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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삑’

‘삑’

‘4천 8백 원 입니다.’

‘와이리 비싸노, 편의점은 이래가 파이라 카이!’

““씨벌 놈, 그럼 이런 비싼 곳 말고, 좇나리 후진, 떨이 시장에 가서 됫박으로 사다 쳐먹지, 우째 이런 고상한 곳에 와서 저 지랄이야? 저런 것들이 꼭 현찰도 없이, 좇도 아닌 금액을 꼭 카드로 긁어요, 얼씨구, 저 봐라, 땟국물 꼬장꼬장한 츄리닝에서 카드만 덜렁 꺼내는 꼬라지 하고는…..””

나는 속으로 물건을 봉지에 담은 후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줄창 금액을 찍어야 될 판에, 편의점 알바는 그래서 조금 편한 감이 없지 않다. 바코드 리더에 쑥 훑고 지나가면 POS(Point Of Sale)기계가 알아서 카운트 해주니… 기계 속의 내부에서는 물건을 물건으로 인식하질 않은 채, 기계어의 코드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고, 이 시간을 커버하는 나의 존재도 그저 조합된 일련번호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을 기계와 코드의 세상. 어느 누구 하나 그 범주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인간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물건의 지칭을 언어라는 도구로 해결하고 있을 뿐이지, 그 외의 세상에서 그런 것은 통용되질 않았다. 그저 일련번호와 코드로 구분되는 데이터 베이스의 홍수에 살고 있으면서도 구지 무식한 인간이 그것을 모를 까봐 제목을 그 사용언어에 맞게 알려주고, 교육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편의점으로 반입되는 물건들 치고 바코드가 붙어 나오지 않는 것들이 없었다. 간혹 바코드가 지워져 스캐닝이 안 될 경우, 일련번호를 입력하거나, 그것도 지워졌을 경우를 대비해서 점장이 마련해 놓은 대조표를 보고 리더를 굴리면 바로 품목이 튀어나왔으니까.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구멍가게나 바코드를 사용하지 않는 가게들에 비해서 편의점은 그 말 그대로 이용하기에 편리하고, 게다가 일하는 사람까지 그 편리성에 푹 빠져드는 것이 기본이었다. 하긴 요즈음은 신생아가 태어나자 마자, 바뀔 것을 염려해서 바코드가 적힌 방수 팔띠를 대번에 채운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고, 부모가 누구인지 구분도 하지 못하는 신생아들 조차, 일개 숫자와 코드로 구분되어 자료화 되어 버리는 문명 세계의 속성, 우리들은 그 안에서 살고 있었다.

‘힘 안 드세요? 이렇게 한 밤중에 일 하실려면?’

24시간 편의점에는 한 밤중에 아이스크림이나 모자라는 술을 사기 위해, 혹은 서서 컵라면이라도 떼울 심산으로 들어서는 젊은 이들이 많았다. 시간이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는데, 젊은 여자 한 분이 계산대 앞에 섰다. 연한 핑크빛 츄리닝, 아까의 그 꼬죄죄한 씨벌탱이와는 수준이 벌써 달랐다. 들고있는 손지갑도 그 유명한 뤼비0 지갑이었다.

‘힘들기야 힘들죠, 그렇지만 손님이 꾸준히 들어오시니 그런대로 견딜만 해요. 계산해 드릴까요? 한밤중인데 아이스크림을 꽤 많이 드시네요?’

‘그렇죠? 버릇이라서…’

한아름의 아이스크림을 사는 그녀의 손지갑은 그야말로 띠용이었다. 띠용이 뭐냐구? 그것은 빳빳한 현찰이나 수표가 잔뜩 들어가 있는 지갑을 펼칠 경우, 용수철 처럼 튕기듯이 좍 펼쳐 진다고 해서 친구들이 부르는 말이었다.

‘실례되는 질문인지 모르겠는데, 그 손지갑 꽤 비싸죠?’

‘그렇죠 뭐, 요새는 짝퉁도 하도 똑같이 만드니, 구지 이렇게 비싼 돈 주고 사실 것 까지야 없죠. 그냥 유행이죠, 뭐.’

아쭈구리, 한 씀씀이 하는 모냥 인데?

‘그건 왜요? 어디 선물하실 데라도 있는가 보네, 맞죠?’

‘네, 잘 아시네요, 제 여자친구가 그걸 탐을 내거든요. 꼭 사주고는 싶은데, 이렇게 편의점 알바나 해서리 언제 돈 모아서 사주겠어요?’

‘좀 나은 일자리를 알아보는 건 어때요?’

‘저 같이 대학 졸업하고 이 일자리나마 감지덕지 하며, 다니는 것도 황송한데, 누가 일자리를 주겠어요? 이력서야 요즘도 줄창 보내 보지만 쉽지 않더라구요, 그게 글쎄…’

‘그럼 제가 명함하나 드리고 갈게요. 연락 한번 주실 래요? 제가 힘 쫌 한번 써 보죠. 이렇게 멋진 총각이 이런 곳에서 썩는다는 게 양심이 허락칠 않는군요.’

