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처음과 끝·SSG의 시작…40살 김강민, 오래 버틴 자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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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처음과 끝·SSG의 시작…40살 김강민, 오래 버틴 자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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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처음과 끝·SSG의 시작…40살 김강민, 오래 버틴 자의 미소

2000년 창단한 SK가 처음 지명한 신인 멤버…투수→내야수→외야수

올해 KS에서 최고령 홈런, 사상 첫 대타 끝내기 홈런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SSG 랜더스가 처음 리드를 잡는 순간 한국시리즈(KS) 5차전이 그대로 끝났다.

김강민(40)이 극적인 9회말 대타 끝내기 홈런을 치고 위풍당당하게 다이아몬드를 도는 동안 SSG 선수들은 홈플레이트로 달려 나와 '맏형의 귀환'을 기다렸다.

키움 히어로즈 원정 관중석은 침묵에 빠졌고, 김강민을 '칭송'하는 응원가가 SSG 랜더스필드를 뒤덮었다.

김강민은 7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키움과의 KS 5차전 2-4로 뒤진 무사 1, 3루에서 최원태의 슬라이더를 공략해 왼쪽 담을 크게 넘어가는 '끝내기 대타 홈런'을 쳤다.

KS 역대 첫 끝내기 대타 홈런이었다.

김강민은 KS 1차전에서 자신이 작성한 포스트시즌 최고령 홈런 기록도 40세 1개월 25일로 바꿔놨다.

더그아웃에서 동갑내기 친구 추신수, 김광현 등 오랜 시간을 함께한 후배들을 응원하던 김강민은 단 한 번의 기회에 경기를 뒤집는 짜릿한 한 방을 쳤다.

김강민과 SK 와이번스, SSG 역사를 함축한 듯한 '서사'였다.

SSG의 전신 SK 와이번스는 창단 첫해인 2000년 6월, 처음으로 '신인 선수'를 지명했다.

1999년에 지명한 2000년 신인 선수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뽑았고, 쌍방울을 인수해 재창단하고서 2000년부터 KBO리그에 뛰어든 SK가 이들과 계약했다.

이승호, 박정권, 엄정욱 등 '2000년 신인'이 SK의 첫 신인이지만, SK가 직접 뽑은 신인은 2000년에 지명하고 2001년에 입단한 선수들이다.

2001년 드래프트 명단에 경북고 투수 김강민이 있었다.

김강민은 2001년 2차 2라운드 전체 18순위로 SK에 입단했다.

2001년에 KBO리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선수 중 2022년 11월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는 김강민, 단 한 명뿐이다.

추신수는 당시 롯데 자이언츠에 1차지명됐지만, 미국프로야구에 직행했다.

롯데가 2차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뽑은 이대호는 올해 정규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롯데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대호는 10월 8일 LG 트윈스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김강민의 동갑내기 친구들인 1982년생은 한국 야구 역사에 굵은 획을 그었다.

2001년 함께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대호, 김태균, 이동현, 정상호 등은 일찌감치 1군에 자리 잡았다.

대학을 마치고 2005년에 입단한 오승환, 정근우, 손승락 등도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미국으로 직행한 추신수는 메이저리거가 됐다.

하지만, 현재 현역으로 뛰는 1982년생은 김강민과 추신수, 오승환 등 단 3명뿐이다.

김강민은 현역 중 가장 오래 KBO리그에서 뛰는 선수이기도 하다.

굴곡은 있었다.

대구 출신의 김강민은 대구중-경북고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까지 김강민은 투수였다. 가끔 포수 마스크를 쓰기도 했지만 그는 "투수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꿨다.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야구 명문 경북고에 입학했다.

그러나 1학년 때 손등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경기에 뛰기 위해 내야수로 전향했다. 그러면서도 고교 1년 선배 배영수를 바라보며 투수의 꿈을 이어나갔다. 3학년 때는 내야수와 투수를 겸업했다.

SK는 김강민을 투수로 지명했지만, 곧바로 내야수 훈련을 시켰다.

2002년에는 다시 투수로 뛸 기회가 있었다. 2군에서 시속 140㎞대 중반의 직구를 뽐내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졌다. 투수 경력을 마무리한 그 사건을 김강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김강민은 "2002년 이천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군 경기였다. 공이 홈플레이트도 아닌 잔디에 맞더라. '너무 살살 던졌나'라고 생각해 힘을 줬는데 포수 미트를 한참 벗어나 그물을 때렸다. 투수로서의 마지막 기억"이라고 떠올렸다.

김강민은 한참 뒤인 2021년 6월 22일 인천 LG 트윈스전에서 1-13으로 패색이 짙었던 9회초에 '투수'로 등판해 '유일한 1군 투수 출전 기록(⅔이닝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삼진 1실점)'을 만들었다.

2002년 '폭투' 후 김강민은 3루수로 돌아갔지만 '영점'이 잡히지 않은 송구가 여러 차례 1루 더그아웃을 향했다.

2002년 시즌 막판 '외야수로 뛰어보라'는 제안을 받게 된 이유다.

늦깎이 외야수가 된 김강민은 "외야가 그렇게 넓은 줄 몰랐다. 타구 판단이 쉽지 않더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수비 훈련을 통해 '넓은 외야'에 적응했고, 빠른 발과 강한 어깨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1군에 모습을 드러냈고, 2007년 SK의 주전 외야수로 도약했다. 여러 차례 안타성 타구를 걷어내는 모습에 '짐승남'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2010년에는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히며 '태극마크의 한'도 풀었다.

SK 간판을 달고 뛴 마지막 해인 2020년부터 김강민은 주전 중견수 자리를 후배 최지훈에게 내줬다.

김강민은 많지 않은 기회를 소중하게 여겼다.

올해 정규시즌에서 8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3, 5홈런, 18타점, 출루율 0.375, 장타율 0.449를 찍은 김강민은 KS 무대에서 더 빛났다.

11월 1일 1차전에서 9회말 대타로 등장해 동점 솔로 홈런을 치더니, 4일 3차전에서는 2-1로 앞선 9회초 1사 만루에서 대타로 나서 1타점 중전 적시타를 만들었다.

7일 5차전에서는 끝내기 역전 홈런을 쳐, 마음 졸이던 후배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김강민의 올해 KS 성적은 6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이다.

SK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며 4차례 KS 우승(2007, 2008, 2010, 2018년)을 차지한 김강민은 SSG 창단 후 처음 치른 KS에서도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주로 9회에 등장하는 '김강민 대타 카드'는 2022년 KS에서 SSG가 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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