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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한 날씨, 잿빛 하늘이며 곧 쏟아내릴 것 같은 빗물을 가득 머금은 검은 구름이 하늘



에 힘겹게 떠있다. 막히는 도로와 여기저기 귀를 괴롭히는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나는 미간



을 찌푸리지만 그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알 리가 없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



지...



나는 건물마다 한 두 개씩 널려있는 병원을 찾아 오늘도 그 앞을 서성인다.



‘아~ 저 여잔 키가 너무 작아~... 그 옆은 너무 늙었어!’



대부분 개인병원엔 두 명 내지 세 명의 간호사들이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찾는 그 



이미지의 여자는 여전히 찾질 못하고 있었다. 



‘씨발... 아무나 작업해버려? 좆도......’



지금껏 2개구를 이잡듯 뒤졌다. 하지만 내가 찾는 여자는 없었다. 아니, 고객이 찾는 여자는



없었다. 고객과의 약속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기가 가장 힘겨울 때이다.



사실 두 명의 여자를 찾긴 했었다. 



그러나 그저 겉모습일 뿐 속 내용은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만한 것이 되질 못했다.



내가 작업을 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거짓이나 눈



속임은 나 스스로가 용납하지 못했다.



내가 작업을 해서 먹고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방금 전 돛대를 피워내고 남은 것은 낡은



라이터뿐이었다. 



“던힐 라이트 한 갑이요”



바로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러 담배를 사는데 종업원이 내가 찾는 여자의 외관을 하고 있



었다. 하지만 직업이 일치하지 못하는 것에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아깝다는 생각뿐이다.



‘젠장 찾으려고 하면 안 나타나고... 오늘도 허탕인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편의점 앞의 의자에 앉아 깊은 한숨을 쏟아낸다. 



여전히 체증을 겪고 있는 강남의 거리는 나의 마음과도 같았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벌써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화가님이 젊으시네요?”



고객은 40대로 보이는 중년남성이었다. 앞머리부터 정수리까지 빛나고 있는 머리와 좋은 풍



채를 봐서는 중견기업이상의 간부급이거나 경영자로 보였다.



“젊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례지만 나이를 물어도 될 지...”



언제나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생각보다 젊은 외모 때문인지 나이를 묻곤 했다.



“하하하... 원래 그림쟁이나 예술가한테 나이를 묻는 건 실례입니다.”



“아!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올 해 서른셋 됩니다”



“하하하... 젊은 혈기에 좋은 일 하십니다! 하하하”



다소 건방지다고 생각할 만한 대답을 고객은 호탕하게 웃어넘겼다. 



사실 나 같으면 어린놈이 꼴값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 이런저런 얘기를 섞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불편한 만남을 어서 끝내고 자리



를 뜨고 싶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신의 성관념에 대해 이해를 시키려



는 사람들이 많았다. 앞에 있는 고객도 다르지 않았다.



“뭐.. 내가 꼭 이런 걸 좋아해서 그러는 건 아니지만....”



“고객님! 저는 저의 고객님들의 성적 취향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



고 저로 인해 성적이건 마음의 안정이건 고객님들의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



족합니다. 그러니 창피해하거나 부끄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주저리 말이 길어 길 것 같은 고객의 말을 잘라 맺음을 지어 주었다.



“젊은 친구가 호탕하기까지 하구만...”



“걱정 마십시오. 저는 물론이고 고객님께서도 지금의 작품에 대한 것은 비밀로 해주셔야 하



거든요... 판권자체에 대한 소유권도 물론 고객님 것이 되니 그림에 관한 것은 걱정하실 필



요는 없습니다.“



고객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오면서 자신의 변태스러움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는지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는 듯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오?”



“음... 최대한 고객님께 맞춰드립니다. 외모, 직업, 때에 따라서는 원하시는 분을 꼬집어 말



씀하셔도 작업가능하고요... 단 모델에 대한 포즈나 표정,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결정되



어야 하는 것은 제가 원하는 구도로 갑니다.“



조금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나의 뜻을 밝혔다. 화가라는 자존심을 최소한 지켜내기 위함이



었다. 간혹 포즈나 표정까지 요구를 하는 고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긍을 했고 앞에 앉은 



중년남성도 기꺼이 수락했다.



“간호사로 해주시오! 청순하면서도 섹시미를 가지고 있는 미인형에 C컵정도 되는 무식하지 



않은 풍만한 가슴이면 좋겠고 엉덩이가 좀 컸으면 하오. 피부는 좀 흰 편이면 좋겠고...“



“사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에 작업을 하기가 좀 힘듭니다. 물론 불가능



한건 아니지만요... 고객님 이메일 주소 하나만 적어주십시오... 모델 찾으면 사진을 찍어 보



내드리고 오케이 하시면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그가 말한 여성상은 너무도 추상적이었다. 그저 글래머에 피부가 흰 예쁜 간호사라고 말하



는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예쁜데다 가슴까지 큰, 그것도 간호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 착수금은...”



