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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결에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부스스 눈을 떠보니 형들이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라면 좀 사오려고…….”

 

“같이 가요.”

 

“됐어. 더 자.”

 

“아니에요. 같이 가요.”

 

“괜찮으니까 있어. 너 아침수업이잖아? 씻고 나갈 준비나 하던가.”

 

진구 형의 배려에 나는 집에 남게 되었다. 그러나 달갑지 않은 배려였다. 혜림이 누나가 씻고 있는지 욕실에서 소리가 들렸고, 지연이 누나는 눈을 부비며 잠을 깨려 하고 있었다. 티셔츠가 살짝 올라가 지연이 누나의 늘씬한 배가 드러나 있었다. 그보다 나는 간밤에 들었던 낯 뜨거운 이야기들 때문에 지연이 누나를 편하게 마주하기 힘들었다.

 

“아, 피곤하다. 윤호야, 잘 잤어?”

 

“네.”

 

“어제 우리 많이 달렸어? 왜 이렇게 찌뿌둥하지?”

 

“그렇죠.”

 

간밤의 지연이 누나는 사라지고, 귀여운 지연이 누나가 내게 다정스러운 대화를 건넸다. 그러나 나는 자꾸 간밤의 지연이 누나가 떠올라 대하기가 너무 불편했다. 지연이 누나는 기지개를 켜고 나서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오늘은 전공수업만 있지?”

 

“네.”

 

“동기들이랑은 아직도 안 친해?”

 

“그렇죠.”

 

지연이 누나와 둘만 있어 숨이 막힐 것만 같던 이 공간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혜림이 누나가 머리카락을 닦으며 욕실에서 나온 것이다. 섹스할 때 욕구를 탐하던 눈빛은 사라지고 상쾌한 눈빛이었다.

 

“잘 잤니?”

 

“네. 누나는 개운해 보이네요.”

 

“개운하네.”

 

“저 씻어도 되죠? 누나 먼저 씻을래요?”

 

“아냐. 너 먼저 씻어.”

 

지연이 누나는 지금 씻기 귀찮은 건지 다시 침대에 드러누우며 내게 양보해주었다. 나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였던지 자꾸 간밤의 일이 떠올라 자지가 솟아 가라앉을 생각을 않고 있었다. 욕실을 나와 보니 선배들은 라면을 먹고 있었다.

 

“너도 어서 와서 먹어.”

 

지연이 누나는 자리를 살짝 옮겨 공간을 만들어주며 내게 권했지만 나는 그 자리로 파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모두 지연이 누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들었던 사람들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내게 적대감까지는 아닐지라도 호의를 갖고 있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저 지금 나가봐야 될 거 같아요.”

 

“아직 시간 좀 있잖아. 먹고 가.”

 

“프린트 할 것도 있고…… 과제 한 거 다시 한 번 봐야 될 거 같아서요.”

 

“그래? 배고플 텐데……. 빵이라도 사서 들어가. 알았지?”

 

“네. 그럼 전 가볼게요.”

 

“나중에 보자.”

 

지연이 누나만이 인사를 해주었고, 다른 사람들은 슬쩍 손을 들어 잘 가라는 표시를 냈다. 나는 서둘러 가방을 챙겨 나왔다. 앞으로는 이들과의 만남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뜻하지 않게 나의 인간관계가 꼬여 버린 것이다.

 

 

 

* * *

 

 

 

“너 무슨 생각했기에 수업 시간 내내 멍 때렸냐?”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도는 지연이 누나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애써 그 소리를 막지 않았다. 생생하게 들려오는 지연이 누나의 야릇한 목소리가 내게 짜릿한 흥분을 가져다주었고 나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래. 근데 넌 어제 어디 갔었냐?”

 

“어제 동기들이랑 술 마셨어.”

 

“어떻게?”

 

“나 어제 들었던 수업에 우리 과 애 하나 있거든…… 걔가 다짜고짜 와서는 마치고 동기들끼리 술 마시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는 거야. 그래서 갔지.”

 

“이야. 우리도 술 마실 동기가 생긴 거냐? 잘 됐다. 진짜.”

 

“잘 된 것 까진 뭐냐. 마시면 마시는 거고 말면 마는 거지.”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의 유일한 동기인 재훈이가 한 가닥의 희망을 안고 왔다. 더 이상 선배들과 어울리기는 힘들 것 같았고, 이대로 학교, 집만 오가는 어두운 대학생활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애들은 어떻디?”

 

“착한 것 같더라. 재밌는 애도 있고……”

 

“다음에도 같이 마시자고 하디?”

 

“너도 한 번 불러서 마시자는 얘기는 나왔었어.”

 

“진짜?”

 

“아, 그것보다 이걸 누가 말했는지가 중요해.”

