭 놀러오라고 해서 연락했거든....

한 달 정도 우리 아들하고 딸이 이번에 장기이식 수술해서 요양을 하러 내려가서 쉬면 좋겠다고 했더니....

얼마든지 있다가 오래. 요즘은 비수기라서 사람들 없다고 아주 싸게 거의 공짜로 해줬어..”

“그래? 거기가 어딘데...?”

“전라남도 완도 알지? 완도 옆에 보길도라는 섬.... 거기 진짜 좋다드라....”

“보길도?”

“아,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 옛날에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다가 그 섬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냥 주저 앉았다는 섬.”

동생은 역사와 문학에 대해서는 훤히 꽤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우리 아들하고 딸 수술해서 먹는 것도 잘 먹어야지 된다고 했더니..

거기에 관리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밥도 해준다고 하드라고....

그래서 엄마가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까 맛 있는거 보양식으로 가 있는 동안 해달라고 했거든...

그러니까 너희들은 가서 그냥 푹 쉬면서 맛 있는 거 먹고 놀다가 와.... 그러면 돼... 알았지?”

“으와.. 완전 대박이다. 완전 놀고먹는거네.... 크하하하...”

“진짜.... 나 여행 한번 가고 싶었었는데.... 너무 좋다....”

동생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우리 세 식구는 함께 외식을 하고 마트에 장을 보러갔습니다.

내가 카트를 밀고 엄마와 여동생은 내 양옆에서 하나씩 팔장을 끼고 마트 안을 돌아다니며 한 달 동안 생활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샀습니다.

“오빠! 이거 이거 이거!!! 라면!!!”

동생은 라면을 꼭 사가지고 가야 된다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짬뽕라면을 한 보따리 카트에다 담았습니다.

“야, 치약, 칫솔, 비누!”

엄마는 주로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생필품들을 챙겼습니다.

“아차, 나 저거두 필요한데......”

그러면서 동생은 혼자 쪼르르 달려가더니 뭔가 한 봉지를 들고 와서 카트에 담았는데 가만히 보니 바로 생리대였습니다.

그렇게 마트 안을 돌아다니는 동안 동생과 엄마와 내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너무나도 행복한 우리 세 식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밤 늦게 나는 동생 방에 불이 꺼진 걸 확인하고 엄마 방으로 갔습니다.

“엄마!”

엄마는 부엌에서 우리 요양하러 가서 먹으라고 이것 저것 여러 가지 반찬거리를 만들어 놓고

늦게서야 방으로 올라와 씻고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다희 수술하고 또 나도 같이 병원에 가 있는 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내가 뭔 고생을 해. 니가 고생했지..”

“엄마, 나하고 다희하고 한 달 동안 가 있는 동안 혼자서 있어도 괜찮겠어?”

“엄마는 걱정하지 마. 엄마는 혼자 어디에다가 버려놔도 꿋꿋하게 잘 살꺼야..”

“다희는 내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지만 난 엄마 혼자 집에 두고 가서 그게 좀 기분이 안 좋네...”

“착한 우리 아들.... 역시 엄마 걱정해 주는 건 우리 아들 밖에 없어.....”

“엄마, 다 씻었어? 그럼 오늘 내가 해줄까?”

“너 몸 괜찮겠어?”

“나 괜찮아.. 튼튼하잖아... 그리고 내 자지는 진짜 아~~무 일 없거든요...”

“호호호... 그럴래. 그럼? 오늘 우리 아들이 오랜만에 엄마한테 섹스해 준다니까 엄마 너무 좋다......”

“다희는 자는 거 같드라고.... 수술하고 나서 밤에 한번도 화장실 안 가드라...”

동생은 수술 전에는 밤에 화장실을 열 두 번도 더 들락거리더니 확실히 수술 후엔 밤에 화장실 가는 게 없어졌습니다.

그냥 한번 잠들면 아침까지 한번도 화장실에 안 가고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엄마는 옷을 다 벗었고 나도 다 벗었습니다.

“엄마, 진짜 오랜만에 엄마랑 섹스하는 거 같네.”

“그래.. 거의 한 달 만에 하나보다..”

나는 엄마 위에서 엄마의 유방을 주무르며 엄마에게 키스를 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귓불과 목덜미를 애무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조금 아래로 내려와서 엄마의 한쪽 유방을 입으로 애무하면서 다른쪽 유방을 손으로 주물렀습니다.

