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집사님 1부 

 민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학교 앞이었죠?  

나는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었고, 민선생님은 그  학교 선생님이었 

어요. 

내 조카인, 영신이 담임 선생님이었죠. 

학교 앞 꽃집에서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온  몸이 찌르르하게 감전이 

되어서 잠간 멍했드랬어요. 

물색 원피스를 깨긋하게 차려입은 민선생님은, 그 꽃가게에  있던 어떤 

꽃보다도 예뻐보였어요.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 

내가 늘 꿈꾸어왔던 그런 타입이었죠. 

영신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햐얀 치아를 건강하게  보이며, 잔잔하게 

웃음을 띄우고 있었어요. 

"영신이는 참 착해요. 공부도 잘 하고......" 

너무도 우아했던 민선생님의 모습에, 

멍했던 나는 당황하며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랬습니다. 

여지껏 예쁜 계집애들도  많이 보아왔었지만, 민선생님처럼  기품을 갖 

고있는 여성은 그리 흔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청초한 첫인상이 뇌리에 각인되었어요.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태도는, 어떤  여성보다도 포근하게  느껴졌으며, 

마치 정을 담뿍담은 눈으로  염려해 주었던, 이모처럼 내게  비추어 졌 

습니다. 

첫인상이야 말로, 성의 남여를 불문하고 강하게 머리에  인식되어 오래 

토록 기억되는 것이 아닌가요? 

민선생님에게 꽉 붙잡힌  포로가 된 기분이었다면,  지나치다고 하실런 

지요? 

장미처럼 화사하지는  않았고, 백합처럼  청초하지도 않았지만,  

은은한 향내를 품은 목련처럼 수수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좋았습니다. 

이렇게 내 가슴속에는, 

찡한 아픔이 그 때부터 생겼다는 것은 짐작도 못하셨겠지요? 

처음 뵈었을 때, 허둥대며  당황해했던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보시는 것 

같았어요. 

연민을 느끼게하고, 우수를 담은 눈빛은 신비함을 느끼게  할 정도였으 

니까요. 

민선생님의 그런 시선이,  나를 꼼짝  못하게 묶어놓은  사슬이 되었는 

줄은, 어떤 낌새도 느끼지 못하셨겠지요? 

그 순간부터 민선생님은 나에게 아픔을 주는 사람이었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와, 

두 아이의 어머니이면서,  아내이기도 했고 또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 

열심히 생활했던, 민선생님과  나는 어떤면에서도 어울리는  점이 거의 

없어 보였어요. 

그러한 점이 나에게는 절망적으로 다가왔지만 ............. 

시골 마을의 저녁 풍경속에,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밥짓는  연기처럼 민 

선생님에 향한 나의 연모는 그렇게 피어나기 시작했답니다. 

새벽까지 앓는 밤이 계속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쓰고 또 쓰며 지우기를 얼마나 했는지............ 

사랑이라는 말은 쓰지 않겠습니다. 

어쩐지 경박해도 보이고, 너무도 흔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모했었습니다. 

그것도 부담이 되는 말이긴 마찬가지이군요. 

그것은 민선생님에 대한 그리움과 연모로 이어졌으며, 잠  못이루는 밤 

의 연속이었답니다. 

사춘기의 소년시절도 아련히 겪었건만, 

데미안을 끼고 몇 날씩 하얗게 밤을 새며 고민도 해보았건만, 

또다시 가슴앓이가 절실하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혹 눈치라도 채지 못하셨는지요? 

일부러 모른체 하지는 않으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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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수유리 교회에 다니던 시절, 민선생님은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나의 존재를 민선생님에게 알리려는 노력이 부단히 이어졌지요. 

당장이라도 민선생님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어요. 

민선생님에게 내 마음을 담은 긴 편지를 던지고도 싶었습니다. 

호젓한 골목길에 숨었다가,  불숙 나타나 민선생님을  꼬옥 안아버리고 

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나의 행동에 제동을 건 것은, 

바로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민선생님의 기품 때문이었습니다. 

천박스럽지않고, 수수하면서도 우아한 민선생님의 모습이며, 

거기에다 근엄한 표정으로 나무라는 듯 살짝 찡그리는 모습이, 

이런 모든 상상을 허공으로 스러지게 하였고, 마침내  나는 자연스럽게 

민선생님에게 나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끔 되었습니다. 

민선생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내가 있기로 작정을 한 것 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겠지요. 

그 무렵이었어요. 

개척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민선생님을 좇아 나도 그 교회에 나가기 시 

작했습니다. 

열심이셨어요, 민선생님은, 아니 민집사님은. 

일요일은 물론이고, 수요 예배도 빠짐없이 교회에 나갔습니다. 

목사님도 사모님도 그리고 모든 교우들도 좋아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나를, 주위의 모든분들이 기특하게  바라보기 시 

작 했습니다. 

명문대에 다니는 청년이 교회에 열심이자.  주위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특히 여학생들이나 처녀들 사이에선 꽤나 인기가 있었죠. 

정작,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나의 관심은 민집사님에게 모아졌을 뿐 이었어요. 

부녀회에서도 금새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요. 

칭찬이 자자했던 것도 기억하실런지요?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도  하고, 봉사활동에도 그런대로  열심히 참가했 

어요. 

처움으로 민집사님의 시선을  받기 시작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청년부에 들어간 것도 그 무렵이었고, 

인원이 모자라서 쩔쩔매던 성가대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합류했습니다. 

노래라면 나도 어느정도는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개척교회가 그렇듯이, 성가대에는  나같은 청년부터 중년의  나이든 아 

주머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원으로 구성이 되어있었어요. 

심지어 목사님 사모님까지도 성가대원으로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집사님이 있었어요. 

민집사님이 있는 그 자리에 내가 선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던지, 

집사님은 아마 모르셨을 거예요. 

하얀 치아를 보이며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 민선생님을 보는 것이 내겐 

크나큰 즐거움이었답니다. 

민집사님은 소프라노, 나는 테너의 음역이었죠. 

성가대에서 곧 바로 주목을 받았어요. 

호세 카레라스, 중고시절에 내가 제일 좋아했었고, 내 별명이었어요, 

썩 잘 불렀거든요, 중고시절에. 

가끔씩은 성가대에서 독창도 맡기 시작했어요. 

집사님과 화음을 이루어 2중창을 처음 했을 때는, 나는 어이없는  실수 

를 해서 민집사님을 난처하게 만들었었죠. 

민집사님과 같이 중창을 한다는  흥분에, 나는 너무 허둥댔던  것 같았 

어요. 

화안한 웃음으로 나를 감싸며,  그윽한 눈빛으로 격려해 주었죠. 

그후로, 

우리는 성가연습을 자주했고, 민선생님의 곁에 있는 날이 많아졌어요. 

교우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우리는 성가대에 남아서, 멀지않은 크리스 

마스에 대비한 2중창의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죠. 

연습이 끝나고 성가대원끼리  갖었던 회식의 자리에도,  항상 빠짐없이 

우리는 참석했어요.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어요. 

가벼운 농담도 오갔죠. 

피아노를 옮기다 다친 팔목에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감아주던 민집사 

님의 고운 손길에, 온 몸이 부르르 떨렸어요. 

물론 집사님은 느끼지 못하셨겠지만요. 

그래요 그 때까진 나의 일방적인 연모였었죠. 

그러나, 그 일방적인 연모를 전환시키는 계기는, 뜻밖에도 빨리 찾아왔 

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