하긴 효은이가 나를 보고 한 인물에, 한 좇대가리 한다고 농을 풀던 얘기도 썰은 아니었던 모양 이었다. 그렇게 봐 주는 사람이 또 있다라는 것은, 내가 왕자병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보편적 시각이 아닐까라는 우쭐함이 도드라 졌으니까. 이게 혹시 왕자병? 아무튼 즐거운 일이었다.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는 그들의 기쁨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빈둥거리는 낮 시간을 틈타, 명함 속에 적힌 번호로 나는 전화를 때렸다.

‘여보세요? 곽 규현 입니다. 편의점에서 명함을 받고 전화 드리는 건데, 혹시 거기가 링월드라는 곳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누굴 찾으십니까?’

‘명함에 보니….성현경 이라고 되어 있네요. 그 분을 찾는데요.’

‘본부장님 이십니다. 곧 연결해 드리지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와, 이거 잘될 것 같은 분위기네, 본부장이라, 그런 여자가 나에게 직접 명함을? 이거 무언가 잘 굴러갈 것 같은 느낌이 확실히 들고 있었다.

‘여보세요? 성현경 입니다. 말씀하세요!’

‘저, 기억 하실지 모르겠는데, 지난 밤에 편의점에서 명함…..’

‘아, 그 분 이시구나, 누군가 했네. 한번 저희 회사로 나와 주실 수 있겠어요?’

‘뭐 하는 회사죠? 혹시 뭐 파는 거나 그런 거는….’

‘아니에요. 다단계 말씀하시는 거죠? 우린 암웨이 같은 그런 회사 아니구요, 미국에서 설립된 정보관리 회사의 한국 지사에요. 다양한 계층의 젊은 분들이 필요해서 말씀 드린 것 뿐이지, 별다른 의도는 없었구요. 한번 나와 보세요. 상시직이 아니라서 좀 그렇지만 보수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입니다.

‘네, 빠른 시간 안에 찾아 뵙지요.’

그러나, 그건 빠른 시간이 아니라 전화 건 직후, 바로 당장이었다. 나는 양복을 차려 입고, 그 회사로 찾아갔다. 별로 크진 않았지만, 곳곳에 외국 사람도 보이고, 내부는 무슨 전산실 같은 분위기도 풍기면서 방문자들은 그냥 유리창으로만 안이 들여다 보이게 되어 있었고, 삼엄한 보안 체제가 가동 되고 있었다. 방문자들을 위해서 마련된 미팅 룸은 회사와 별도로 분리된 외부에 있었고, 내부로 들어가려면 어느 곳이고, 출입증이 있어야 가능할 것 같았다. 방에 앉아 있는데, 내부로 연결된 듯한 문이 열리면서 어제 본 그 여자가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빠른 시간 치고는 너무 빠르네요. 아무튼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오셨으니 반갑네요.’

나는 나의 급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이곳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한마디로 말해서 저희 회사는 미국 본사에서 의뢰한 프로젝트에 대해서 마케팅 리서치를 하는 곳입니다. 정식으로 설립된 한국의 현지 법인 이구요. 물건을 판다든가 하는 곳이 아니죠.’

‘그럼 제가 할 일은 무슨 일입니까?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별로 할 일은 없습니다. 매일 저희가 지정한 장소에 나오셔서 저희 요원들로부터 몇 가지 사항에 대한 의견을 말해 주시고, 그 날의 일당을 수령해 가시면 되지요. 임시직이기 때문에 지금 일하고 계시는 편의점을 구지 관두시라고 말씀드릴 수 없는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잇점도 있어요. 일을 하시겠다고 하면, 그 즉시 알 수 있는 일종의 리베이트 지급 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더 기다리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죠. 재미도 있을 것 같구요. 외국어 구사가 필요합니까?’

‘별로… 가끔 필요할 때가 있긴 하지요. 아주 간단한 것들만…’

하면서 그녀는 배시시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그녀가 내부와 통하는 문을 스스럼 없이 여는 것을 보고, 보안장치는 괜한 나의 오버였구나라는 생각에 그녀가 회사 내부로 나에게 나누어 줄 주의사항을 가지러 들어 갔을 때, 그 문을 열어 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하질 않는 것이었다. 어찌 된 일이지? 그녀는 카드도 제시한 적이 없고, 그냥 문을 열듯이 안으로 사라졌는데….

