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뭐니해도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낮게 깔리는 묵직하고 빠른 포심패스트 볼이다.  

특히 150㎞를 넘는 강속구는 그 자체로 타자를 윽박지를 수 있다. 해마다 각 구단에서 150㎞를 던질 수 있는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려고 혈안이 되는 이유다. 물론 제구력이 중요하다. 150㎞가 넘는 강속구라도 제구가 되지 않으면 얻어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SK 와이번스는 보물을 구해왔다. 에이스인 앙헬 산체스는 150㎞가 넘는 강속구를 지닌 데다 이 공이 제구까지 된다. 스트라이크존 낮은 구석을 찔러오는 산체스의 강력한 속구에 전날 10점이나 뽑았던 두산 베어스 타자들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산체스는 2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왜 그가 올해 최고 외국인 투수로 불리는 지 확실히 보여줬다.

SK는 산체스의 호투 덕분에 승리를 거의 따낼 뻔 했다. 이날 산체스는 7회까지 106개의 공을 던지며 5안타 1볼넷 5탈삼진으로 1실점을 기록했다. SK도 1회말 한동민의 투런포와 6회말 김동엽의 솔로포를 앞세워 8회까지 3-1로 앞서 산체스의 시즌 4연승 달성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9회초 마무리로 나온 박정배가 두산 박건우에게 동점 투런포를 얻어맞는 순간 산체스의 승리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산체스는 시즌 평균자책점을 2.13으로 낮춘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했다.  

승패와 상관없이 산체스의 호투는 다시 복기해볼 만 하다. 특히나 눈여겨 볼 점은 이날 산체스의 포심 제구력이다. 그는 이날 최고 153㎞의 포심을 던졌다. 가장 낮은 구속도 146㎞에 불과했다. 대부분 140㎞ 후반에서 150㎞ 초반에 형성됐다. 그런데 이 공이 주로 스트라이크존에 꽂혔다. 총 36개의 포심을 던졌는데, 이 중 볼이 된 것은 9개에 불과했다. 즉, 산체스가 두산전에서 구사한 포심의 75%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했다는 뜻이다. 실로 대단한 수치다. 

포심과 같은 비율로 구사한 커터(컷 패스트볼) 역시 제구가 안정돼 있었다. 141~146㎞를 형성한 커터는 상당히 심한 무브먼트 때문에 제구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36개 중 24개(67%)가 스트라이크였다. 이 또한 두산 타자들을 상당히 괴롭게 만든 산체스의 칼이었다. 

커브와 체인지업은 이닝마다 양념으로 섞어 던지며 각각 13개씩 구사했는데, 스트라이크/볼 비율이 똑같이 3/10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건 제구가 안 됐다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게 던졌다고 해석하는 편이 적합하다. 커브와 체인지업은 모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종 변화 궤적을 그리는 변화구다. 

때문에 이런 공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출발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타자를 속이는 데 유리하다. 많은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처음 커브를 연마하는 어린 선수들에게 "높은 것보다 차라리 원바운드가 낫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산체스의 커브와 체인지업이 주로 볼로 기록된 것도 다분히 두산 타자를 현혹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낮게 던졌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정확하게 제구된 150㎞짜리 패스트볼과 140㎞대의 커터, 그리고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 아래로 떨어질 정도로 낙차 큰 변화구. 산체스에게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