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누나!! 누나!!! -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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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누나!! 누나!!! - 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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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 누나!! 누나!!! - 중편 

 

# 게임 스타트. 

 

누나! 누나!! 누나!!! - 중편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보니 어느덧 시간이 8시를 넘기고 있다. 그러니까 끝까지 이상한 날의 연속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는 나를, 재훈이 녀석이 끝끝내 붙잡는가 싶더니 평소에 안하던 얘기들을 쏟아내는 통에 집에가는 시간이 이렇게나 늦어져 버렸다. 사실은 -표정을 보아하니, 애당초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지만- 6시쯤에 재훈이 녀석이 무슨 ‘사진’인가 ‘동영상’인가를 지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서는 -뭐가 그리 찔리는지- 2시간 가까이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통에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거다. 지친다 지쳐. 

땅거미가 추욱 내려앉은 철길을 언제나처럼 따라 걸었다. 시간을 보아하니, 도서관에 도착해도 공부는 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다.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누나랑 곧바로 집에 돌아와야 할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아까 수업시간에 수혁이 녀석이 물리 선생님께 또박또박 말했던 말들이 맴돌고 있었다. 정말이지 녀석과 나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시간 정도 걸려서 겨우 도서관에 도착했다. 모르긴 몰라도 자료실엔 아무도 없으리라. 오랜 도서관 생활로 얻은 나름의 ‘정보’다. 자료실 같은 경우엔, 오전 9시부터 11시, 그리고 오후 9시부터 10시까지는, 거의 사람이 없다. 차라리 도서관 사서인 누나만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슬쩍 시간을 확인하니 9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다. 좋았어. 조심스럽게 가서 놀래켜 줘야지! 

팔목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슬쩍 거두어 내고, 나는 자료실로 천천히 다가갔다. 버릇처럼 자료실 유리문에 양손을 아치형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얼굴을 스윽 가져다 댔다. 내 입김으로 인해 유리문에 서리가 끼는것 같더니, 저기 너머에 당연히 있어야 할 누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어라? 화장실 갔나?’ 

김이 빠져서는 그대로 유리문을 열고 자료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자료실안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누나마저 없는게 조금은 의아했다. 평소에 이 시간이었으면, 학교에서 내가 돌아올 걸 알고 늘 자료실을 지키고 있었을 누난데.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바지 춤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띠리리~ 띠리리~~” 

익숙한 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가보니, 누나의 책상 위에서 누나의 휴대폰이 울려대고 있었다. 나는 전화거는것을 그만두기로 하고, 자료실을 빠져 나왔다. 

‘어디갔지? 누나?’ 

어차피 누나는 다 큰 성인인데,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것 자체가 조금은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평소’와는 다른 하루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인지, 이마쪽에서 다시금 땀이 흘러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일단 화장실로 걸어갔다. 

“후우” 

세면대에서 물을 틀고, 얼굴을 한번 닦아냈다. 얼굴 여기저기에 퍼지는 차가운 물의 기운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제는 누나가 자리에 돌아와 있을까 싶은 생각에, 얼굴에 남아있는 물방울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고 서둘러 화장실을 뚜벅뚜벅 소리와 함께 빠져 나갔다. 

“빨리해요! 시간 자꾸 가요!!!” 

남자 화장실에서 바로 빠져나왔을 때였다. 방금전에 빠져 나온 남자 화장실 쪽에서 어딘가 ‘익숙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들려왔다. 부드럽지만, 막 변성기를 지낸듯한 내 또래 남자 목소리. 그 자리에 멈춰서서, 혹여나 내가 잘못들은건 아닌가 싶어 남자화장실쪽으로 귀를 귀울였다.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지 않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누나가 있을’ 자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기어이 방금전과 똑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남자화장실에서 흘러나왔을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저 목소리는 분명...’ 

방금전에 세수를 하고 나왔는데, 어쩐지 다시금 더위가 밀려오는 기분이다. 두 번이나 똑같은 목소리를 들은 이상에야, 내가 잘못들은것은 분명 아니다. 괜한 호기심에,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최대한 발자국 소리를 내지않게 조심하면서 다시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아니 차라리 도둑고양이마냥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전에는 미쳐 몰랐는데 4개정도 되는 칸막이 화장실의 가장 끝의 문이 꾸욱 닫겨있는게 보였다. 다시금 잠잠해진 화장실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어쩐지 굳게 닫혀있는 칸막이 화장실 쪽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무언가 ‘부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지금 뭘 하는지도, 혹은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닫혀있는 화장실 옆칸으로 들어갔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문을 닫을 생각도 하지 못한채. 