‘오래 기다리셨죠? 이게 제가 말씀 드린 장소 입니다. 항상 아침 10시까지 오셔야 하구요. 저희 요원들이 언제나 지시하고 요구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답변해 주셔야 합니다. 출근 첫날, 현장에서 간단한 보안규정 이행을 위한 조치가 있는 것 이외에 성가신 것은 없을 것입니다. 노파심에서 다시 한번 말씀 드리는데, 나오시는 첫 날, 다시 한번 이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한 여부를 묻게 될 것이구요, 만일 일을 하실 의향이 있다고 승낙하실 경우에는 보안조치와 더불어 모든 일들이 본인의 자유의지에 의해 행하게 되었음을 확인하는 서약서를 작성하게 됨을 명심하십시오. 그때까지 시간이 있으니 나름대로 숙고하셔서 결정하세요. 너무 딱딱한 이야기만 했죠? 별로 어려운 얘기들도 아니고, 한국에서도 회사에 입사하려면 거치는 요식행위 들을 제가 너무 장황하게 설명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미국 회사란 것이 원래 그래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서류, 근거자료, 증빙 없이는 꼼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유도리 라는 것이 없어 놔서요. 이해하시죠?’

이해하다 말다…그러나, 나의 관심사는 어떤 일이냐가 아니라 얼마를 주느냐가 관건 이었다.

‘그런데, 대체 일당은 얼마나 주게 되는 것인지…’

‘아참, 가장 중요한 문제를 빠뜨렸네요. 제가 이래요. 본사와 중요한 심야 화상 미팅이 있어서 정신이 없었나 봐요.’

‘심야 라뇨? 이런 환한 대낮에 왠 심야?’

‘심야가 맞죠, 미국 본사는 지금 한밤중 이거든요.’

나는 이런 한 밤중에도 멀리 떨어진 해외의 지사 관리를 위해, 화상미팅을 한다는 그 본사의 배려와 체제의 견실함에 마음이 풀려가고 있었다.

‘일당은 임시직의 경우, 남성은 연령별로 다르지만 미스터 곽의 경우, 27세니까 C-4급에서 시작하는 9만원부터 시작하게 되죠.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그 다음은 다른 팀들이 저녁까지 일을 할 것이고요, 연장근무가 필요할 때에는 이틀 전에 사전 연락하는 조건으로, 기본 지급 일당의 시간당 임금에다, 30프로를 추가해서 주게 되어 있어요.’

‘일주일에 며칠이나 일하게 되나요?’

‘대개는 5일정도 하시는데 경우에 따라서 일주일 내내 저희가 하는 리서치에 동참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힘이 들긴 하지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일주일에 5일만해도 45만원에다가, 한달 이면 180만원이라는 돈이 놀구 먹으면서 거저 굴러 들어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횡재는 다신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흘렸다. 속으로 이제 한달 후면 효은이 에게 거들먹거리는 얼굴로 그 명품 손지갑을 선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나는 날아갈 듯이 기쁘기만 했다.

‘어서 오세요. 링월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 본부장이 지시한 건물은 4층 짜리 단독 건물이었고, 아무런 가게나 세도 들이지 않은, 오로지 그 회사만의 사용하는 건물이었다. 1층은 넓은 회랑 처럼 꾸며져서 많은 사람들이 정해진 탁자를 사이에 두고, 직원들과 정해진 순서 대로 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1층은 밖에서 보기에 별다르게 보이질 않았지만 2층은 그 회사의 사무실 처럼 보안이 철저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곽 규현씨? 본부장님께서 특별히 추천하셨네요!’

‘네’

‘주의 사항은 듣고 오셨죠? 진정으로 이 일을 하시고 싶으시면 이 서약서 및 계약서에 싸인 하시구요. 그 밑에 주의 사항 있지요? 이 안에서 일어난 모든 사항에 대해서는 절대 발설할 수 없으며, 법적으로 제소할 수도 없음을 주지하시기 바랍니다. 급여에 대한 것은 27세시니까 C-4에서 출발합니다.’

나는 서류를 작성하고 데스크의 그 여자에게 넘겨주었다. 실내에는 나처럼 일을 하려고 온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적어도 연령의 격차가 20살 후반에서 40세 전후 까지로 보였고, 혐오감을 줄 만한 사람들은 보이질 않았다. 선별 과정에서 신경을 무척 쓴 것으로 보였다. 서류 작성에 대한 것이 마무리 되자, 그 여자는 나보고 2층으로 가자고 한 뒤에 내게 막도장 크기만한 작은 분필 같은 것을 주었다. 2층 계단을 올라가자 마자, 문 옆에 그 분필 같이 생긴 것을 정면에 들이대라면서….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막대를 들이대자, 문은 안에서 자동으로 열렸다. 그 막대 안에는 보안 장치를 통과 할 수 있는 기기가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2층은 흡사 독서실 처럼 칸막이가 쳐져 있었고, 모두 그 칸칸이 앉아서 안구 검사를 받는 것처럼 무슨 기계 앞에 얼굴을 고정 시킨 채, 처치를 받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저 구섞의 한자리에서 한 남자가 일어서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곽 규현씨?, 이리 오시죠.’

‘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나보고 그 기계 앞에 턱을 괴고 정면을 향한 채로 눈을 감으라고 그 남자가 지시 했다. 아무런 통증도 없이 바로 작업이 끝날 것이라고 했으며, 다만 움직이지 말라는 주의를 서너 번 반복했다.

