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백

나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나가서 밤 늦게 돌아왔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는 영미가 걱정이 되어서 잠이 깰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젯밤 일을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질투의 감정이 미움으로 바뀌어서 모른 척 그냥 나갔다. 그 감정은 하루 종일 이어져서 우울한 기분으로 보내고 늦게 들어온 것이었다.

영미는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내가 몇 차례 퉁명스럽게 말을 걸고 어젯밤 일을 물었지만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갈등을 느꼈다.

영미가 나한테 애교 있는 동생이지만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윽박질러서는 좀처럼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자상하게 달래고 농담을 해서 영미에게 이야기를 하게 유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감정도 많이 상해있어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서로 아껴주고 의지했던 믿음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고 무엇보다도 소중한 어떤 것을 잃은 상실감으로 마음속에서는 분노 같은 것이 이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미가 먼저 말을 걸어오기를 바라며 나도 싸늘한 태도로 영미를 대했다.

식사도 되도록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왔고 영미와의 접촉 시간을 줄였다. 그리고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영미의 기색을 살폈다.

원래 여자가 사랑에 빠지면 얼굴에 생기가 돌고 화사해지는 법이다. 말과 행동에서도 주변 사람을 속일 수 없는 법이다. 그런데 영미에게서는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커다란 고민이 있는 듯 말이 없고 침울해져 있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영미와 민교 사이가 좋지 않게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안심이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민교가 영미와 하룻밤 자고 속된 말로 차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또 한 번 분노하고 있었다. 민교를 찾아가서 따져보고 실컷 두들겨서 분풀이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영미에게서 자초지종을 먼저 들어야만 내 직성이 풀릴 것 같아서 참고 있었다.

그런 냉전의 시간이 며칠 계속되자 영미도 힘든 기색이 보였지만 나도 견디기 힘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먼저 말을 하려고 결심했다.

“영미야! 오늘은 오빠랑 이야기 좀 하자.”

내가 먼저 말을 꺼내자 영미가 고분고분 내 앞에 앉았다.

“그날 밤 일부터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야기 좀 해 봐라.”

“……”

“왜 그래? 네가 어려울 때일수록 나한테 상의해야지…… 나한테 못할 말이 뭐가 있니? ”

“오빠. 내가 좀 생각해 보고 나중에 이야기 하면 안 돼?”

풀이 죽어서 말하는 영미를 보며 측은한 마음에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잠시 더 시간을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녀가 나보다 더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로부터 또 2~3일이 지나고 영미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빠. 오늘 나랑 이야기 좀 해.”

“그래.”

영미가 그날 밤에 있었던 일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날 영미는 민교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포도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그리고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을 추었다.

그날도 민교는 영미에게 함께 자기를 요구했다.

그날 따라 영미도 마음이 조금 움직여서 못 이기는 척 응하게 되었다.

민교와 나이트클럽이 있는 그 호텔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생각이 바뀌어서 도저히 응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밤새 민교와 실랑이 하다가 통행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집으로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영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 속으로 크게 안도를 했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낸 영미가 대견했고 그 정도로 영미에게 배려해준 민교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궁금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민교와 계속 사귀면 될 텐데 그 정도 일 가지고 영미는 왜 그 동안 그렇게 침울해있었는가?

“그래. 잘 했다. 나중에 네가 진심으로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을 때 하면 돼……”

영미는 한참 말없이 나를 바라본 다음 어떤 결심을 한 듯 말했다.

“오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냐.”

“그럼 뭔데?”

또 다시 한참 동안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오빠 화 내지 말고 내 말 끝까지 들어야 해?”

“대체 뭔데 그래? 화 안 낼게 얘기해봐.”

“그리고 나도 자존심 버리고 이야기하는 거니까 오빠도 정말로 솔직하게 나와 이야기 하겠다고 약속해 줘.”

“그래 약속할게.”

영미는 처음부터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려는 듯 단단히 결심한 듯 했다.

먼저 내가 주제를 회피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단단히 치는 것이었다.

나는 영미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더 이상 피하지 말자고 결심을 하고 대답했다.

“그럼 오빠를 믿고 얘기할게. 만약 오빠가 약속 안 지키면 그 후에는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도 몰라.”

그 동안 나에게 애교나 부리고 어리광이나 부리던 영미가 아니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이야기 할 만큼 어떤 결심을 단단히 굳힌 듯 말투에서 단호함마저 보이는 것이었다. 그 동안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이야기가 어쩌면 나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평소 같으면 내가 농담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겠지만 나도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동조를 해 줬다.