“으음.... 하아....”

한 손으로 엄마의 보지를 걸어잡았았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보지 가운데로 미끌어 트려 집어넣고 음핵 위를 계속해서 문질러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더 아래로 내려와서 엄마의 가랑이를 양옆으로 벌리고 그 사이에서 엄마의 보지를 손으로 벌리고

입으로 엄마의 보지를 빨아주었습니다.

“아앙.... 어엉.....”

한참 동안 내가 엄마의 보지를 빨아준 다음 엄마는 일어나더니

나를 침대에 뒤로 누우라고 하고나서 내 자지를 입으로 빨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우리 아들 자지가 괜찮은가 한번 확인해 보자....”

엄마는 내 자지를 입에 넣고 위아래로 길게 고개를 흔들며 자지를 빨기도 하고 손으로 자지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으음.. 우리 아들 자지 멀쩡하네... 수술하고 더 커진 거 아냐?”

누워서 고개를 살짝 들고 아래를 쳐다보니 내 자지가 하늘을 향해 위로 솟아 올라 있었는데 내가 봐도 꽤 크게 발기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1학년 때쯤 내 자지가 상당히 여물어지며 굵기도 굵어지고 크기도 상당히 커졌었는데

남자들의 평균 크기보다는 내 자지가 꽤 큰편이었습니다.

“으음. 역시 우리 아들 자지는 진짜 커서 엄마가 너무 좋다...”

쩝쩝쩝쩝

엄마는 쩝쩝 거리며 내 자지를 빨아댔습니다.

“너 그냥 침대에 누워 있어... 배 아프니까 그냥 엄마가 위에서 해줄게...”

그러면서 엄마는 내 위로 양 다리를 벌리고 섰다가 쪼구려 앉으면서 엄마의 보지 구멍에 내 자지를 맞추고 엉덩이를 아래로 내리밀었습니다.

쑤우우욱

내 자지가 엄마의 보지 속으로 밀려들어 갔습니다.

“들어갔다.”

그러더니 엄마는 엉덩이를 흔들흔들 위아래로 흔들면서 보지에다가 내 자지를 박아댔습니다.

찌걱찌걱 찌걱찌걱

엄마의 보지에 보짓물이 많이 흘러나왔는지 내 자지가 엄마의 보지 속으로 쑤셔들어갈 때마다

엄마의 보지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다가 엄마는 두 다리를 양옆으로 내리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나를 올라타고

마치 애마부인이 된 듯 말을 타는 것처럼 몸을 들썩거리며 엄마 보지에 내 자지를 박았습니다.

엄마가 몸을 들썩거릴 때마다 엄마의 풍만한 두 유방이 위 아래로 덜렁거렸고 그건 나에게 너무나 멋진 볼거리였습니다.

엄마는 자세를 돌려서 나에게 등을 지고 반대로 앉아서 보지를 박아대기도 하고

자지를 보지에 박은 채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면서 자지를 앞뒤로 휘어지게 하며 보지에 문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는 다시 몸을 돌려서 나하고 정면으로 마주보는 자세로 앉아서

양허벅지에 힘을 줘서 약간 벌린 다음 엉덩이를 쳐들고 빠르게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보지를 자지에 박아댔습니다.

철퍽 철퍽 철퍽

“아아아앙.... 아들... 엄마 너무 좋아....”

그러면서 엄마는 빠르게 보지를 들썩이며 내 자지를 박아대다가 오르가즘에 이르러서는 내 자지를 보지 깊숙이 집어넣고

내 사타구니 위에 엉덩이를 완전히 밀착시킨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나도 그때를 맞추어서 자지에서 정액을 엄마 보지 속으로 쏟아부어 넣었습니다.

“으으으윽..‘

엄마는 내 몸 위로 쓰러져서 엎드렸고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의 등어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엄마, 오랜만에 아들이랑 섹스하니까 좋아?”

“응. 그래.. 좋다... 우리 아들이랑 하니까... 너무 좋다..”

“근데 엄마, 앞으로 한 달 동안 나랑 섹스 못해서 어떡하지?”

“참아야지. 뭐... 너랑 섹스 못해도..... 엄마는,

그것 보다도 다희하고 너하고 건강해져서 그게 너무 너무 좋다.

