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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상 시처럼 행동했고 나에게도 평상 시처럼 대해주었습니다.

그렇지 역시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잠만 잤을꺼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완전범죄를 했다고 확신하는 그 일이 있었던 게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된 직후의 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나서 엄마는 나와 같이 자는 걸 눈에 띄게 꺼려했습니다.

특히나 술을 먹고 들어온 날은 내가 아무리 엄마와 같이 자겠다고 해도 엄마는 그냥 혼자 자겠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엄마 내가 오늘 엄마랑 같이 자줄까?”

“아니, 괜찮아. 오늘 엄마 피곤하니까 그냥 혼자 잘게.”

“정말? 내가 어께 주물러 줄게.”

“아냐, 엄마 정말 괜찮아.”

혹시 엄마가 그날 깨어 있었던 건 아닌가?

그런 의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그날 엄마가 깨어 있었다면......

그래서 내가 한 짓을 다 알고 있다면......

엄마는 왜 나에게 야단을 안 치는거지?

그냥 엄마는 내가 한 짓을 모른 채하고 넘어가려는 걸까?

엄마는 내가 엄마에게 그렇게 한 게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어서 말을 안 하는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같고

내가 엄마에게 몹쓸 짓을 한 불효막심한 아들이 된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자.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짓은 하지도 말고 생각지도 말자고 다짐을 했고

아들인 내가 엄마와 섹스를 하는 짓을 잠시나마 상상하며 또 엄마의 보지를 만졌던 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습니다.

나는 엄마의 보지를 몰래 보거나 만져보는 짓은 안하기로 맹세를 했습니다.

또한 엄마와 같이 자는 것도 포기했고 그때부터는 엄마도 나하고 같이 자자고 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된 이후부터는 엄마와 같이 자지 않았고

나는 엄마 보지에 대해서는 잊어 버리고 공부만 열심히 했으며 엄마는 보험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엄마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보험설계사가 되었습니다.

보험설계사로서 엄마가 더 많은 실적을 올릴수록 엄마의 수입은 점점 더 많아졌고

우리 집의 생활수준은 오히려 예전에 아빠가 계실 때보다도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뿐만 아니라 엄마는 우리를 더 비싼 학원에 보냈고 우리가 원하는 걸 거의 다 사주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당시에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에게 엄마는 핸드폰을 하나 사주었었는데

내 친구 중에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아이는 내가 유일했습니다.

어느날 엄마는 우리 남매에게 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야, 니네들 이게 뭔 줄 알아?”

“어, 모야? 무슨 상패야? 어, 메달도 있네......”

“이거 엄마가 회사에서 받은 거거든......”

“뭔데......”

“엄마가 우리 회사에서 보험실적 1위했는데.....

우리 나라 전체 지점에 있는 2천 500명 중에서 1위거든...... 호호호호......”

“정말?”

“그래서 우리 회사 미국 본사에서 엄마한테 직접 준거야......”

“와우! 엄마 진짜 캡이다.”

엄마는 굉장히 사교적이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매우 호감을 주는 외모와 성격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정말 보험설계사 일은 엄마에게 딱 맞는 일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보험실적 1위 상패를 받고 몇 달 안 있어서

엄마는 서울에서 가까운 신도시에 새로 오픈하는 보험 회사지점의 지점장으로 임명이 되어 발령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발령받은 회사 근처로 이사를 해야했고

기왕에 이사를 하면서 부동산에 투자를 해서 재태크를 하기 위해

우리가 살던 아파트를 팔고 회사 근처의 신도시 내에 상당히 큰 집을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중학교 3학년을 마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바로 직전이던 1996년 1월이었습니다.

우리가 새로 이사한 집은 신도시에 새로 지어진 도시형 전원주택이었는데

그집에 처음 가 봤을 때 그렇게 좋은 집이 우리 집이 맞나 하면서

동생이랑 나랑 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잔디가 깔려진 앞마당과 텃밭이 있는 넓은 뒷마당,

천정이 높은 응접실과 한쪽에 테라스가 보이는 넓은 유리창,

응접실엔 벽난로가 있고 서재와 엄청 넓은 주방,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고풍스런 장식이 된 계단과 2층의 안방은 전에 살던

아파트의 방 2개를 합친 것 보다 더 넓었습니다.

