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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린애 취급 당하는 것 같아 어릴 적부터 직접적으로 공주 소리 듣는 건 싫어했다.

대신 현실적으로는 공주 대우를 받아야 속이 풀렸다.

그만큼 철도 없었고 질투. 시기심도 많은 편이었다.

나보다 잘난 애들, 이유없이 보기 싫은 애들, 주는 것없이 나를 싫어하는 애들.. 

이런 애들중 나의 음모. 계략따위에 당하지 않은 애들은 거의 없었다.

이쁜 모범생이란 점 외에도 집안이 좀 된다는 이유로 한 몸에 받던 선생들의 편애도 내가 철들기

힘들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아마 그런 일은 초등 4학년 정도부터였던 것 같다.

5학년이 되자 난 확실히 남들과 다르단 걸 알게 됐다.

또래 친구들을 내 수족처럼 부리고 이용하고, 필요없으면 헌신짝 취급도 불사했다.

이쁜 모범생이란 점 외에도 집안이 좀 된다는 이유로 한 몸에 받던 선생들의 편애도 내가 철들기

힘들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다. 

6학년이 되면서 소위, 1진이라는 애들을 통해 조금씩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 애들은 내게 잘해줬고 하나씩 하나씩 뭔가 새롭고 쇼킹한 걸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내 친구들은 말렸지만 나의 호기심과 도전정신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빠의 재혼에 적응하지 못하던 난, 중학교 입학하면서 좀 더 대담해졌다.

난 정식으로 1진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1진들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맘에 안 드는 애들 찍어주면 걔들이 손을 봐줬다.

가족과의 골이 깊어질수록 밖으로 나도는 일이 잦아지고 있었지만 성적은 그런대로 좋은 편이었다.

그게 나를 지켜줄 가장 강력한 무기중 하나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책은 봐야 했다.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운 건 중2 올라가면서부터였다.

한 달에 한두 번, 꼴 같잖게 좆같은 세상 운운하며 술도 마셨고 춤도 추러 다녔다.

가출에 대한 유혹도 적지 않았지만, 가출하면 뭐가 어찌될 지 빤한 일이었다.

나라고 해서 그런 상황에 별 수 있을 리 없었던 거다.

당시 내게 마냥 잘해주기만 하던 선배 하나 있었다.

상당한 빽이 있는데다 성적도 괜찮고 리더쉽이 있어 전교 부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나랑 비슷하게

1진과도 친했다. 

하지만, 상당히 보이쉬하고 제법 터프한 레즈비언이기도 했다.

내가 알기로 걔한테 걸려 무사한 애는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최악의 경우를 면한 애가 있다면 나 하나밖엔 없을 것이다.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나에겐 한번에 모든 욕심을 부리진 않았다.

한 단계, 한 단계.. 서서히 접근해 오는데 내가 완강히 거부하자 '적당한' 선을 넘지는 않았다.

키스와 애무정도로만 끝내줬는데 처음엔 정말 소름 돋쳤고 갈수록 할만하단 생각도 들었다.

3학년이 되자 거칠게 없었다.

난 전교 부회장이 됐지만 춤추러 다니는 횟수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당시 아빤 가정이나 나를 돌보기엔 너무 바빴다. 

아빠가 외박을 하진 않지만 하루 한번 볼까 말까였다.

오빠란 인간은, 새엄마란 여자는 물론 나한테까지도 느끼한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그 새로 들어온 여자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오빠를 다정히 대해주는 반면

일일이 트집잡는 나에겐 좀 냉담했다.

물론, 처음엔 잘해주려 노력했지만 내가 마음을 열지 않자 언제부턴가 포기하고 말았다.

아빠가 없을 땐 내게 미운 시어미나 다름 없었다.

아빠가 있을 땐 오히려 말리는 시누이이기도 했다.

혼자서 일인이역을 하는 불여우였지만 오빤 알면서도 그 여자편이었다.

둘의 관계가 수상했지만 물증은 없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알게 됐지만 역시나 둘은 수상한 관계였다.

그래도 오빠라고, 내게 좀 미안하기도 했다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아빤 늘상 오빠랑 비교하며 나를 탓했다.

하긴, 자기 여자에게 잘해주는 오빠가 대견하고 이쁘게만 보였을 거다.

당시, 한번씩 오빠는 나를 달래주기도 했는데 그건 내 몸을 더듬기 위함이었다.

