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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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죽 


선비죽

 

지금도 나의 책상 위에는 오래 전에 찍은 듯한 흑백사진 한 장이 액자에 넣어져 나를 향하고 있다. 일을 할 때나, 편안한 안락의자에 기대어 잠시 눈을 붙이기 전에 나는 언제나 그 사진을 보면서 웃음짓곤 한다. 지금의 나를 있게 했기에….

‘영선아, 잠 안 잘겨?’

‘먼저 주무셔유. 조금만 허면 다 했시유.’

좁은 방안에서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칼잠을 자던 그 삯월세방. 나는 벗어 나고 싶었다. 신분 상승이라든가 입신양명 같은 허울좋은 제목이 아니라, 그냥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우리 삼남매 중에서도 유일 하게 대학을 나왔고, 그것도 공기업에 떡 하니 합격해서 다니고 있었지만, 나의 생활은 그 끝이 안보였다. 언제나 양복은 때가 꼬질꼬질 하게 낀 것을 안 보이려고 짙은 색으로만 입고 다니던 단벌 신사. 남들이 모두 아무 생각 없이 어울려 다니는 점심 시간에도 나는 무슨 이유를 대든지 간에 일행과 떨어져,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혼자 먹곤 했다. 모두 결혼을 얘기하고, 금요일의 술자리를 기대하는 시간에도 나는 집안의 먹고 살 걱정으로 정신이 뺑글 돌 지경이었다. 회사가 끝나면 대학 때부터 알음으로 연줄이 되었던 과외 공부에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 판이었고, 새벽에는 우유배달에다, 주말에는 새벽같이 수산시장에 나가 삽을 들고 얼음을 퍼다 날랐다. 우리 집은 대대로 가난을 대물림 하는 집안이었다. 고향을 박차고, 이렇게 서울에 그것도 판자촌에 정착해서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는 이유도 알고 보면 나 때문이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 초췌한 우리 집에 어느 스님 한 분이 시주를 오신 것이 발단 이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불쌍한 중생 구제를 위해 떨치고 나선 빈승에게 밥 한술 적선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먹기에도 모자랄 보리쌀 한줌을 듬뿍 퍼서는 스님의 바리떼에 넣어드리고 합장을 하셨다.

‘이렇게 시주를 하셨으니 한 말씀 드려도 될는지…’

‘뭔디유?’

‘태어난 아기가 무척 영민하군요.’

‘월래? 시방 뭐라 그러셨시유? 애기 우는 소리도 안났는 디, 워째코롬 그리 잘 아신다요?’

‘집에 영험한 기운이 흘러서… 다만….’

‘뭐가 잘 못 됐시유?’

‘빈승이 보기에 두 가지가 아드님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 같군요. 한가지는 시주님의 뻐쩡코와 나머지는 이 집안의 터 때문 인듯 싶습니다. 시주님의 비강이 하늘을 보고 있어 아드님의 몸 속에 세상의 잡기를 집어넣을까 걱정 되는 군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툇마루의 기둥패기에 냅다 코를 들이 받으셨다고 한다. 코뼈가 내려앉고,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 내리는데도, 어머니는 아랑곳 하질 않으시고 두 손을 합장한 채로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시는 스님께 연거푸 묻기 시작하셨다.

‘코때기야 이만 허면 됐구유, 누가 보기락도 하금써? 아니 터는 무신 말 이래유? 여기서 그럼 뜰까유?’

스님은 터의 기운이 너무 약해서 나를 집안에 붙잡지 못함으로 인해 밖으로 떠돌 것이라면서 이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단다.

‘마지막으로 꼭, 전해져 내려오는 그 비방을 잊지 마십시오. 그럼 이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화이고,워찌코롬 그 비방 얘기 까정 아신다냐, 잉?’

