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싫은 콘텐츠를 어쩔 수 없이 보게 됐을 때 흔히 쓰는 표현. “안본눈 삽니다.” 27일(한국시간) 러시아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루즈니키스타디움에서 기자도 이처럼 외치고 싶었다. 대회 기간 루즈니키스타디움에서만 4경기째를 봤는데 이날은 정말 하품만 나왔다. 

축구를 담당하는 기자로 당연히 양 팀 의도를 존중하고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 경기여서 더 그랬는지,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확하게 7만8011명의 관중이 들어찼는데 프랑스와 덴마크 팬 규모는 1만~1만5000여 명 정도다. 나머지 6만여 관중은 기자와 비슷한 심정을 느낀 탓에 90분 내내 야유와 휘파람을 쏟아냈다. 갈수록 커지는 데시벨을 견디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번 대회 들어 그라운드 선수, 코치진과 관중석의 온도 차가 가장 큰 경기가 아니었나 싶다.

“덴마크전에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 최우선 목표다. 우승후보 상대로 공격적으로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아게 하라이데 덴마크 감독)” 두 수장은 계획대로 무리하지 않았다. 적절한 견제와 반격을 주고받았다. 무득점 무승부, 승점 1씩 나눠가졌다. 이미 2연승으로 16강행을 확정한 프랑스는 1무를 보태면서 승점 7로 1위를 확정했다. 덴마크는 1승2무(승점 5)로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앞서 덴마크와 1-1로 비기는 등 1무1패를 달린 호주는 2패를 떠안은 페루와 경기에서 0-2로 완패했다. 페루를 잡고 프랑스가 덴마크를 이기면 골득실로 뒤집기를 노려볼 수 있었으나 공염불에 그쳤다.

프랑스-덴마크전 킥오프 1시간여를 앞두고 경기장 인근 지하철 역인 스포르티브나 역서부터 양 팀 팬 응원전이 치열했다. 프랑스 팬이 국기를 흔들며 “프랑스~!”를 외치자 덴마크 팬은 역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안전 손잡이와 판넬 등을 두드리면서 “덴마크~!”를 연호했다. 러시아인도 살벌하면서도 흥겨운 응원전에 동참했다. 뚜껑을 연 경기는 재미 없었다. 프랑스는 킬리안 음바페, 폴 포그바 등 일부 주력 선수를 선발진에서 제외했다. 승점을 따야 하는 덴마크는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비롯해 주전급이 나섰지만 이전 2경기보다 적극성이 떨어졌다. 양 팀 모두 무의미한 백패스를 남발했다. 지루한 공방전을 이어갔다. 프랑스는 수세적으로 나선 덴마크를 상대로 볼 점유율에서 70-30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지만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소극적이었다. 덴마크는 간간이 에릭센을 중심으로 반격했으나 효과적인 역습을 펼치기엔 공격 숫자가 많지 않았다. 전반 40분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처음으로 8만 야유가 터져나왔다. 이때까지 프랑스가 패스 숫자에서 덴마크에 308-108로 크게 압도했다. 그럼에도 문전에선 이상하리만큼 시원시원한 돌파 장면 하나 보기 어려웠다. 덴마크도 반격할 의지가 없어 보였으니 참았던 팬들의 분노가 나온 셈이다. 후반에도 마찬가지다. 페루가 후반 초반까지 이미 호주에 두 골 차로 앞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더 맥빠진 경기가 이어졌다. 데샹 감독은 아예 벤치에 앉은 채 편안하게 경기를 바라봤다. 그라운드 22명의 선수들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종료 호루라기를 기다렸다. 관중석 야유 데시벨은 절정에 달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월드컵이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결과의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팀, 선수 입장에선 실리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이날 방어적 태도로 오히려 16강 토너먼트를 대비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라보는 팬 입장은 다르다. 월드컵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이정도 수준의 팀이 겨루는 경기에 대한 기대 심리도 크다. 더구나 비싼 티켓값을 지급하고 각양각색 사연으로 경기장을 찾은 전 세계 팬이 많다. 월드컵 참관을 온 K리그 사장단도 이날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했다.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는 “한국 경기 외에 다른 나라 경기로 프랑스-덴마크전을 선택했는데 워낙 성의 없이 경기가 치러져서 아쉬운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도 ‘누가 야유한 팬을 욕할 것이냐’며 ‘팬도 경기장에 야유가 가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해설가 디온 더블린도 “이번 대회 최악의 경기였다”고 말했는데, 그가 중계석에서 졸고 있는 사진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현장에서 느낀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다만 축구로만 봤을 땐 정말 ‘쁘리벳(안녕)’하지 못할 날이었다.