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 完
기억 - 完
네가 한 말. 지금도 날 서럽게 하는 네 말.
"오빠..나 병 ...없거든요..신경쓰지 마요."
아, 그러지 마. 그런 소린 안했으면.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닌 걸..
"나도 병 없어..신경쓰지마. 그런데 피임은..?"
"걱정마요 오빠한테 책임지란 말 안해."
이상하게 네가 한 저 말이 내게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뭘까.
오빠
일부러 그런 것 아니잖아..알아..괜찮아..나 피임해..
그리고 걱정하지마요..나 병없어..그래도 나 건강하다구요..
오빠..정말 걱정하지마요...응?
너와 건강검진을 함께 했을 때
하나하나 숨어있던 병든 네 몸 곳곳을 보며 속이 탔다. 네 앞에서 아무 내색은 안했지만.
몰랐을거야. 몰라야지.
네가 원하던 대로 널 그저 그렇고 그런 여자로만 대해줘야 했으니까.
조금이라도 살갑고 따스한 염려의 말을 들으면 불안해 하던 너.
네가 빠져든 깊고 깊은 자기비하의 늪. 허우적거리던 너.
난 아무 것 할 수 없다.
넌 언제나 내겐
에이스 일 뿐이니까.
두 번 째 본 날
넌 생글거리며 웃었어. 그리고 내 귓가에 속삭이던 말. "오빠..우리 그냥 콘돔 하지마요."
한동안 난 너에게 미쳤었다. 너역시 내게 미쳤었지.
아니, 서로의 몸에 미쳤었나. 뭐였을까. 뭐였지..
뭐였든. 상관없어.
언제나 맨 마지막 타임에 찾아오라던 너.
나를보면 안고싶다고. 느끼고 싶다고. 탈진해버려도 괜찮게 늘 마지막 손님이 되어달라던 너.
미친 듯 너와 엉켰다가 바로 출근하던 지하철 안에서 먼저 잔다며 자랑하던 너의 전화속 웃음소리..
너무나 자연스럽게 밖에서 만났던 너의 휴일.
아무 의심없이 너의 방으로 날 초대했던 너. 짙은 화장과 샤넬향수와 홀복을 벗고
자연스런 너와 작은 곰처럼 엉켜 은은한 존슨즈 향기 가득한 너의 침대에서 잠들던 기억.
일어나 눈이 마주치고
점점 널 바라보는 내 눈동자에 사연들이 떠돌기 시작하면
미쳐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온 몸으로 내 입을 막아버리던 너.
어차피..
난 오빠 맘 못받아요. 오빠도 내 맘 받으면 안되잖아요..
난 그렇고 그런 여자예요. 그냥 지금 좋은 느낌만 즐겨요..
우리..여기까지만..응?
제발..그렇게 해요..내 눈 바라보지 말아요. 그냥 내 몸만 봐요..
그리고 불이 꺼지면
눈동자가 안보이면...
그때 꼭 안아주기만 해요. 깊이 잠들 수 있게.
저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난 알았다. 느낌으로. 감각으로.
저주받을 삶의 지혜. 그런거지. 인생이.
..........
한 시간이 훨씬 흐른 후 내 품에 안겨 곤히 잠들었을 때 울리던 콜싸인벨.
계속 무시하던 너. 날 붙잡아 계속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을감던 너.
벨소리가 연달아 짜증스럽게 울릴 무렵 전화에대고 외쳤던 너의 말.
" 언니..그만 좀 불러요..누구랑 있는지 다 알면서 왜 그래..."
짜증과 울음이 뒤섞인..
넌 에이스였어.
쉼없이 널 찾는 남자들은 끝이 없었고..
유명했던 네 하이힐 뒤에 박힌 철심도. 걸을 때 마다 또각또각 울리던 날카로운 맑은 소리.
내 몸을 꾹꾹 눌러주던 안마사 아저씨가 웃으며 하곤 했던 말.
"요샌 그 걸을 때 또각소리 예리한 아가씨만 일하나봐요..초저녁 부터 새벽까지 복도에 그녀 힐 소리만..."
에이스..
에이스..
에이스..
넌 에이스..
최고의 에이스.
너.는. 내. 지.명.
당연하듯 어느 날인가부터 넌 업소를 옮겼고 뜨문뜨문 이어지던 안부도
어느 날 꺼져버린 네 전화와 함께..
안녕.
안녕 내 지명..내 에이스.. 또다른 나였던 너.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