어머님의 말씀에 의하면 고개를 숙인 채, 합장을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스님은 벌써 고갯마루 멀리로 바람같이 사라지고 계셨다고 하니,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려 앉아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으신지 의심도 가는 그 오토바이 안짱코를 보면, 믿어야 되겠고… 아무튼, 그 날 이후로 우리 세 식구는 5대를 걸쳐 살아오던 지지리도 궁상이었던 그 시골 고향집을 미련 없이 등지고 서울로 상경했다고 한다. 내 밑으로 두 동생이 태어나도록, 그리고 내가 성장하여 그렇게 직장을 잡을 때까지 우리 집안은 스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내내 괴로운 가난의 형벌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께서는 여름이면 광주리에 찐옥수수를 이고 내다 파셨고, 겨울이면 똥지게 같은 마대자루에 조잡하게 생긴 유리상자를 걸어 찹쌀떡을 팔러 다니셨다. 아버님은 언제나 허드렛일을 하셨는데, 아궁이 놓는 솜씨가 좋으셔서 온돌을 새로 놓는 다든가 아궁이를 손 보는 곳이라면 시절을 가리지 않고 따라 다니셨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아버님은 시커먼 솔쑤시게를 어깨에 건 채, 굴뚝 청소를 하러 다니셨고, 가끔은 손으로 돌리는 원형 숫돌이 달린, 구두닦이 통 같은 것을 매시고 온 동네로 칼을 갈러 다니셨다. 여름이면 골목마다 우산 고치러도 다니셨고, 아무튼 두분 다 억척 스럽게 살았지만 다섯 식구의 입에 풀칠 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겪었었다. 그런 두 분을 보며 자란 나도, 그냥 놀고 먹을 수 만은 없었다. 이리저리 시간에 쫓기며, 돈을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유독 나만 대학을 보내시고 나머지 여동생과 남동생은 여상과 공고를 나오게 하셨던 것이 그 다른 이유였다. 언제나 동생들 볼 면목이 없던 나는,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남들처럼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해보고, 그 낭만이 넘친 다던 축제 한번 가 보질 못했다. 졸업여행 뿐만이 아니라, 거금이 들어가야 했던 사은회 조차도, 나는 눈물을 머금고 참석하질 못했다. 당장, 눈 앞의 생활고가 막혀 있는데, 여유롭게 양복이나 빼 입고, 평소에 절대로 먹지도 않는 그런 음식들을 대하면서 목구멍에 넘기기가 도저히 여의치 않을 것 같아 사양 했던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나를 아껴주시던 교수님들 에게 송구스럽게도, 키워주신 은혜를 감사 드리지도 못하고 지 살 길, 바쁘다고 참석을 못했던 것은 지금도 무척 후회가 된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새벽 이었다. 나는 수산시장의 얼음 창고에서 밤새 얼음을 퍼서 붓다가 몰려오는 졸음을 이겨보려는 마음에 냉동창고 밖으로 나와 빌린 담배 한가치를 피우고 있었다. 매퀘한 연기가 폐부를 찌르는 도중, 내 앞에는 붉은 새벽녘의 태양이 용틀임을 하는 모습으로 떠오르기 시작하고….나는 그 모습을 멍한 눈으로 담배가 다 타 들어가 손 끝이 뜨거워져, 어쩔 줄 모를 때까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자, 나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대목이 생각났다. 어느 재벌의 젊은 시절, 어느 날 아침, 떠오르는 해를 바라 보면서 그간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고, 돈을 벌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그 구절. 그때의 상황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처럼 기억 되었다. 나는 얼음을 푸던 삽을 내동댕이치고 집으로 와 버렸다.

‘엄니, 지도 공부 혀야 쓰겄는디요!’

‘자알 생각 혔다. 언젠가 니 눔이 그럴 줄 내 알고 있었당게!’

어머니께서는 두 말 않고, 모든 것을 때려 치고 고시공부를 하기로 한 나를 칭찬하셨다. 엄니는 그 날로 가까운 절에 등을 올리시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절에 발걸음을 하셨고…그러나, 마음만 그렇게 먹었을 뿐이었지, 도통 내 주변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무 것도 없는 빈털터리에 쥐꼬리 만한 퇴직금 으로는 책값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나는 절로 들어가기로 한다. 절에는 고시공부를 팽개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책들이 수북했고, 그나마 새 것들도 많았다. 나는 틈틈이 절에서 전등행사나 각종 법회가 있을 때에 도우미로 스님들을 도와 드리면서 절밥에 기대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집에 와보니 내가 잘 곳이 없었다.