‘다 됐습니다. 이제 저희 링월드의 일원이 되신 것을 축하 드립니다. 오늘 일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1층으로 다시 내려 가셔서 오늘 일당 수령하시고요, 내일은 3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아까 1층에서 받으신 SS(Security Stick)는 저에게 주시고요. 네. 됐습니다. 오늘 하루 수고 하셨습니다.’

나는 어안이 벙벙 했다. 이렇게 돈만 받고 가도 되는 것인지? 그 막대기 없이도 1층으로 내려가는 보안 문은 잘도 열렸고, 나는 받아 든 빳빳한 만원짜리 아홉장에 딴 세상에 갔다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럴 수가, 이렇게 쉽게 돈버는 방법이 있다니? 나는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한달 내내 이 즐거움을 참아가며, 입을 닫고 있을 걸 생각하니 입이 근질 거리기 까질 했다. 그러나, 즐거움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 3층에 갔을 때, 나는 보안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실내로 들어가기 전에 옷을 갈아 입으라는 지시로 인해 보기에도 남사시런 삼각수영 팬티 같은 것을 입고, 까운을 걸친 채, 슬리퍼를 끌며, 3층 실내로 들어섰다. 3층도 2층과 별반 다름이 없었지만 그 간격이 넓직 하게 떨어져 있었고, 내가 앉게 될 의자는 썬탠 의자에 가까울 정도로 크고 넓었으며, 안락했다. 옆으로 힐끔 보니 다른 남자들도 동일한 까운에 슬리퍼 차림인걸 보니, 까운 안에도 나처럼 수영복을 지급한 것 같았다. 여자들은 없었고 어제와 다른 요원이 나를 상대로 리서치에 해당하는 질문 400여 개를 물었다. 비교적 사소한 것들 이었는데, 어제 가서 밥은 잘 먹었느냐, 피부 중에 가려운 곳은 없었느냐? 이상한 신체 부위의 느낌이 새로이 돌출 된 것은 없었느냐고 묻는 것들이었다. 질문이 마쳐지고 나서,

‘수고 하셨습니다. 4층에 리서치에 참석해 주신 분들을 위한, 휴식 공간이 마련 되어 있는데 쉬어 가시겠습니까? 가지 않으셔도 상관 없지만 연장 근무 요청이 이루어 지는 곳이기도 하니까 한 번 가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쉬시고 싶은 만큼 쉬신 후에 1층에서 오늘 일당 수령해 가시는 것 잊지 마시구요.’

나는 기대반 , 의심반의 심정으로 4층으로 들어섰다. 보안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칸막이 처럼 분리된 덧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실내의 칠흙 같은 어둠에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서서히 어둠에 적응되어 갈수록 나의 눈 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온 바닥이 넘실거리는 살덩어리로 꿈틀거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 앞에는 온통 벌거벗은 나체의 여자와 남자들이 바닥과 대형 소파 곳곳에 마련 된 침대에서 엉겨 붙어 적나라한 자세로 섹스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헉!’

내가 그 모습에 도취되어 정신이 빠져있는데 누군가 내 까운 속으로 손을 쑥하고 집어 넣는 것이 느껴 졌다.

‘오늘 온 새 총각이네, 얘들아, 이리 와봐, 이 오빠 죽인다! 내가 뭐랬니? 집에서 애들만 붙들고 있다가 이런 곳에 오니 뻑 가겠지?….어머머, 이 좇대가리 치켜든 것 좀 봐. 팬티 찢어진다 얘!’

그 여자는 서른이 갓 넘은 것 같은 미시로 보였는데 체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바닥에서 다른 남자의 좇을 핥고 있던 다른 여자들-친구로 보임-, 서넛이 나에게 달겨 드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내 뒤의 문이 열리면서, 또 다른 남자 세 사람이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뻘쭘히 서있는 나와 달리 능숙한 솜씨로 까운과 팬티를 벗어 던지고는 그 울렁대는 바닥의 물결 속으로 몸을 던졌다.

‘윽…윽… 누님들은 누구 세요?’

‘우리? 링월드 식구야. 임시직 직원들을 위한 기쁨조 라고나 할까? 그렇게 위대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놀고 있는 우리 같은 할 일 없는 보지들, 줄창 대 줄려고 자원봉사 나왔지 뭐. 얘들아, 안 그러니? 우리 이 오빠를 위해 씹구녕 박수나 한 번 해드리고 놀자.’

그녀들은 달겨 들다 말고, 세 여자가 바닥에 앉아서 가랭이를 좌우로 쩍 하니 벌리더니, 보기에도 확연하게 일정한 리듬으로 씹구녕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이른바, 씹살로 보여주는 무언의 박수를 나에게 보냈다.

‘얘들아, 박수만 치면 어떻 하니? 마무리 해야지. 얼릉!’

