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이형이 미국에 가야 제 자리가 생길까요?"

SK 와이번스는 시즌 초반 두산 베어스와 '양강 구도'를 이어가고 있다. 1번부터 9번 타자까지 모두 홈런을 때릴 수 있는 강타선이 승리의 주인공으로 떠오를 때가 많지만, 사실 선발진의 역할이 크다. 1선발부터 5선발까지 로테이션을 완벽하게 갖췄다. 주축 선발이 장기 이탈 없이 모두 제 역할을 해주는 팀은 SK 뿐이다. 메릴 켈리-앙헬 산체스-김광현-박종훈-문승원으로 짜여진 선발진은 리그 최강이다. 

하지만 SK의 선발진, 나아가 투수진이 강한 건 이 선수 덕분이다. 주인공은 좌완 김태훈이다. 김태훈은 SK 마운드의 마당쇠다. 그야말로 전천후다. 선발, 중간 가리지 않고 팀이 필요한 자리에서 공을 던진다. 

김태훈은 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에 선발로 등판한다. 이 경기는 김광현이 던질 차례였다. 하지만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팔꿈치 수술 후 복귀 시즌을 치르고 있는 김광현을 관리해주기 위해 2군으로 내렸다. 4승 투수 김광현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건, 그 자리를 채워줄 김태훈이 있기에 가능했다.  

처음이 아니다. 김태훈은 3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 등판 이후 어깨 통증으로 로테이션에서 빠진 켈리의 빈 자리도 메웠었다. 개막전에 중간계투로 나서 2이닝을 던진 후 3월 30일 한화 이글스전 선발, 4월 7일 삼성전 구원, 4월 12일 LG 트윈스전 선발로 나갔다. 이후 4경기를 불펜에서 던지다가 다시 선발 기회를 얻었다. 

사실 선수 입장에서는 시즌 도중 보직을 계속 바꿔가며 던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선발로 던질 때와 불펜으로 던질 때가 완전히 다르다. 김태훈은 "볼배합 차이가 있다. 선발은 긴 이닝을 가져가야해 힘 조절도 하고 변화구도 다양하게 던진다. 하지만 불펜은 모든 공에 100% 힘을 쏟아야 한다"며 "선발은 휴식 기간이 있지만, 불펜은 거의 매일 준비해야하는 점도 다르다. 밸런스에 차이가 있기에, 빠른 시간 안에 다른 보직에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사실 이런 마당쇠 역할이 처음이 아니다. 힐만 감독 부임 첫 해인 지난 시즌에도 비슷한 역할을 수행했다. 김태훈은 "작년에는 선발이든, 불펜이든 똑같이 던졌다. 그래서 실패하는 경기들이 나왔다. 작년 경험이 올해 도움이 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잘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 더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체력적인 대비를 많이 하고 있다. 식단 조절도 하고,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한다"고 밝혔다.

선수 입장에서는 선발이든 불펜이든 정해진 보직을 갖고 던지는 게 좋다. 선발로 잘 던졌는데도, 다시 불펜으로 가야한다면 서러울 수 있다. 그러나 김태훈은 "그런 걸 가릴 처지는 아니다. 지금은 최대한 많이 던지고 싶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임무를 주신다는 건 그만큼 나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물론 욕심은 있다. 김태훈은 "선발로 뛰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있다. 야구를 시작한 초등학생 때부터 선발만 했다. 프로에 와 처음으로 중간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지금 우리팀 선발진이 너무 강하다. 내가 봐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광현이형이 해외에 나가야 내 자리가 생길 것 같기도 하다.(웃음) 내 스스로 몇 년 안에는 꼭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주전 선수가 빠졌을 때 드러난다. SK는 켈리와 김광현, 두 주축 투수의 공백을 김태훈이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