침을 목구멍 뒤로 꼴깍 꼴깍 삼켜 넘기면서 -최대한 들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그저 익숙한 목소리 하나를 들었을 뿐인데 심장이 이상하리만큼 뛴다. 칸막이 반대편에선 여전히 무언가 부산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칸막이 화장실에서 굳어버린채, 그냥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누나! 누나!! 누나!!! - 중편
 

“누나 벌써 몇분째에요? 난 괜찮지만,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워두면 곤란한 쪽은 누나잖아요? 봐요 이제 화장실에 사람들도 안들어오잖아요‘ 

-하아.. 역.. 역시 못하겠어 이런거. 

“그래요? 일부러 오래 시간을 드렸더니, 하신다는 말씀이 그거에요? 그럼 좋아요. 그 말씀은 누나가 결국 이거말고 ‘다른 선택’을 하셨다는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는거죠?”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난... 

나지막하게 소곤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다시금 심장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반대편에는 남자 하나만 있는게 아니다. 여자도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화장실 안에 함께 있다. 그런데 분명 저 목소리는.. 저 목소리는. 

얼굴이 붉어진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약간의 틈을 보이고 있는 화장실 칸막이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가져다 댔다. 꼭 확인하고 싶은게 있었기 때문에. 좁지만 또 좁다고 할 수 없는 화장실 밑 틈을 통해서,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화와 ’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꽃무늬 샌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어쩐지 둘 다 ’눈에 익다‘. 조금 독특한 것은 신발의 방향이 둘다 같은 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는건 아닌듯 보였다. 

“그럼 저도 그만 바지 입을래요. 그러니까 이제 고개 돌리셔도 되요. 그리고 저는 집에 가자마자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할게요. 누나가 방금 선택하셨으니까!” 

-아니야. 그게 아니라. 제발 그러지마! 

“애원하셔도 소용없어요. 누나, 저 나름 배려한다고 선택지를 두개나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누나는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저로써도 더 이상 진빼기 싫구요. 갈게요.” 

-잠... 잠깐... 기.. 기다려. 너 정말.. 그렇게 할거니? 

고개가 뻐근해지는것도 모른채, 반대편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에 귀를 귀울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확신에 가까워지는 목소리. 심장이 미친 속도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통 모르겠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다만, ‘여자’가 거의 울먹이며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남자‘쪽에서 ’네‘ 라는 짤막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10초 정도의 적막이 흘렀다. 나는 숨을 죽인채 상황을 살폈다. 그런데 갑자기 꽃무늬 샌들의 방향이 180도로 바뀌는게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제야 ‘남자’와 마주하고 있는 모양이다. 숨을 죽인채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데, ‘여자’의 샌들 뒷꿈치가 살짝 들리는가 싶더니 ‘남자’의 운동화 앞으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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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려는 거지?’ 

불편한 자세로 지금 상황을 지켜보려니 여간 답답한게 아니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 ‘남자’와는 다르게, ‘여자’의 움직임은 어딘가 요란스러워 보였다. 

“나이스 초이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남자의 말을 빌리면- 여자가 ‘좋은 선택’을 한 듯 보였다. 

“이... 이걸 하면... 아까 말한거...” 

-사람들어오기전에 빨리 끝내는 편이 낫지 않나요? 

“그러니까 내가 묻는 말에.... 빨리...” 

-누나. 시간가요. 시간. 

대답을 재촉하는 ‘여자’와는 달리, ‘남자’는 번번히 ‘여자’의 말을 끊었다. 그쯤되니, ‘여자’도 포기했는지 더 이상 아무말도 없었다. 또 몇 초간을 그렇게 정적 속에서 보내는가 싶더니, 무릎을 꿇고 있던 ‘여자’가 ‘남자’ 쪽으로 조금 더 다가가는게 보였다. 그리곤 ‘여자’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얼마가지 않아 그마저도 잠잠해 졌다. 

“따뜻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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