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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한 20년 전.......

당시 직장 상사가 타던 차를 거의 헐값에 물려주는 바람에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마이카대열에 동참하게 되었다.

당시 서울 외곽지역에 살고 있었던 나는

출근할 때면 장장 한 시간 반이나 되는 시간을 만원 버스 속에서 시달려야 했었는데

이게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직장은 여름, 겨울 가릴 것 없이 사시사철 반드시 양복을 입어야만 했기에

요즘처럼 에어컨이 들어오는 버스가 없던 시절의 여름에 출근버스에서 내리면

그야말로 옷이 땀에 흠뻑 젖어 아침부터 퀴퀴한 땀 냄새를 풍기며 회사에 출근해야 했다.

그랬던 나에게 이제 혼자 타고 다닐 수 있는 차가 생긴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구두를 밟혀서 인상쓸 필요도 없고 버스 안에서 떨어진 양복단추 좀 달아달라고

여직원에게 구차한 사정을 할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차를 몰고 출근하면서 버스가 올 때마다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얼마 전까지 그것이 내 모습이었음에도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였는지 몰랐다.

당시에는 카풀을 상당히 권장하던 시절이었고

나도 가끔씩 남이 태워주는 차를 얻어 타고 출근했던 경험이 있었지만 나는 한동안 혼자만 타고 다녔다.

운전이 서툴러서 혹 사고라도 나면 공연히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봐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운전이 익숙해진 뒤에야 나도 비로소 다른 사람을 내 차에 태울 수 있었다.

당시는 아침 출근길에 혼자 타고 가는 차를 보면 길에서 태워달라고 손을 드는 풍경이

매우 흔하던 시절이었고 나 자신도 아침에 늦는 날이면 그런 짓을 가끔씩 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 차를 얻어 타면 고마워서,

또 못 얻어 타서 회사에 늦으면 화가 나서 내가 늘 다짐하던 것이 있었다.

내가 차를 사면 절대 나 혼자 타고 다니지는 않겠다고!........

버스 정류장에 차를 대고 '서울 가실 분 타세요!....'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많을 때는 일곱 명도 태운 적이 있었다.

요즘에야 턱도 없는 일이지만 전에는 그런 만용도 부렸다.

그러다 사고라도 났으면 내가 무슨 수로 감당하려고 그랬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라도 내가 누리는 혜택의 일부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차 바닥은 늘 흙가루로 엉망이었고 비 오는 날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도 짜증보다는 내가 조금이나마 보람 있는 일을 한 흔적이라 생각하고

쉬는 날만 되면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씻고 닦고 광을 냈었다.

출근할 때만이 아니라 퇴근할 때에도 버스 정류장에 노인네가 있으면 꼭 태워드리려고 했다.

개중에는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고 거절하는 분도 있었지만

나는 한동안 그렇게 내가 다짐했던 일들을 실천했다.

그런 덕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 후로 매해 더 좋은 차로 바꿔타는 복도 받게 되었다.

내가 이런 얘기들을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어느 날 갑자기 별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 날,

계절로 따지면 지금 비슷한 때였을 것이다.

약간 쌀쌀하면서도 그렇다고 추워서 벌벌 떨 정도는 아니었으니

요즘과 같은 11월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퇴근하는 길이었다.

밖은 이미 캄캄한데 내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한적한 길가에서 내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면서 보니 애를 업고 있는 여자였다.

나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 여자 앞에 차를 세웠다.

조수석 창문을 내렸더니 여자가 얼른 차로 다가와서는

행선지를 말하며 차를 좀 태워달라고 했다.

그 여자가 말한 행선지는 우리 집이 있는 동네에서도 한 10분 이상을 더 가야하는 동네였다.

그때까지 나의 목적지를 지나서까지 모르는 사람을 태워다 준 적은 없었지만

도움을 청하는 상대가 애를 업고있는 여자였기 때문에 나는 선뜻 타라고 했다.