난 그런 오빠의 뺨을 정말 차갑게 때려줬는데 이후 한동안 내게 접근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이성 또는 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어릴 때부터였다.

포르노도 일찍 접했고 자위도 그런대로 하는 편이었다.

그 대상엔 아빠도 있었고 오빠도 있었지만 현실에서의 난 항상 차가운 모습만 보였던 것 같다.

밖에 다니다 보면 남자 만나는 건 다반사였다.

하지만, 맘에 드는 놈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하나같이 범죄자 스타일이었다.

왠지 난 그런 스타일이 좋았다.

유혹은 강했지만 내 자존심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덕분에 남자친구 사귈 기회를 내 손으로 번번히 놓치는 만큼 자위의 횟수는 늘어만 가고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됐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 1진 애들과의 접촉도 조금씩 줄였고 마음 잡고 공부에만 매진하려 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학교행사중 고적대 퍼레이드를 본 후 마음을 빼앗기게 됐다.

특히, 트럼펫을 연주하는 선배가 너무 섹시해 보였다.

여전히 아빠와는 무덤덤했지만 난 악대부를 희망했고 아빤 내 요구를 거절할 시 집안이 

시끄러워질까 귀찮다는 듯 허락했다.

난 그런 아빠를 증오했다.

선생들의 적극적인 만류에 포기할까 하다가 하나밖에 없는 나를 귀찮게 여기는 아빠가 미워서라도

고집을 부렸다.

난 교실과 악대부를 횡행하며 구역을 넓혔지만 오히려 그 입지는 좁아졌다.

악대부에선 반기지 않았다.

일종의 낙하산이었던 난 악대부에선 왕따대우를 받았고 교실에서도 그런 대우를 받는 나를 

달가와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악대부의 기강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엄격했고 그 훈련방식도 매우 혹독하고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빽이 있어 두들겨 맞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정신적 폭행만큼은 누구 못지 않게 심하게

받아내야만 했다.

여기서 포기하고 그만 둔다면 난 진짜 좆밥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번 그런 식으로 찍히면 어떤 수모를 당하는지 뻔한 일이었다.

뼈 저리게 후회됐지만 난 그 모든 걸 다 인내하고 받아들이며 나 자신을 다듬어 나갔다.

그건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악마같던 선배들도 조금씩 나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내가 충분히 자존심 죽여도 상관없을 정도로 왠지 고적대 선배들이 

너무나도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선배들 모두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난 그들의 일상적 삶이 궁금했다.

1학년 마치고 겨울방학 동안 난 악대부 선배들과 가끔 어울렸다.

의외로 그들은 내게 나쁜 건 가르쳐주지 않았다.

주로 음악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한창 변화무쌍한 시기라서인지 10대란 게 좀 이상하긴 한 것 같다.

나만 보더라도 나도 모르는 의외성이 툭툭 튀어나오지 않는가.

특히나 여자들만 있는 여학교인데다 그 중에서도 일반 교실이 아닌 뭔가 특별한 집단이라 그런지

정말 신기한 인간들이 많았다.

전혀 아니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색깔을 가진 선배들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고

특히 고적대란게 일부러 그런 애들만 모아놓은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튼 난 그들이 좋았다.

2학년이 되고 후배들이 들어왔다.

기강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신고식이란 걸 했다.

난 적극적으로 나설 입장이 못돼 거의 방관만 하고 있었다.

신고식을 치르는 후배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편하게 생활했는지...

악마로 여기던 선배들이 내게 베푼 자비에 오히려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다.

동기중에 드럼을 맡고 있던 애가 있었다.

그 애는 후배들 발가벗기는 걸 즐겨했다.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수치심과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는 후배를 보며 만족을 느끼는 아이였다.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은 그 애가 1학년 때 그런 식으로 선배들에게 많이 당했단 것이었다.

사람을 버려놓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과도한 보상심리의 작용도 있을 것이다.

자기가 당하고 받은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힘없는 후배들에게 돌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들을 보며 정말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난 조금씩 착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2학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난 악대부를 그만 뒀다.

그나마 그 그룹에서 어느 정도는 입지를 다진 후였기에 부끄러울 건 없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이 됐고 본의 아니게 담배문제 및 갖가지 일로 뭔가 자꾸 꼬이는 바람에 아빠에게 

또 미운살이 박히게 됐다.

