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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점에서 모인 기획팀 과의 회의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본점 행장의 특별지시에 의해서 진행되는 회의는 호텔의 보안 상태도 믿지 못한다는 개념 하에서 지방의 이름없는 팬션을 빌려 자가용도 아니고, 개인이 일반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모이도록 한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사내에 스파이들이 득시글 거리는 요즈음의 세태로 볼 때, 외부에 표나지 않도록 향후 펼쳐질 기획 아이템에 대한 세부 계획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이렇게 초기부터 진통이 있었다.

‘아니, 대접을 받아가면서 머리를 짜내도 모지랄 판에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싸 온다구? 이게 무슨 야외 소풍인 줄 아나 봐? 하여간 웃대가리 들이란, 정말 대가리라고 밖에는 말할 건덕지가 없네. 으이그….’

요즈음은 무슨 전략 회의다 하면 호텔을 빌리고 합숙을 하는 통에 누구나 다 아는 공개 장소에서 비밀을 논하는 웃긴 꼴이 되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나, 기획안을 내걸은 본점에서의 의지도 만만치는 않았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살얼음 판을 걷고 있는 금융계의 찬밥 신세에서 살아 남으려면 피땀을 짜내는 결실을 맺지 않고서는 생존이란 카드를 거머쥘 수 없는 것이 현실 이었기에….

‘자,자, 이제 휴식들 취하셨으면 아까 하던 얘기부터 계속 합시다. 은행의 구조적인 개선이 우선 관건으로 등장했고, 고객응대에 있어서의 획일화된 자세가 문제점으로 거론 되었으며, 에 또, 금융상품의 태부족이 마지막 지적 사항 이었습니다. 여기서 은행의 구조적인 개선은 이 회의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회의를 주도하는 기획실장의 진행에 야지가 쏟아졌다.

‘논밭에 나는 곡식도 물만 잘 댄다고 자라는 법이 있간디? 땅에 맞는 곡식이 아니면 피뽑기 바쁜거 모르남?’

‘그렇다고 여기서 뿌리를 논하는 자리는 아니질 않습니까? 기존의 체제에서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은행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묘책이 없겠느냐 하는 것에 초점이 모아져야 지요, 안그렇습니까?’

수근대는 사이사이에서 고렇게만 혀봐, 맨땅에 해띵이지, 별수 있간디 라는 비아냥이 쏟아져 나왔다.

‘제가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일본의 토마토 은행의 예를 보면, 사람들이 상상도 못했던 무슨 동화책에 나오는 것 같은 이름을 내세워 은행의 체질을 개선하고, 금융신상품을 개발했고, 토마토가 가지는 그 풍성함과 색깔이 가져다 주는 그 완성미로 인해 은행계의 일대 혁신을 가져왔던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이름을 바꿀 수는 없는 처지고…’

‘왜 우리라고 못할 거 없지! 불에 달구면 입을 쩍쩍 벌리는 조개 있잖여? 조개! 조개 은행 워뗘? 홍합 은행은 워떨라나?’

‘허어 사람 참, 그렇다고 조개를 은행에 들이대나? 무슨 매매춘 장소도 아니고 설랑…..’

‘은행이 돈놀이 하는 곳이란 생각은 버려야 한당게, 은행에서 완죤히 원스탑 쇼핑까지는 안가도 은행 문턱을 낮출 대로 낮추자는 데에 매매춘 이면 또 워떨까나?’

‘아니, 매매춘 금지법 땜시롱, 있던 술집도 의심 받아서 떼잡혀 들어갈 판국에 왠 지랄?’

‘다들, 은행의 창구가 너무 높다고들 않혀? 은행이 술집 맹키로 들어가 자빠지고픈 곳으로 바뀌면 워쩔거여? 들고 들어오는 것이 다 돈들 일 턴디, 고걸 마다할 은행이 있을까 몰러.’

나는 토마토 은행의 얘기를 꺼냈다가 잘못 이야기가 흘러가는 통에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쌍심지를 돋구며, 왠 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쪽발이 은행 얘기는 왜 꺼내 가지고 지랄이냐는 눈총에 나는 고개를 못 들고 있었다. 나는 회의의 분위기를 바꿔야 할 책임을 통감하고 있었다. 그때, 본점 기획팀의 홍일점이자, 제일 나이 어린 여대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기존의 모든 은행들은 본점을 토대로 해서 거대한 은행군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그런 체제에 익숙해 있고, 의례 그런가부다 하고 생각하죠. 여타 업계의 프랜차이즈 라는 체제에도 거부감이 없고요. 이런 와중에 저는 과감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외부에는 비밀로 하되, 새로운 지점 문화를 한번 내세워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이른바, 브랜드 은행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거죠.’