내가 앞으로 타라고 그랬는지 아니면 여자가 먼저 앞문을 열고 탔는지 기억이 없지만

여자는 뒷좌석 대신에 차의 앞자리에 올라탔다.

등에 업은 애 때문에 앞좌석에 엉거주춤하게 앉은 여자에게 나는 불편한 마음을 덜어주려는 생각에서

여자가 말했던 행선지를 다시 입에 담으며 그 동네에 급히 갈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그 곳이 자신이 사는 동네라고 말했다.

누구에게 받을 돈이 있어서 왔는데 돈은 못 받고 술만 한잔 얻어먹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자가 무슨 애까지 업고 이 시간에 술을 마시고 다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애는 자고 있는지 칭얼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조금 더 가자 여자가 빈속에 술을 마셨더니 취하는 것 같다는 소리를 했다.

그 소리에도 나는 별 대꾸를 하지 않았던 것 같고 그 뒤로 그 여자하고

무슨 얘기를 더 했는지 아니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도 없다.

차를 몰고 내가 사는 동네에 다다랐을 때였다.

근처에서는 제일 큰 수퍼마켓 앞에 이르자 여자가 갑자기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왜 그러냐니까 애 먹일 분유를 사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를 세워줬더니 여자가 내리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여자가 나보고 이제는 그만 가도 된다는 뜻으로 인사를 하는 것 같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분유를 사오라고 했더니 여자는 괜찮다며 날보고 그냥 가라고 했다.

차 문을 닫고 수퍼마켓을 향해 걸어가는 여자를 보며

나는 순간적으로 그냥 가버릴까 하다가 애를 업고 또 짐까지 들고

그 외진 동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여자를 생각하고는 차를 한쪽에 대고 여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여자가 수퍼마켓에서 나왔다.

그런데 분유를 사러간다던 여자는 빈손으로 수퍼마켓에서 나왔다.

내 차를 못 봤는지 다른 곳으로 가려는 그녀를 향해 크락션을 눌렀다.

그러자 그녀가 내 차를 발견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 내 차로 와서 앞문을 열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아직 안 가셨어요?....."

나는 그 여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에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물었다.

"분유 사러 가신다더니 왜 그냥 오세요?........

애기 먹이던 분유가 없어요?....."

".................................."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묻지를 않고 차를 출발했다.

그런데 차를 몰면서도 나는 계속 분유가 걱정이 되었다.

그 여자가 사는 동네에는 분유를 살만한 가게가 없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 다른 수펴에 들려볼까요?......"

"..........아니에요!.......그냥 가세요!...."

나는 여자가 나에게 미안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아니에요!....저는 괜찮으니까 들려볼 데 있으면 들리세요!......."

"아유! 괜찮아요!....."

"왜요?...........분유 안 사셔도 되요?...."

"......................."

그녀가 또 말이 없었다.

"저는 좀 돌아가도 되니까 다른 데 들려서 분유 사 가지고 가세요!....."

내가 계속 우겨대자 그녀가 주저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저기.......지금.....돈이 없어요!"

난 의외의 대답에 잠시 당황했다.

그렇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제가 돈 빌려드릴께요!......댁에 가서 저 주시면 되잖아요?!...."

그녀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약간은 답답한 표정으로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내뱉는 말에 나는 또 다시 당황했다.

".....집에 가도 돈이 없어요!...."

그녀가 빈손으로 수퍼를 나온 이유를 그저 평소에 애에게 먹이던 분유가 없어서 그런 것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

그녀의 말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그녀에게 이제까지 한 말들 때문에 너무도 민망했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다른 수퍼에 들려서 분유를 사 갖고 가라고 계속 주절대는

내 말을 듣고 있던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그 여자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나는 잠시 멍해서 계속 가던 길을 가다가 차를 오던 길로 되돌렸다.

"아저씨!...........왜?............."

여자가 당황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러는 여자의 얼굴을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분유 사 가지고 가셔야죠?!...."

"아니에요!....아저씨!....그냥 가세요!........."