그 집엔 방이 2층에 3개 아래층에 1개가 있고 화장실은 안방에 1개가 따로 있고

또 별도로 2층과 1층에 1개씩이 더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좋은 집에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우리가 갑자기 잃었던 신분을 찾아서 신분 상승이 된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을 뿐 아니라 엄마는 차도 좋은 차로 바꾸었습니다.

엄마는 우리를 엄마 회사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는데

1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 가운데 엄마가 가장 높은 사람이었고

다들 엄마에게 “지점장님”이라고 부르며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엄마가 자랑스러웠으며 어깨가 우쭐거렸습니다.

엄마가 처음에 보험 일을 시작했을 때, 어떤 동네 아줌마가 나에게

“니네 엄마, 보험 아줌마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네”라고 대답을 했지만 솔직히 ‘보험아줌마’라는 호칭이 듣기 좋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단 2년 반만에 초고속으로 승진하여 지점장이 된 엄마가 난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보험 아줌마가 되었든 보험 설계사가 되었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엄마로부터 나는 배우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지점장으로서도 매우 훌륭하게 일을 했고

엄마가 맡은 지점이 매달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며 좋아했습니다.

엄마가 지점장으로 일을 시작하고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그해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엄마 우리는 피서 안 가?”

동생이 엄마에게 그렇게 말을 하자 엄마는 마치 잊었던 일을 기억해 낸 듯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대답을 했습니다.

“피서? 그래...... 우리 여름에 항상 피서 갔었지......”

그랬습니다.

아빠가 계실 적엔 여름이면 항상 우리는 빼놓지 않고 여름에 피서를 같이 갔었습니다.

“근데 우리 지난 3년 동안 피서 한번도 안 갔거든, 엄마......”

“그래. 우리 피서 가자......”

그래서 그해 여름 엄마는 휴가를 내고 이모네와 같이 강원도 설악산으로 3박 4일 피서를 갔습니다.

우리 세 식구와 이모, 이모부 그리고 사촌 동생 2 명 합쳐서 모두 7명이 이모부가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설악산으로 향했습니다.

숙소는 엄마가 외설악에 있는 콘도를 빌렸습니다.

콘도는 호텔처럼 깨끗했고 방이 2개 있는 콘도였는데 주방과 응접실이 함께 붙어 있는 콘도였습니다.

첫날은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엘 올라갔다 내려와서 식당에서 먹는 산채 비빔밥 정식은 정말 맛있었습니다.

콘도가 일반 호텔 보다는 훨씬 크고 좋았지만 7명이 그 안에서 지내기엔 집처럼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특히나 이모네 4살짜리 남자 아이와 6살짜리 여자 아이 사촌 동생들이

너무나 귀엽기는 했지만 어찌나 부산스러운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죠.

첫날 밤엔 방 하나에는 이모네 식구가 다 같이 잤고

또 다른 한 방에서는 우리 세 식구가 다 같이 잤습니다.

엄마, 여동생, 그리고 내가 나란히 누워서 자리를 잡고 잤지요.

그리고 둘째 날엔 낙산 해수욕장엘 갔습니다.

엄마도 수영복을 입고 같이 해수욕을 즐기기도 하고 난 이모부하고 같이

바다 속에서 발로 조개를 잡으며 너무나 재미 있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녁엔 속초항 근처의 횟집에서 살아 있는 광어회와 한치회를 먹었는데

정말 입에 회를 넣으면 회가 입 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둘째날 밤이 되어 잠자리를 정하게 되었는데 그날 따라 엄마의 목소리가 가장 컸습니다.

“저쪽 방에서는 이모하고 이모부하고 자고, 이쪽 방에서는 나하고 오빠(바로 나)하고 자고,

마루에서는 이불 펴고 작은 조무래기들 세 명이 텔레비전 보다가 다 같이 자. 알았냐?”