그러다 아빠와의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건데..

사실, 이 얘기가 힘들어 서론이 이만큼 길어진 것 같다.

간단하게 건너뛰면 되는데 자꾸 뒤로 미루고 미루고 하다보니 이제서야 겨우 이 대목이 나오게 됐다.

어느 날, 낮잠 자고 일어나자마자 아빠가 들어왔고 거의 곧장 나를 범했다.

솔직히 나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후 기회가 있을 때면 아빤 나를 품었다.

그렇게 간단하게만 표현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더는 어떻게 설명하기 힘들다. 그냥 이렇게 지나가자.

하나 덧붙이자면 난 그 일로 인해 혼자 멍하게 있는 일이 잦아졌단 것이다.

내가 거의 공부에만 전념한 건 그런 현실을 잊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심적으로 많이 나약해져 깜짝깜짝 놀라는 일도 많아졌다.

그 전의 나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이렇게 변하자 날이 갈수록 애들이 날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

내 눈치 보며 자기들끼리 수근거리고.. 

심지어는 은근히 기어오르고..

결국 체력장 하던 날, 그 수모를 당한 건 솔직히 내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뭔가 욱! 하는 게 올라와야 당연하지만 전혀 그런 게 없었으니 어떻게 싸움을 하겠는가.

이때부터 여자로서는 감당하지 못 할 온갖 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악대부에 있을 때 끝까지 날 미워하던 애가 하나 있었다.

1진이기도 했었는데 내가 악대부 들어가기 전부터 나랑 미묘한 기싸움이 좀 있긴 있었다.

게다가, 내 맘대로 악대부 들락날락 했단 사실이 결정적이었다.

실력이 안돼 대입 포기한 그 애는 인생 완전 막가기로 마음 먹고 수능 며칠 전 그나마 아직 

나를 생각해주던 친구 하나를 협박하고 나를 덫에 가두게 됐다.

내 친구는 어쩔 수 없이..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어쩔 수 없었다고..

윤간 당하는 동안 지난 날 살아오며 내가 한 모든 나쁜 짓이 다 떠올랐다.

난 벌을 받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심하단 생각에 분하기도 했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놈들의 변태적 행각이 끝나고.. 난, 죽을 결심을 하고 신고했다.

놈들이 잡혀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죽으려 했지만 죽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었다.

그 일로 난 임신을 하게 됐고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곧장 유학길에 올랐다.

말이 유학이지 그냥 랭귀지 코스였고 그저 우선적으로 현실을 도피할 수 있는 곳에 불과했다.

그런 만큼 별 의욕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잘해줘 그나마 힘을 낼 수 있었고 뭔가 희망이 보이는 듯도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알게 모르게 난 같은 한국사람을 피하고 있었다.

아직 말도 못하고 문화도 모르는데 가장 의지처가 될 한국사람을 내 스스로 피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혹시나 내가 나온 학교에 아는 애가 있어 나에 대해 확인한다면... 아아..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대신 내게 잘해주는 외국인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

난 그들과 어울렸고 그들과 하나가 되려했다.

그들의 세계에 빠지면 빠질수록 난 내 자신을 잊어갔다.

난 그게 편했다.

그러는 와중에 섹스에 중독됐지만 벗어나고 싶진 않았다.

난 한 사람과 사귀면서 그의 친구들과도 돌아가며 은밀히 관계를 가졌다.

금세 소문이 퍼져 난 한국에서 온 발정난 암코양이로 찍히게 됐다.

하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 남자들에 둘러싸여 지냈다.

1년 후, 다른 학교로 옮겼다.

거기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아예 포르노 배우로 나설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난잡하고 문란한 생활에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곧 경제적 사정으로 귀국하게 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가 직면한 건 나의 현실이었다.

지금껏 내가 가진 모든 문제로부터 외국에선 자유로왔다.

하지만, 여기선 더는 아니었다.

난 여전히 현실을 도피하지 못해 안절부절했고 종일 조바심을 내며 사람을 피했다.

집밖으로 나가기조차 힘들었다.

난, 내가 편할 수 있는 외국에서의 그런 환상같은 삶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귀국 전, 솔직히 아주 심각하게 불법체류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그러지 못 한 게 사무치게 후회됐다.

그 답답함에 내 방은 완전 외국식으로 꾸몄다.