“아까 하던 얘기부터 할게…… 나는 처음부터 민교씨를 사랑하지 않았어…… 그냥 사랑해보려고 했어……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안 돼…… 같이 잠을 자면 될까 싶어서 호텔에 까지 함께 갔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

나의 불길한 생각은 점점 짙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말했다.

“왜 억지로 좋아하려고 하니? 사랑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마음이 끌리는 대로 생기는 거지 억지로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냐.”

“맞아…… 후…… 그날 밤…… 얼마 전에 오빠가 술 마시고 온 날…… 생각 안 나?”

“생각 나지…… 들어온 데 까지는……”

나는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정말이야?”

“정말이야……”

내가 끝까지 모른 척하자 영미는 샐쭉해지는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정말 처음에도 모르고 두 번째도 생각이 안 난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그날도 무슨 일이 있었구나? 내가 너한테 너무 몹쓸 짓을 많이 하는 구나? 미안하다.”

“그럼 내가 술 취했을 때 일은 생각 나?”

“그럼 그 날은 당연히 생각 나지……”

“두 번째 오빠가 술 취해 온 날은 처음처럼 술 취한 것 같지 않았어…… 아는 줄 알았는데…… 좋아 그럼 내가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해 줄게.”

설마 영미가 자기 입으로 그날 일을 이야기 할 줄은 몰랐지만 영미는 비교적 사실대론 자기가 나한테 어떻게 옷을 벗기고 어디를 만졌는지 그리고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지 다 이야기 했다.

나는 그런 말을 스스로 나에게 이야기하는 영미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는데 영미가 다시 이야기를 했다.

“오빠가 기억을 하는지 못하는지 그것도 중요하지만 그건 모른다고 치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오빠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영미야…… 너……”

“내가 술 취했던 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다 알고 있었어. 나도 오빠처럼 술 취한 척 하면서…… 다 알고 있었단 말이야.”

“……”

“지난번 시골 원두막에서 오빠가 원한다면 오빠에게 나를 줄려고 했어. 며칠 전에도 나는 오빠가 나를 가지려고 하면 허락하려고 했어.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조금 섭섭하기는 했지만…… 어떤 여동생이 나이 들어서 오빠한테 발가벗은 몸을 보여주려고 하겠냐? 그런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

“내가 술 취한 척 한 날 오빠가 한 말을 듣고 나도 많이 생각해 봤어. 그래서 억지로 민교씨를 사귀고 좋아해보려고 노력도 해 봤어. 그래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해…… 그 사람도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어…… 이러면 오빠가 힘 든다는 것 알아. 하지만 지금도 오빠가 힘들어 한다는 것도 나는 안단 말이야. 오빠. 요즘 밤마다 나 때문에 힘들어 하잖아. 나도 힘들고……”

“……”

“오빠. 그렇지 않아?”

“그래. 조금…… 사실대로 이야기 할게. 나도 영미 너를 동생 이상으로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야. 그리고 네가 늦게 들어온 날 정말 많이 걱정하고…… 뭔지 커다란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서 허전했던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그것은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야. 한 순간의 욕망 때문에 너의 인생이 불행해질 수 있어.”

“오빠 말도 옳아. 오빠가 어련하겠어? 그런데 오빠도 알겠지만 나 그렇게 꼭 막힌 애 아니야. 내가 오빠하고 평생을 살겠어? 나도 나중에 시집 갈 거야. 그 전까지 나는 남자들 많이 사귈 거고 맘에 드는 남자하고는 많이 자볼 거야. 여자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없잖아? 결혼 한 후에 딴 생각하고 바람 피우는 것 보다는 결혼 전에 할 수 있는 것 다해볼 거야. 그리고 결혼 한 후에는 절대 한눈 안 팔고 남편에게만 충실할 거야.”

“그것도 한가지 방법이 되겠지만 너무 위험한 생각이야. 네 말대로 생각만으로 그쳐야 해…… 나는 내 동생이 난잡한 남자 관계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아.”