‘엄니, 저 샥시는 누군디유?’

‘너랑 혼사 맺을 갹씨 아닌가베? 너는 잘 모를 것이네만 순임이라고 내가 고향에서 특별히 데불고 왔다 않혀? 시방은 나랑 숙식혀고, 식당 찬모 일을 돕지만 서도, 저 쫌 보라니껜? 월매나 이목구비가 짠 한디?’

이목구비가 짠하기는 커녕, 짠 단무지 만큼이나 인물이 멋대가리 없이 생겨서 나는 그 날로 산사로 다시 돌아와 버렸다. 아니, 인물을 골라 오시려면 제대로 된 인물을 골라 오시던가 하지, 그게 뭐야? 나는 어머님의 결정에 뒤틀릴 대로 뒤틀린 심사를 책상을 쿵쾅거리며, 풀고 있었다.

‘어흠…거 영선이 학생 있는가?’

‘네, 스님 저 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집에 갔다 왔다고? 그런데 어찌 이렇게 새벽같이 돌아왔는가? 부모님과 좀 있다 오지 않구서?’

‘그게 글쎄….’

나는 간략하게나마 집안에서의 사정을 설명했다.

‘허, 그런 일이, 그래서 자네 얼굴이 그렇게 되어 있었구만.’

‘제 얼굴이 어디 잘못 되기라도….’

‘자네, 판검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글쎄요, 지식이 미천해 놔서…’

‘세상의 운명 중에는 칼을 쥔다는 말이 있네, 어떤 이의 손에 칼을 쥐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의원이 되고, 어떤 이의 손에 쥐어지면, 그것은 사람의 목숨을 가늠하는 재판관이 되며, 또 어떤 경우에는 사람의 목숨을 해하는 칼이 되고 말지. 오늘 보니 이제서야, 자네의 안광에 품속의 칼이 빛을 발하는 것을 느끼게 되네.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지만, 자네에게 지금 부터가 중요한 기점이 되리라고 여겨지네만, 더욱 공부에 정진하게나,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야. 다만….’

‘다만 이라뇨, 스님?’

‘인연의 소중함을 망각해서는 아니 되네. 나무아미타불’

스님께서는 뜻 모를 소리만을 남기고 방을 나가셨었다. 나는 집의 일들을 잊고 미친 듯이 책에 파묻혔다. 밤이 새는지, 밥을 먹었는지 까먹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고시 1차 시험을 앞두고 나는 마지막 정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님께 시험을 치루러 시험장으로 곧장 가겠다고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섭섭해 하셨지만 가족들의 일을 잊고서 시험에 몰두하기 위한 나의 한 방편이기도 했다. 시험 날 새벽까지 나는 그 동안 밀린 잠을 실컷 자고, 평안한 마음으로 이른 새벽, 어둑어둑한 시험장을 걸어가고 있었다. 시험장 앞에는 너무 이른 관계로 사람들이 없었다. 철문도 닫혀 있었기에 나는 어떻게 수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되기 시작하고….그 때였다. 저 멀리서 두 여인네가 헐레벌떡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와 고향에서 올라 왔다던 순임이라는 촌각시였다. 정말로 촌시런! 어머님의 손에는 양동이같이 생긴 물건에 보자기를 둘러 싼 물건을 가슴에 꼭 쥐고 계셨고, 두 사람의 모습은 파출부 모녀 같은 인상이었다. 이래서 내가 집에 않 갔다니깐 글쎄… 어이구 속 터져!

‘엄니, 시방, 이 날새벽에 뭔일 이래유? 저 꼬맹이 아녀유, 혼자서도 시험 잘 치고 간다니껜…’

‘얼굴이 족제비 박상이 됐구먼, 우리 불쌍한 자슥….어여 들어가기 전에 이것 좀 먹어야? 얼릉?’