‘브랜드 은행은 뭔 소리데?’

좌중이 술렁 거렸다.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해본 적이 없는 은행 형태라고 할 수 있지요. 어차피 전산망은 탄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걱정은 없다고 봅니다. 단지, 고객은 그 은행이 다른 곳에 없는 유일무이한 그곳만의 은행이라는 생각을 갖게끔 판단착오를 일으키게 하는 겁니다. 전혀 본점과 연계된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 수 없도록 은행의 이름을 달리하고, 본사에서 지시하는 실내의 획일적인 칼라와 내부장식도 따르지 말고, 현금인출기도 독특한 형태로 디자인하는 거죠. 통용되는 금융상품의 이름도 지점의 결정에 의해 기존의 상품과 이름을 바꾸고요. 뭐 팜플렛이나 통장, 그 외의 부수적인 준비와 재인쇄 등등이 큰 걸림돌 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이름만 다를 뿐, 본사와 연결된 데이터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는 겁니다. 원장은 그대로니까요. 이른바, 현지의 상황에 맞는 브랜드 이미지 메이킹을 은행에 적용하는 거죠. 사람들은 색다른 은행을 이용하는 것 같은 신선감을 주면서도 본사에서 관리하는 체제에는 약간의 변화만 준다면 큰 지장 없이 관리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지점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일으킬 만한 마케팅 요소들이 미끼처럼 도사린다면 고객들 사이에서 그 은행 가봤냐 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대박이 터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본점만 있고, 그 밑에는 어느 본점에 소속되어 있는지 감을 도저히 잡을 수 없는 히트예감 은행들이 연예인들 처럼 전국에 좌악 깔리게 되는 거죠.’

파격 중에서도 파격이었다. 은행을 무슨 싸카스 단체인줄 아냐고 을러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어차피 쥐어짜내야 하는 천편일률적인 기획안 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자는 의견에는 대부분이 찬성을 표시하는 입장이었다.

‘그럼, 여대리 은행을 새로이 셋업 한다고 칩시다. 그런 독특한 체제로 나가는 기본 밑받침을 전부 본사에서 머리를 짜내서 제각각 서포팅 한다는 겁니까?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지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 않다뇨? 그럼 나 몰라라 한다는 게요? 나 이거 무쉰 소린지….’

‘이미 은행의 M&A 바람만이 살길이고, 거대화 만이 동반 침몰을 막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우리의 많은 동료들이 직장을 잃었지요. 사람들은 더 이상 은행을 믿으려 들지 않고, 무슨 동회에 등초본 떼러 오는 것처럼 은행의 문턱을 넘나드는 것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랩니다. 이럴 때, 직장을 잃고, 실의의 빠져 또 다른 살길을 모색하고 있는 유휴 은행근무 경력자를 외인부대처럼, 은행 지점간 독립채산을 원칙으로 해서 백분 활용하자는 것이 제 의견의 관건입니다. 그들은 예전으로 돌아오고 싶어도 시절이, 상황이 그들을 평생직장이라고 여기고 뼈빠지게 일해왔던 은행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겁니다. 본사는 이제 군림하는 시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능력 있었던 우리의 동료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주자는 거죠. 본사는 그들의 아이디어와 판단력, 성공가능성을 타진하고 지원결정을 하는 것만 남았지요. 실탄을 채워 준다 고나 할까요? 장기저리로 신규 은행의 창업 비용을 대 주면서 죽기 살기로 파릇파릇한 아이디어가 샘솟는 은행으로 진격할 수 있도록 본점은 뒤에서 시침 뻑 따고 앉아있는 것처럼 연막전술을 펴는 거죠. 만일 그 은행이 성공하면 그 지점장은 입지전적인 단일 은행으로 일군 성공담으로 스타가 되어 장안을 떠들썩 하게 할 것 이지만, 결국 이득은 본점에 자동적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 이거야 말로 다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얘기가 아니고 무얼까요?’