난 뭐라고 더 이상 얘기할 말이 없어서 잠자코 앞만 바라보며 운전을 했다.

"아저씨!.....이러지 않으셔도 돼요!........아저씨!......"

내 돈으로 분유를 사주려는 나의 의도를 짐작했는지 그녀는 계속 민망해 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녀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기아변속기 위에 올려진 내 손을 잡기까지 했다.

나는 너무 민망해 하는 그녀의 모습이 또 민망해서 한마디를 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애 먹일 분유 있으세요?......"

"............................."

갑자기 그녀가 조용해졌다.

그 뒤로 우리는 수퍼마켓에 도착할 때까지 서로 침묵을 했다.

수퍼마켓 앞에 차를 대고 '그냥 집에만 데려다 주면 된다!'는 말만 계속 반복하는 그녀에게

내가 아는 분유 브랜드를 모두 읊어댄 끝에 그녀가 아이에게 먹이던 분유 브랜드를 겨우 알아냈다.

그녀에게 차에 있으라는 말을 남기고 수퍼에 들어가 돈이 되는 대로 분유 몇 통을 샀다.

다시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녀의 동네에 도착해서 그녀가 가르쳐주는 대로 집을 찾아가 보니

동네에서도 좀 떨어져 외진 구석에 있는 낡은 기와집이었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지 집이 온통 캄캄했다.

내가 뒷자리에 놓아두었던 분유통이 들은 비닐 봉지를 그녀에게 건네주자

그녀는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자기네 집에 들어가서 음료수라도 한잔 마시고 가라고 권했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을 했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계속 고집을 부렸다.

이렇게 도움을 받고 그냥 보내는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면서

차에서 내릴 생각도 않고 잠깐이라도 집에 들렸다 가라고 한사코 나를 붙들었다.

몇 번 더 사양하다가 너무 그러는 것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아 그러마고 했다.

그제야 그녀가 차에서 내려 대문도 없는 집 마당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마당에 불이 켜졌다.

나도 차를 한쪽에 세우고 어슬렁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마루 기둥에 달린 전등불의 도움을 받아 마루가 있는 곳에 이르자

방안에 불이 켜지고 여자가 방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구두를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 확실한 기억이 없지만

아마도 나는 그냥 집에 갈걸 괜히 차에서 내렸다는 후회를 했었음에 거의 틀림이 없었다.

그까짓 예의상 내주는 차 한잔 마시려고 구두를 벗는 일이나

또 차를 끓이는 동안 낯선 집 방안에 무료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일이나

번거로운 걸 지독히 싫어하는 내 평소의 성격대로라면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냥 아무 거나 음료수 한잔 주면 밖에서 얼른 마시고 가려는 생각이었을 것이고

방에까지 들어가게 될 줄 알았으면 절대 차에서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방에 들어서니 여자는 포대기에 싸서 업었던 아이를

요 위에 누이고 있는 중이었다.

방안은 썰렁하니 을씨년스러웠다.

여자가 방석대신 나에게 요를 꺼내주며 깔고 앉으라고 했다.

나는 또 사양을 하다가 결국 요를 깔고 앉았다.

방바닥에서는 차가운 냉기가 올라왔다.

그녀가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부엌으로 난 쪽문으로 나가더니

부엌에 불이 켜지고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안에 혼자 앉아서 요 위에 드러누워 있는 아기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방안을 휘둘러 봤다.

덜렁 장 하나에 앉은뱅이 화장대 하나........

그리고는 온갖 잡동사니가 방안 이곳 저곳에 쌓여 있었다.

벽에 박은 못에는 남자의 옷가지도 몇 개 걸려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이 집 남편은 어디 갔나 하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리고는 남편도 없고 여자만 혼자 있는 집에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멍청하니 앉아 있는데 여자가 부엌에서 쟁반 하나를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집에 대접할 게 없네요!......."

그녀가 들고 있는 쟁반 위에는 소주병이 하나 놓여있었다.

