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졸업빵
입춘은 지났지만 여전히 쌀쌀한 이월.
갓 새 해가 시작된 지 이제 두 달로 접어드는 시점이지만, "시작"이란 단어가 무색해 지는
"졸업"이라는 이름의 이별.
누군가에게는, 3년여 추억과의 작별.
또 누군가에게는, 뿔뿔이 흩어지는 친구들과의 아쉬운 헤어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긴 수고끝에 얻은 새출발에 대한 증명...
하지만 누군가들에게있어 "졸업"은
"탈출"이었나보다.
일산의 모 중학교.
평소 넓디넓던 운동장은 주차장을 방불케하고, 여기 저기서 밀가루 날리는 모습들이 보인다.
" 수미야. 니네 부모님은? "
" 알잖아? 일하러 가신 거."
" 너도? 졸업식인데도 안 와보셔? "
" 가게 하루쉬면 매상 떨어진다고... 뭐 고등학교 졸업식 땐 오신다고...
중학교 졸업식은 졸업식도 아니냐? "
" 이래서 가운데가 안 좋다니깐... 애매하잖아? "
" 그러는 너네 부모님은? "
" 마찬가지... 지 뭐.
에이~ 어때? 그냥 우리끼리 놀면 되지 뭐~ "
중2 말부터 사귀기 시작한 수미와 준수.
둘 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통에,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던 것이 계기가 되어
1년간을 커플로 지내 온 두 사람이다. 공개연애이다 보니, 반 친구들도 모두 둘의 사이를 알고 있다.
부모들도 대략은 알고 있는 모양이었던지, 서로의 집도 여러 차례 놀러가기도 하는
꽤나 가까운 사이. 형제자매가 없다 보니, 때론 남매처럼 놀기도 했다.
" 근데 넌 밀가루 안 맞았나? "
" 좀 맞았어. 아 짜증나..."
수미는 밀가루가 묻은 교복자켓의 소매를 털어내며, 찌푸둥한 표정을 짓는다.
" 너도 맞았냐? 어떤 새끼가..."
" 됐어. 어차피 오늘 말곤 입을 일도 없는데..."
" 그치? "
갑자기 수미의 교복 자켓소매를 북 찢는 준수.
" 꺅!! 미쳤어?! "
" 에이~ 어때~ 재밌잖아~ "
" 너...! "
수미 역시 준수에게 달려들어, 옷을 찢기 시작한다.
그런데 준수처럼 한 번에 쫙 찢지 못하고, 찢으려고만 애를 쓸 뿐
준수의 겉옷은 구김만 갈 뿐 찢어지질 않는다.
" 에잇~ 이거 벗어! "
수미는 준수의 교복자켓을 강제로 벗긴다.
" 틈새 공략이닷! "
그러더니 수미는 자세를 낮추고선 준수의 바지를 쫙 붙잡는다.
" 야! 너 뭐해?! "
" 바지는 잘 찢어질 거 같은데...? "
" 너 변태냐?! "
" 우씨. 너가 먼저 시작했잖아~ "
" 그래도 바지는 아니지... "
준수는 수미에게 바짓자락이 잡힌 채, 어떻게든 버티려고 애를 쓴다.
여자애인 데다가 애인이기에, 함부로 밀치거나 그럴 수도 없지만
바지가 찢기는 건 사양이었다. 윗도리까진 어떻게 상관 없지만
학교에서 집까지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야 하니깐, 바지가 찢기는 건 노땡큐였던 것.
" 윗두리로 봐주라~ "
" 에이~ 살짝만 찢을게... 팬티 안 보이게... "
" 이거 몇 번 쭐였던 거라 실밥 금방 터진단 말야~ 안돼~ "
" 치. 치사하게... 그럼... 에잇! "
수미는 준수의 바지찢기를 포기한 듯 바짓자락을 놓치만, 준수가 방심한 사이에
준수의 겨드랑이로 손을 밀어넣는다.
" 야 야 간지러~~ "
" 우씨... 이것도 안 찢어지네... "
" 옷이 무슨 종이로 만들었냐? 북북 찢어지게? "
" 넌 한 번에 찢었잖아... "
" 팔소매 하나 겨우 찢었다. "
그렇게 본교 건물 뒷편에서 서로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
" 여깄었냐? 준수."
이 때, 누군가 준수의 이름을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