사람들이 숙연해 졌다. 이렇게 한솥밥을 먹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가슴속에는 동료를, 선배를, 후배를 억지로 은행에서 내보내야 했던 뼈아픈 기억들을 모두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 자신이 도마 위에 올려졌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한다는 군인정신으로, 되도 않는 쌩지랄을 펴가며 살고 있는 자기 자신의 얘기를 주어 섬기는 것 같아 다들 가슴 끝이 찡한 것이었다.

‘고롬 어떻게 한다지?’

사람들은 방법론에 약했다. 그러나, 평소 조용하기만 했던 여대리의 아이디어는 불을 뿜듯이 좌중을 향해 난타를 해대기 시작했다.

‘제가 하나 예를 들어 볼께요. 우선 은행의 이름을 하와이 은행이라고 지어보죠. 한국 사람들이 비용의 문제 때문에 아시아 권의 싸이판이나 근처의 열대성 휴양지로 발길을 돌리지만 예전부터 하와이라는 휴양지에 대한 은근한 환상이 있어왔던 것은 잘 아실 겁니다. 그걸 이용하는 거죠. 자신이 하와이의 해변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은행 말이죠. 우선 입구에 들어설 때, 신발을 벗게 합니다. 신발과 양말을 넣을 수 있는 간편한 비닐 주머니를 나눠주죠. 사람들은 의아해 할 겁니다. 그러나, 밖에서 보이질 않는 은행의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됩니다.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 히터를 트는 은행, 연료비가 문제라면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죠. 태양열 축전 난방법을 쓴다든가 해서 연료비의 절감을 기대해 보는 겁니다. 바닥에는 고운 해변가 모래가 푹신하게 깔려 있고, 곳곳에 야자수가 일렁이고, 파도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우는 그런 풍경…. 상상이 가세요? 비치 파라솔과 썬텐 의자가 주욱 늘어선 곳에는 늘씬한 쭉쭉빵빵의 비키니 도우미가 번들거리는 야자수 향과 썬텐유를 자랑하면서 고객에게 다가가죠. 고객을 맞이하는 교도소 면담창구 같은 구조물은 이미 없습니다. 투명한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개조된 비치 파라솔 테이블 같은 개개인 맞이 창구에 보기에도 아실아실한 비키니 차림으로 점원이 고객을 맞이 하죠. 남자 분들도 있어야 해요. 검게 타고 불끈불끈 근육질의 몸짱 총각이 아랫도리를 겨우 가릴 수 있는 초 소형 삼각팬티만을 입고 고객을 맞는 거죠. 사람들은 자기가 은행에 와 있는지, 아니면 하와이에 와 있는지 착각에 빠져들고, 눈 앞에 펼쳐진 선남선녀의 아리따운 수영복 차림에 넋을 잃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은행원으로서의 기지를 십분 발휘해서 고객의 뒤통수를 지랄같이 훌치면서 호미걸이를 날리는 거죠. 구섞의 조그만 무대에서는 하루종일 훌라 춤을 선보이고, 10만원이상 입금고객에게는 원하는 어떤 비키니 차림과의 행원과도 즉석 사진 촬영과 더불어 트로피칼(열대성) 음료를 공짜로 주는 겁니다. 썬텐 의자에서 1 시간정도 낮잠을 잘 수도 있게 해주지만 그것은 그 날, 정기적금을 계약한 분들만 가능하게 하고, 새로이 구좌를 500만원 이상 여신 분들은 썬텐 의자에서의 낮잠과 아울러 미녀들의 선선한 대형 부채질, 트로피칼 음료등이 주어지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실내를 꾸민 자금도 걷어 들이려면 이런 방법도 있어요. 실내에서 그냥 배경을 사진으로 찍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은 복권을 한 장 반드시 사게 하는 거죠. 돈이 많이 들 것 같다구요? 절대 아닙니다. 은행 안은 눈요기 감을 위해 사람들이 밀어 닥칠 거고, 가뜩이나 인터넷 시대에 인기순위가 올라가는 행원은 금방 네티즌들에 의해서 짱으로 부상함과 동시에, 팬클럽 마저도 생길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런 눈요기나 행원을 만나려면 이 은행밖에 없다는 인식이 깨지지 않도록 지점장은 인적 관리에 최대한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 였다. 비용과 사람관리에 드는 원천적 노력이 어렵게 느껴지고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을까 싶기는 해도 은행을 그런 스타일로 변화 시키는 것에는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기에…

‘그런 경우, 선남선녀만 써야 된다는 결론 인데, 어떻게 기존에 퇴직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강?’