그때, 수험장의 대문이 열렸다. 경비 아저씨가 문을 열면서 교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보자기를 풀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아주머니, 여기 시험 치는 데라구요, 아시겠어요?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니깐요! 어서 그거 들고 썩 꺼지지 못해요? 사람들이 보면 아침부터 재수 없다고 나를 들들 볶을 텐데, 으이그,….복 나가게 생긴 면상하고는…’

어머니는 주춤주춤 보자기를 풀던 손이 민망한지, 풀지도, 묶지도 못하고, 구섞으로 슬금슬금 끌다시피 하면서 그 양동이 같은 물건을 조심스레 옮긴다.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영선아, 그래도 이건 꼭 먹어야 쓰겄구….’

그것은 나무로 된 큰 젖갈통 같은 양동이 였다. 그 안에는 방금 전까지 끓인 것 같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 한 그릇이 담겨져 있었고, 어머니는 뜨겁지도 않으신지, 그 사발에 담긴 죽을 내 앞에 챙피한 것도 모르는 채, 웃으시면서 내미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발을 뺨따구 후려치듯이 내쳤다.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며, 그릇은 박살이 나고, 길바닥에는 팥죽색의 죽이 지천으로 넘쳐 흘렀다.

‘아-야, 영선아, 그러면 못 쓰는구먼, 그러면 안되는 겨. 이걸 워쩌커나?’

어머니는 챙피한 그 행동도 모자란 듯이 땅바닥에 쏟아진 죽을 손바닥으로 긁어 담아 통에다 담기까지 하셨다. 나는 너무도 챙피 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획 돌쳐서 수험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나는 속으로 곱씹으며, 뒤도 돌아보질 않았다.

-““내가 씨발, 이러니까, 고시공부 했지, 왜 했겠어? 꼭 성공해야 돼! 보란 듯이 합격해서 저,저 쪽 팔리는 구덩이에서 반드시 탈출해야지.””-

나의 기원처럼 나는 1차 시험을 무난히 치룰 수 있었다. 집과는 완전히 연락을 끊어 버렸다. 이 세상에 혼자 뚝 떨어진 사람 처럼 나는 고독한 경주를 하면서도 그게 더 홀가분하고 좋을 수 없다는 스스로의 자위에 빠져 있었다. 마지막 시험이 있기 이틀 전, 산사로 그 촌각시가 그것도 열나 촌시런 복장으로 나를 찾아왔다.

‘영선씨, 안녕하셨시유? 얼굴이 많이 안되 보이는 구만유.’

‘어떻게 오셨슈?’

나는 퉁명스러이 되받았다. 일분 일초가 아까우니 본론만 얘기하고 바로 산을 내려가라고 일침을 놓았다. 왜냐하면 빨리 산에서 내려가지 않으면 서울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놓쳐서 꼼짝없이 산사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지형적인 특성 때문이기도 했다.

‘엄니가 심허게 아프셔유. 시방 일도 못 나가신 지 보름이 넘었구만유.’

‘연세가 연센디, 아프시지 않겄슈? 워째 시험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소리는 못헐망정, 그런 소리만 해쌌는지 동체 모르겄네.’

‘…. 저 실은 유, 영선씨에게 부탁이 있어서 왔구만유.’

‘뭔 부탁?’

나는 말끝도 잘라 버렸다.

‘영선씨가 절 맴에 두덜 않는 거, 저 잘 알아유, 허지만 엄니가 몸져 누우신 이 마당에 지가 나설 수밖에 없어서 이렇게 사정혀는 거랑게요.’

이제는 그 사투리 마저도 나를 진저리 치게 만든다.

‘뭔 일인디?’

나는 말을 막 까대고 있었다.

‘저랑 앞으로 혼인 않하셔도 되유, 구지 강요할 생각, 눈꼽 만치도 없시유. 그러니, 마음에 부담 갖지 마시구유, 오늘 저랑 같이 자 주면 안되겠시유?’

