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님 달님 이야기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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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님 달님 이야기 - 1부

정주임 0 429 1 0

햇님 달님 이야기 - 1부 

 

1. 신입생 영미

 

 

 

내가 여동생 영미와 자취를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 어느 해, 설이 막 지난 1월 말경이었다.

 

나는 그때 군대를 갓 제대하고 3학년에 복학을 앞두고 있었고, 영미는 이제 대학에 입학하여 꿈에 부푼 대학생활을 시작하려는 새내기였다. 학기의 시작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나는 복학 준비를 위해서, 영미는 서울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조금 빨리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고향에서 농부로서는 어느 정도 부농 축에 끼는 부모님이지만 두 명의 대학생을 뒷바라지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지라 변두리의 언덕배기에 허름한 단칸방을 얻어주시며 미안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당시에는 경제적인 여건상 남매가 한 방에서 자취하는 경우가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내심에 있는 불평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내게는 동생 잘 보살피라고 당부를 하시고, 영미에게는 오빠 밥 잘 챙겨주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시며 부모님께서는 내려가셨다.

 

앞으로 내 생활도 빠듯하고 바빠질 텐데 영미까지 딸려있는 생활을 해야 하고 또한 나만의 독립된 공간을 갖지 못하는 데 대한 내심 불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사는 것보다 외롭지는 않고 가사를 분담해서 편할 거라고 위안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던 영미는 그런대로 괜찮은 미대에 합격하여 새로 시작될 대학생활에 대한 꿈과 기대로 한껏 들떠 있었고 더구나 자신의 우상인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나와 영미는 나이 차이는 4살이지만 내가 학교를 1년 빨리 가는 바람에 학교는 5년 차이가 나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까지 집에서 다니고 대학을 서울로 진학했기 때문에 식구들과 떨어져 산 것이 군 생활까지 합쳐서 벌써 5년째였다. 그 5년 사이에 가족들을 전혀 안 만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평상시의 고정관념으로는 영미는 새까만 중학생 정도가 고작이었다.

 

내 기억 속의 영미는 빼어난 미인형의 얼굴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면이 있었고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귀여웠었다. 나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나를 많이 닮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내가 시골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는 편에 속했고 무엇보다 영미를 괴롭히는 아이들에게서 보호해준 것이 영미로서는 나를 우상으로 여기게 만든 요인인 것 같았다. 내가 식구들과 떨어져 생활한 후에도 어쩌다 집에 내려가면 영미는 내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말을 걸고 말을 했다. 결정적으로 그것을 안 것은 내가 영미의 일기장을 몰래 보고 서였다. 내 일기에 있는 구절이 그대로 영미의 일기에 있었고 내가 습작한 시도 그대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영미가 대학생이 되어 나타났을 때는 늘씬해진 키에 여성미가 물씬 풍겨지는 모습이어서 내 마음 속에서는 대견하기도 하고 뭔가 좀 믿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 며칠 같이 지내는 동안 나는 영미에 대한 그 동안의 나의 생각을 많이 바꿔야 했고 그것은 그대로 나의 불편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영미가 이제는 새까만 꼬맹이 중학생이 아닌 스무 살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키도 이미 170㎝에 가까웠고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몸매를 하고 있었다. 한 방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싫어도-싫은 것은 아니지만- 언뜻 보게 되는 몸매는 오빠인 내가 그녀를 의식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평소에 집 안에서 거의 메리야스와 팬티차림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다시피 했는데 그러한 습관을 고쳐야 하는 것도 불편이었다. 또한 친구들을 불러들인다든지 생리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문제에서도 불편이 있었다.

 

 

 

 

 

살림을 하는데 있어서 암묵적으로 역할분담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곳은 언덕배기 달동네였다. 당시에 난방과 취사용 연료로 연탄을 사용했는데 연탄을 날라온다든지 큰 힘이 필요한 것은 내가 담당했고 빨래와 밥 등은 영미의 담당이었다. 시장을 볼 때는 거의 대부분 같이 갔는데 물건을 고르는 일은 영미가 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일은 내 담당이었다. 필요에 따라서 내가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할 때도 있었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영미는 그런 것을 당연히 여겼고 불평 없이 자기 일을 잘 해냈다.

 

아무튼 우리 남매는 아기자기하게 서로 도우며 그렇게 동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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