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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녀를 알게된건 직장을 짤린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막상 매일 쉬려니 적응이 안됐던 나는 그날도 일찍 일어나 동네를 배회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도 이런곳이 있었구나.. 아항 이 길로 이렇게 가면 여기가 나오는 구나.'

내가 독립한지 벌써 3년이 되도록 모르던 동네를 돌아본다는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사방 3키로 안쪽까지 걸어다니기로 했다.

그날도 이곳 저곳 거리 풍물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골목길로 가다가 번화한 대로변이 나와 가보니 봉천역 근처 대로변쪽이었다.

시장이 가까워서인지 폐업할인을 알리는 가게들, 노점상 등 거리가 좀 복잡했다.

그 많은 거리 인파 중에 갑자기 내 눈에 띄는 여자가 한명 맞은편 쪽에서 걸어오다 내 옆을 지나갔다.

20대 후반쯤 보이는데 지나치자 마자 골목으로 들어간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물끄러미 그녀의 뒤태를 바라보았다.

그많은 사람중에도 그녀의 뒷모습은 내 눈에 여전히 빛이 났다.

지나칠때 본 그녀의 모습은 나시를 입고 자켓을 걸치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몸매며 얼굴에서 풍기는 청아한 멋이 내 눈엔 남다르게 다가왔다.

키는 166 정도 되보였고 생머리가 어깨밑까지 길었다.

두팔로 자기 몸을 감싼채 걸었는데 가슴팍 아래 많이 내려온 나시를 입고있어서

큰 젖가슴의 윤곽이 얼핏보아도 보였다.

마치 브라자를 안한듯 출렁거리는 큰 젖가슴이 민망한지 두 팔로 가슴을 가린채 걷는듯이 보였다.

뚜렷이 목적지가 있지 않던 나였기에 멍하니 그녀가 사라지는 골목을 계속 응시하던 내 머리속에

순간 한 생각이 자리잡았다.

'사라져서 안보이기 전에 빨리 그녀를 따라가서 차나 한잔 하자고 말을 걸어볼까.'

난 그녀를 100미터정도 간격을 둔채 인파속에서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내 눈엔 잠시 본 그녀의 눈이...걸어가는 뒷모습의 어깨가

마치 사연이 있는듯, 고민이 있는듯, 슬픔이 있는듯 보였다.

그래서 순간이나마 내게 더 그녀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는듯 보였다.

그녀는 복잡한 시장거리를 지나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없으면 내가 그녀를 따라간다는 사실을 눈치챌수도 있다 싶은 생각이 들자 조심스러워졌다.

다행히 그녀는 한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여전히 팔장을 낀채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한 연립주택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그곳은 사방이 4층 연립으로 꽉찬 주택가였다.

'앗..내가 말이라도 붙여봐야 하는데 벌써 끝나면 어떻게..'

난 생각도 없이 재빨리 그녀를 따라잡으러 뛰어갔다.

할말도 없었는데

"저기요"

하고 외쳤다.

어디서 내게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도 나도 모를 정도였다.

그녀는 처음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난 다시 연립 출입구에 서서 그녀를 올려다 보며

"저..아가씨..."

하고 다시 불렀다.

내 생각에도 난 미친놈같았다.

거긴 나와 그녀 외엔 없는 연립 안쪽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놀라는 듯 소리나는 출입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갑자기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한데요..실은...

아가씨가 너무 예쁘셔서 무작정 이렇게 따라왔습니다.

들어가시지 말고 잠깐 차라도 하면서 얘기라도 나눌수 없을까요?"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녀의 대답..

"전 아가씨 아니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맑았지만 힘이 없었다. 처음 본 나에 대한 경계심도 그리 없어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대답했다.

그것도 미친놈 취급도 아니고 경계심도 없이...

'아..다행이다.'

내가 그녀의 목소릴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 동안

그녀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아...그냥 가면 안되는데...

"저기...그래도 저기...그냥 차 한잔..."

그녀는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냥 올라갔다.

내 목소린 다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이윽고 현관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철커덕 소리가 나더니

그 연립안 계단엔 다시 나와 정적만 남았다.

그래도 내가 그녀에게 말을 붙이다니...참 신기하기만 했다.

그녀가 사라진 곳은 2층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봤지만 2집중 어느집인지 알수 없었다.

'집안엔 누가 있을까. 그녀 혼자면 초인종을 눌러볼까.'

별 생각이 다 났지만 이러다 스토커로 신고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까 그녀 눈빛을 보면 신고를 하거나 의심을 할듯 보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차라도 같이 한잔 하고싶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난 초인종을 눌러보고 싶었다.

그러다 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들어갔는지 모르니 두 집 현관에 다 메모를 남겨두고 가자.'

난 주머지를 뒤젹여서 어제 우유를 살때 받았던 영수증 쪼가리를 찾아냈다.

난 회사다닐때도 볼펜을 항상 지니는 습관이 있었기에,

영수증을 둘로 접어 잘 자른후 메모를 썼다.

"제 연락처입니다. 최현우입니다. 연락한번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썼다.

메모를 두집 모두 현관 밑 틈으로 밀어넣었다.

마지막 집 문밑에 쭈그리고 앉아 메모를 넣고 있는데

앗...처음 메모를 넣었던 집 현관이 삐걱 열리는 것이 아닌가.

앗...현관이 열리고 그녀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저...실은 메모좀 남기고 있었습니다."

"봤는데요..남의 집 앞에와서 머하세요...가세요.."

그녀는 다시 현관을 걸어잠그고 들어갔다.

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맘에 잠에 서있다가

그녀가 볼새라 연립을 나와 냅다 달렸다.