이건 또 무슨 소린지? 결혼할 마음은 없는데 같이 하룻밤 자자고? 나야 손해날 것은 없었다. 어쩐 일인지 주지스님도, 동자승까지 몰아서 그날 점심때 즈음, 서울의 불교대학에 이 사찰에서 유학 보낸, 학승들을 보러 가신다면서 절을 비우셔서 절은 고즈넉한 분위기에다 두 사람만이 남겨져 더더욱 기회는 좋았다. 밤이 어스름 해지자, 순임이는 계곡의 찬물에서 몸을 씻고, 일찌감치 방으로 들어왔다. 시험을 앞두고 치뤄지는 섹스가 부담이 되기는 했어도, 어차피 떠나간 혼인 얘기를 끝끝내 깨끗이 결말 지워 주자는 의미에서 나는 결행을 마음 먹었다.

‘임신은 안되겄지?’

‘걱정 마셔유, 달걸이 한지 얼마 안 되서 임신 안 될 거구만유.’

나는 흡사 제비족처럼 그녀에게 느글거리는 목소리로 언질을 띄웠다.

‘나랑 살을 섞고 나면 왠간한 남정네는 성에 않 찰 거인디?…’

순임이는 괜찮다면서 내 앞에서 옷을 벗었다. 신성한 사찰의 구섞 방에서 그것도 섹스를 위해 옷을 벗고 있는 내가 계면쩍기는 했어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보지는 보지였으니까… 도시의 처녀 같지 않게 군데군데 풍성한 살집하며, 탄탄한 팔뚝, 건실한 장딴지. 씨발, 매력, 꽝이었다. 나는 애무고 뭐고 없었다. 그냥 좇대가리를 순임이의 입에 쳐 박고 외치기를,

‘어여 빨어! 뭐하고 있는겨?’

생전 처음, 그것도 혼인을 할 뻔 했던 남자에게 창녀 취급 당하면서 좇을 입에 문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루륵 흘러 내렸다.

‘초상집도 아닌디 워디서 찔끔찔끔 눈물 짜고 있디야? 내 좇 뺄꺼나?’

‘아녀유, 아녀유, 지가 잘 못 했구먼유, 지가 잘 해볼랑게, 노여워 마셔유.’

눈물을 참느라 목젖이 꺽꺽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파렴치한 처럼 그녀의 입에 허리를 놀렸다. 이번에는 서러워서가 아니고, 치밀며 기어이 목구녕을 막아대는 내 좇대가리로 인해 쏟아지는 토악질 이었다.

‘억억….’

‘그려 잘 하는구먼, 가르칠 필요도 없구먼, 그리맹키로 잘혀는 디 무신 교육이 필요하겄냐?’

나는 좇을 입에 쑤셔 박으면서도 그 풍덩한 젖무덤을 사정없이 쥐어짰다. 토악질에 더하여 이제는 그 쥐어짜는 젖퉁이의 통증으로 눈물을 순임이는 또 쏟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그래, 이 씨부럴 년, 혼인할 마음 없다 혔지? 오냐, 그래, 너 오늘 죽어 봐라 하면서 순임이의 상체를 이불 위로 밀어 뜨렸다. 벌렁 뒤로 나가 떨어지는 몸 위로 나는 냉큼 올라탔다.

‘어구구, 어구ㅡ구.이게 뭐당가?’

‘뭐긴 뭐여? 내 좇대가리지!’

나는 애무고, 순서고 없이 순임이의 보지를 단번에 내 좇으로 갈라 놓았다. 순임이는 눈을 흡 부릅뜨고, 입을 커다랗게 벌린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쑤셔 박는 내 좇에 기암을 토해놓고 있었다. 나의 몸에는 손도 대질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펑펑 울어 재끼고…나는 재수없이 울고 지랄 이라면서,

‘니년도 엄니랑 똑 같은 게벼, 촌시럽고, 재수없고, 가난혀고…..’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분을 삮이질 못해 순임이의 보지를 찢어 놓을 듯이 거시게 쑤셔 박았다. 어차피 인연도 안될 년, 좇맛 이나 흠씬 보여주자는 마음에서…순임이는 그래도 꿋꿋하게 입을 악 다물고 내 좇질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려, 박아줄팅께, 내 니년 눈까리 확 뒤집어 지게 박아줄팅께, 걱정 붙들어 매라고, 잉?’