그러자, 옆을 짚고 있던 한 손을 들어 손바닥 으로 보지 앞을 착착 쳐대며, 박수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질척한 씹물로 인해 그녀들의 보지에서는 찰찰 거리는 애띤 소리가 터져 나오고, 온 사방으로는 손바닥으로 쳐대는 행위로 말미암아 씹물이 지천으로 튀겨지고 있었다. 3층에서 설문조사와 리서치를 도운 남자들은 모조리 이 4층에 기어 올라와서 준비된 여자들을 붙들고 끝이 없는 섹스의 환락을 즐기는 것이었다. 이것이 본부장이 말하던 리베이트가 틀림 없었다. 직업치고 이렇게 환상적인 직업은 아마 평생 찾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둘러선 여자들을 끝끝내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 안에서는 누가 누구의 파트너라는 것이 무의미했다. 내가 다른 여자의 보지에 좇질을 가하고 있을 때, 그 여자는 자기의 앞에 무릎을 꿇는 남자만 있으면 입을 벌려 대며 좇을 빨아 재꼈고, 여자들은 남자에게 엉덩이를 디밀면서 개치기를 당하면서도, 다른 커다란 좇대가 눈 앞에 아른 거리면 좇질을 하던 좇에서 엉덩이를 쑥 뽑아서는, 지나가는 그 좇을 붙들고 씹질을 해달라고 졸랐다. 남자들은 지치면, 음료수를 마시면서 벽에 기대어 서서, 얘기를 하기도 했고, 여자들은 그렇게 놀고 있는 좇대가리를 가만 놔 두질 않았다. 두 사람이 천연덕 스럽게 드라마 줄거리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에라도, 그 내용에 맞장구를 쳐 대가며, 그 남자 둘의 아래에 무릎을 꿇고 좇을 빠는 그녀들 조차 드라마의 내용에 추임새를 넣으며, 그 쌔끼 좇 같애, 그년 밥맛이야 라며, 일상적인 행동들 처럼 섹스를 했다. 마음에 맞는 남자들 끼리는 폭격세례를 퍼붓듯이 한 여자를 집중적으로 쑤셔 박는 난타전도 벌였다. 한 여자를 둘러싸고 대 여섯명의 남자들이 한 여자를 피작살 내는 떼씹의 그 흥겨움, 방안에는 이 세상에서 즐길 수 있다고 여겨지는 온갖 음란한 섹스의 향연이 벌어졌고, 사람들은 그 섹스 와중에도 이런 기회를 제공해 준 링월드 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그 감사한 마음을 보지 속으로 거나하게 되돌리고 있었다. 어떤 여자는 쓰러져 경끼 하듯이, 온 몸을 껄떡 거리면서 눈은 휘번덕 하니 돌아갔는데도 불구하고, 방안의 남자들은 정신 못 차리는 그녀의 씹 안으로 그 건들거리는 좇대가리를 박고 또 박아서, 기어이 그 쾌감으로 인해 다시 정신을 차리도록 쑤셨다. 그녀들은 링월드의 임직원 부인들이나 애인 들이라고 했다. 우리가 돌아가고, 오후 3시 부터는 다른 팀이 바톤 탓취를 하는데, 그 안에는 여자 기쁨조 대신에 링월드의 남자 직원들로 꾸며진 남자 기쁨조들이 리서치를 받으러 오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이런 섹스 서비스를 한다는 것이었다.

‘억억억 얼마나 좋니? 우리는 싱싱한 젊은 좇대가리랑 어울려 윽윽….보지랑 똥꾸녕 째져라 놀아 재끼니 좋고, 어흑,어흑,어흑…일하러 오는 오빠들은 오빠들대로, 돈 벌어 좋아, 공짜 보지, 마음 껏 집어 삼킬 수 있어 좋아, 이거야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윽윽윽 아니, 보지 좋고, 자지 좋고 아니겠니? 억! 이건 또 뭐야, 보지에 박고 있는 것 뵈지도 않나? 오빠들! 윽윽, 내 보지 이쁘다고 그렇게 두개씩 좇 쳐박아 대면 째지잖아, 억억,…. 별 수 있어?’