사실 방 하나는 이모하고 이모부 둘만 자기엔 큰 방이었는데

아이들을 따로 떼어내서 이모부하고 이모 둘이서만 자라고 한 데에는 엄마의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마루에 넓게 펴놓은 이불 위에선 두 명의 어린 사촌 동생들과 여동생이 키득키득거리며 놀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이모부와 이모는 엄마랑 같이 마루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아이들이 완전히 잠들은 것을 확인하고는 엄마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처형, 그럼 들어가 주무세요. 저희 자러 들어갈께요.”

“으응... 그래... 들어가 잘 자.”

이모부는 이모의 어깨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가만히 이모와 이모부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OO야, 우리도 들어가 자자.”

“응.”

마루에 불을 끄고 나와 엄마도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잘 자라.”

“네. 안녕히 주무세요.”

그날 바닷가에서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나는 자리에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나는 잠 결에 무슨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해수욕장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바다 속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마치 만원의 지하철같이 많은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 내 몸을 더듬으며 내 자지를 만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엉덩이를 움직일 공간도 없어서 그 손길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점점 그 손길은 내 자지를 적극적으로 만지며 자지를 앞뒤로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잠결에 나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서 비몽사몽 간에 가만히 깨어나 보니

정말로 누군가 내 자지를 잡고 문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날 뻔 했지만 가만히 누워 있는 상태로

현재 내가 어디에 와 있는 것인지 생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설악산 콘도, 방 안, 내 옆에 자고 있는 건 엄마

그리고나서 나는 내 자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엄마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내 자지를 한 손으로 말아쥐고 있었고 내 자지는 나도 모르게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죠.

엄마는 나랑 나란히 누운 상태로 왼손으로 내 자지를 붙잡고 위 아래로 자지를 문질러 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오른손은 엄마가 있는 쪽 이불 속에서 들썩 거리며 바쁘게 무슨 일인가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자지를 문지르며 자위를 해주고 있는 게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내 자지는 더욱 단단하게 팽창하는 것 같았고 엄마가 조금만 더 문지르면 금방 사정을 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엄마의 손놀림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 자지를 문질렀고

나는 만약에 사정을 하게 되면 어떡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떡하든 사정하지 말고 참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기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건가요?

엄마는 오히려 더욱 세게 내 자지를 위 아래로 문질러 주었고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정액을 분출해내고 말았습니다.

내 정액이 자지 끝에서 쏟아져 내리자 내 자지를 문지르던 엄마가 잠시 멈칫 하더니

내 자지를 더욱 세게 꽉 말아쥐고는 마지막 피치를 다해 오른 손을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으으으으음.....”

그러면서 엄마는 이를 깨물고 나지막이 신음 소리를 냈습니다.

그때 나는 이미 깨어서 정신이 대낮처럼 말똥말똥했지만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잠시 후 숨을 가다듬은 엄마는 타올인지 무슨 옷인지 그런 걸 가지고

내 자지에 흘러내린 정액을 닦아주고나서 내 팬티와 반바지를 원상태로 올려주었습니다.

엄마는 그리고나서 내 옆 자리에서 잠을 청하는 것 같았고 나는 누워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엄마는 내가 깨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자지를 문지른 걸까?

아들이 옆에서 있는데 자위를 하는 건 엄마가 나에게 보라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

엄마도 혹시 나와 섹스하는 걸 원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예전에 한번 내가 엄마의 보지를 만지며 자위를 했을 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걸 원했기 때문에 나에게 야단도 안 치고 아무 말도 안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잠을 설치며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되어 셋째 날이 되었습니다.

셋째 날 오전에는 낙산사엘 다같이 갔습니다.

예전에 아빠와 같이 낙산사에 왔던 기억이 났지만 엄마는 애써 아빠 이야기를 참으며 안 했습니다.

오전에 낙산사를 구경하고 오후엔 또 낙산해수욕장에서 놀았습니다.

해수욕장 옆에 큰 바위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게를 잡기도 하고 굴을 따서 먹어 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속초에서 해물탕 거리를 잔득 사가지고 콘도로 돌아와서 엄마와 이모가 합작으로 해물전골을 끓여서 먹었습니다.