"안주도 없지만 술이나 한잔하세요!......."

그녀가 내 앞에 내려놓은 쟁반 위에는 소주병, 소주 잔 하나, 김치, 멸치 볶은 것,

그리고 쇠로 된 저분이 놓여있었다.

나는 순간 황당한 기분에 하지 않았으면 좋을 말을 했다.

"아유, 저 운전해야 되기 때문에 술은 못 마시고요......

그냥 커피나 한잔 주세요!..."

그런데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내가 괜한 말을 했다고 후회를 했다.

"......집에 커피가 떨어졌어요!......."

말을 마치더니 그녀는 다시 부엌으로 나갔다.

황당하기도 하고, 그녀의 마음에 또 상처를 준 거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나는 멀거니 쟁반을 내려다보다가 소주병을 들어 잔에다 술을 따랐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집안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 술을 공공연하게 마셔왔고 평소에 술 꽤나 즐겨하는 나이지만

그 때까지 한번도 혼자 술을 마셔본 일이 없는 나였다.

그렇지만 그 때는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그녀에게 너무 못 할 짓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일생에 그렇게 쓰디쓴 술은 처음이었다.

입에서 저절로 "크아!" 소리가 나왔다.

젓가락으로 멸치를 한 마리 집어서 입에 넣고 씹는데 속에서 괜한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지금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

돈이 없어서 아기 먹일 분유를 못 사고,

그 흔한 커피마저 없어서 손님에게 소주를 대접하는 그녀의 형편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그 때 나는 그녀가 내준 소주 한 병을 다 비우고 일어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빨리 마시고 그 자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연신 잔을 입에다 댔지만

술이 하도 써서 나는 계속 잔을 꺾어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겨우 소주 반병을 마셨을 때쯤 그녀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젖병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분유통을 뜯어 분유를 타더니 누워있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분유를 먹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젖병을 물더니 허겁지겁 빨아댔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한마디를 했다.

"애가 배가 많이 고팠나봐요?........"

"................오늘 하루종일 아무 것도 못 먹었어요!....."

"왜요?......"

"...............어저께 분유가 떨어졌어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다.

'씨발놈들!........'

나는 아마 분명 속으로 그런 욕을 했었을 것이다.

지금이나 그 때나 나는 뭔가 사회가 잘 못 돌아가는 것을 보면

정치하는 사람들, 정부, 공무원.......이런 대상들을 떠올리며 욕을 하는 버릇이 있다.

이어지는 그녀의 얘기는 기가 막혔다.

분유 값을 마련해 보려고 전에 남편이 일해주고 돈을 받지 못한 곳에 돈을 받으러 갔단다.

그 줄 돈이 있는 놈이 오후 내내 여자를 기다리게 하더니

돈이 없어서 오늘은 돈을 못 주겠다며 술이나 한잔하고 가라고 하더란다.

분유 살 돈이 없어서 그런다고 여자가 통사정을 했더니

그 놈이 여자보고 같이 술을 마시면 돈을 줄 수도 있다는 눈치를 보이기에

여자가 다급한 마음에 술을 몇 잔 받아 마셨단다.

그런데 자리에 술기운이 돌자 그 남자는 돈 줄 생각은 않고 자꾸 이상한 얘기를 해대고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여자를 같이 희롱하더란다.

여자가 돈 받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곳을 나왔는데

막상 돌아갈 버스비도 없어서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려다 내 차를 타게 됐다고 했다.

외상이라도 해 볼 생각에 수퍼에 들린 것이었는데

주인여자가 전에 외상 밀린 것도 안 갚았다며 외상을 안 주더란다.

정말 지금 생각해도 좆같은 세상에 좆같은 새끼들이다.

여자에게 남편은 어딜 갔는지 물어봤다.

남편은 지방에 일하러 갔다고 했다.

그녀가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나에게 설명을 해준 기억은 없는데

나는 지금도 그저 막연히 그녀의 남편이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하는 잡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녀와 그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새 젖병은 비었고 내가 마시던 소주병도 거의 바닥이 났다.