4층 실내는 온통 뿍짝 대는 씹보지들의 쩔꺽 대는 씹물 소리와 퍽퍽 대는 좇대가리들의 허리질 소리만이 가득했다. 아까도 들어 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실내의 방음 상태는 완벽에 가까웠다. 이 건물을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 재정적 탄탄함도 부러웠지만, 그 안에는 이렇게 은밀한 부분을 가려야 하는 그들만의 비밀로 인해 독점적인 점유는 필수 불가결한 상황처럼 보였다. 나는 여자들이 이렇게 까지 음란하고 발광적으로 섹스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링월드의 직원 부인이나 애인 들이라면, 지금도 1층과 3층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 직원들의 배우자란 얘기들인데, 누구는 아래층에서 좇나게 일들 하고 있고, 배우자 들은 이렇게 가려진 밀실 안에서 보지가 벌창 나도록 씹질을 하고 있다는 동시적 상상은 그 흥분을 고조시키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자신의 순서가 끝나면 어차피 남편들이나 애인들도 오후에 들이닥치는 여성들을 상대로 자신과 동일한 환락의 섹스서비스에 동참할 거라는 생각 때문인지 도무지 죄책감 이라든가 후회 같은 것은 얼굴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되도록 이면 사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방안의 보지들에게 한번씩 이라도 좇을 담그려고 방안을 유람 다녔다. 천차만별로 생긴 여자들의 보지 맛은 정말 기가 막혔다. 언제나 효은이의 8자보지 만이 유일한 기쁨인 줄 알고 살아오던 나에게 이렇듯 급작스럽게 개방된 딴 여자의 게걸찬 씹보지는 나의 이성을 단번에 앗아가고, 나는 진기한 음식을 차려놓고 무얼 먹을까 궁리 하는 미식가처럼 요 보지도 찔러보고, 저 보지도 쑤셔보고 하면서 이게 인생의 최대 기쁨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있었다. 급기야, 맨 처음에 내 좇을 쥐어 잡던 그 미시에게 다시 붙잡혀 나는 바닥에 눕혀지고, 그 친구중의 한 명이 보지를 벌린 채, 내 얼굴 위로 그 물이 질질 흘러대는 퉁퉁 부은 보지를 들이대며 내 얼굴 위에 주져 앉았다. 그 미시는 내 얼굴 위에 조져 앉은 년과 서로 마주보며, 젖을 빨고, 입을 맞추면서도 연신 허리를 움직여 보지 속으로 내 좇이 치받치도록 열씸히 허리를 틀어대며 씹질을 했고, 내 얼굴 위로 앉은 년은 내 숨이 막히는지 어떤지도 상관 하질 않고 내 입에 그 보지를 줄창 내리 깔았다.

‘어머, 머머, 이 새끼 좇 대가리 좀 봐, 보지를 아예 뚫어먹네 뚫어먹어…윽윽…억억….이게 세상 사는 맛이야. 남모르는 좇 대가리에게 갈갈이 보지 째지는 이 기쁨! 억억억……’

나는 소리도 못 지르고 내 얼굴 위에서 온 씹물을 질질 흘려 대면서 요동치고 있는 그 년의 보지 속으로 신음을 질러대며, 아랫도리는 끝을 알 수 없는 사정의 쾌감에 맥을 놓으며, 널부러져 버렸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섹스였다. 진짜 삶의 기쁨이었고, 이제까지 살아 온 나의 삶은 모두 거짓이라고 믿어지기 시작했다. 링월드야 말로 감겨진 나의 눈을 뜨게 해 주었고, 세상 살 맛을 다시 느끼게 해준 장본인 이었다. 나는 그 건물을 나오면서 이몸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링월드의 사업에 협조하기로 맹세했다. 이틀 연속 링월드의 떼씹에 빠져 편의점 점장님 께는 독감이 심해 나갈 수가 없어서 다음날 나가겠다고 거짓말까지 해대고, 낮에 만나서 영화나 보러 가자는 효은이 에게도 몸이 아파 나갈 수 없다고 하고선 나는 이내 링월드로 달려가 설문조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 여자들과 진저리 치도록 좇대가리가 덜덜 떨려오는 그룹 섹스에 정신을 놓았다. 3일째 되는 밤,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편의점으로, 죽기 보다 싫은 마음으로 일을 나섰다. 마침 편의점은 그 동안 POS시스템에 연결해서 사용해 오던 손잡이형 바코드 리더기를 떼어내고, 대형 할인 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대형 바코드 리더기를 계산대 바닥에 설치하고 있었다. 계산대 바닥을 투명 강화 유리로 교체하고 물건을 그 위로 스치기만 해도 위로 반사되는 리더 빔이 바코드를 읽어 내서 거의 오차 없이 보다 빠른 속도로 계산대의 줄을 소화할 수 있는 기능을 지닌 기기였다.

‘오랜만이야, 독감이 심했는 모양이네, 얼굴이 말이 아닌데?’

나는 점장님의 걱정에 짐짓, 거짓 헛기침까지 하면서 계산대로 들어섰다.

‘자, 이제 시운전 해 봐야지? 손님들 늘어섰으니 어서 빨리 시운전이나 해봐.’

‘삐빅, 삐비빅, 삐빅빅빅, 삐삐삐’

내가 계산대에 들어서서 그 바코드 리더기 앞에 서서 내려다 보자마자, 기계는 오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POS 터미널에는 엉뚱한 글자들이 찍혀 나오고, 영수증 종이는 엉망으로 인쇄도 하지 않은 채, 밀려 나오는 등, 갑자기 점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할 수 없이 기계를 끄고, 일일이 입고 전표와 기존의 출력 장부를 대조해 가며, 계산을 마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계산대에서 물러 나와 점장님이 기계를 다시 켜고, POS 터미널이 들어 왔을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이 작동이 되었다. 점장님은 이상하다며, 나보고 다시 계산대로 들어가 보란다. 역시나 기계에서는 이상 음이 지 멋대로 흘러 나오면서 아까와 같은 오동작을 되풀이 하고…

‘규현아, 너 주머니에 있는 것, 다 좀 꺼내 봐.’