'아..이게 먼 챙피야..스토커로 신고 안된거만도 다행이네..ㅋㅋ'

그러나 얼굴을 마주했던 그녀는 여전히 맑은 눈에 청아한 얼굴 그대로였다.

내 발걸음은 다시 약해졌다.

'다시 가보자...가서 오늘 끝장을 내자.

그녀가 어디 사는지 집도 확실히 알았으니...다시 가서 말을 걸어보자'

다시 그녀의 집 앞에 섰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초인종을 눌렀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인기척이 없다. 조금 더 지나자

"누구세요"

소리가 현관쪽으로 가까워지면서 들린다.

"저..."

운은 뗬는데 다음 할말이 없다. 그래도...

"할말이 있어서요"

현관문이 열렸다. 그러나 안전장치를 풀지 않은채 빼끔히 열렸다.

"누구세요.."

"좀 전에 저입니다. 그냥 가기 아쉬워서 이렇게...죄송해요..."

"조금 기다리세요"

실로 기적같은 일이다..조금 기다리라니...

현관문이 다시 닫혔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기다리라니..스토커가 문앞에 와있다고 신고하려는 것인가...시간이 흐를수록 갑자기 불안해졌다.

좀 있더니 아까 그차림을 한 그녀가 문을 열었다.

'앗...이게 왠 떡이냐.'

가슴이 막 쿵쾅거렸다.

마치 그녀를 다 먹게 생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궁금한 큰 젖을 꺼내서 신나게 빨고...이 여자 보지속에 어서 빨리 담구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현관안쪽으로 들어섰다.

"저...커피라도 한잔 주시면 행복하게 생각하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너무 좋군요"

그녀는 현관 안쪽에 서서 말했다.

"이렇게 남의 집 앞에까지 따라오면 안되시죠.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구요"

"정말 죄송해요...헤헤...이렇게 들어왔는데 커피라도 한잔 주세요"

"그럼 10분만 있다 가세요..."

난 그녀의 뒤를 쫒은 스토커에서 졸지에 그녀의 집 거실에 앉은 손님이 되었다.

'이게 왠 횅재냐.'

내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왕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직 미혼이고..회사에서 1주일전에 짤려서 동네 오고가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는 둥의 얘기를 주절거렸다. 독립해서 혼자살고 있다는것도 말했다.

그녀는 남편도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도 하나 있는 주부였다.

보이기엔 2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30대 중반이었고

나이차이가 많은 남편과 일찍 연애해서, 한마디로, 낚여서 결혼한지 9년째 접어들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미영이었다.

난 그녀에게 행복한 가정을 파탄낼 생각도 없고,

나도 앞날이 구만리 같은 사람으로서

늦긴 했지만 결혼을 해야 하고, 재 취업도 해야 하므로

폐를 끼치게 되는 일은 없을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그러나 한달만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진지하게 대화에 응해줬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이렇게 잘 대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제가 저녁살테니 이따 나오세요"

"어린 애가 있어서요...학원에 가긴 하지만 일찍 와요..."

"그럼 내일 낮에도 전 시간이 되요"

"..."

"나쁜 뜻은 없으니 한번만 만나주세요...오늘 일에 대해 사죄와 감사의 뜻도 전하고 싶어요..."

"내일 연락드릴께요"

"네 고맙습니다."

그날 난 그녀의 집안에서 손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남편과 애들이 같이 거하는 신성한 집의 이미지를 헤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난 그녀를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다음날, 난 꽃집에서 꽃을 샀고, 카드를 샀다.

그리고 거리 옷가게에 들러 스카프를 하나 샀다.

카드엔 "제 마음을 설레게 한 당신과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는 행운을 주세요" 라고 적었다.

하루종일 그녀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 난 다시 꽃집에 들러 꽃을 샀다.

나머지 어제 산 선물을 들고 커피숍에 들어갔다.

오전 11시였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도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어제 전화 기다렸어요..그래서 궁금해서 전화 드렸어요"

"미안해요..어젠 다른 일이 있었어요"

"네..지금 여기 봉천역 2번출구 약국옆에 커피숍에 있어요..잠시 나오실수 있으세요?"

"그래요...조금 기다리세요"

그녀는 순순히 내 전화에 응해줬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뒤에 '발신번호표시금지'로 전화가 울렸다.

그녀였다.

"신림역에 백화점 안에서 뵈어요"

"네...알겠습니다."

그녀의 말은 간단했지만 많은 말을 머금고 있다는걸 난 알았다.

나는 다시 신림역으로 이동했다.

마치 첩보작전이라도 하듯 우린 전화를 주고받은 끝에 8층 영화관쪽에서 이틀만에 만났다.

그녀를 다시 만난 내 기쁨이란 이루 형용하기 힘들었다.

난 준비해간 선물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

"저 이건 제 마음의 표시예요..."

"이런걸 다 주세요.."

"스카프 하나 샀어요..마음에 드실지 모르지만...맘에 안드시면 바꾸면 되어요"

"네 감사해요..."

"점심시간이군요...점심먹으로 가시죠"

그녀와 난 밑에 퓨전 일식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나오면서 난 그녀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다.

그녀는 뿌리치지 않았다.

"우리 낮이긴 하지만 저녁에 시간이 안되시니 노래방이라도 가실래요?"

"이시간에 문연데가 있겠어요?"

"찾아보면 있을거예요"

"낮부터 노래방에 가요?"

"그럼...우리....저...."

"말씀못하실 이유라도 있으세요?"

"실은 노래를 부르고싶다기보다 미영씨랑 둘만 같이 있고 싶었어요...."

우린 손을 잡은채 거리를 걸었다.

백화점옆은 모텔이 밀집된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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