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변 위에서
대로변 위에서
난 일을 생각해 보면... 언제나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길 위다.
사람들이 오가고, 나는 작게 느껴지는 번잡한 길이 생각난다.
모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오가고 있겠지. 물론 그때 나도 어떤 목적을 가지곤 있었다.
그 목적은 열린 자리에선 말하기 힘든 아주 사적인 것이지만...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그러나, 이게 누구나 공유하는
경험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들...
그렇다. 이렇게 말 줄임표가 많은 건 내가 많이 주저한다는 것이고, 주저한다는 건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불확실한 건 유동적이라는 것이고...
내 개인적인 삶은 그렇게 표류한 것 같다.
나도 희미한 내 개인사들, 좀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읽기에 따라 타인에게는 배설물로 느껴지겠지만 말이다.
그냥 나의 개인사를 쓰려한다. 분류로 본다면 경험담이 되겠지.
내가 사랑했던 또는 공적인 관계에서 진행된 경험담은 쓰지 않겠다.
그냥 내가 탐닉했던 그래서 나 아니면 아무도 기억 못 할 일만 쓰고 싶다.
섹스란 가르침이 필요없는 것 같다.
여기에 연관되는 모든 것은 그냥 알게되는 것이 분명하다. 나의 자위도 그렇게 자율학습으로 시작
되었다. 몸이 커가고 음모가 자라나고 자지가 커지고 뭔가 알 수는 없었지만 이걸 가지고 뭔가
해야한다는 안타까움이 커갔다.
난 매우 수줍은 아이였고 어울려 다니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할 만큼 숫기도 없었다.
그러니 혼자 배우는 수 밖에는...
자지를 만지고 비비고 그러다 사정을 했다. 그러면서 그냥 사정을 하는 것 보다는 뭔가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됬다. 누군가를 훔쳐보고 노출하고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배우게됐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여자를 떠 올리며 딸딸이를 치고 바나나물을 쏴대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그런 일 이후의 후회와 또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고통보다 힘든 욕정 때문에 힘든
그런 시간을 보내며 중고등 학생의 시간을 보냈다.
옷을 홀딱 벗고 집밖으로 나가서 딸딸이를 치고, 옷을 벗고 밖에 나가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물론 들킬 위기도 있었고, 그런 스릴이 더욱 그런 일들을 반복하게 하는
동인이 되었었다.
중학생 때 감기 몸살이 너무 심했다. 집에 누워있었다. 집은 동네 주변 산자락에 있었고
군데군데 나무가 심어진 야트막한 담장이 둘러쳐 있었다. 몸살은 심했지만 성욕은 펄펄 끓어 올랐다.
엄동설한에 옷을 벗고 집 뒤의 마당으로 나가 바나나대를 새웠다. 살을 에는 바람이 오히려 시원했다.
한참 딸을 잡는데 웬 눈길이 느껴졌다. 담장 너머 웬 아줌마가 보고 있었다.
난 집안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아줌마가 담장을 너머 집으로 왔다. 너무 무서웠다.
이불을 둘러싸고 있는데 아줌마가 밖으로 통한 부엌으로 들어왔다.
"학생, 아까 밖에 서 있었나?"
"네"
이 장면은 기억난다. 그리고 대화는 학교는 어디 다니냐. 자기 아들도 거기 다닌다. 등등
그리고 말없이 아줌마가 날 보던 그 눈초리는 기억난다. 아줌마는 뭐 야설에 등장하는 그런
색기 줄줄 흐르는 아줌마는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보기에 삶에 좀 찌들린 것 같은 그런 외양을 한
동네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객적은 몇 마디 질문과 아직도 기억에 남는 그런 눈빛을 남기고는
넘어왔던 담장 사이 나무로 사라졌다. 물론 야설처럼 둘이 엉겨붙어 헉헉거리는 그런 일은 없었다.
아주 한참 뒤... 내가 여자를 조금씩 알아가며 그 아줌마의 눈빛을 해석할 수 있었다.
그건 성욕과 호기심이었다.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여자의 눈빛을 난 여러군데서 본다.
그리고 그런 눈빛과 엮여있는 내 삶의 편린도 본다.
이렇게 저렇게 만난 여자들... 육욕과 돈과 정액과 분비물이 뒤섞여 있는 기억들.
한 줄로 세우면 좀 나아질까?
길 위, 내가 혼자 나선 길은 많은 경우 그런 혼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