‘듣기 좋으시라고 그런 예를 들었지만, 은행원을 뽑을 때 미스코리아를 뽑는 것 처럼은 하질 않죠.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죠. 언제나 딱딱한 유니폼 만을 입고 살아갈 것 같은 행원도 개인의 사생활로 돌아오면 야시런 수영복 입고 해변가에 가기도 하잖아요? 사람들은 잘 생긴 꽃미남, 성형미인의 획일적인 아름다움에 질려가고 있어요. 옆집에 사는 것 같은 미시 행원의 평범한 볼륨, 그리고, 야한 비키니….. 왠지 구미가 땡기지 않으세요? 우리 오빠 같이 배가 뽈록 나온 아저씨의 우스꽝스런 삼각팬티, 그 나름대로 효과 있을 거에요. 평범한 우리들의 얼굴과 몸매를 내세워 독특한 하와이의 싱싱함을 현실로 기냥 끌어다 들이대는 겁니다.’

누군가는 손가락에 불이 나도록 여대리의 가상 아이디어를 때려 적고 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사람은 그 기획안 으로 승부를 낼 것이 분명했다.

‘근데, 여대리 혹시 풍기문란이 염려되어 허가가 않난다 랄지, 주변의 눈총을 받게 되진 않을까? 요즈음 성매매도 법으로 금지 시키는 판국에 또 어떤 법이 튀어 나올지 알게 뭐야?’

‘수영복이 풍기문란 이면, 수영장에서는 모두 칸막이를 하거나 남탕, 여탕 처럼 분리해야 되겠네요? 그건 억지라고 보이는데요. 적당한 선은 있어야 겠지만, 저는 과감해질 필요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이런 브랜드 은행이 출현하면서 18세 이하 입장 불가의 은행도 나와야 한다고 봐요.’

‘그건 또 무신 소린가? 자라나는 새싹 들에게 저축과 은행의 중요성을 배제 시킨다는 발상은 너무 심하잖아?’

‘그건 그렇지 않죠. 사실 여러분들도 모두 은행에 근무 하시지만 어린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해서 창구를 디자인 하는 곳은 별로 많질 않아요. 그러다 보니 부모들이 대신 그 일을 해주게 되고… 이런 류의 브랜드 은행이 생긴다면, 아마도 애기놀이방 같은 은행도 생길 거라고 봅니다. 성인이 갈 수 없는 눈높이 은행의 탄생 말이죠. 그 반대로 성인만이, 게이만이, 레즈만이, 나체족 만이 갈 수 있는 은행이 생기지 말란 법은 없겠죠. 심한 정도야 허가면에서 법률적인 조율과 진통이 예상되지만 그거야 피해 나가는 묘법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브랜드 은행은 그런 세대적 닛치마켓을 뚫고 들어가는 게릴라적인 마케팅 요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 전용 은행을 가정했을 때, 도우미 들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 준다든가 하는 속식 과외도 해주고, 별도의 밀실에서는 고민상담도 해주는 겁니다. 단, 은행의 업무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진 다음에 말이죠. 구섞 에는 요즈음 뜨는 온라인 게임도 설치 하되, 하루에 정해진 일정 저축액을 기본으로 무료 게임 허용 시간이 정해지게 해놓는 다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여대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여대리의 의견 제시로 말미암아 기차 화통을 삶아 드신 것처럼 토론에, 격론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따분하게 회의록에 써야 될 말만을 써가며, 요식행위를 마쳐가던 전략 회의와 달리 이번에는 양상이 자못 달랐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적극적 일 수가 없었고, 은행을 위해 영혼까지 팔아치울 사람들 처럼 입에 침을 튀어가며, 의견 개진에 앞장 서고들 있었다. 그냥 놔 두어도 제각기 짜여진 조원들 끼리 시키지 않아도, 성실한 자세로 브레인 스토밍에 날고 기고들 있었다. 나는 달구어진 실내의 열기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였다.

‘짤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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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안에서 나왔다. 여대리 였다.

‘여대리 대단했어. 정말 끝내주는 아이디어 였는데, 평소에 생각해 둔거 였어, 아니면 갑자기 떠오른 거야?’

‘성과장님, 저도 담배 한대 주세요.’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여대리가 담배를?

‘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여대리. 연륜이 보이는 흡연 스타일 이었다. 코에서도 연기를 내뿜는 것을 보면….