이건 좀 아니다 싶으면서도 옷차림은 너무 편한 것이었고 음식도 대부분 외국식이었다.

뭔가 집중할 걸 찾다보니 종일 하고 있는 건 외국인들과의 음란 화상채팅이었다.

아빤 말을 잃었고 대책이 없었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화상채팅을 하며 카메라를 향해 음부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아빠도 몇번 본 적 있었다.

샤워 전후로 욕실을 드나들 때는 거의 알몸이나 마찬가지였다. 

하긴 평소에도 옷을 입는 둥 마는 둥이었지만.

한번은 자는 도중 아빠의 흐느끼는 소리에 깬 적이 있었다.

침대 맞은 편 벽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아 그러고 있었다.

의외로 별 감정 못 느꼈고 이후로도 나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대신, 난 아빠를 유혹했다.

복수심에서였다.

결국 이 모든 건 그로부터였기 때문이란 생각에서였다.

이후, 윤간을 당한 건 어쩌면 미친 개한테 물렸다 치부하면 오히려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그 전에 아빠로부터 당한 건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의 유혹에 넘어간 것인지 그냥 모든 걸 다 포기한 것인지 아빤 다시 나를 가지기 시작했다.

아니, 주로 내가 리드했으니 내가 아빨 가진 게 맞을 것이다.

난 그러는 와중에 하고 싶었던 온갖 욕을 다 퍼부었다.

할 때마다 그랬다.

그런 나를 아빤 아주 질려하면서도 내 보지에 당신의 좆대가리를 깊게도 찔러 넣곤 했다.

오빤 내가 유혹할 필요도 없이 그냥 넘어왔다.

외국물 먹은 쉬운 여자정도로만 치부하는 것 같았다.

오빤 몰라도 아빤 내가 오빠랑 그런다는 걸 아는 눈치이기도 했는데 확실히는 모르겠고 상관없다.

세월이 약인가 싶다.

그러는 사이, 조금씩 외출을 할 만큼 나아졌다.

하지만, 혼자 다니기는 아무래도 어색했다.

항상 오빠가 나를 데리고 다녔다.

오빤 자기 옆에 남들 보기에 괜찮은 년 하나 달고 다니는 걸 자랑스러워 했다.

얼마 후, 오빤 자기 지인들에게 나를 자신의 애인으로 소개했다.

그럴 때면 주로 음주가무가 가능한 어둑한 곳에서 만났다.

난 마시고 싶은대로 마셨고 취기에 나를 추켜 세우며 아부하는 숫컷들 앞에서 한바탕 노래와 야한 춤을

선보이며 주가를 올렸다.

그러는 와중에 오빠와 그들 사이엔 모종의 흥정이 이루어졌다.

알딸딸한 가운데 자리는 모텔이나 호텔 또는 별장같은 곳으로 옮겨졌다.

나의 상대가 한 명이 될 수도 있고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오빠가 같이 자리했다.

나로 인해 오빠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살짝 눈과 코를 고쳤고 좋은 차를 타고

유명 브렌드를 걸칠 수도 있었다.

난 그런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방안에만 박혀 있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최소한 그러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간이 정신이 들 때면 회의만 가득한 가운데 언제 죽을까 하는 고민뿐이었다.

외국인들과의 접촉도 잦았다.

그들 속에 있을 땐 그냥 대화만 해도 둥지처럼 편했다.

난 그들 품속으로 헌신하듯 파고 들었다.

심지어는 한국인이면 다들 싫어하는 주한미군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지파티에서 한번에 8시간 이상 그들을 받아들인 적도 있었다.

그 와중에 유학시절 선배 하나를 알게 됐다.

그 선배도 정말 안 풀리는 케이스였다.

그녀와 난.. 다른 여자들도 있었지만.. 그들 앞에선 쇼걸이나 마찬가지였고 싸구려 창녀취급을 

받으면서도 그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다는 착각에 마냥 행복해 했다.

난 그 선배와 급속도로 친해졌고 오빠에게 그녀를 선물했다.

선배지만 그만큼 그녀는 내 말이라면 애완견같이 잘 따랐다.

나중에 그녀는 일본으로 취직했는데 어떤 일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것이다.

뭐든 때가 있긴 있는가 보다.

그런 생활중에 언제부턴가 은근히 정신 차리게 됐다.