 

“뭐가 중요한데?”

 

“너 소연이라고 알아?”

 

“아니.”

 

“나도 어제 처음 봤는데 되게 귀여운 애 있어.”

 

“근데?”

 

“걔가 그랬어. 다음에 너도 부르자고.”

 

“그래서?”

 

“답답아! 그 귀여운 애가 너한테 관심이 있다는 거잖아.”

 

“설레발치지 마. 걔가 날 언제 봤다고 관심이야.”

 

“멍청이. 그러니까 관심이 있는 거지. 너 걔 모르지? 근데 걔는 널 알아. 어떻게 알겠어? 관심이 있으니까 눈여겨 본 거 아니겠냐고.”

 

재훈이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당장 여자를 사귀고 싶은 것도 아니었기에 흥미가 당기진 않았다. 그것보다 골치 아픈 일 때문에 관심을 줄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든가 말든가.”

 

“시크한 척 하기는…… 네가 차도남이냐? 웃기지도 않아.”

 

“아무튼 다음에 같이 술이나 먹자. 이제 우리도 동기들이랑 좀 어울려야지.”

 

“네가 웬일이냐? 동기랑 술 먹자는 얘기를 다 하고…….”

 

“그냥.”

 

나의 달라진 태도에 재훈이는 의아한 듯 했지만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 * *

 

 

 

재훈이와 나는 두 명의 동기와 함께 시계탑 아래서 서성이고 있었다. 세 명의 동기가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곧 남은 세 명도 합류해 우리는 학교 앞 호프로 자리를 옮겼다. 커다란 호프집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고, 여기저기 게임하는 소리에 왁자지껄했다. 늘 선배들과 조용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나는 색다른 분위기에 마냥 신기했다. 마치 MT를 온 것 같다는 느낌에 설레기까지 했다.

 

“오늘은 정말 모시기 힘든 윤호도 행차하셨으니 끝까지 달려보자.”

 

지철이의 말에 나는 머쓱해졌다. 그러나 다른 동기들은 내가 온 것을 환영하는 건지 끝까지 달리자는 말을 환영하는 건지 크게 호응해주었다.

 

동기들은 집중적으로 나에 대해 간단한 호구조사를 하더니 흥미를 잃었는지 이내 게임을 하자고 제안을 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게임을 했고, 게임이 무르익은 만큼 취해갔다.

 

나는 게임을 하는 동안 지철이가 말한 소연이라는 아이를 내 눈에 조금씩 넣어두고 있었다. 지철이 말 그대로였다. 언뜻 보면 지연이 누나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 아이는 귀엽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연이 누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귀여움 속에 어딘가 모르게 섹시함을 감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 이미지 게임할까?”

 

지철이의 말에 모두들 끄덕거렸고, 게임은 시작되었다.

 

“그럼 나부터 할게. 가장 안 씻을 것 같은 사람? 하나, 둘, 셋!”

 

다행히 날 찍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더벅머리를 한 지철이를 찍었고, 다른 동기 셋도 지철이를 찍었다. 그 결과에 동기들은 한 마음이 되어 폭소가 터트렸다. 지철이가 그렇게 더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장 편했기에 찍었을 것이다. 나부터도 그랬으니…….

 

“너는 왜 네 무덤을 파냐?”

 

“내가 더러워 보여? 나 매일 씻어!”

 

“이미지잖아. 이미지.”

 

지철이는 소맥을 한 잔 들이키고는 눈을 이글거리더니 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럼 가장 깨끗해 보이는 사람은? 하나, 둘 셋.”

 

이번에는 두 사람이 날 지목했다. 이미지일 뿐이지만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얼굴이 하얗고 피부가 깨끗해 보이는 소연이를 지목했고, 날 지목했던 두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나와 생각이 똑같았다. 소연이는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거 좋은 거 맞지?”

 

“더러워 보이는 것보다는 좋겠지?”

 

지철이가 툴툴대며 대꾸하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너 마음에 담아뒀구나. 남자가 그것 갖고…… 앞으로 잘 씻으면 되는 거야.”

 

시은이는 위로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지철이를 달래주었다. 그러는 사이 소연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소맥을 단번에 마셨다. 다 비운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혀를 살짝 내밀었다가 집어넣는 소연이가 꽤나 귀여워 보였다.

 

“그럼 나 질문할게. 이성친구가 가장 많을 것 같은 사람은?”

 

이번에는 세 명이 날 지목했고, 내가 가장 많은 지목을 받게 되었다. 이성친구가 많았더라도 썩 기분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데 이렇게 지목을 받게 되니 억울했다. 이성친구라고 해봤자 그나마 가끔 연락하는 동창 서너 명과 고3때 헤어져 친구로 지내고 있는 전 여자친구밖에는 없는데 말이다.