‘무슨 걱정이라도?’

‘그렇게 보여요?’

‘뭐 그렇다기 보다….난 여대리가 담배 피우는 거 처음 봐.’

‘저 골초에요. 모르셔서 그렇지.’

팬션의 밖은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 선선한 바람까지 일렁이고 있었다. 도심과 떨어져 있는 탓인지 하늘의 별은 쏟아질 것 처럼 두 사람의 머리 위에서 기승을 떨고 있었고…

‘그래? 난 몰랐네.’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글쎄, 뭐랄까? 은행이 저렇게 바뀌어도 될까하는 불안감도 있고….너무 가볍게 체질 개선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 늙은이 처럼…. 나 우습지?’

‘우리 아버님이랑 똑 같은 말씀 하시네. 깔깔…..’

‘세상 기성세대 들이야 보는 시각이 왠만큼은 공통분모가 있질 않겠어? 공무원 다음으로 점잖은 스타일이 은행원인데, 무슨 연예인화 한다는 계획이 선뜻 와 닿는 것도 너무 이상스럽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뒤꼭지가 쬐께 가렵네….’

‘바뀌여야 한다는 것도 문제는 있지만, 바뀔 수 없다는 논리도 설득력이 없기는 매한가지 아닌가요?’

‘그렇긴 해. 고인 물은 썪게 마련인데…..’

‘참, 과장님은 결혼 않 하세요? 요즈음은 그 잘 오시던 약혼자 분도 뜸 하시던데…’

‘언제 봤어? 눈도 좋아. 그런데 어쩌지? 깨진 지가 언젠데! 나 솔직히 말하자면 파혼 당했어, 뭐. 은행원으로 평생 살 생각이냐고 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다음 날로 기냥 파혼 통보 날리데. 하긴 뭐 볼 거 있겠어? 살면서 이리저리 돈에 쫄려대며 살아가려고 생각하니 끔찍도 했을거야.’

‘죄송해요. 제가 괜시리 물었나 보네요. 좀 걷죠. 어차피 팀별 전략안 발표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려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키가 작고 아담한 그녀와 목적지도 없이 그냥 팬션을 뒤로 하고 걷기 시작했다. 내 보폭이 컸는지 그녀는 중간 중간에 종종 걸음으로 나의 뒤를 따라 왔다.

‘아휴, 숨차라. 아니, 제가 아무리 그렇기로 서니 과장님도 그렇게 배려가 없으시나? 보조 좀 맞춰 걸어 주심 않되나? 꼭 우리 아빠 같다니깐.’

‘어허, 그래? 내가 좀 무심하긴 하지. 원칙에만 강하고, 교과서 위주의 기본전략가. 그러다 보니 은행이 가장 적성에 잘 맞았는지도 몰라. 숫자와 합산의 일치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직장의 풍토가 그렇게 편할 수 없었으니까. 여대리는 어때? 그 머리로 한번 떨치고 나아가 한 껀 크게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얘기를 하다 말고, 여대리는 좀 앉자고 했다. 시골의 오솔길은 숲도 숲이려니와 그 우거짐으로 하늘 조차 보이질 않고 있었다. 적막함과 아울러 달빛만이 서로의 얼굴을 겨우 식별할 수 있는 고즈넉함은 시골풍의 주변이 주는 독특함 이었다.

‘저도 은행이 체질 인가봐요. 아까는 무슨 미친년 처럼 나불대긴 했는데….저 평소에는 조용해요.’

‘알지. 그런데, 여대리는 결혼 않해? 나야 나가리 됐지만 서도…’

‘마음을 터놓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사람만 있다면야 저도 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에요.’

‘이렇게 직장을 떠나 단 둘이 얘기해보니 참 좋네. 서먹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아, 여대리는 어때?’

‘저도요. 왠지 무척 편안하네요.’

나는 옆에 앉아 있는 여대리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녀도 나를 찬찬히 쳐다 본다. 그리고, 평소에 언제나 끼고 있는 동그란 도수 높은 안경을 살며시 벗는데,

‘와, 눈이 정말 예쁘네. 안경 도수가 높아서 언제나 여대리의 얼굴은 그 안경과 함께 기억되곤 했는데, 눈매가 그렇게 이쁜지는 정말 몰랐어.’