니네 둘만 건강하고 잘 지내면 엄마는 뭐가 어떻게 되든지 난 정말 아무 상관 없어...”

“엄마, 다희도 이제 건강해졌으니까. 다희 시집 보내고 내가 엄마랑 같이 살게...”

“그런 소리하지 마.... 엄만 너 장가 보내고 손주도 볼꺼야...”

그날 밤 나는 그냥 엄마 방에서 엄마 보지에 자지를 끼워 박은 채로 엄마 침대에서 엄마랑 같이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야, 옷은 다 챙긴거야?”

“옷? 다 챙긴거 같은데...”

“그럼 먹을거.. 이거 엄마가 어제 만들어 놓은 건데.. 이거두 챙겨야 돼...”

아침에 엄마랑 동생은 이사짐을 꾸리는 듯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짐을 다 꾸리고나서 나는 엄마 차에 짐을 옮겨 실고 우리는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했습니다.

목포행 고속버스

“엄마 잘 갔다가 올게.”

“그래. 아무 걱정말고 둘 다 푸욱 쉬다가 와. 알았지?”

“응. 엄마 들어가요.”

동생과 나는 목포행 호남선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얼마만에 해보는 여행인지...... 또한 동생과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처음엔 동생이 신이 나는지 쉬지도 않고 조잘조잘 잘도 떠들더니 나중엔 정신 없이 잠이 들었습니다.

나는 동생이 내 어깨에 기대어 잘 수 있도록 어깨를 동생에게 내주었습니다.

내 어깨에 기대어 자는 동생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습니다.

잘못하면 생명이 위험해 질 수도 있는 병에 걸렸다가 다시 나았다고 생각하니 마치 죽었던 동생이 다시 살아온 것 같은 기분 마져 들었습니다.

우리는 목포에 도착해서 다시 해남 땅끝 마을로 가는 버스로 갈아 탔습니다.

해남 땅끝 마을에 도착해서 우리는 갈두항으로 갔습니다.

페리 터미널에서 보길도로 가는 시간을 알아보니 저녁 6시 반까지 거의 1시간 간격으로 배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6시 30분 여객선 표를 사놓고 근처의 횟집으로 가서 멍게하고 해삼 그리고 여러 가지 회를 사서 먹었습니다.

정말 바다를 입 안에 다 넣은 것같은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6시 30분 우리가 탄 카페리가 보길도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깨질 듯이 푸른 남해 바다의 그 싱그로움이 바람에 실려 내 온몸에 스며들고 있었으며

갑판 위에 동생과 나는 그 바람을 다 맞으면서 다시는 숨을 내쉬지 않을 것처럼 폐 속 깊숙이 남해의 바다를 다 들이마셨습니다.

“하아!”

“오빠,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애...”

나는 바다를 좋아했습니다. 바다에서만 맡을 수 있는 소금기 젖은 바다의 냄새.

난 그 냄새가 너무 좋았습니다.

“다희야, 너 눈 감고 일루 와 봐바...”

난 눈을 감고 있는 동생을 데리고 갑판 위 뱃머리의 맨 앞으로 가서

영화 타이타닉에서 본 장면처럼 동생을 뱃머리 난간 맨 앞에 세우고 뒤에서 팔을 돌려 동생의 허리를 안았습니다.

“다희야 눈 뜨지 말고 팔을 양쪽으로 활짝 벌려.”

동생은 내가 시키는 대로 양팔을 양옆으로 벌리고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다 바람을 맞았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 둘, 셋 하면 눈 뜨는거야.”

“응”

“자, 준비 됐지.”

“응”

“하나, 둘, 셋!”

동생의 눈 앞엔 오직 넓은 바다만이 보일 뿐이었고 그 바다 위를 날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겁니다.

“으아아아아아!! 오빠아아아!! 내가 날고 있어!!”

나는 뒤에서 동생을 꼬옥 끌어안은 채 영화 타이타닉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오른 손을 번쩍 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I'm the king of the world!!!! (내가 세상의 왕이다!!!)”

난 정말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그 말할 수 없는 경치와 느낌에 빠져서 눈물을 찔끔거리고 즐거워 했습니다.

우리가 탄 배가 1시간 만에 보길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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