 

“너네 잘못 본 거야. 나 차도남이야.”

 

괜한 말에 야유가 쏟아졌고, 나는 무마하고자 얼른 잔을 들어 마셨다. 이제 내가 질문을 해야 하는데 마땅한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재훈이를 보자 문득 재훈이를 타깃으로 할 수 있는 질문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놀았을 것 같은 사람은?”

 

질문이 끝나자마자 재훈이는 날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고, 예상대로 재훈이의 몰표였다.

 

“너 이렇게 나왔다 이거지?”

 

재훈이는 술잔을 비우고 내게 복수하겠다는 눈빛으로 가득 품고 질문을 던졌다.

 

“이성에게 대쉬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 사람은?”

 

나와 시연이는 두 명에게서 지목을 받았고, 나머지 세 명은 소연이를 지목했다.

 

“아냐. 나 인기 없었어.”

 

“그래? 알았으니까 마셔.”

 

소연이는 입을 삐죽이고는 맥주잔을 입에 갖다 대려다가 멈추었다.

 

“흑기사 불러도 돼?”

 

“물론이지. 불러, 불러.”

 

지철이는 환호하며 소연이의 제안을 수락했다. 소연이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남자 동기들을 둘러보았다.

 

“음…… 윤호야 흑기사 해줘.”

 

“거절하면 두 잔이지?”

 

내 대답에 소연이의 표정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시은이는 이 상황이 흥미로운 듯 끼어들었다.

 

“거절하려고? 진짜 차도남이다.”

 

“아냐. 이리 줘. 마실게.”

 

나는 소연이에게서 잔을 건네받아 쭉 들이켰다.

 

“소원! 소원! 소원! 소원!”

 

모두들 내게 소원을 말하라고 합창을 했지만 나는 딱히 받고 싶은 소원이 없었다.

 

“킵 하는 건 안 돼?”

 

지철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게 어딨어. 빨리 말해.”

 

“좋아. 그럼 춤 춰.”

 

소연이는 당황해하며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진짜 춤 못 추는데 다른 거 하면 안 돼?”

 

하기 싫은 기색이 역력해 나는 바꿔주려고 뭘로 바꿀까 생각했지만 시은이 생각은 달랐나보다.

 

“안 돼. 소원 한 번 말했음 끝이야. 그걸로 해야 돼.”

 

소연이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호프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소연이의 귀여운 외모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고 언뜻언뜻 보이던 섹시함이 나오는 게 아닐까 기대했지만 소연이의 말이 맞았다. 소연이가 추는 춤은 춤이라기보다는 율동에 가까웠다. 역시 그런 모습이 소연이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연이는 그냥 귀여운 아이였던 것이다.

 

몇 번의 질문이 더 오갔고, 나는 두 번의 술을 더 마셔야했다.

 

“우리 서로의 이미지는 알았으니까 진실게임 한 번 해볼래?”

 

재훈이의 제안에 소연이는 망설였고, 분위기를 주도하던 지철이도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나머지는 좋다고 했기에 아무 말 않고 있던 소연이와 지철이는 거절할 틈도 없이 참여하게 되었다. 재훈이에게 질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진실게임은 시작되었다.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이 오갔고 어느덧 지철이의 차례가 되었다.

 

“자, 그럼 일단 좋아하는 사람 있어?”

 

“어.”

 

“우리 과야?”

 

“어.”

 

“이 자리에 있어?”

 

지철이는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대답했다.

 

“어.”

 

“소연이야?”

 

시은이의 질문에 지철이는 잔을 집어 들었다. 시은이인지 예지인지도 물어보는 바람에 지철이는 두 번 더 술을 마셔야 했다. 비록 지철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두가 아는 눈치였다. 나도 오늘 술을 마시며 지철이가 소연이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였으니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을 텐데 지철이는 밝히지 않았다.

 

지철이의 차례가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지만 내게는 흥미로운 대답이 없었기에 금방 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연이의 차례가 되었다.

 

“소연이 너도 기본 질문. 좋아하는 사람 있어?”

 

“좋아하는 지는 잘 모르겠고 관심 가는 사람은 있어.”

 

소연이의 대답에 재훈이와 나를 제외한 동기들이 놀라는 눈치였다. 자기네들도 같이 다니면서 전혀 그런 눈치를 채지 못했나보다.

 

“우리 과야?”

 

“어.”

 

“혹시 이 자리에 있어?”

 

지철이의 눈은 반짝였고, 소연이는 고민에 휩싸인 눈빛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 있어. 이제 그만 물어봐줘.”

 

소연이는 간절히 부탁했다. 다른 동기들도 이 정도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확을 거뒀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진실게임도 끝이 났지만 다른 게임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와 재훈이는 모르는, 다른 동기들끼리 술을 마셨을 때 일어난 에피소드를 곱씹고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가 그리 재밌지도 않았기에 재훈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너 선배들이랑 무슨 일 있어?”