그녀가 눈을 살며시 감는데, 길고 까만 속눈썹이 눈 안에 확 들어 온다. 나는 뻘쭘히 엉거주춤 앉은 자세에서 고개만 그녀 쪽으로 내밀면서 눈을 감았다. 꼭 그래야 될 것 처럼….고개가 약간 비틀어 지면서 나는 분위기와 달빛에 취한 때문인지, 별스런 장소에서, 별스런 이유도 없이 그녀에게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은 약간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마도 밤공기 때문인가 싶다. 그녀와 입을 맞추고 살며시 떼는데 그녀의 코에서 뜨거운 기운이 확 뿜어지는 것이 인중으로 느껴졌다.

‘과장님, 이런 야외에서 섹스 해 보셨어요?’

의외의 질문 이었다.

‘아,아니…. 나 보기보다 되게 보수적이야. 섹스는 이불 속에서, 그것도 꼭 불 끄고…..나 그런 사람이야.’

‘그래서 인생은 변화가 필요한 거에요.’

그녀는 내 앞에서 일어나더니 옆의 굵은 나무등걸에 상체를 기대면서 엉덩이를 뒤쪽으로 내민다. 그리고 돌아다 보면서,

‘굉장한 흥분이 있다구요.’

그녀의 웃음이 머리카락을 파고든다. 나는 그녀의 주름 치마를 아래로부터 걷어 올렸다. 그녀가 얘기한 것처럼 평범한 볼륨과 평범한 보통의 그런 팬티와 스타킹, 가터도 없고, 똥꼬 팬티도 아니고, 그저 아줌마들이나 잘 입을 것 같은 일명 코끼리표 팬티를 입은 그런 분위기의 엉덩이…. 그렇지만 그 모습은 그녀가 얘기 했듯이 구미를 당기고 있었다. 나도 속물들 처럼 보통의 보지와 엉덩이를 구지 따라 다니며 보고 싶어하는 부류일까? 나는 그녀의 양해도 없이 팬티를 벗겨 내렸다. 언제 누가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그랬는지, 팬티를 무릎 밑에까지 내리지도 못하고 나는 급하게 바지를 끌렀다. 이건 섹스가 아니라 배설인 것 같다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상황과 분위기가 주는 몰입감 이라는 것은 야외라는 흥분과 아울러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애무도 없었고, 그저 밀착과 펌핑, 흔들리는 두 사람의 허리와 엉덩이 짓에 더하여 두 사람의 살갗에는 미처 벗지 못한 옷의 사그락 거리는 스침이 있었고, 드러난 살결에 소름을 돋게 하는 초가을의 스산한 바람이 있었다.

‘여대리, 어쩌려고 이래, 나랑 어쩌려고……’

나는 펌핑을 하면서도 그게 불안했다.

‘어쩌긴요… 헉헉… 이런 섹스, 과장님께 꼭 한번 맛보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녀는 도수 높은 안경과 조용한 시선 너머로 오랜 시간 나를 지켜보아 온 것이 분명했다.

‘우리 아빠 같은 과장님이 처음에는 너무 싫었거든요. 헉헉… 고지식하고…. 원칙 밖에 모르고….. 윽윽… 평생 병을 얻을 때까지 뼈빠지게 일만 하고, 쫓겨나도 아무 말 못하는 그런 무능한 아빠 같은 과장님이 정말 싫었어요. 윽윽… 윽윽… 아…. 더 깊이, 더 깊이….. 그래, 엄마도 이런 느낌 이었을 거야. 엄마는 그런 무능한 아빠와 밤에는 울어대가며, 진저리 치도록 섹스를 했어요. 아빠는 무능했지만 엄마를 사랑한 것은 그렇지가 않았나 봐요….윽윽… 더 좀, 더 좀, 팍팍 쑤셔봐요…..그런데, 악악악악…. 그렇다고 그렇게 보지가 찢어지게 박아대다니…. 억억…. 아흑, 아흑,아흑….. 악악악….. 보지가 보지가 터져, 터져…. 엉엉…. 그래요 이렇게 엄마도 울었어요….그렇게나 닮은 과장님을 미워할 수 없게 된 제가, 제가… 너무 미웠어요…… 악악악….’

