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검증소 뉴스 캐스터는 월드컵 중계를 어떻게 준비할까요
선수들에게 각자의 루틴이 있는 것처럼 월드컵이란 큰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는 아나운서들도 자기들이 갖고 있는 각각의 방법으로 중계방송을 준비합니다.
제 경우엔 일단 모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확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도 1순위 자료는 영상입니다. 중계방송 할 팀의 대륙별 예선, 지난해와 올해 치른 평가전, 그 팀에 속해 있는 주요 선수의 클럽 경기까지 닥치는 대로 수집합니다. 문제는 제가 어떤 경기를 중계하는가가 월드컵 개막 2~3주전에야 결정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월드컵을 6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에선, 누가 어떤 경기를 담당할 지 모르니까 본선 진출 결정된 모든 팀의 자료를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회가 시작되면 당초 계획이 바뀌기도 합니다. 그래서 특정 팀이 아닌 출전팀 32개국 전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합니다. 후배들이 담당할 2026년 북미(캐나다-미국-멕시코) 3개국 월드컵의 경우, 본선 참가국이 지금보다 16팀 늘어나 48개국이 됩니다. 숙제가 더 늘어난 셈입니다.
2순위 자료는 그 영상을 통해서 제가 직접 만들어 냅니다. 선수의 스타일, 장점과 단점, 실수의 패턴 등 제가 정한 나름의 기준으로 팀별 혹은 선수별 자료를 뽑아 단순화합니다. 이 모든 내용은 반드시 A4 한 장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가독성이 좋습니다. 90분 짜리 한 경기가 제게는 180분이 될 때도 있고, 240분이 될 때도 있습니다. 공을 전방으로 운반할 때 패스와 드리블 중 무엇을 주로 사용하는지, 전방압박의 위치는 어디쯤이며 강도와 형태는 어떠한지, 주요 선수의 속도 변화는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지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물론 이런 내용은 실제 중계방송에선 캐스터가 아닌 해설자의 입을 통해 더 명쾌하고 더 알기 쉽게, 전문 지식으로 시청자들께 전달됩니다. 그럼 캐스터가 왜 그렇게까지 준비해야 할까요. 해설자의 그 말을 ‘보다’ 매끄럽게 이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중계방송은 이런 것입니다. ‘캐스터는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짐작해 실마리를 던져 놓고, 해설자는 그 실마리를 잡아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도 일목요연하게 풀어주는 것’, 사실 그런 중계방송을 딱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축구의 전문가’ 해설자와 ‘축구 중계방송의 전문가’ 캐스터는 그래서 호흡도 좋아야 합니다. ‘쿵하면 짝!’하고 박자가 잘 맞아야 합니다. 이렇게 축구가 좋아서 선택한 직업이지만 일로서 축구를 대할 땐 결코 쉽지 않습니다.
월드컵 조별리그가 3라운드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중계했던 경기 중 그래도 봐 줄만 했던 경기가 다행스럽게도 딱 한 경기 있습니다. 나이지리아가 아이슬란드를 2-0으로 이긴 D조 2라운드 경기였습니다. 상황 설명, 해설자와 호흡이 좋았고 특히 예측하기 쉽지 않았던 경기 흐름 변화와 반전을 대체적으로 잘 짚어낸 것 같아 제 스스로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던 중계였습니다. 100번의 실패로 치달았던 방송 끝에 얻은 한 번의 아주 아주 작은 성과(물론 저의 평가입니다)가 다음 경기를 준비하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이제 다시 노트북을 열어야 할 시간입니다. 월드컵에 참가한 32개팀 모든 선수들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