오빠도 여기저기 도움을 받아 조그맣게 사업을 시작했고 오빠 지인의 소개로 나도 취직이 됐다.

물론, 그는 나랑 전혀 그런 관계도 아니고 나에 대해 거의 아는 바 없었다.

회사일이란 게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막상 해보니 분위기에서부터 적응하기 힘들었다.

꼬박꼬박 출근해야 하는 것도 처음부터 지긋지긋 했고 회사사람들을 나긋하게 대하는 것도 

영 재수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시금 새로운 변화를 원했던 만큼 난 최선을 다했고 그 와중에 직원중 하나랑 사귀게 됐다.

한눈에도 착해보이는 게 좀 재수없었지만 보다보니 괜찮다 싶어 만나 본 것이다.

그와는 너무나도 싱겁게 끝났지만 그 일을 통해 결혼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나같은 거에 있어 좀 이기적인 일이기도 했지만 그냥 포기하자니 뭔가 억울했다.

결국, 난 나랑 결혼해 줄 누군가를 위해 몸을 다듬기 시작했다.

얼굴은 어딜 가나 다들 좋아라 하니깐 손을 댈 필요는 없었다.

물론, 그 전에 눈과 코를 살짝 건드리긴 했지만.

가슴도 괜찮았다.

씨컵에 아직 탱탱하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더 큰 사이즈를 원한다면.... 그래도 보형물은 내가 싫다.

나이가 얼만데 벌써 엉덩이가 쳐졌겠는가. 

내가 봐도 만족한다. 아니, 나보다 남자들이 죽고 못 살아 했다.

다만, 거기가 좀 그렇긴 하다.

내가 저질러온 행각에 비해 깨끗하긴 하지만 그래도 손을 좀 보고 싶었다.

오빠의 도움으로 터널까지 짱짱하게 거의 숫처녀 비슷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치하게 처녀막 재생따위는 하지 않았고 그건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어쨌든 그렇게 새로 다듬은 걸 미래의 남편이 아닌 오빠가 먼저 시식했다.

나름대로의 신부수업 받으며 결혼에 대비하는 사이 아빠가 돌아가셨다.

의외로 별 감정 없었다.

이후 오빠와 난 집을 옮겼다.

이제 회사생활이 제법 몸에 익었을 무렵 한 남자를 알게 됐다.

좋은 사람이었고 결혼에 성공하게 됐다.

그를 속이는 것 같아 정말 미안했지만 왠지 결혼과... 그 어떤 평범한 삶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컸던 탓에 난 너무나도 이기적이란 걸 알았지만 결국 그를 구워 삶았고 그는 너무 바보같이 내게

속아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그와 연애를 하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오빠와도 관계를 한 건 나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시집으로 들어간 후, 남편과의 시간보단 시부와의 시간이 더 많았다.

참 좋으신 분이었지만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흠을 잡으려는 게 아니라 그도 다른 남자들처럼 나를 여자로 보는 눈빛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난 시부가 좋았다.

그럼에도 그는 내게 정말 인간적으로 대해줬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그렇게 인간다운 대우를 받아본 기억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부에게 필요 이상의 정을 주고 있었고 좀 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역시 

내게 그러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난 남편에 충실했지만 시부는 내게 있어 또다른 남편같은 느낌이었다.

시동생은 착한 편이었지만 나를 힐끗거리는 늑대의 면모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난 그 정도는 다 이해하는 편이었고 나쁘게 생각지 않았다.

시부와 등산을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거긴 시부의 지인들도 좀 있었다.

그들은 시부를 부러워했고 시부는 나를 자랑스러워 했다.

시부는 나와의 쇼핑을 피하지 않았고 장도 같이 보기도 했다.

내게 요리와 화초 키우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맥주라는 음료수를 즐기는 법도 가르쳐 줬다.

어느덧 그는 내게 있어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되기도 했는데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는 물론 

다소 부끄러웠던 과거까지도 내보였을 정도로 내게 마음의 문을 열어준 사람이었다.

물론, 난 나의 과거를 이야기 하진 않았지만 왠지 언젠가는 하게 될거란 강한 직감은 

내내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시부의 모든 언행과 분위기를 보면

겉과 달리 속으론 얼마나 고독하고 쓸쓸한 지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내가 다 남편이나 시동생에게 야속한 맘이 들었을까.