해물전골에는 정말 산더미처럼 푸짐한 해산물이 쌓여 있었습니다.

대합, 가리비, 바지락 등등 각종 조개와 여러 가지 생선과 전복, 게, 바닷가재, 산낙지가

정말 설악산 만큼 높이 쌓여 있어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는데 그 맛은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게다가 늦은 저녁이어서 배가 고픈 데 먹었더니 그 맛은 열 배나 더 맛 있는 것 같았죠.

저녁을 먹으면서 이모, 이모부 그리고 엄마는 해물탕에 소주를 같이 돌려가며 먹었고

어른들의 술 자리가 끝난 것은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설거지를 다 마치고 잠시 쉬다가 잠자리를 배정하는 시간이 되어서 그 전날과 마찬가지로

엄마는 이모와 이모부를 한방에서 자게 하고 아이들 셋은 마루 응접실

그리고 다른 방에서는 엄마와 내가 자는 것으로 지정을 해주었습니다.

한 30분 정도 아이들은 마루에 펴 놓은 이불 위에서 뒹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이모부는 반바지에 런닝 서츠 바람으로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엄마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처형, 안녕히 주무세요.”

“어. 그래.... 잘 자.. 좋은 꿈 꿔라......”

엄마는 피시식 웃으며 이모부에게 인사를 했고 이모부는 내 옆 자리 소파에 앉아 있던 이모를 장난스럽게 불렀습니다.

“자기야, 샤워하고 들어와. 나 먼저 들어갈게..... 알았찌잉.....”

“아이구, 오빠는 주책이야. 몰라.....”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이모는 싫지 않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얼른 목욕탕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깔깔깔깔”

그 모습을 모고 엄마는 손뼉을 치며 재미 있어 했고

이모가 목욕탕에서 나오기 전에 엄마와 나도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펴고 불을 끈 다음 자리에 누웠습니다.

예전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자면서 나를 품에 꼬옥 끌어안고 다리로 나를 잡아당겨서 잤는데

엄마는 그냥 옆에서 나란히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잠이 오지 안았는데 잠시 후 이모가 목욕탕에서 나와 마루의 불을 끄고 다른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다 씻었어?”

“응. 여기 물은 참 매끌거리고 좋드라......”

“얼른 벗구 일루 와.”

이모네 방과 우리 방이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날씨가 더워서

엄마가 우리 방 방문을 약간 열어 놓았더니 이모네 방에서 말하는 소리가 도란도란 들렸습니다.

“키득 키득”

“깔깔깔깔”

이모와 이모부가 장난을 치는 소리와 웃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한참 후에 철퍽철퍽 살이 부딪히는 소리와 이모의 신음 소리인 듯한 소리가 들릴 듯 말 듯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도 만약에 안 자고 있었다면 분명히 그 소리를 다 듣고 있었을 게 분명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마가 자다말고 일어나더니 문 있는 데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열려져 있던 방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엄마가 그 전날 내 자지를 만지며 자위를 했던 것처럼

혹시 그날도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든 척 가만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숨소리는 고르게 들리고 있었지만 느낌 상으로는 엄마가 꼭 안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방 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침묵하며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거의 1 시간 정도를 그렇게 있었고 이모네 방에서 나지막이 나던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조용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나서도 한 30분 정도를 나는 기다렸지만 엄마는 나에게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엄마가 잠든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엄마의 숨소리도 일정했고 나지막해졌습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면 마중을 나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천천히 움직여서 손을 엄마의 몸 위에 올려놓아 보았습니다.

엄마와 나란히 누운 상태에서 오른손을 엄마의 배 위에 올려놓았고

엄마는 잠이 든 듯 아무런 미동 조차 없었습니다.

나는 엄마의 티셔츠를 살며시 올리고 손가락 끝을 엄마의 바지 고무줄 속으로 살짝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더 안으로 집어넣어서 팬티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습니다.

손 끝에 엄마의 보지털이 만져졌습니다.