그러나 이상한 것은 없었다. 금속이라고 생각되는 스뎅 혁대 버클도 풀고서 계산대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켜 놓은 기계는 오동작을 하고 말았다.

‘하 이거 정말 모르겠네, 어찌 된 거지?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겠다. 규현이는 몸도 더 추스릴 겸, 일찍 들어가라. 청소나 좀 하고서….’

나는 청소를 하고서 냉장고에 음료수를 채워넣고, 편의점을 나왔다. 집으로 걸어 오면서도 조금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집 앞에는 늦은 시간 이었는 데도 불구하고,효은이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도 없고, 편의점에서는 나갔다 하고, 오빠를 도대체 볼 수가 없네. 어떻게 된 거야?’

‘응, 그게….’

‘여자 생겼어? 생겼으면 생겼다고 말해! 나 몸 허락했다고 구차하게 붙들지 않을게. 나 이래 뵈도 강단 있어.’

‘효은아, 그게 아니고, 나 요새 다른 일해, 낮에 그래서 너를 볼 새가 없어.’

‘무슨 일인데?’

‘리서치 회사에다 의견조사 응해주는 건데, 별건 아니고, 생각보다 수입이 괜찮아. 너 그 손지갑 갖고 싶다고 했잖아? 오빠가 번번히 입사 시험도 미끌어지고, 이렇게 고급 실업자가 되서 집에다 얘기조차 변변히 못하는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너 기나 세워 주려고 시작한 건데, 조금 힘이 들긴 든다.’

나는 그룹섹스가 끝내줘요 라는 말은 쏙 빼놓고 일부러 엄청 동정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대체 회사 이름이 뭔데? 오빠, 나 한테도 비밀이야?’

‘아니야, 비밀은!…….. 링월드 라고 미국 굴지의 정보관련 벤쳐기업 이라 나봐. 돈도 엄청 많은 것 같구…’

‘오빠 링월드 라구 했어? 그 00동 &&호텔 뒤의 4층 건물 말하는 거야?’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오빠 미쳤어? 돌았어? 제 정신이야? 어쩔려구 그래?’

그 말을 들은 효은이는 얼굴을 감싸 쥐고 그 자리에 주져 앉아 버렸다.

‘왜 그래? 말을 해야지?’

가까스로 눈물을 그친 효은이는 나보고 놀이터로 가자고 했다. 한밤중의 놀이터는 아무도 없고 바람결에 삐걱거리는 그네만이 을씨년 스럽게 흔들거리고 있었고…

‘오빠, 오빠는 신앙을 가지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신앙을 빙자 했다거나 교묘히 그 가면을 쓰고서 인간을 종국적으로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조직들을 살피고 연구하는 것이 할 일이야. 예전에는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내세구원 이라든가 말세에 살아남을 수 있는 천국행 티켓등과 같이 저급한 수준의 사이비 종교 집단의 비행을 감시하고 공개하는 일들을 해왔는데, 요즈음 우리들에게 심심찮게 이상한 소문들이 들려오고 있어서 계속해서 자료를 모으고, 그 실태를 파악하려고 주력하고 있어. 오빠는 모르고 있었지?’

나는 효은이가 사회사업 학과를 졸업하고 한동안 불우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오다가, 돈도 안 되는 무슨 연구횐가 뭔가 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냥 흘려 보냈었는데 그게 그리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는 모양이었다.

‘기독교의 신앙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요즈음 부각되는 것은 과연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와 적그리스도, 그리고, 666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야. 오빠도 바코드라고 알지? 요즈음 상품에 없어서는 안 되는 그 꺼먼 줄무늬 조합 말이야.’

‘알지, 편의점에서 일하는데 그걸 모를라구?’

‘정확치는 않지만 그 바코드를 자세히 살펴 보면 양쪽과 맨 가운데 얇은 두줄이 항상 경계선처럼 되어 있어. 어떤 바코드도 그 세 쌍의 두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굵기와 간격을 달리하면서 정보의 상이성을 표현하지, 그 줄이 의미하는 기계어 코드 값이 뭔지 알아? 바로 6이라는 숫자야. 그 세 쌍은 처음 중간, 나중에 버티고 서서 666이라는 숫자의 집합 안에서 인간의 필요 조건인 생필품을 모두 말아넣는 형상을 하고 있는 거지. 맨 처음에 분석학자들은 우연의 일치라고도 했고, 어떤 이들은 이 바코드를 개발한 사람이 적그리스도가 아니었겠느냐 하면서 의견이 분분 했지만 우리가 조사한 바로는 그것은 일종의 암시라는 것이지.’

‘무슨 암시?’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다시 재림한다면 가장 주요 공격목표로 삼을 것은 무엇일까 라고 말이야. 그건 다름 아닌, 사람들의 경제 생활이야. 즉 돈이란 거지.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배고픔, 그 배고픔을 해결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만 갖고는 안 되는 것이 또 있지. 바로 물건이야. 이 물건을 바코드로 장악해서 바코드로 긁혀지지 않는 제품은 시장 내에서 존재하지 못하게 하고, 나머지 포위 수단을 지금 서서히 진행 시키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어. 그게 링월드야, 알기나 해?’