“모델료, 계약금, 활동비까지 해서 500만원 주시고 작업 완료후에 잔금 치러주시면 됩니다”



“음...”



“비싸다고 생각 드십니까?”



“뭐.. 비싸다기보다는...”



“사실, 그런 야한 그림.. 더 싼 값에 사실수도 있죠... 하지만 고객님에겐 생명력이 없는 그



림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도.. 천 만원이 훌적 넘는 돈이면... 너무 비싼 것 같은데~”



“음... 그런가요? 그럼 저는 이만 일어서 보겠습니다. 저의 작품을 그렇게 싸구려 취급하시



는 분과는 더 이상 작품에 관해 얘기를 하고 싶지 않네요~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기분이 나빴다. 간혹 그림 값에 대해 흥정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엔 모델료며 나의 생각을 줄줄이 늘어놓고 이해해주길 바랐지만 그럴 때 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씨발놈.. 차라리 안 그리고 만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두 번 생각 할 것도 없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화가도 아니었지만 내 그림을 놓고 흥정을 할 정도로 배가 고프진 않았



고 그 정도로 예술가의 혼이 썩어 빠지진 않았다.



남들은 나를 보고 돈을 밝히는 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나름대로 예술혼을 그 그림들에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미안하오~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소... 진심으로 사과 하겠소”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번 계약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기분 나쁜 것 이해하오... 그러니 재고를 부탁하오.”



중년남성은 나의 손을 붙잡으며 사과를 표했다. 하지만 그의 사과가 나의 기분을 더욱 나쁘



게 만들었다.



“제가 일개 포르노물을 그리는 사람으로 보이셨나보군요. 그리고 제가 그린 그림을 그저 그



런 그림으로 보신거구요...“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무식한 놈의 실수를 한 번 봐주오~”



대부분 욕을 하며 나를 무시했다. 야한 그림이나 그리는 주제에 콧대가 세다며...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진심으로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모질게



대할 수 없었고 나는 다시 엉덩이를 소파에 붙였다.



“그럼 여자 분의 성기는 가려드릴까요? 아니면....”



“그건 화백님께서 원하는대로 하시오~”



“그러지요... 그럼 어쩔 수 없지만 나중을 위해 계약서를 쓰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문득 잠시 쉬는 사이 고객과의 계약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델을 구하는 일이



이토록 힘겨울 줄은 몰랐었다.



담배꽁초를 튕겨내고 다시 한숨을 크게 내뿜었다. 대부분 한 달 정도 걸리는 작업이 3주동



안 모델도 찾지 못하고 있음에 나조차도 조급함이 찾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일어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가로 보이는 많은 병원들이 보였지만 선뜻 감이 오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시일이 다가옴



에 따라 나는 다시 발품을 팔 수 밖에 없었다.



역시나 헛걸음의 연속이었다. 얼굴이 괜찮다 싶으면 가슴이 작고 가슴이 크다 싶으면 얼굴



이 죽사발이었다. 그런대로 얼굴과 몸매가 된다 싶으면 나이가 많아 보이거나 몸의 비율이



맞지 않아 작품성이 뒤떨어질 만한 여자들뿐이었다.



‘아~ 대한민국 간호사의 퀄리티가 이리도 떨어졌었나?’



터져 나오는 한숨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미 어둠의 그늘이 온 세상을 덮고 병원들



의 실내등이 꺼져나갔다. 



성형외과라 해서 간호사들이 예쁘진 않았고 치과라 해서 웃는 모습이 아름답지는 않았다.



터덜터덜 발걸음을 다시 옮겨 집으로 향하는 동안도 나의 아쉬움은 계속 이어졌다.



다시 해가 밝고 다음날이 되어 다시 집을 나섰다. 



집이자 작업실... 형광등의 불을 내리면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가득한 그 곳을 등



지고 다시 간호사를 찾아 나섰다.



‘강남이라고 뭐 볼 것도 없었어... 씨발 오늘은 어디로 가나~’



캔커피 하나를 들고 담배를 피워내고 있을 때였다.



출렁출렁...



나의 눈에 띈 거대한 두 개의 덩어리를 덜렁이며 어딘가 바쁘게 뛰어가는 백의의 천사.



갈색의 웨이브진 머릿결과 흰 피부, 잘록하진 않지만 두껍지 않은 허릿통 아래 큼지막하게 



위치한 탱탱한 엉덩이.. 이미 그 것 만으로도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주기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로 그녀를 찍기 시작했다.



셔터소리와 함께 메모리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그녀,



165cm 정도의 적당한 키와 섹시미가 풍기는 날렵한 눈매, 도톰한 입술이 인상적인 간호사



는 삼각 김밥을 사들고 다시 길 건너편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이미 신호가 바뀌어 그녀를 놓칠 뻔 했지만 길 반대편에 위치한 ‘박소아과’로 들어가는 흔



적을 잡아낸 나는 바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동네 소아과에 저런 천사가 있을 줄이야~’



한동네에 살면서도 한 번 정도는 마주칠 법한데 처음 보는 여자였다.