나는 해도 너무 하고 있었다. 이미 처녀 보지를 찢어 놓은 것도 모자라, 이불 위에는 피가 벌겋게 번지면서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주고 있었고…

‘억억억,, 그려, 보지맛 하나는 게걸차구만….윽윽윽’

나는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그녀의 위로 쓰러졌다. 밤낮을 잊은 듯이 공부에 전념하던 나에게 이런 험한 섹스는 체력을 단박에 고갈 시키기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하고 있었다. 숨을 씩씩거리고 있는 나의 옆에서 울음을 참아가며, 등을 돌리고 몸을 옹크리고 있는 그녀를 바라다 보기조차 싫었다.

‘이제, 끝난겨,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것도 없는 겨, 알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무딘 어깨마저도 미워 보였다. 그렇게 그녀와의 거친 섹스가 끝나고, 그녀는 조용히 산사를 다음 날 떠났다. 나는 밖으로 나가 배웅조차 하질 않았다. 어차피 인연이 안될 사람, 끝까지 보고 싶지도 않았기에…그렇게 그녀와 나는 인연의 끈을 끊어 버렸다. 그녀가 내려가고, 나는 오후 마지막 버스로 서울로 올라왔다.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여관에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항시 하던 버릇대로 옷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나는 새벽같이 여관을 나섰다. 여관 골목을 나와 그곳으로 가기 위해 큰 길을 돌치는 순간, 그 앞에는 순임이가 서 있었다. 초췌한 모습으로, 1차 시험때 어머니가 보듬고 있던 그 보자기로 싼 무데기를 가슴에 안고서 말이다.

‘뭔 일이랴?’

‘엄니가 많이 아프셔유.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더 드리겄시유. 이 죽, 꼭 드셔야 하겠구만유. 무슨 일이 있어도, 만일 드시지 않을 거면 ………저를 죽이셔야 할거 여유.’

눈에 불꽃이 튀는 그녀의 서슬은 놀라우리 만치 강렬하고 힘이 넘쳤다. 나는 내 앞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보자기를 열고, 나무통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그릇을 건네는 그녀의 위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하고 그릇을 받아 쥐었다. 나는 그때서야, 어머님이 죽을 갖고 오셨을 때와 같은, 약지 손가락에 붕대를 한 그녀의 손가락을 볼 수 있었다. 어째서 두 사람, 모두 같은 곳에 붕대를….그러나, 물을 수가 없었다. 죽을 냉큼 삼키지 않으면 맞을 것 같은 살벌한 분위기 였기에… 길바닥에 내가 내팽개쳤던 그 죽은 의외로 맛이 좋았다. 팥죽색이 아니라 고기국물을 풀어놓은 것 같은 색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죽을 들이키면서 그녀가 산을 내려가고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을 이렇게 만들어 왔다는 사실에 저으기 놀라고 있었다. 속이 든든해지고 있었다. 온몸에서는 새벽의 찌뿌드드함이 물러가고 새로운 활력이 다시 자리하고, 내가 죽을 다 들이키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보자기 안에 그릇을 다시 싼다.

‘큰일 다 마무리 혀시면 엄니께 꼭 가보셔유. 많이 아프시당게요…’

그녀가 울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래도 사법고시 합격자가 신문에 게재될 때까지 집에 가질 않았다. 어차피 떨어진 다음이라든가 아니면 당락도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픈 마음은 없었기에…..

‘와, 합격이다!’

