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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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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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한때 


숲속의 한때

 

"저, 저게 누구여..." 








영천댁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눈 아래 비탈길을 허우적허우적 올라오는 사내가 보였다. 




윗골 사는 난봉쟁이 먹돌이가 분명했다. 








"먹돌이 아녀? 저 화상이 웬 일로..." 








영천댁은 벌써 불안한 목소리였다. 




먹돌이는 이웃마을 윗골은 물론이고 읍내까지 그 행태가 짜하니 소문이 난 건달패에다 노름꾼, 난봉쟁이였다. 




술에 취하면 위아래가 없는 것은 물론이었고 조금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주먹드잽이를 일삼기 일쑤였다. 








"그러게요... 저치가 여긴 웬일이람..." 








새댁 역시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속삭였다. 








먹돌이는 처음부터 맘 먹었던 양 거침없이 두 사람이 있는 다복솔밭으로 휘적휘적 다가오더니 담배 한대를 척 내물고는 느물거리는 것이었다. 








"하항... 아랫골 젊은 마님들이 여긴 먼일이라여..." 








"고, 고사리 캐러..." 








영천댁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고사리라... 조오치... 그래, 많이들 꺾었수? 어디..." 








먹돌이가 성큼 다가서더니 영천댁의 고사리 바구니를 휙 나꿔챘다. 








"에그머니!" 








영천댁이 제풀에 놀라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어랍, 이 아지메가 왜 이래? 내가 어디 치기라도 했남? 크큭..." 








먹돌이가 가소롭다는 듯 고사리 바구니를 건성으로 쓱 훑어보고는 영천댁 앞으로 던졌다. 








"여자들만 있는 데서 왜 이러세요? 얼른 가요, 영천댁..." 








새댁은 야멸차게 먹돌이를 향해 한번 쏘아주고는 영천댁을 일으켜 세웠다. 




아무래도 이곳에 오래 머물다가는 봉변을 당하지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어랍쇼. 이 아지메들이 누굴 산적 할애비로 아나. 왜들 떵 밟은 낯바닥으로 지랄이여? 지랄은." 








"지랄이라뇨? 왜 아녀자들이 고사리 캐는 데까지 쫓아와서 시비거는 거에요? 남자가 점잖지 못하게..." 








새댁은 내친 김에 쏘아부쳤다.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순간적인 계산이 그녀를 당돌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계산은 착오였다. 




그녀의 대꾸가 오히려 먹돌이를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일이 벌어지고 만 후였다. 








퍽! 








"에구머니!" 








새댁은 먹돌이가 불식간에 날린 발길질에 가슴을 정통으로 맞고는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다. 








"이런 썅... 곱게 놔줄렸더니 사람 성깔돋구고 있어." 








먹돌이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침을 찍, 내갈겼다. 








"이, 이보게, 먹돌이. 제발... 보내주소. 응?" 








영천댁은 놀란 토끼눈으로 벌벌 떨며 먹돌이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보내줘? 언제는 내가 붙잡았수? ㅋ 놀고 있네." 








먹돌이가 이번에는 영천댁의 어깨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아주 가볍게 발을 놀렸을 뿐인데도 영천은 서슬에 놀란 탓인지 "아이구머니!" 비명을 지르고는 그대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흐흥... 요것들이 먹돌님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 요거렷다? ㅋ" 








먹돌이는 나가떨어진 두 여인을 향해 의미있는 웃음을 씨익 날리더니 천천히 다가서는 것이었다. 








"왜, 왜 이랴! 왜 이랴!" 








영천댁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곤 주저앉은 채 뒷걸음질을 쳤다. 




새댁은 여전히 가슴을 감싸쥔 채 밭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중이었다. 








"느그들... 오늘 맛좀 봐야 쓰것다..." 








먹돌이가 느물거리더니 영천댁을 향해 솥뚜껑 같은 손을 쑥 내뻗쳤다. 




그리고는 영천댁의 젖무덤을 손아귀로 거칠게 움켜쥐더니 일으켜 세웠다. 








"아! 사람살류! 사람..." 








퍽! 








영천댁이 비명을 지름 것과 다시 한번 먹돌이의 발길이 영천댁의 복부를 가격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아흑!" 








영천댁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숨도 쉬지 못할 고통을 느끼고는 배를 감싸 쥐었다. 




먹돌이는 여전히 한손으로 영천댁의 젖무덤을 움켜쥔 채 다른 한손을 뻗어 영천댁의 뺨을 톡톡 때리며 느물거리는 것이었다. 








"어뗘? 한방 더 먹어볼 테야?" 








"아..아녀...으..." 








영천댁은 기가 질려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서 한방 더 맞으면 그대로 죽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던 것이다. 








"그러믄, 시키는 대로 말 들을 테여?" 








"아, 알았..." 








영천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화등잔만해진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 고여 있었다. 








"너는? 너도 한방 더 먹을 테여, 아니믄 고분고분 말 들을 테여?" 








영천댁을 다잡아 놓은 먹돌이가 이번에는 새댁을 향해 눈을 흘기며 물었다. 




새댁은 이미 한번 발길 세례를 받았던 터에 영천댁이 사정없이 얻어맞는 것을 목도한 후라 영천댁 못지 않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처지였다. 








"아, 알았어요..." 








"그랴...그래야 쓰지. 흐흐..." 








먹돌이는 이제야 분이 풀렸다는 듯 한쪽 바윗돌 위에 척 걸터앉더니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비벼 껐다. 




그리고는 아무렇게나 휙 튕겨 버리더니 두 사람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일루 와 봐, 둘다..." 








"왜, 왜여..." 








영천댁이 무릎걸음으로 머무적거리며 한두 걸음 옮기더니 못내 불안한지 더듬거리며 물었다. 








"이런, 샹! 개긴다 그거여?" 








먹돌이가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 아녀..." 








영천댁이 몰라 후다닥 기다시피 먹돌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너도... 빨리 안와?" 








새댁 역시 기다시피 무릎걸음으로 먹돌이 발아래 다가앉았다. 아직도 명치께가 뻐근한 게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거여. 알았으?" 








먹돌이가 시골 훈장처럼 엄숙한 목소리를 흉내내며 두 사람을 향해 내뱉았다. 








"알았으, 몰랐으? 이년들이 꿀처먹었남? 왜 대답을 안해?" 








"아, 알았..." 








"알았어요..." 








두 사람은 동시에 대답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빠져나갈 구멍을 모색해 보자는 암묵의 시선이었으나 두 사람은 이미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서로의 눈빛을 발견하곤 오히려 조그만 희망까지도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자... 고럼 벗어보라고." 








"네?" 








"머라고라...?" 








"벗으라고 이년들아! 귀가 처먹었으?" 








먹돌이가 고함을 뻑 질렀다. 








"싸게 옷을 벗으란 말이여. 안 그러면 내가 찢어불텡게. 알았으?" 








두 사람은 바야흐로 사단이 일어나도 보통 사단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하곤 마른 침을 삼켰다. 




먹돌이의 하는 양을 보아선 온전히 이 자리를 모면하기는 틀렸구나 싶기도 했고, 물려도 된통 미친 개에게 물리게 생겼다는 불안감이 두 사람을 휩쌌다. 








"이, 이보게, 먹돌이... 여긴 새댁이니께... 차라리 나만...응? 나만 해꼬지 하소... 그람 암말 않고 우리끼리 덮어불랑께...응?" 








그래도 영천댁은 손윗사람답게 새댁만은 해코지에서 벗어나게 해보겠다고 먹돌이를 향해 비손을 하며 애원을 해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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