바로 메모리에 담긴 사진들을 추려 이메일을 보낸 후 전화통을 붙잡았다. 안 그래도 며칠전



부터 작업현황에 대해 의심을 품던 ‘황 이사‘였다.



[네.. 황중보입니다]



[황 이사님? 저 이 화백입니다.]



[어..어.. 이 화백님.. 어떻게 좋은 소식 좀 있는 건가요?]



나의 존재를 밝히자마자 물어오는 것은 모델의 선택 유무였다. 



[예.. 아마 마음에 드실 것 같습니다.. 메일 확인해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호탕하게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끊은 황 이사는 10여분 정도 지난 후 바로 연락을 해 왔다.



목소리부터가 잔뜩 기대에 부푼 목소리였다.



[이 화백님...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그 여성분 100% 섭외는 가능한가요?]



[노력 해봐야죠.. 지금까지 성공률은 70%정도 됩니다.]



[부탁 좀 하겠소... 오늘 밤부터 그 여자가 꿈에서도 나올 것 같구려~ 허허허]



[그럼.. 또 연락드리죠~]



가장 힘든 모델 섭외가 남아있었다. 



이일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다. 



고객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모델선별부터, 모델의 섭외.. 그 후에도 알몸을 드러내게 해야



했다. 더구나 성기의 노출은 왠만한 노력이 아니고선 성공확률이 높지 않을 정도였다.



‘자~ 이제... 먼저 만나서 나를 알려야지....’



일의 성공여부는 솔직함이었다. 괜히 돈으로 사람을 유혹하거나 속이려들면 내가 가늠한 것



보다 훨씬 단단한 벽이 쳐지기 마련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번의, 아니 수많은 실패를



통해 깨달은 진리였다.



누구나 편견이 있듯이 소아과에 근무를 하는 것 자체부터 나를 겁먹게 만들었다. 소아과라



는 어감이 주는 이미지는 그녀마저 맑고 순수한 여자로 착각하게 만들은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직업과는 별개로 성적인, 게다가 캔버스의 한 주인공이 되고 싶은 여자의 마



음을 잘 이용해야했다.



거칠게 길었던 수염까지 말끔하게 깎아내고 잘 바르지도 않는 젤까지 쳐바른 뒤 최대한 깔



끔한 복장을 하고 그녀가 있는 ‘박 소아과’의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섭외작업을 할 때는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기 때문에 심호흡을 몇 차례나 한 뒤 



나를 추슬렀다.



운이 좋게도 어제까지 흐리던 날씨가 화창하게 개어있어 나를 돕는 듯 했다. 날씨도 여자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어서오세요~”



웃으며 반겨줄 것 같던 백의의 천사는 어디론가 숨어있었고 애가 둘 정도 딸린 것 같은 중



년으로 보이는 간호사가 나와 눈을 맞추려 애를 쓰고 있었다.



‘아놔.... 이름이라도 알아내고 오는건데....’



어떻게 왔냐는 물음에 허둥대던 나는 주사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20대 중반 



정도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고 하얀 피부에 엷은 피부막을 자랑하는 그녀의 육중한 가슴



으로 새와 같이 높은 시력을 자랑하는 눈동자를 맞췄다.



‘주.예.진’



얼굴과 이미지에 잘 맞는 예쁜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저기...”



안쪽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려는 순간 수간호사로 보이는 중년의 간호사가 손바닥을 내보



이며 말을 가로막았다.



“저희 지금 업무중이라... 대출 받을 사람 없거든요!”



황당했다. 기껏 멋을 내고 깔끔하게 차려입은 것이 대출영업인으로 보이지 않는 다는 사실



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물론 앞에 서있는 중년 간호사는 싸그리 



무시한 채 예진에게 말을 건넸다.



“저.. 예진씨? 저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명함을 건네자 중년의 간호사는 화가라는 말에 자신의 말이 조금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자리



를 피해 주었고 아이처럼 놀란 표정으로 명함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림으로, 나의 작품안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의 미모와 몸매였다.



“그런데.. 어쩐일로....”



“말씀드리기가 좀 쑥스럽긴 하지만 며칠 전부터 예진씨를 봐 왔습니다. 우연찮게 뵌 분이지



만 사실 가지고 계신 이미지가 너무 청순하고 맑아 제 그림 속에 담고 싶어 이렇게 찾아 왔



습니다.“



며칠 전이라는 말만 거짓일 뿐 마음의 진심을 전하려 노력했지만 탐탁찮은 반응이었다. 그



러나 돈을 떠나 꼭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아름다운 여성이었기에 물러설 수는 없었



다.



“저를 그리고 싶으시다구요?”



“네... 진심입니다.”



“에이... 농담이시죠? 저 같은 게 어떻게 화가님의 그림에...”



“저 같은 게 라뇨? 저 아닌 누구라도 예진씨를 보면 그리고 싶어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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