내 이름 석자가 확인 되는 순간, 나는 공교롭게도 스님이 예전에 하신 인연의 소중함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느낌과 함께…나는 날듯이 산사를 뛰어 내려왔다. 스님의 장하다는 칭찬도 듣는둥 마는둥, 나는 바람같이 산을 내려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집….그런데, 좁아 터진 방 앞에는 가족들의 신발이 모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내가 방문을 열자, 방안에는 누워계신 어머님과 그 곁에 둘러선 동생들과 아버님, 그리고 아직도 집에 버티고 앉아있는 순임이가 보였다. 문소리에 순임이가 어머님에게 얘기를 했다.

‘엄니, 정신 좀 차리고 일어나 보셔유, 영선씨 왔구만유.’

‘으으, 우리 아가 ….왔냐? 장허다…..내 그럴 줄 알았다니껜…니 눔은 꼭 해낼 줄 알았다니….’

어머니는 힘이 드셔서 말씀을 더 잇지 못하셨다.

‘엄니 워찌 된 일이래유?, 이지경이 될 때 까정 병원은 안가고 뭐 하셨시유? 야?’

‘병원은 무신, 그리고… 말여…..그 죽 ….먹었땀시로?’

‘야, 이 판국에 죽은 뭐할라고 들먹인데요?’

‘니눔이 깨빡쳐 분 그 죽은 않 먹길 잘혔어. 내 병든 몸으로 맹긴 죽을 먹었시면 시험도 떨어졌을 거 아닌가베?…..’

아버님이 나를 바라보시면서 말씀을 이으셨다.

‘니 눔이 먹은 죽이 보통 죽이 아니여. 니 엄니쪽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 이랑게. 그 죽을 만들고 몸져 누워 병원을 찾았는디, 이미 손을 쓰기 어렵다고 않하데? 그때 까정 우리도 몰렀지. 에이, 무심헌 사람 같으니라구…다시 죽을 멕여서 시험을 보게 혀야 하는디, 그럴 사람이 있시야지, 반드시 집안 사람으로 모친 아니면, 안사람이 해주어야 하는 것인디, 순임이가 혼인도 않 하고 욕봤지.’

어머님은 그 말씀을 잔잔히 나누시는 아버님을 올려다 보시면서 내 손과 순임이의 손을 잡아 끌어서는 같이 부여 잡으시고 포개어 놓는다.

‘느긋들 잘사는 폼새를 내 봐야 쓰겄는디….’

‘하이구, 잘 살거구먼, 저런 효부는 당신말고, 순임이 밖에 없는 거 몰러? 이눔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랑게. 저 죽은 밤새 잠을 안자고 맹글어 가꼬, 과거 보러 떠나는 자식이나 서방에게 올리는 기원정성의 죽이여. 순임이나 엄니나 약지에 감은 붕대, 너도 눈이 있으면 봤을 것이다. 그게 뭔지나 아냐, 시방? 밤새 죽을, 그것도 불에 바로 올려 놓지도 않고, 뜨순 물에 중탕을 해가며, 그 사이에 약지를 칼로 끊는 것이여. 그리고 나서 실을 척하니 감아서 밤새 죽을 휘돌리며, 저숟는 죽에 그 실을 내려뜨리는 거이지. 약지를 나와 실을 타고 흘러내리는 선지가 촐촐촐, 죽으로 흘러 들어가고, 실피 보다 가늘게 맹키로 익어번지기 땜시, 입에 씹을 것도 없이 곱게 익는 거여, 알기나 아냐? 이 무심한 눔아! 끅끅…. 피가 멈추고 나면 또 칼로 붙었던 손가락을 째고, 피가 굳으면 또 째고,….월매나 살이 아프겄냐? 윽윽… 그리혀서 새벽까지 맹그는 죽이 바로 그 선비죽 이여.’

나는 눈물이 터져 나와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내 손과 순임의 손을 잡고 계시던 어머님의 힘이 스르륵 풀리고 있었다. 암과 싸워 오시면서 그 고통이 대단 했을 것이지만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의 어머님은 주무시는 것처럼 평화롭게 숨결을 놓으셨다. 내 개인 사무실의 책상에는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사모관대와 족두리를 하시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찍으신 그 흑백 사진이 놓여있다. 한번 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무덤덤하지만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님을 다시 뵐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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