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수들은 가끔 그런 경기를 펼칠 때가 있다. 승리를 빼앗은 상대팀에게 박수를 받는 경기 말이다. 호날두가 유벤투스 팬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은 지 두달 남짓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새벽, 스페인 팬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의 동점골에 이어 기어이 역전골을 터뜨린 스페인을 상대로 88분 극적인 동점골로 해트트릭을 완성한 호날두, 최종 스코어는 3-3 이었다.

산토스 감독의 게임플랜

포르투갈 산토스 감독의 전술은 뚜렷했다. 전방압박을 자제한 채 대형을 유지했고 기회가 왔을 때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역습 축구였다. 이날 포르투갈의 전방압박은 단 두차례. 그마저도 나초의 역전골 이후에 나왔다 (논외로, 나초의 역전골은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슛이였다. 공격수라도 더 이상 잘 차기 어려웠다.)

산토스 감독의 현실적인 선택은 특히 이른 시간 호날두의 PK골로 탄력을 받는다. 그러면서 스페인은 경기 초반 고전했다. 하지만 축구판의 오랜 법칙은 이번에도 틀리는 법이 없었다.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온다”

전반 21분과 22분. 1분 사이 2-0이 1-1로 바뀌면서 경기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가 된다.

누가 뭐래도 점유율 축구, 스페인

첫 번째 동점골 이후 스페인은 살아났다. 라모스-피케를 필두로 후방에서부터 끌어올린 점유율은 이스코-이니에스타 연결고리를 거쳐 포르투갈을 가둬놓았다. 이날 스페인의 전방압박은 총 9차례. 이중 무려 8번을 성공시킨다.

모라타와 파브레가스가 탈락할 정도로 스페인 스쿼드는 특별하다. 이 특별한 선수들 가운데서도 이스코는 빛이 났다. 지단과 로페테기 감독에게 전술의 핵심이었던 이스코의 역할을 '감독3일차' 이에로는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프리롤 장인’ 이스코는 이날도 가장 많이 빌드업에 관여했다.

이스코에 비해 빌드업 관여 횟수는 절반 이하였지만 (32회>14회) 다비드 실바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위협적 슛까지 연결된 키 찬스만 5번을 만들면서 이스코와 동일한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맨시티에서 받는 주급 3억2천이 아깝지 않았다.

33살의 호날두

기대는 높았지만 사실 경기전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스페인은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두고 로페테기 감독을 경질했다. 하지만 안 좋은 분위기는 포르투갈도 만만찮았다. 2016 유로 우승의 주역으로 포르투갈을 지탱하는 스포르팅 리스본 선수들은 과격팬 50여명의 훈련장 습격-폭행사건으로 카르발류 회장과 불화에 휩싸이며 계약 폐지를 주장하고 있었다. 여기다 더해 스페인 언론이 호날두가 탈세 혐의로 240억의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한 시간은 킥오프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집행유예 2년). 그리고 호날두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호날두는 변했다. 20대 때의 주력과 드리블, 활동량은 없어졌지만 모든 힘을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폭발시키는 스트라이커로 진화했다. 전반전 호날두보다 적게 뛴 선수는 거의 없었다 (센터백 주제 폰테 한 명). 바로 그 전반전에만 호날두는 두 골을 몰아쳤다. 모두 팀에 리드를 안겨 주는 골이었다.

그리고 88분 자신이 얻어낸 프리킥으로 해트트릭을 완성한다. 재밌는 것은 지난 월드컵에서 호날두는 총 44개의 프리킥을 찼는데, 득점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도 기회를 받는 것이 호날두고, 그걸 또 성공시키는 게 호날두다. 이 선수에게 어떤 수식어를 붙여야 할지 당황스럽다. 산토스 감독은 수식어 같은 거야 아무래도 좋았을 것이다. 호날두가 있었기에 포르투갈의 산토스 감독은 이번 월드컵을 준비할 수 있었다.

경기의 중요도를 따졌을 때, 이 승부가 세기의 명승부로 기록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의 시작을 이보다 더 잘 느낄 수 있었을까? 엄청난 승부를 펼쳐 준 두 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