난 그런 시부에게 다른 건 못 해줘도 진심으로 그를 대했고 어느 정도의 스킨십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부와 내가 좀 취한 적이 있었다.

그땐 정말 많이 친밀해졌단 사실도 있었지만 아마 술의 힘이 한 몫 한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우린 술김에 장난처럼 같은 자리에 누워 낮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손엔 시부의 은밀한 부분이 쥐어져 있었고 굳이 나는 시부의 나를 향한 마음?

또는 그 사무치는 외로움?.. 또는 그 욕정따위 마저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냥 

거부하고 외면하기엔 그가 너무 안쓰럽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시부와 난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면서도 결국 그런 관계를 이어 나갔고 머지 않아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게 됐다.

내가 가장 미안한 건 남편이어야겠지만 시부에게도 그 못지 않게 미안했다.

남편이 내게 무슨 말을 하든 할 말이 없는 입장이면서도 이상하게 마지막에 화가 나서 대든 적이 

있었다.

결혼 후.. 아니, 처음 만난 날부터 그때까지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는데 적반하장으로 

헤어지기 직전 갑자기 내가 대든 것이다.

솔직히 난 그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내 생애, 내 과거,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난 것인데 

이상하게도 불똥이 아무 죄없는 불쌍한 남편에게 튀게 된 것이다.

이로써 그는 나에 대한 정을 완전히 끊게 됐을 것이다. 그러기를 빈다.

이후, 난 시동생에게 시달림을 받아야 했다.

아니, 시달림이라기 보다 성가신 요구라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데 -내가 보기엔- 내 행각이 그로 하여금 그런 마음이 들게 한 것 같다.

평소에 나를 생각하며 자위따위를 했다면 이해한다. 상관없다.

하지만, 실제로 시도하려 한다는 건.. 이건 아니지 않는가.

시부와 붙어먹는 화냥년이란 생각에 그만큼 내가 쉽게 보였나 보다.

그는 날 강간했고 이후에도 나를 몇번이고 귀찮게 했다.

솔직히 괘씸하긴 했지만 난 그런 그가 귀여웠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귀여운 맛에 싫은 내색을 하면서도 받아준 것이다.

하지만, 꼬리가 은근히 길었다.

난 오빠에게 도움을 청했고.. 몇 사람이 모였고... 이후, 그로부터 연락은 완전히 끊겼다.

내 부탁으로 폭력은 사용하지 말라고 했으니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부와는 계속 만남을 가졌다.

그와는 끊기 힘들었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주 심하게 싸운 적도 적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을 끊는 게 맞다 싶어, 내가 시비를 걸고 아주 크게 싸움을 벌이기도 했는데 심지어는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도 지랄 떨기도 했고... 심지어는 그와 내가 사는 곳에 다른 남자와 그 짓을

벌이는 걸 목격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다 받아줬다.

하지만, 그런 시부라도 때론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의 시부는 아주 끔찍할 정도로 질려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그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서로의 

뜨거운 사랑과 깊은 정을 확인하는 걸로 모든 사태는 마무리 지어질 뿐이었다.

단순히 몸을 섞는다는 걸로 사귄다고 할 수는 없으니 내 평생 제대로 사겨본 남자라곤 시부밖엔

없는 것 같다.

남편과 난 서로 사랑했지만 결국 서로의 대상은 달랐다.

남편은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을 사랑했고 난 나의 거짓을 사랑해주는 남편을 사랑했으니 제대로 된

사랑이라 할 수도, 제대로 된 사귐도 아닌 것이다.

결국 남편을 그렇게 만든 건 내 잘못이고 뜬구름같은 것에 마음을 뺏기고 인생을 낭비하게 했으니

더 미안할 따름이고,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런 만큼 시부에게도 미안했지만 그는 자식보다 오히려 날 더 보호해줬다.

심지어 내 모든 과거를 다 안 후에도 시부는 날 아껴주고 더 이해해줬다.

그런 분, 그런 남자 두번 다시 없을 것이다.

혹여, 있다 해도 그 끔찍한 과정을 두 번 다시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

싸우는 것 말이다.

사랑싸움이 달콤할 줄로만 알았지 그렇게도 미어터지고 찢어지는 아픔이 있는 줄 몰랐다.

그게 무서워서라도 이제...

사랑은 못 할 것 같다.

다만, 난 그저...

평범한 삶을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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