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잘 싸웠다. 거기서 끝날 줄 알았다. 20년 만에 두 경기로 16강행이 좌절되는 비운을 맞을 줄 알았다.

다행히 실낱 같은 희망이 살아났다. 손흥민의 멕시코전 후반 추가시간 추격골, 그리고 독일-스웨덴전에서 종료 직전 토니 크로스가 넣은 세트피스 골이 합쳐지면서 한국 축구의 기적 같은 16강행 가능성은 존재하게 됐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이지만 태극전사들의 저력이 승패에 상관 없이 발휘될 것으로 국민들은 믿고 있다.

한국은 24일 러시아 로스토프 나도누에서 열린 멕시코와 치른 2018 러시아 월드컵 F조 2차전에서 전반 26분 카를로스 벨라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주고, 후반 21분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치차리토)에 추가골을 내주는 등 고전한 끝에 1-2로 졌다.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의 벼락 같은 왼발 대각선 슛이 골망을 출렁이면서 이번 대회 한국의 첫 골이 터진 것으로 영패를 면했다. 2연패. 한국은 이어 열린 독일-스웨덴전이 정규시간 90분까지 1-1 동점이 유지된 바람에 탈락이 확실시됐다. 그대로 끝나면 한국은 27일 오후 11시 카잔에서 벌어지는 독일전 결과에 관계 없이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페루, 코스타리카에 이은 이번 대회 6번째 예선 탈락팀이 될 뻔 했다. 다행히 크로스가 스웨덴전 종료 직전 그림 같은 오른발 슛을 성공시킨 독일이 2-1로 극적인 승리를 챙겼다. 멕시코가 2승으로 선두인 가운데, 독일과 스웨덴이 1승1패, 한국이 2패다. 27일 동시에 열리는 한국-독일전, 스웨덴-멕시코전에서 한국이 두 골 차로 승리하고, 멕시코가 스웨덴을 이기면 한국의 기적 같은 16강행이 이뤄진다. 한국이 한 골 차로 이겨도 멕시코가 스웨덴을 두 골 차 이상 따돌리면 역시 조별리그 통과가 가능하다. 한국, 독일, 스웨덴이 나란히 1승2패인 가운데 한국이 골득실에서 가장 앞선다. 

물론 상황은 좋지 않다. 언뜻 보면 3차전 승리가 16강 티켓에 다가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대는 지난 대회 우승팀이자 이달 발표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맨 위에 올라 있는 독일이다. 독일은 멕시코에 패하고 스웨덴에 고전하면서 팀이 무너지는 듯 했으나 크로스의 한 방으로 기사회생하면서 상승 국면을 탔다. 주축 수비수 제롬 보아텡이 경고누적으로 한국전에 빠지지만 선수 전원이 독일과 잉글랜드, 스페인의 빅클럽에서 뛰는 만큼 한국보다 1~2수 위다. 독일은 16강행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한국전에서 다득점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신태용호는 주장 기성용이 다치고, 수비 리더 장현수가 연이은 실수로 정신적 타격을 입은 상태다. 기성용은 멕시코전 후반부 상대 선수와 충돌한 뒤 왼쪽 다리가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 신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3~4일 안에 100% 만들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그의 독일전 출전이 불투명하다는 점을 시인했다. 기성용은 이날 목발을 짚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지난 18일 스웨덴전에서 박주호 부상 야기했다는 여론 질책으로 화제가 된 장현수는 멕시코전 전반 23분 안드레스 과르다도의 측면 돌파 때 무리한 태클을 하다가 핸드볼 반칙을 범하고 페널티킥을 내줬다. 이는 벨라의 첫 골로 이어졌다. 치차리토의 두 번째 골 때도 크게 태클하다가 공간을 내줘 실점의 빌미가 됐다. 첫 골 내준 뒤 정신적인 부담 속에서 뛰었다는 게 신 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멕시코전 뒤 선수단 전원이 통과하게 돼 있는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도 거르고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 

팀이 1~2차전을 통해 악전고투했다. 결과도 얻지 못해 손흥민이 종료 휘슬 뒤 울 정도였다. 그래도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멕시코전 투혼을 보면서 마음을 돌렸다는 것이다. 태극전사들이 스웨덴전에 안겨줬던 실망은 어느 새 격려로 바뀌어 있다. 선수들도 비록 실력이 부족해 졌지만 팬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뛰었음을 멕시코전 뒤 전달했다. 홀가분한 마음 속에서 ‘갖고 있는 것 다 쏟아붓자’는 다짐이 독일전에서 표출되면 독일이란 강팀과도 잘 싸울 수 있다. 16강행 희망도 아직은 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