그녀는 나무를 붙들고 숨을 색색 몰아 쉬면서 목이 아예 쉬어 버릴 정도로 울어 재꼈다. 달빛이 내리 쏟아지는 숲속에서 섹스에 빠진 남녀의 모습에다 쾌락에 휩싸여 울음을 흘리는 모습이란 정말…….나는 손수건을 꺼내서 그녀의 보지를 막았다. 팬티를 입고 그 안에 패드처럼 내 손수건을 껴 넣고 팬션 까지는 가야 했기에…. 좇물이 질질 흐르는 채로 걸어갈 수는 없었다.

‘과장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아니야. 난 좋았는데, 여대리는?’

‘저도 좋았어요. 섹스를 하면 이렇게 편안한 마음이 드는구나 하고, 저 처음 느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라면…..’

나는 그녀의 사랑이 미움에서부터 왔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혐오 했던 아버지와의 동질성. 그러나, 그 매력의 사슬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어떤 운명의 끈 같은 이끌림. 나는 그런 것을 느꼈다.

‘아버님은 뭐하시던 분이셨어?’

‘은행원 이셨어요.’

나는 목소리가 갑자기 막혀 버렸다.

‘이사가 되는 것이 꿈이셨는데….. 그간의 혁혁한 공로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그렇게 변명 한마디 못하고………. 퇴직을 당하시더군요. 그리고 시작된 병치레……결국에 가서는…………그래서 결심한 거에요. 그런 은행에게 멋진 복수를 해주자고….맨 처음에 과장님을 대할 때에는 꼭 죽여 버렸으면 속이 편할 것 같았어요. 어쩜 그렇게나 주변머리에 소갈머리까지 빼다 박았는지….’

‘여대리의 위치에서 복수가 가능할 수 있을까?’

‘아직 모르시겠어요? 오늘의 전략회의가 바로 복수 였다는 것을? 맨 처음에는 브랜드 은행의 도입 기치처럼 아이디어가 번뜩이면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말 끝내주는 은행들이 서게 될 거에요. 그러나, 제가 의도하는 것은 그 다음의 짝퉁 버전들을 가리키는 거죠. 경쟁은 경쟁을 부르고, 여배우들이 어떻게 하면 살아 남을까, 급기야 옷을 벗는 것도 모자라, 누드 경쟁에 돌입하는 것처럼, 브랜드 은행은 속으로 서서히 곪아 갈 것이고, 브랜드 은행의 산뜻함에 매료된 고객들은 보다 자극적이고, 은밀한 써비스가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브랜드 은행으로 철새처럼 자리를 옮기게 되겠죠. 돈을 싸 짊어지고 달겨 드는데, 돈 놓고 돈 먹기에 귀신 같은 은행이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요? 아마도 지금의 매매춘 보다 더 음란하고 파격적인 섹스 써비스가 판을 치는 은행이 출현할 것은 이미 예상 가능한 변수죠. 그렇게 되면 은행은 번성하되, 은행이 은행이라 이름 부를 수 없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거에요. 은행이면서도 더 이상 은행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 지경으로 제 스스로 빠지게 하는 전략, 그게 제 복수 에요.’

‘여대리 만일 그러다가 법의 테두리가 조여 들면서 브랜드 은행의 존폐 여부까지 들먹여지는 날에는 또다시 거리로 내 몰리는 은행원들이 나올 것은 뻔한 이치라는 생각은 않드나?’

‘……..’

‘복수도 좋지만, 세상을 그렇게 살아서는 않되지. 아버님은 최선을 다해서 삶을 사셨고, 무엇보다도 여대리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워낸 것 만으로도 만족해 하지 않으셨을까? 만일 어떤 불만이라도 있었다면 가까운 어머님 에게라도 일성을 남기셨을 텐데….어머님도 아무 말 없으시지? 거 봐. 두 분은 그런 대로 잘 살았다고 여기신 거야. 직업? 성공? 승부수? 그런거 어쩌면 필요하지. 먹고 살자면 할 수 없어. 그렇지만, 욕심 낸다고 뭐가 달라지나? 두 분은 내가 보기에 당신들께서 처한 위치에서 충분히 서로를 아끼며 사랑했고, 그것으로 모자라는 것은 채웠다고 믿었기에 아무런 불평을 하시지 않으셨다고 난 믿어.’

‘흑흑…..어쩜…..과장님은…..저를 나무라시는 말씀도 아빠랑 똑같이 하실 수 있어요?’

나는 울며 걷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 속으로 나는 그녀의 복수는 복수가 아니라고 믿었다. 브랜드 은행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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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미리닥쳐 2020-03-04  
잘보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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