여자가 아이를 다시 요 위에 눕히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 소주 한 병을 더 들고 왔다.

분유도 없고 커피도 없는 집에 웬 소주는 이렇게 넘쳐나나 싶어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그녀 남편이 워낙 소주를 좋아해서 집에 있을 때면 소주를 짝으로 사다 놓고 먹는데

남편이 먹다가 남기고 간 소주라는 것이었다.

집에 다른 건 다 떨어져도 소주는 절대 안 떨어진다고 그녀가 씁쓰레하게 웃으며 말했다.

밝지는 않아도 처음으로 본 그녀의 웃는 모습이었다.

원래 한 병도 그녀의 성의를 생각해서 억지로 마신 것인데 또 그녀가 소주를 들고 오자 조금은 난처했다.

하지만 이미 더 이상 소주가 쓰지도 않고 기분도 조금은 알딸딸해진 탓에

나는 그녀의 성의를 거절하지 못 했다.

그 때만해도 음주단속이 거의 없었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그리 높지 않던 때라

나도 가끔 음주운전을 하고 다녔기에 나중 걱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먼저 마시던 병에 남은 술을 내가 마저 마시고 새 병의 술을 잔에 따르려다 말고

나는 나만 마시는 게 멋쩍어서 예의로 그녀에게 잔을 권했다.

"한잔 하실래요?"

"아이! 전 됐어요!....."

말은 그렇게 하는데 꼭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저만 마시려니까 좀 뭐해서.........한잔하세요!...."

".......그럼......조금만 주세요!......"

그녀에게 반잔쯤 따라 주었다.

여자는 고개를 돌리더니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아욱!....."

여자가 쓰다는 표정을 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그 때에야 안주 생각이 났는데 쟁반 위에는 내가 먹던 젓가락 뿐이라

나는 그 젓가락으로 멸치를 몇 개 집어서 그녀의 입을 향해 내밀었다.

"아니에요!....됐어요!......"

여자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독한 술 드셨는데 안주는 드셔야지요!........자! 이거 빨리 받으세요!"

맨 정신에는 죽었다 깨나도 못할 짓을 나는 술기운을 빌어 그녀에게 빨리 받아먹으라고 재촉을 했다.

그녀가 계속 사양을 하는데도 나는 그녀의 입 앞에다 안주를 들이대고 물러나지를 않았다.

결국 그녀가 견디다 못해 "아이! 나 이런 거 처음인데........" 하면서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젓가락 끝에 달린 멸치를 입 속에 넣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의 빌어먹을 병이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술이 오르기 시작한 것인지 내 속의 음심이 발동을 걸은 것인지 그녀가 갑자기 여자로 보였다.

내가 여자로 보인다는 것은 예뻐 보인다는 뜻이다.

예뻐 보인다는 것은 그 상대에게 성욕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매력적으로 보이더니

그녀의 발개진 얼굴, 나를 보고 쑥스럽게 웃는 모습이 예뻐 보이고

그 다음에는 그녀의 모든 것이 온통 예뻐 보였다.

나는 그 때까지 건성으로 보아온 그녀의 모습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애 엄마!......

예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 생기지도 않은 그냥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었다.

나이는 자신이 없지만 30대 초반쯤으로 보이고......

우중충한 셔츠에 몸뻬 같은 바지를 입은 모습이 영락없는 촌 아낙의 모습이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완전히 촌 여자의 느낌만도 아니었다.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의 이마가 볼록하니 보기 좋았다.

몸매는 그저 약간 통통한 편이고 아기가 있는 여자답게 젖가슴이 조금 불룩했다.

느끼해진 나의 눈초리를 눈치챘는지 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한마디를 했다.

"아이! 왜 자꾸 그렇게 쳐다보세요?........창피하게......."

나는 그 때부터 술을 반잔씩만 받아 마셨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똑같이 반잔씩을 따라주며 서로 잔을 주고받았다.