나는 손으로 보지털을 만지다가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엄마의 갈라진 계곡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더 깊숙이 손가락을 집어넣는 순간 갑자기 엄마의 손이 엄마의 팬티 속에 들어 있는 내 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앗, 들켰구나. 이제 나는 죽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라 엄마는 가만히 내 손의 손목을 잡아서 엄마의 팬티 속에서 끄집어 내더니

내 팔을 가만히 내 몸 위에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자.”

엄마는 나지막하게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엄마는 그러더니 예전처럼 나를 엄마의 품 안에 꼬옥 끌어 안더니

한쪽 다리로 나를 잡아당겨서 꼼짝하지 못하게 엄마의 품에 품고 잠을 청했습니다.

나는 엄마의 보지를 만지다가 엄마에게 들킨 게 사실 좀 쪽팔렸습니다.

자존심도 좀 상하는 거 같았고 아무튼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 지 엄마는 나를 끌어 안고 내 등을 토닥거렸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냥 엄마 품 안에서 잠이 들어 버렸지요.

그 다음날 3박 4일의 여행이 끝나서 돌아왔고 그 이후에 엄마와 나 사이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다만 그해 여름에 다녀온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엄마도 내 자지를 만지며 자위를 할 만큼 나에게 성적인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과

또 내가 엄마의 보지를 만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그대로 묵과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나랑 섹스를 하고 싶어하는 걸 아닐까?

내가 엄마에게 대놓고 원하면 엄마는 나랑 섹스하는 걸 허락할까?

그런 질문에 대해서 정확히 해답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엄마의 보지를 만지는 것에 대해서는 엄마가 아주 싫어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여행 가서 엄마랑 자던 셋째 날 밤 엄마가 나에게 “그냥 자”라고 한 말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일까 또한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니가 엄마 보지 만지는 거 다 알았으니 오늘은 그냥 자고 다음에 만져”

이런 의미일까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엄마 말이 그런 의미였다면 다시 한번 시도해 보면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같이 자는 날 다시 한번 시도해 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엄마는 그 이후로 나랑 같이 자자고 하지도 않았고

내가 엄마랑 같이 자겠다고 해도 엄마는 완강히 거부를 했습니다.

“야, 다 큰 녀석이 뭘 엄마랑 자겠다고 그래. 이제 너 다 커서 징그러워... 그냥 혼자 자....”

“징그럽긴 뭐가 징그러워... 엄마가 아들을 징그러워 하는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어....”

그러면서 나는 안방 침대로 가서 벌러덩 드러 누우며 베개를 끌어 안고 버텨도

엄마는 나 보다 더 강하게 나오면서 엄마 침대에서 나를 결국엔 끌어냈습니다.

여름에 여행을 다녀온 이후 그해 겨울이 다 될 때까지 내가 엄마랑 같이 잘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엄마는 절대로 나하고는 다시는 같이 안 자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고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같이 자자고 조르지도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학기말 겨울 방학이 되었을 때 내 키는 이미 172센티가 훨씬 넘었고

자지도 1-2년 사이에 상당히 커진 것 같았습니다.

턱 밑에도 굵은 수염이 돗아 나있었고 자지털과 겨드랑이 털이 시커먼 검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내 옆에 서면 엄마가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내가 엄마를 보호해 주어야 할 것처럼 생각이 들었고

엄마는 집안에 나같이 장성한 아들이 하나 있다는 것에 커다란 위안을 얻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우리 세 식구 가운데 든든한 가장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엄마나 여동생도 나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져 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때쯤부터 나는 엄마와의 스킨쉽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엄마의 뜻이 아니라 내 뜻이었고 나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엄마에게 스킨쉽을 했습니다.

대부분 남자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 엄마에게서 멀리 떠날려고 하고 엄마하고 잘 하던 스킨쉽도 안하려고 한다는데

나는 오히려 정반대로 엄마와 점점 더 적극적인 스킨쉽을 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내 생각에 그건 엄마가 나랑 같이 자던 걸 중단하고 나를 멀리하기 시작하자

나는 오히려 반대로 엄마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스킨쉽을 하며 대시를 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는 가끔 엄마에게 다가가서 엄마의 가슴을 주물렀습니다.

“아이, 징그럽게 얘가 왜이래.”

그러면서도 엄마는 심하게 뿌리치지는 않았죠.