 

“왜?”

 

“요즘 좀 뜸해진 거 같아서…….”

 

“바빠서 그런가보지. 2학년들 과제 많다고 했잖아. 여자친구는 학교 재밌대?”

 

재훈이와 2년 넘게 만나고 있는 그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지방 전문대에 다니고 있다. 언젠가 재훈이가 여자친구의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을 했었다. 물론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도 재훈이는 여자친구의 친구들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놀기에는 그만이라고 내게 유혹했었다. 그 말에 은근 기대하고 있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맨날 술 먹고 논대. 말로는 술만 먹고 논다고 그러는데 모르지 또.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걱정 되냐? 너 버릴까봐?”

 

“걱정은 무슨……. 지가 나 버리면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재훈이의 의기양양한 표정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화장실을 가니 이미 사람이 있는지 문이 잠겨 있었다. 나는 바람이나 쐴 겸 해서 밖으로 나왔다. 가게 옆에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연이의 얼굴이 보였다. 소연이는 내게로 다가오더니 내 옆에 걸터앉았다.

 

“왜 나와 있어?”

 

“바람이나 쐴까 해서……. 넌 왜 나왔어?”

 

“나도 바람이나 쐴까 해서……. 사실 너 나가는 거 보고 나왔어.”

 

“왜?”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하려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먹고 싶은데?”

 

“사줄 거야?”

 

“사줄게.”

 

“됐어. 그냥 앉아서 바람이나 쐬자.”

 

“그러든지…….”

 

“너…… 아까 진실게임 할 때 지연선배랑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 한 말 정말이야?”

 

“알다시피 지연 누나는 남자친구가 있잖아. 거기서 내가 무슨 사이가 되는 게 웃긴 거지.”

 

“그럼 아무런 마음도 없는 거야?”

 

“그냥 친한 선배일 뿐야.”

 

“지금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 아무도 없는 거야?”

 

소연이는 취했는지 아까 진실게임할 때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물어보고 있었다. 난 아까와 똑같이 없다고 하려다가 농담을 던졌다.

 

“있어. 너!”

 

내 농담에 소연이는 조그마한 손으로 내 팔을 톡 쳤다.

 

“뭐야. 장난치지 말고…….”

 

“오늘 너 보고 반했잖아. 장난 아냐. 네가 젤 좋아.”

 

“됐어.”

 

소연이는 계속된 나의 장난에 입을 삐죽거렸다. 귀여운 아이였다.

 

“그럼 너는 관심 간다는 사람이 누구야?”

 

소연이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대답했다.

 

“너!”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똑같이 따라하냐? 하여튼 어린애 앞에서는 물도 마음대로 못 마신다니까.”

 

“나도 장난 아냐.”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도 너 좋아하고 너도 나 좋아하는 거네.”

 

“넌 장난이잖아.”

 

“너도 장난이잖아.”

 

소연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 아니야.”

 

소연이의 말이 진심으로 느껴졌다. 소연이는 힘들게 말했을 텐데 나는 소연이의 마음을 진지하게 받아주지 않은 것 같아 괜스레 미안했다. 나는 애써 소연이의 말을 못 들은 체 했다.

 

“이제 들어갈까?”

 

“먼저 들어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소연이를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다시 앉았다. 우리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들어가기 싫으면 좀 걸을래?”

 

“아니. 그냥 여기 혼자 앉아 있을 테니까 넌 들어가.”

 

난 소연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소연이의 손을 꽉 쥐고 걸었다.

 

“알았어. 갈 테니까 손 좀 놔.”

 

나는 그래도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우리는 근처를 한 바퀴 돌아 다시 호프집 앞까지 왔다. 그때까지 우리 두 사람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너무 오래 나와 있었던 것 같아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려고 호프집 문을 열었다.

 

“잠깐만.”

 

“왜?”

 

“이 손잡고 들어갈 거야?”

 

난 소연이를 내 앞에 세워 양 어깨를 잡고 호프집 안으로 이끌었다. 소연이는 내게 떠밀려 우리 자리까지 갔다. 시은이는 마치 우리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쏘았다.

 

“너네 둘이 뭐하고 왔어?”

 

“아이스크림 먹고 왔어.”

 

내 대답에 잔뜩 굳어있던 지철이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며 투덜댔다.

 

“너네끼리만 먹냐? 치사하게……. 우리 자리 옮기기로 했으니까 가자.”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갈지 정하려는데 시은이가 집에 가야한다고 했다. 그러자 소연이도 덩달아 집에 간다고 했고, 파장분위기가 되었다. 그래서 다들 집으로 가기로 해 그 자리에서 흩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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