그녀가 술을 마시고 나면 내가 젓가락으로 그녀에게 안주를 집어 주었고

그녀도 더 이상 사양하지 않고 내가 주는 대로 덥석 덥석 받아먹었다.

"이상해요!......이렇게 남이 집어주는 거 받아먹으니까........"

그러면서 그녀가 처음으로 밝게 웃었다.

나는 그녀의 고향이 어딘지, 어떻게 결혼했는지를 물었다.

그녀는 고향이 충청도 어디라고 했고 중매로 결혼을 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또 별 생각 없이 물었다.

"남편이 잘 해줘요?......."

"잘 해주기는요?!...........그냥.............."

그녀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녀는 갑자기 목이 메이는지 큰기침을 서너 번 했다.

그러더니 금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조금 전 분유 값을 타내려고 외간 남자들 틈에서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들으며 술을 마시고

버스비가 없어서 모르는 사람의 차를 얻어 타기까지 하고,

애 먹일 분유를 외상으로 사러 갔다가 거절당해서 빈손으로 나온 그 가슴 아픈 얘기를

마치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얘기하던 그녀가 남편 얘기에 갑자기 울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는 또 나의 경솔함을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미안해요!....괜히 제가 쓸데없는 얘기를 꺼내서......."

내 말에 그녀의 입에서 "흐흐흑!...." 하고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울지 마세요!......미안해요!...."

우는 사람을 옆에서 달래본 사람은 다 안다.

이런 소리들이 울음을 멈추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울게 만든다는 사실을.......

그녀는 이제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엉겁결에 그녀의 두 손을 붙잡았다.

"울지 마세요!..........그만 우세요!...."

나의 영양가 없는 소리에 관계없이 그녀는 계속 울었다.

어느 순간 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고 그녀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안아 내 가슴에 기대게 했다.

그녀가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잠깐 힘을 쓰다가

그냥 내 가슴에 이마를 대고 펑펑 울어댔다.

나는 그런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 순간 어이없고 부끄럽게도 나의 성기는 있는 대로 발기가 되어있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안고 그녀의 등을 다독거리는 사이

그녀가 한바탕 울고 나더니 점차 울음소리가 수그러들어 갔다.

그러는 중에 나는 또 어이없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

그녀의 목을 껴안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춘 것이었다.

그녀는 반항하는 대신 갑자기 또 소리를 높이어 울기 시작했다.

이미 제 정신이 아닌 나는 우느라 벌어진 그녀의 입 속으로 내 혀를 밀어 넣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소주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그녀의 입안을 혀로 헤집고 다니다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눈물이 뒤범벅이 된 그녀의 입술은 짭짤했다.

그녀의 윗입술 아랫입술을 정신 없이 빨아대면서 그녀를 방바닥에 눕히고 상체로 그녀의 몸을 눌렀다.

그녀는 아무 반항도 없이 그저 울기만 했다.

나는 계속 그녀의 입술을 빨아대고 그녀는 계속 울고.........

얼마가 지나자 드디어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나는 한 발을 이미 그녀의 몸 위에 올려놓고 그녀를 꼭 껴안은 채 계속 입술을 빨았다.

"......이제......그만 하세요!........"

여자가 두 손으로 내 가슴을 밀쳐내려고 했다.

"이제 다 울었어요?...."

나는 마치 내가 아무 짓도 안한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다.

나는 양복바지에 손을 넣어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아직도 눈물이 흥건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려고 하자 그녀가 내 손수건을 뺏으려고 했다.

"가만히 있어요!.....내가 닦아줄게!......"

나는 눈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아 내려갔다.

그녀는 창피한지 자꾸 얼굴을 돌리려했지만 나도 지지 않고 쫓아다니며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마지막에는 그녀의 코에다 손수건을 대고 코를 풀라고 했다.

그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마지못해 두 번 킁킁하고 코를 푸는 시늉을 했다.

나는 손수건을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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