종종 엄마가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아아아”하면서

엄마 위로 몸을 포개서 덮치면서 엄마를 끌어 안고 은근 슬적 내 자지를 엄마의 보지 근처에 문지르거나

뒤에서 끌어 안으면 엄마의 엉덩이 사이 계곡에 자지를 가져다대고 문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싫은 척 하면서도 심하게 뿌리치지 않고 잠시 동안 내가 그짓을 하게 가만히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녁 때 일하고 돌아온 엄마의 어깨를 주무르다가

나는 엄마의 팔과 허리 가슴 부분을 틈만 나면 슬적슬적 건드렸고

가끔 엄마에게 다리를 주물러 준다고 하면서 나의 손은 종아리로부터 허벅지까지 올라가서 엄마를 주물러 주었고

슬적슬적 나의 손은 엄마의 허벅지 안쪽 위까지 올라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그 이듬해 1월 달이었고 내가 고 2에 올라가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내 동생이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다니던 영어 학원에서

원어민 영어 실습을 하는 프로그램의 하나로 1주일 간 영어 마을에 가서 생활하다가 오는 영어마을 어학캠프가 있었습니다.

동생은 신이 나서 캠프로 여행을 떠났고 집에는 나와 엄마만 남게 되었죠.

물론 낮에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갔지만 밤에는 어쨌든 엄마와 나만 집에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첫째날 밤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던 것 같습니다.

둘째날 엄마는 저녁에 집에 와서 저녁을 집에서 먹는대신 나가서 외식을 하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는 나를 아주 근사한 데 데리고 가겠다며 나를 차에 태워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엘 갔었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식당은 정말 고급스러웠고 웨이터들은 손님에게 정말로 왕에게 대하듯이 서비스를 했습니다.

“OO야, 여기 진짜 비싼 데거든......”

“내가 살다가 이런 데를 다 와보다니...... 엄마, 지점장 되니까 좋네......”

“야, 엄마가 맛 있는거 사줄게......”

서울 시내의 야경이 언덕 아래로 멋 있게 내려다 보이고 멋진 클래식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그날 나에게 사주었던 것은 랍스터 요리였는데 정말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생전 처음 느껴본 맛이었습니다.

엄마는 레드와인을 한잔 마시며 스테이크를 먹었고 나는 서툰 나이프질을 해가며 랍스터 요리를 다 먹어치웠습니다.

“맛있어?”

“응. 엄마, 진짜 맛있다.”

나는 음식을 다 먹고 화장실엘 다녀왔는데 자리로 돌아오면서 멀찌감치 보니

엄마는 한 손에 와인 잔을 들고 창 밖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런 엄마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습니다.

나는 자리에 돌아와 앉아서 글래스에 담긴 물을 들고 엄마에게 내밀었습니다.

“엄마 건배할래?”

“건배?”

“응”

“그래. 근데 뭘 위해서 건배하지?”

“그냥 우리 식구를 위해서...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게......”

“그래.”

엄마는 잔을 높이 들었고 나도 물 잔을 들어서 높이 들며 엄마의 잔에 마주쳤습니다.

“우리 가족을 위하여!”

“위하여!”

잔을 가만히 내려 놓고 잠시 침묵이 흘렀고 나는 말을 할까말까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응?”

“아빠, 이젠 안 보고 싶어?”

“......”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는 한번도 아빠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아빠라는 말은 우리 식구들에겐 금기어와 같은 것이었죠.

그건 우리가 얼마나 아빠를 좋아했고

우리가 얼마나 아빠를 잊는 게 어려운 지 알기에 서로가 아빠를 잊기 위해서 지켜온 약속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엄마에게 아빠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3년 반이 지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또한 아빠를 우리의 마음 속에서 내려놓을 수 있을만한 충분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니, 보고 싶어. 아직도......”

엄마 눈에는 금방 눈물이 맺힐 듯 엄마는 눈을 깜빡거리며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되물었습니다.

“너는?”

“나도 보고 싶어. 그런데 참을 수 있어......”

“OO야....”

“응?”

“엄마 잘 하고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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