‘링월드가 왜?’

‘얼마 전에 크레딧 카드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유명 크레딧 카드에 종잇장 처럼 얇은 보안 칩이 장착 되었다는 말 들어봤지?’

‘응, 그런데?’

‘그 뿐만이 아니야, 일부 정유 회사에서는 카드도 필요 없이 막대기만 주유기에 대면 저절로 지불이 이루어지는 매직 스틱도 나왔구, 그리고, 지난 해에는 이런 것도 필요 없이, 지갑을 가지고 다닐 필요 없다는 감언이설을 내세워 사람의 피부조직에 칩을 심어, 크레딧 결재, 신분확인 까지 도맡아 하게 될 거라며 미국의 어느 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이런 이야기의 맥락에서 무언가 느껴지질 않아?’

나는 말을 잊고 있었다.

‘링월드는 그런 맥락의 끝에 서서 사람들을 불러 다가 불법적으로 돈과 섹스를 미끼 삼아 인간실험을 하는 못된 무리들의 하수인이라는 것이지. 내가 조사한 바로는 그들이 실험 한 것은 칩을 심는 것이 아니라 주파수의 특이 변조를 통해 사람의 피부에는 통증을 주지않고 그 밑에 버티고 있는 뼈에 바코드를 새겨넣는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는 소문이야. 그것도 이마에…’

나는 정신이 아뜩해 졌다. 나는 그들의 그 안구검사 같던 시술 후에 분필 같은 막대기가 아니고서는 열리질 않던 보안문이 자동으로 척척 열리던 것 하며, 편의점의 바코드 리더기가 지 멋대로 오동작을 하던 것이 모두 기억 났다.

‘그럼, 적그리스도가 그런 모든 나쁜 짓을 위해 거대 조직을 움직이고 있다는 거야?’

‘우리들의 생각도 이제는 바뀌어야 해. 적그리스도가 어떤 인물처럼 나타날 거라고 믿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야. 우리가 갖고 있는 심정적인 이중성과 문명의 이기가 바로 적그리스도 인 거야. 우리가 경계심을 늦추고, 언제나 우리의 주위에 가까이 두면서 결코 손을 뗄래야 뗄 수 없게 만드는, 그 문명의 이기 말이야. 그게 적그리스도일 가능성이 있어. 성경에서는 어느 한 날 한시에 적그리스도가 재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악마는 그 구절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천천히 우리들의 숨통을 문명의 이기로 조여 오면서도 자신은 손도 까딱하질 않는 것처럼 뒤에 버티고 서서, 승리의 쾌재를 부르고 있는 거지. 언제든지 거짓말 할 수 있고, 불륜인줄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인간의 타락 심리, 이런 모든 이중성을 하나님의 반대 세력들은 전 세계를 통해 너무도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누가 누구로부터 연유되었는지 알아차릴 수 없도록 교묘히 이용하고 있는 것이야. 적그리스도가 나타납네 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딴 곳으로 쏠리게 하고서, 인간의 문명을 편리하게 하고, 보다 발전적으로 만든다는 문명의 이기를 미끼 삼아 사람들의 눈을 가린 후에, 그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서 인간을 파멸로 이끌지 않은 것은 없어. 자동차가 그랬고, 컴퓨터가 그래 왔고, 이제 크레딧 카드마저 그 달콤한 소비의 유혹에 빠져, 책임지지도 못할 빚더미로 종국에 가서는 사람을 자살이나 파멸로 끌고 가는 걸 보면 알 수 있어. 우리는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생활이라는 악마의 독주를 받아 마시면서 스스로 죽어가는 것도 모른 채, 악마는, 적그리스도는 딴 곳에서 우리를 파멸시킬 거라고 부르짖고 있는 거야. 오빠, 만일 오빠가 링월드에 일원이 되었다면 그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대로 악마의 인침을 받은 것인데, 우리 한번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자.’

나는 효은이가 말한 그 연구소는 다름 아닌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그런 병원 이었다. 특수 주파수를 이용해서 피부조직 밑의 골밀도 및 골 표면조직의 이상징후를 알아내는 전문 병원 이었는데, 그 병원의 원장님이 연구회의 회원이었기에 나는 공짜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그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서, 아는 정형외과 의사 분을 소개 받아 이마의 표피를 들어내고, 앞 이마를 갈아내는 수술을 받고야 말았다. 나는 그 날 부로, 아깝기는 했지만 링월드 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계약서의 내용대로 밖으로 발설도 못하고,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살아 오지만, 이제는 효은이를 따라 교회에도 열심히 나가고, 서로가 장래를 약속하며, 결혼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내 방에 걸려 있는 수술전 내 두개골 투영사진만 보면 소름이 끼치는 것을 어쩌진 못한다. 그 사진에는 하얗게 반전되어 그 무늬도 선명한 바코드 무늬가 내 이마 정면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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