“내가 뭐 아무 남자하고나 다 잔데? 마음에 드는 남자하고만 그런 댔지…… 그리고…… 그러니까 오빠가 도와 달라는 거야. 나는 어렸을 적에도 오빠한테 시집가는 것이 꿈이었고 조금 커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얼마나 슬퍼했는지 몰라. 내가 기를 쓰고 공부해서 대학을 서울로 온 이유도 오빠하고 같이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어…… 오빠 곁에라도 있으려고…… 다행히 오빠하고 사이도 좋아지고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된 것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오빠가 내 첫사랑이야. 그리고 지금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야. 내 첫 남자는 오빠가 되어주기를 바래.”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왜? 남들 이목 때문에? 우리 둘만 비밀을 지키면 되잖아.”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우리 둘의 관계도 그것이 행동으로 되었을 때는 동생과 오빠 관계보다 더 안 좋은 상태가 될 것이 틀림없어. 나는 사랑하는 내 동생을 잃고 싶지 않아.”

“오빠~. 왜 꼭 그렇게만 생각 해? 왜 관계가 안 좋아지는데? 관계가 나빠지는 이유는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욕심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오빠나 나나 서로에게 독점하겠다는 욕심이 없다면 나빠질 것이 뭐가 있어? 오빠가 여자 친구 사귀는데 나는 질투 안 할 자신 있어.”

“나는 자신 없어…… 아무튼 안돼.”

영미는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했는지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나름대로 조목조목 반론을 제시했다. 그것 만으로도 그 동안 그녀가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짐작이 갔다.

나는 그 동안 쌓아왔던 오빠로서의 카리스마를 스스로 모두 포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영미를 잃었을 때 내가 느끼는 상실감이 너무 컸다는 사실과 영미가 아무 피해도 입지 않고 온전하게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합쳐져서 나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영미가 너무도 충격적인 고백을 나에게 한 것이 나를 기쁘게 하면서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없는 막연한 답변을 하며 얼버무렸다.

하지만 거기서 어물쩍 넘어가기에는 영미의 발언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고 반드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사건이었다.

방법은? 한 가지 방법은 영미의 요구 사항을 수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영미와 내가 따로 방을 얻어 독립하는 방법이다. 마지막 방법은 연장자로서 호되게 야단을 치고 다시는 그런 생각을 못하게 하면서 지금과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는 방법이다.

첫 번째 방법은 그렇게 돼서는 안 되지만 매우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은 나와 영미 사이가 예전과 같은 관계로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되기는 정말 싫었다.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나와 영미가 나눈 이야기는 이제는 없던 일로 할 수가 없다. 말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나는 영미에게 답변을 주어야 할 차례였다.

“내가 오빠에게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은 사실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야. 자존심도 버리고 이야기한 거야…… 오빠가 성의 없이 솔직한 대답을 하지 않고 오빠의 권위로 내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다면…… 나…… 죽어버리겠다는 생각까지 했었어……”

“네가 그 동안 얼마나 고민하고 괴로워했는지 알겠다. 쓸데없이 죽는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나도 시간을 갖고 좀 생각해보자. 그리고 우선 오늘 나눈 말로 인해서 너와 나 사이가 지금 보다 악화되지는 말자…… 나는 너를 사랑해. 동생으로서…… 여자로서도 물론 사랑하지만 더 소중한 것은 동생으로서야…… 아까 예기 했듯이 순간적인 욕구로 내 동생을 잃고 싶지 않아. 나중에 결론이 어떻게 나더라도……”

“오빠. 나도 오빠를 사랑해. 근데 나는 둘 다야. 오빠도 좀 솔직해져라. 왜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지? 그건 고정관념이야. 제발 좀 쓸데없는 도덕에 얽매여서 생각하지 마.”

“글쎄…… 알았어. 좀 생각해 보자. 너도 한 번 다시 생각해 봐.”

“나는 그 동안 수도 없이 많이 생각해 봤는데…… 오빠가 힘들 거라는 거 알아…… 사실 나도 꼭 당장 오빠하고 그러고 싶다는 것 아니고 언젠가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고…… 지금은 그럴 가능성만 확인해도 좋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만이라도 솔직하게 할 수 있다면…… 같은 이불을 쓰고 서로 만질 수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 그것도 안 될까?”

“글쎄…… 남자는…… 나는 어려울 것 같아……”

“오빠도 사실 바라는 것 아냐?”

영미는 평소와 달리 말하는 게 거침이 없었다.

나는 이미 영미에게 거의 설득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미의 제안은 내가 평소에 간절히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다만 윤리와 책임감 때문에 그러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걸 떠나서도 내가 영미에게 그런 제안을 하기에는 내게는 용기가 너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준비 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의 싸움이나 다름 없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결론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하루 외박으로 인해서 내가 겪었던 마음의 갈등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